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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20 08:36
[한국사] 한국 말의 품종과 조선 기병의 역사(펌)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2,522  

◆ 한국 말 품종에 대한 기록

-삼국시대의 기록에는 과하마와 양마(良馬), 고려시대 기록에는 국마(國馬)와 경마(耿馬), 조선시대 기록에는 향마(鄕馬)와 호마(胡馬)의 구별이 있었습니다. 각각 앞에 것이 상대적으로 작은 말이고 뒤에 것이 상대적으로 컸다고 합니다. 특히 경마와 호마는 교역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온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품종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당서에 신라 말에 대해 평하기를 多馬. 馬雖高大, 不善行. 이라고 했으니 신라 말의 주류는 (덩치 작은 과하마가 아닌) 키가 큰 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이후의 국마-향마 계통의 말은 평균적으로 (대략 130cm 이하급) 덩치가 작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같은 한국 고유 말인 국마-향마 중에도 약간 계통이 다른 말이 섞여 있었는지 아니면 시대별/지역별/개체별로 어느 정도의 크기 차이나 품종 차이가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막연한 기록은 산발적으로 발견되도 그걸 구체적으로 논할만한 직접적 사료는 아직 뚜렷하게 확인된 것이 없는 같습니다.

-여하간 조선 초기에 명나라에 반강제적으로 대량의 말을 공납한 이후 세종대왕의 말 품종 개량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말 품종의 열화현상이 일어났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신라 고분에서는 완전한 말의 전신 뼈가 출토된 적도 있고, 가야 고분에서는 말 이빨도 제법 출토된 사례가 있는데 이를 토대로 구체적으로 말의 품종을 규명한 논문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 전통 말의 계통에 대해서도 사천마 계통의 중국 소형마와 유사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몽고마 같은 중형마와 유사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도 제대로 분석하자면 실제 살아있는 말을 대상으로 과연 어떤 말이 한국 고유의 말 품종인지, 먼저 한국 토종마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말인지를 특성을 특정지워합니다. 하지만 일부 논문이 나와있긴 합니다만 완전 혼혈되어 종의 특성을 따지기도 부담스러운 제주마 외에 남아 있는 한국 말 자체가 없는 상태라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닌듯합니다. 2007-04-14 wafog.net


◆ 전근대 한국 말에 대한 보론

-일단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조선 본토 육지(해안도서 포함)의 목장이 격감하면서 한국 토종마의 본류가 사라져 버렸고, 그나마 한국 토종마의 특성을 잔존하고 있는 제주마조차 구한말-현대를 거치면서 혼혈이 심해져서 한국 토종마의 품종 자체를 따지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입니다.

-일본에서도 스즈키 마사야가 "일본 전국 기병 허구론"을 들고 나올수 있었던 것도 전국시대 무렵의 일본 토종마 유체가 대량으로 발굴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본의 지역별 토종마는 우리나라보다도 제대로 보존된 상태임에도 시대별 변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직접적인 연구는 당시 말의 유체를 가지고 접근했다는 이야기지요. 우리나라에서 고려~조선시대 토종마의 유체가 대량으로 발견되는 일이 과연 일어날지...아마도 좀 어려울듯... 그나마 삼국시대 고분에서 나온 말 유체라도 남아있으니 이걸 토대로 뭔가 좀 살펴봐야할듯 합니다.

-조선시대 문헌중에 말관련 자료는 신편집성마의방이나 마경초언해 등 수의학적인 차원에서 말에 대해 논한 자료가 주류입니다. 이외에 목장지도 등 전국 말 목장의 현황을 담은 자료, 태복시절목 등 말 관련 행정부서의 실무 규정 등이 다수 남아있습니다. 이들 자료에 색깔에 따른 말 구별법 등이 일부 나오긴하는데 체계적으로 말 품종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만해도 동양권에서는 현대적인 품종 개념은 약했으므로 지역별로 말을 구별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도 등 북도 지방 말이 좋았다는 기록이 일부 남아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처럼 각 지역별로 xx마 식으로 구별할 정도로 특성이 분명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07-04-14 warfog.net


◆ 중국과의 강제적인 말 무역에 따른 품종 열화 현상

지금까지 학계의 연구결과로는 고려말~조선초에 걸쳐 교역 내지 조공의 형태로 명나라로 넘어간 말의 숫자는 대략 10만 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태종~세종대에 중국에 의해 강제된 말 무역은 거의 정치적 논란거리가 될 정도였습니다.

태종대에는 '고구려가 수당과 싸워 이길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좋은 말이 있었기 때문인데 중국에 말을 넘기는 것은 결국 기병을 잃는 일이고 이는 국방에 심대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하는 태종 9년 사간원에서 국왕에게 올린 시무3조 중 제2조입니다.

"나라에 중한 것은 군사이고, 군사에 중한 것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나라 제도에 군사를 맡은 관원을 ‘사병(司兵)’이라 하지 않고 ‘사마(司馬)’라 하였으니, 말이 나라에 쓰임이 중한 것입니다. 우리 국가가 땅덩이가 작고 말도 또한 한도가 있는데, (명나라) 고황제 때부터 건문에 이르기까지 그 바친 말이 몇만 필이나 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상국(上國)에서 또 마필을 요구하여 그 수효가 심히 많은데, 유사가 기한을 정해 독촉하여 비록 말 한 필이 있는 자라도 모두 관에 바치니, 이 같이 하면 나라에 장차 말이 없을 것이니 말을 하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당나라 태종과 수나라 양제가 모두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고, 거란의 군사와 홍건적이 우리를 침구하다가 먼저 망하였는데, 이것은 산천이 험하고 장수가 훌륭한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말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사대의 예로 말하면 바치지 않을 수 없고, 종사의 계책으로 말하면 많이 바칠 수 없는 것이라 여깁니다. 또 어찌 오늘에 요구하고 명일에 요구하지 않을지 알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사대의 예와 종사의 계책으로 참작해 시행하소서"


사대의 예로 생각한다면 중국에 말을 보내야하지만 나라의 계책을 생각하자면 달라는대로 주면 안되니 잘 생각해 달라는 건의문이죠. 조선 건국 이후에만 이미 2만3천필이 넘어간 상태에서 이 건의문이 나온 이후 세종대에도 3만필이 추가로 넘어갔으니...그야말로 사간원 간관의 말대로 "눈물이 날 지경"이죠. 2007-04-14 wafog.net


◆ 고려말~조선 초기 대중국 말 무역 & 조공의 추이

-고려가 명나라에 말을 바친 것은 공민왕때부터입니다. 이때부터 고려가 망할때까지 25600~30000 필 정도를 명나라로 보냈습니다. 공민왕때만해도 비교적 백단위 이하의 소량이었고, 우왕때부터 천단위로 증가했습니다. 25600~30000필에는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가 사실상 실권을 장악한 이후 명나라로 보낸 물량 약 8000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조~문종대까지 보낸 물량이 대략 63000~70000필 정도이니 실제로는 10만이 조금 못되는 9만 ~10만 사이가 되겠네요. (수치는 모두 동국대 남도영 교수 계산 기준임) 이렇게 보내고도 성종대 국영 목장에서 관리하는 말만 40000필 정도가 남아 있었으니 중국에 말을 보낸 것 때문에 기병이 바로 약화되지는 않았겠지만... 조선의 말 생산 유지 기반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사실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기병의 전력 약화로 연결될 여지는 있었습니다. 2007-04-14 warfog.net


◆ 조선 전기와 비교해 본 조선 후기 기병부대의 흐름

-조선 전기 군대에선 주력 병종인 정병의 반수 이상이 기병이었던데 비해 조선 후기에는 정병의 입번 자체가 기본적으로 중지되면서 한때 기병의 기반 자체가 거의 붕괴 직전까지 갑니다. 하지만 숙종대 무렵부터 점차 지방 기병이 재건되면서 완전한 붕괴상태는 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순조 이후를 기점으로 점차 약체화의 길을 걷지만 적어도 고종 초기때까지도 상당수 기병부대내지 병종들이 (약체화되긴 했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유지했습니다.

-예를 들어 순조대 기준으로 기병 정원은 57794명이지만 대부분 방군수포 대상이므로 거의 대부분 정번(번상 중지)되어 실제 근무자는 25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순조대 기준으로 실제 근무인원은 1번당 대략 250명 내외로 6번 교대근무제로 유지됐습니다. 6번 전체로 봐도 약 1500명 규모가 됩니다.

-이것도 고종 초기가 되면 각 168명이 6번 근무하는 것으로 더욱 줄어듭니다. 6번 전체로 봐도 번상 기병은 약 978명에 불과하며 그나마 이마저도 정번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들 조선 후기 번상 기병은 소수일망정 조선 전기 정병 기병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존재죠. 이들은 조선 후기에 하나의 전투용 단위부대로 운용되기 보다는 궁궐 외곽을 비롯해서 수도 한양의 주요 시설을 경비하는 용도로 운용됩니다.

-금군 계통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 및 이를 총칭하는 내삼청, 금군청, 용호영 계열)은 전통적으로 기병 위주의 군대지만 부대라기보다는 국왕 경호 병종에 가깝죠. 역시 규모는 700~1000명 내외입니다. 조선 말기에가면 약 600명 규모로 줄어듭니다.

-조선 후기의 중앙군, 특히 직업군인으로 구성되는 핵심부대인 훈련도감의 경우 기본적으로 보병 위주의 군대였기 때문에 최초 창설당시 아예 기병이 없다가 선조의 지시로 원칙적으로 기병 설치가 결정되고 광해군대 50명 규모, 인조대 5초(5개 중대) 규모, 숙종대 6초 규모, 이후에는 7초(7개 중대 약 700~800명 내외)정도로 까지 단계적으로 증가합니다. 적어도 고종 초기까지도 마병 7초 800여명 내외의 병력 기준 자체는 유지됩니다.

-금위영과 어영청도 원래 기병 전력이 미약했지만 숙종대 이후 지방 기병이 점차 재건되면서 이들 병력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황해도에 해서 향기사, 서울도 경기사가 설치되고 이들 중에 일부가 금위영, 어영청 소속이 됩니다. 어영청이든 금위영이든 잡다한 기병 전력을 모두 합하면 각각 약 700~900명 수준이고 적어도 고종 초기까지 기본적인 모습은 유지됩니다.

-조선 후기 지방군 기병 중에 대표적인 존재가 함경도의 친기위와 평안도의 별무사입니다. 숙종대 최초 300여명 규모로 시작된 함경도 친기위는 나중에 3000명 규모로 확대되고 평안도 별무사도 최초 600명에서 점차 최대 2500명 규모로 확대됩니다. 평안도 별무사들은 영조무렵 이인좌의 난때 일부가 반란군의 동원계획에 선이 닿았고 순조 홍경래란때도 별무사들 다수가 반군에 개입하면서 유무형의 압력을 받아 점차 약체화됩니다.


◆ 조선 후기 기병부대의 규모

-거칠게 계산해보면 중앙군 중에서 번상 기병 (조선 전기 기병의 후신) 900~1500명, 금군계열/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소속 각종 기병이 각 700~900명(합 대략 3000명 내외), 지방군 기병(이중 일부는 중앙군에 지원됨) 중에서 비교적 정예로 분류되는 친기위 3000명, (평안도 지역) 별무사 2000명 내외니 대략 1만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 정도는 됐습니다. 이들 제 기병부대의 말은 원칙적으로 자비 조달이 원칙이지만 부분적으로 나라에서 관마가 지급됐습니다.

-이 밖에도 후기 지방군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속오군에 기반한 것이고, 속오군 자체가 보병 지향적인 성격이 강하긴 합니다만 조선 후기 지방군대의 명색도 워낙 잡다해서 마병, 무학마병, 별초마병 등 명목상 기병으로 분류되는 군대도 많았습니다. 함경도의 경우 경우 남병사 휘하에 마병 30초(30개 중대=3000명 이상), 북병사 휘하에 마병 17초가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보다는 적었지만 마병초 자체는 존재했습니다.

-함경도 마병 47초, 평안도 마병 12초를 비롯해서 삼남지역까지 포함해서 잡다한 지방군 기병들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유지됐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예를들어 정조대를 기준으로 평안도의 별무사-마병초를 합한 명목상 기병 총수는 5000명이지만 실제 말을 가진 병력은 3000명 정도였다고 언급한 기록도 나옵니다. 이밖에도 명목상 기병이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방군수포용 병종도 있어서 이들 지방군 소속 기병의 정확한 수치를 잡기는 힘듭니다.

-조선 후기에는 다만 대략 1만에 조금 못미치는 정예 기병(번상기병,금군계열,중앙3군영,친기위,별무사)을 제외하고도 약 1만 정도는 추가로 지방군 소속 기병이 존재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정해 봅니다.

-더하기를 거칠게 하고 기준 시점도 약간 들쭉날쭉하게 숙종~고종 초반까지 기록을 마구 섞어서 계산한 것이므로 단순 참고용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단어나 숫자를 하나 하나 뜯어서 보시지 말고 전체적인 경향만 참고하십시오. 2007.4.14 warfog.net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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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 17-08-20 11:58
   
잘 읽었습니다.

말은 아랍종이 최고죠 ㅋ
촐라롱콘 17-08-20 12:19
   
조선 후기 18세기 이후에 이르면 기병 뿐만이 아니라 일부정예 중앙군을 제외한
속오군 등의 지방병력 상당수가 장부상의 숫자만 겨우맞춘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물론 비슷한 시기 이웃나라 청나라의 팔기-녹영과 일본 사무라이 계층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특히 조선후기의 전성기로 알려진 영정조시기부터 병자호란 이후에는 이렇다할 전란을 겪지 않았고
여러 대기근 등을 겪으며 대동법,균역법 등 백성들의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반면에 군사력 특히 지방군사력을 대상으로는 유명무실화,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형식화된 경향이
가속화됩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묘사되듯이 [속오는 사노와 천민들로 그 숫자만 채운 것이라 어린이와 노인들로
그 숫자만 채운 것이다... 중략... 대오가 오래전에 허물어져 실제로는 산사람과 죽은사람이 뒤섞여 있다...
중략... 말 역시 큰 것이라야 당나귀크기에 불과하다.... 중략...안구(장비)의 실태를 보자면 가슴걸이, 안갑,
등자, 북 등이 없다... 중략....].....이것이 당시 조선지방군의 실상이었습니다.

또한 정약용은 속오군에 대해서는 괜히 점고를 한다고 헛되어 소동을 일으켜
관리-아전-군리들의 배만 불리는 행위를 아예 하지말고...
유시시를 대비해서 그냥 서류상의 숫자만 맞추고 군사훈련 등의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폐단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민생에 기여하고
군사력의 낭비와 폐단을 줄이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도배시러 17-08-20 16:36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도 등 북도 지방 말이 좋았다는 기록이 일부 남아있지만 =>
주류 사학에 따르면 함경도는 동예 지역이고 과하마가 토산물인 지역입니다.
과하마는 과일나무 아래를 지날수있기에 키가 작은 말이죠.
고대 말의 유전자 분석으로 과하마의 출산지를 추적하여 동예의 위치를 규명 할수도 있겠네요.

추가로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중국으로 과하마를 1회? 헌납한 국가는 백제....
(백제... 여기저기 끼어서 역사를 애매하게 만들죠)
국산아몬드 17-08-22 23:07
   
명과의 말무역은 여진족의 말을 사다가 명에 10배남겨먹는것 아니었나요? 조선의 말을 징발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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