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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20 02:29
[중국] 임진왜란때 명군은 무엇을 먹었는가?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3,571  

7년간의 전쟁동안 조명일 삼국의 군사들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조선군은 개전초 일본군에게 식량을 모두 빼앗긴뒤 기근에 시달려 먹을거리가 없었고, 일본군은 모두가 알다시피 바다의 이순신과 의병들이 털어먹는 바람에 식량난에 시달렸습니다. 명군은 조선땅에서 조선이 대주는 군량을 먹고자 했으나 조선이 너무나도 피폐해져 조선이 대주는 군량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명은 본토에서 식량을 공수해오려고 했지만 보급선이 길어 수송 속도는 빠르지 않았고, 그 결과 수많은 명군이 기아로 죽게됩니다. 명군이 평양성을 함락하고 개경으로 남하할때 굶어죽은 명군의 시체가 길에 널려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임진왜란은 조선 일본 명 삼국 모두가 보급에 철저하게 실패한 전쟁이었습니다. 조선군은 만성적인 식량난 때문에 대군을 양성하기가 어려웠고, 명군 또한 전투를 치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송응창의 저서 경략복국요편經略復國要編의 권 6과 7에는 '군량이 도착하지 않아 역병에 죽은 말고기를 먹거나 굶어야 했다', '계속되는 행군에 시달려 옷은 너덜너덜 떨어지고 오랜 야영생활에 갑주에는 이가 가득 끼었다',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면 병사들은 온몸이 흠뻑 젖어 서로 껴안고 울었다' 등의 기록이 있어 당대 명군의 처참한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한 명군은 조선땅에서 온갖 패악질을 저지릅니다. 명군의 패악질이 어찌나 심했던지 전쟁이 끝난후 조정 대신들은 명군 덕에 나라가 살았지만, 반대로 명군 때문에 나라가 탕패하게 되었다고 말할 지경이었습니다. 명군의 패악질에 견디다 못한 평안도 가산의 이민(吏民 아전과 백성)들은 1593년 1월경 명나라 병부주사 원황에게 구장(具狀 상세하게 적어 보고하는 서류)을 보냅니다. 

병부 주사(兵部主事) 원황(袁黃)이 금약(禁約)을 내어 보였는데 다음과 같다.
"지금 가산(嘉山) 이민(吏民)들의 구장(具狀)에 ‘소방(小邦 조선)의 백성이 이미 명나라 조정의 은덕을 입고 기성(箕城 평양의 옛이름)의 적이 이미 모두 섬멸되었으니, 회복하는 기약을 며칠 안으로 기대할 수 있기에 군신 상하가 모두 감읍하고 있다. 고을을 지키는 여러 관리들이 왕래하는 장관(將官)들에게 비록 성의를 다하여 접대하려고 하였지만
군졸(軍卒) 중에 무지한 무리들이 주방(廚房)의 사람을 마구 때리고 앞을 다투어 빼앗아 먹었으므로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였다. 여기에 의거하여 보면 조선이 병란을 당한 나머지 인민이 어지럽게 유리하므로 명나라 군사가 멀리 와서 전적으로 구휼(救恤)하는데, 왕래하는 관군(官軍 명군)이 세력을 믿고 침해하며 기계를 훼손시키거나 빼앗는다. 이 때문에 역부(驛夫)가 괴로워하여 자주 도망하므로, 공차(公差)가 굶주림을 참아야 하며 군무가 지연되니 양쪽이 모두 온편지 못하다.
- 선조실록 34권 1월 12일 정묘 11번째 기사 -

병부주사 원황은 보고를 받고는 크게 화를낸 모양입니다. 명군 중에 세력을 믿고 조선측의 먹을것을 마구 빼앗는 관군들이 있는 바람에 음식 조달에 차질이 생기고 이 때문에 양측이 모두 고통스러워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병부주사 원황은 금약을 내려 명군의 약탈을 금지하고 식단을 아예 일정하게 규정해 지급할것을 지시합니다.

이 뒤로는 때리면서 밥을 빼앗아 먹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재물과 가축을 노략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관장(官長)을 구타하거나 욕보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니, 범하는 자는 영에 의하여 처단하겠다. 그리고 역(驛)마다 각각 순환부(循環簿) 2선(扇)을 비치하게 하고 본부(本部)에서는 관방 검인(關防鈐印)을 사용하여 등급을 분별하고 알게 한 뒤에 역마다 차관(差官) 1명이 출근하여 등록을 관장하되 5일에 한번 순환하도록 하여 지방 왜노의 정황을 즉시 전보(傳報)하게 한다. 약속을 준수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이름을 적어 속히 보고하여 이를 증거로 신청(申請)을 한 다음, 영에 의거하여 참(斬)하겠다. 그리고 각 역의 관부(館夫)도 회피하여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군(中軍)·천총(千總)·파총(把總)에게는 천자호반(天字號飯)을 지급하며, 【고기 한 접시, 두부·소채·절인 생선 각 한 접시, 밥 한 주발, 술 세 잔. 】각 아문(衙門)의 차인(差人)에게는 지자호반(地字號飯)을 지급하고, 【고기·두부·소채 각 한 접시, 밥 한 주발. 】 군병(軍兵)에게는 인자호반(人字號飯)을 지급하고, 【두부·절인 새우 각 한 접시, 밥 한 주발. 】 말은 한 필마다 규례대로 지급하며, 【요(料) 1소두(小斗), 풀 1속(束)인데 점심 때 말먹이로는 삶은 요 4소승(小升)만 지급하다. 】 상처를 입어 행동할 수 없는 자는 각력(脚力)을 헤아려 지급한다."
- 선조실록 34권 1월 12일 정묘 11번째 기사 -

천자호반: 고기 한 접시, 두부·소채·절인 생선 각 한 접시, 밥 한 주발, 술 세 잔
지자호반: 고기·두부·소채 각 한 접시, 밥 한 주발
인자호반: 두부·절인 새우 각 한 접시, 밥 한 주발

각각 고급지휘관, 하급지휘관, 병졸에게 지급했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약탈과 군량의 무분별한 낭비를 위해 아예 직위별로 식단을 정해놓고 그 식단만 배급하겠다는 내용의 금약(禁約 하지 못하게 단속함)입니다.

특이한건 명군의 모든 호반에 두부가 들어가있다는 점입니다. 명군이 조선땅에 들어와 먹은 두부가 맛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렇듯 명군의 식단을 세 등급으로 규정하여 배급하였음에도 명군은 여전히 식량난에 시달렸고 약탈 또한 지속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호반은 식량 사정이 좋을때나 먹을 수 있었고 식량 사정이 어려울땐 미숫가루라도 먹는게 다행이었을겁니다. 전쟁이 끝날때까지 조선땅에 그 어떤 군사도 배불리 먹으며 지내지 못했습니다. 조선은 기아로 죽은 사람으로 시산과 혈해를 이루었으니 전쟁이 낳은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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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08-20 02:53
   
6.25때는 전쟁무기가 화약 위주라서 초근목피도 씨가 말랏음. 가장 굼주렷던 시기는 옛날이 아니라 최근.
여기에 핵전쟁 터지면 ...
     
촐라롱콘 17-08-20 11:51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국을 비롯한 UN회원국 여러나라들의 원조로 인하여
직접적인 아사자의 규모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역대 전쟁 가운데
그나마 가장 적었던 전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사자들이 발생했던 부분도 따지고 보면.... 군인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중간에 착복하고 떼어먹는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그렇지(국민방위군 사건처럼...)
당시 미국과 UN측은 적어도 남한 전체 인구가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식량과 물자는
지속적으로 제공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종결된 이후에도 적어도 1950~60년대까지 식량 등의 생존에 필요한 원조물자들은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왔지만... (심지어 우유,학용품 등의 물자들까지 남한 전체 인구 또는
군인, 학생인구수에 필요로 하는 규모로는 제공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를 살아온 여러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군복무 당시 항상 배고팠다거나
학생인데도 우유(분말형태의)나 미제학용품을 제공받지 못했다는 등의 회고담을 통해

이러한 미국의 원조식량이나 원조물자들을 중간에서 착복하거나 가로채는 거머리같은
인간 또는 계층들이 얼마나 상당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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