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낯선 것에서 비롯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낯섦이 찾아오는 바로그 순간이 우리의 생각이 깨어나 활동하는 시점”임을 역설했다.
사람들은익숙하지 않은 다른 것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이런 반응이 하나하나 쌓이면 인상이 되고, 기억이 되는 것이다.
언더우드 여사가 조선이라는 생경한 나라에 발을들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몽고족 같은 생김새와 때 묻은 흰 옷, 그리고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더러움.
여러 가지의 기억이 그의 기억에 남아있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생경했던 것은 바로 조선 남자들의 ‘상투’였다.
언더우드 부인이 조선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서술하면서, 난데없이 상투이야기를 한 것은 그 이유가 있다.
그는상투를 집안에 위기가 닥치면 틀어쥐고 운전할 수 있는 ‘손잡이’라고표현한다. 조선 남성들은 무능하고 게으르다.
이들이 지배하는사회는 그야말로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인 것이다.
언더우드는 이런 여건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나은 곳에서 온 문명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실상 그 역시 남편에 순종적이고, 여성으로서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이었다.
그가상투잡이에 대해 부러워하는 이유도, 안방에만 틀어박혀 있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양반 집 안방마님의 삶을 불쌍하게 보는 것도 바로 그런 삶에 대한 내면의 공감과 연민 때문이다.
이런 언더우드에게 조선 하층민 여성들의 ‘상투잡이’는 어쩌면 새로운 카타르시스였을 것이다.
아일랜드 사람과 닮은 가마꾼 ‘패트’가 방문을 부순 괴한에 응징을 가하는 장면을 서술할 때에도 상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책의 표현을 빌면, “상투를 잡힌 사람은 별 수 없이 상대방의 처분을기다려야” 한다.
이렇듯 언더우드에게 있어 상투의 첫 인상은 그 자신의 자존심을 투영하는 것이었다.
“제 권리를 지키는 여자라면 이것이 참으로 못 이룰 것이 없는 ‘손잡이’일 것”이라고 표현하는 그에게
상투를 잡는 것은 곧 한 개인을 움직일 수 있는 주도권을 잡는 것과 같았다.
양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체두관(剃頭官)이 가위를 들고 상투를 자르는 모습
상투 제거의 상반된 의미
언더우드가 처음 조선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그의 인상 깊이 박혀있던 상투에 대한 의미가 더 강하게 부각된 것은 단발령과 아관파천 때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는 상투를 튼다는 것의 의미가 ‘집안의 한 남자로서의 권위와 의무가 생기며, 그를 식구의 한 사람,
곧 자기들에게 존경심을 나타내고 또 자기들이보호하고 축복해야 할 식구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또한 불교 승려가 상투를 틀 수 없음을 지적하는 부분, 그리고 그의 여행기 전반에서 야만인을 표현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머리를 풀어 헤쳤다’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언더우드가 상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확인하게 된다.
언더우드에게 조선 사회의 남자들이 상투를 튼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의 확립이며, 자신이 사회적 맥락에서 자신을 인정받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 점을분명히 알고 있는 언더우드에게, 상투를 제거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매우 크게 다가왔다.
상투를 제거하는 것에 대한 그의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선택으로의 상투 제거’이며, 다른하나는 ‘강압으로의 상투 제거’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상투를 제거하는 것에 대해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언더우드 역시 ‘과거의 관습을불필요한 것으로 팽개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조선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받아들일 때, 상투를 잘랐다.
본래있던 식구와 친지, 조상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죄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던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상투는 또 하나의 자신이고, 상투를 자르는 것은 그 자신을 버린다는 의미이다. 이는 마치 기독교의 ‘세례’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짐작하건대, 이런 행동에 대해 언더우드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이행하는 개화의 길이라고 받아들였을것이다.
단발령이 내리자 체두관을 각지에 보내,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나 붙들어 상투를 잘랐다.
그러나 언더우드가 더 주목하는 것은 강압으로써행해지는 상투 제거다.
그는 단발령이 시작되자 “조선인의자존심과 위엄은 모두 빼앗겨 발아래 짓밟혔다”고 서술한다.
개인의자유에 대한 공격, 조선의 민족 주체성의 말살. 그가 본강압으로써의 상투 제거는 바로 정체성을 빼앗기 위한 일본의 획책인 것이다.
정체성을 빼앗긴 이들은 그야말로혼란 그 자체였다. 동학당이 일어나고, 나라는 흉흉해졌다. 폭동도 끊이지 않았다.
‘상투 제거’로 표상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도전은 곧 분노와 저항, 그리고 방향성의상실이었다.
절대자를 찾는 이들, 그대안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언더우드
언더우드가 상투에서 느꼈던 알레고리는 결국조선 민중의 자기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다.
상투가 잘린 그들에게는 방향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여행기를 서술하면서 보여줬던 시선 흐름은 바로 이 지점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이 사건 이전에는 단순히 언더우드가 지닌 조선 사회에 대한 호기심의 흐름에 따라 움직였다면,
상투 제거 이후에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과 스스로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잃어버린 조선 사람들이 그 나름의 정체성을찾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로 변한다.
단발령이 내려지자,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었고, 누군가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자신들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그들 가운데에 언더우드는 조선 사람들이 경건하게 반복하는 주기도문소리를 듣는다.
독립문 옆, 겨우 빌려 얻은 한 정부 건물에하나 둘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고, 찬송을 부르고, 끊임없이반복해 주기도문을 왼다.
상투 잘린 조선 사람들에 대한 언더우드의 대답은 이 지점에 있다. 조선 사람들의 방향성을 세우고, 정체성을 만들어줄 이는 오직 기독교의신이라는 지점.
바로 이 지점이 언더우드가 이 여행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더 나아가 언더우드가 조선 땅에서 일하는것에 대한 자기 정당성 확보 역시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한다.
그와 그의 선교사 동료들을 상투가 제거된조선 민중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구원자이자 또 하나의 메시아로 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언더우드부인 역시 미국 사회에서는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순응해야 했던 여성이었다.
그가 남편 상투를 잡고 남편을 질질 끌어올 수 있는 것에 부러워하고, 행여남편이 안 돌아올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는 모습에서 이 점이 넌지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당시 여성으로서지니는 자신의 한계를 ‘구원자로서의 언더우드’로서 승화시킨다.
그는 여행기의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방향을 제시하는 구원자와, 제시받는 어린양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자의 입장에 놓고 조선 여성들에게 자신은 반드시필요한 존재임을 그 이면에서 계속 확인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언더우드는 자기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정당화 하고,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