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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26 12:40
[기타] 중국 한나라 낙랑군=평양이라구, 모두 망상속에서 나온 허구다
 글쓴이 : 인류제국
조회 : 1,552  

식민사학소굴, 한국고대사학회 존립근거 '낙랑군=평양' 깨지다

낙랑군=평양설의 근거로 제시된 <자치통감> 서기313년 장통관련조항,

사실은 서기313년에 일어난 것 아냐

 

현행 우리국사책 머리 부분은 실질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로 시작한다. 그 앞선 역사라고 해봐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등으로 기술되어 있다. 고조선이라고 해서 역사를 기술하고 있지만 역사인지 신화인지 알 수 없게 서술되어 있다. 실제 우리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군의 조선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대신에 중국 망명객이 세웠다는 위만의 조선이 중국 한나라에게 망하는 부분이 부각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 부분이 이렇게 기술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두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우리역사로 기술된 것이 아니라 일본제국의 변방사로 일제가 조선반도사를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했던 이병도, 신석호 등 친일사학자들이 해방 후 우리 국사학계를 장악하고 조선총독부가 만든 것을 그대로 우리국사로 채택했고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 고대사에서 강단주류사학의 존립근거는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서기전108년경에 북한 평양에 설치되었고, 서기313년까지 존재하다가 요동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이는 4백년이 넘는 동안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 땅이 우리 땅이 아니라 중국 땅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고대사를 대표하는 ‘한국고대사학회’는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 고구려, 백제, 신라가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이 현재 우리 국사책 밑바탕에 흐르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비단 역사학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학식 있는 대부분의 학자들에게도 각인되어 있다. 확고한 역사적 사실로 자리 잡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민족사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주장은 식민사관에서 나온 것이고, 낙랑군은 평양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중국 요동 또는 요서 하북성지역에 있었다고 끝임 없이 주장해왔다. 중국1차사료를 근거로 꾸준히 제시해 왔다. 강단주류사학이 그동안 주장한 것을 검증해보니 납득할 수 없는 사료왜곡이 심하다는 것이다. 엉터리로 해석한 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서기2017.08.24.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지난 6월에 이어 소규모 학술토론회가 있었다. 문성재 박사가 ‘낙랑평양설과 낙랑교치설의 허구성 비판’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발표했다. 이날 강단주류사학이 정설로 자리매김한 낙랑군=평양설의 근거가 되고 있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 조와 <자치통감>의 요동장통 조항을 재검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단주류사학의 역사왜곡을 고발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문성재 박사는 강단주류사학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 조를 어떻게 왜곡 해석하는지 밝혔다. 강단주류사학은 미천왕 14년인 서기313년에 평양에 있던 낙랑군이 미천왕의 공격을 받고 멸망 또는 축출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문성재 박사에 의하면 국사편찬위원회도 이 같이 풀어놓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대표하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그 누리집 ‘한국사 자료창고’에 ‘낙랑멸망->축출->교치’ 라고 써놓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해당 원문을 보면 ‘멸망’, ‘축출’이라는 말이 없다. ‘침공’해서 포로 2천여 구를 사로잡았다고만 되어 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강단주류사학이 이렇게 왜곡 해석하는 것은 <자치통감>과 연계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치통감>에는 요동장통이 을불리(미천왕)와 낙랑, 대방을 두고 싸우다가 낙랑 1천여 가구를 데리고 요동의 모용외에 귀부했는데 모용외가 그를 위해 낙랑군을 설치했다고 한다. 강단주류사학은 이 기록을 가지고 평양에 있던 낙랑군은 미천왕 14년인 서기313년에 멸망하고 잔여세력이 요동으로 이동했고 이 잔여세력을 가지고 다시 낙랑군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자치통감>의 위 사건도 마침 서기313년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언 듯 보면 맞는 것 같다.

▲ 문성재 박사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 14년조, '낙랑군을 침공해서 포로 2천여구를 노획했다'는 부분을 원래대로 풀이하고 있다. 강단주류사학은 '침공' 이라는 문구를 '멸망', '축출'로 왜곡해서 해석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날 문성재 박사는 <자치통감>에 나오는 사건이 서기313년에 일어난 것이 아님을 새롭게 밝혀내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지금 것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 이유는 <자치통감>의 서기313연조에 모용외에 의해서 장통의 낙랑1천여 가구가 낙랑군으로 설치되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 사건이 당연히 서기313년에 일어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성재 박사는 중국 고한문해석을 전공했기 때문에 중국 1차사료를 한글로 된 책을 보듯이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자치통감>을 위사건 전후 부분을 해석해 보면 위 사건은 서기313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위 사건은 그 이전에 일어난 다른 내용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는 문구라고 했다. 이 문구의 시작점을 찾아 올라가 보면 초初에 가 닿는데 여기서 시작한 내용이 위 사건문구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초는 당연히 서기313년 이전을 나타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초가 쓰인 용례를 여러 개 들어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뒷받침했다.

이어 <왕온묘지명>을 근거로 강단주류사학의 낙랑군 요동 교치설을 반박했다. 원래 이 묘지명은 강단주류사학이 자신들의 낙랑군 교치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묘지명에 강단주류사학의 주장을 뒤엎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건흥 원년에 왕준이 계현으로부터 낙랑으로 피난했다가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곳에 정착했다.” 라는 대목이다. 여기서 왕준은 앞서 <자치통감>의 낙랑군 교치설 해당 사건의 당사자다. 건흥원년은 서기313년으로 편년된다. 이때는 강단주류사학에 의하면 요동장통이 낙랑, 대방을 두고 고구려 미천왕과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때다. 전쟁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임에도 왕준은 전쟁터로 가서 살았다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거기에 정착해서 흥안2년 곧 서기452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만약에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고 서기313년에 요동으로 교치되었다고 한다면 이 묘지명과 맞지 않는다. 강단주류사학에 의하면 왕준은 요동 장통과 함께 서기313년경에 요동으로 이주했어야 한다. 그런데 묘지명에는 서기452년까지 그 자리에서 살았다. 이는 또한 낙랑군은 멸망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것도 성립된다. 결국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륙 요동이나 그 서쪽에 있었던 것으로 할 때 위 묘지명이나 <자치통감>의 내용이 풀리고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 이날 학술발표 작은 모임에는 장소가 좁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제도권 밖에서 고대사 분야에서 최소한 책 한권을 낸 저술학자들이 토론자로 참여하여 한치의 양보도 없이 열띤 토론을 펼쳤다.

문성재 박사는 강단주류사학의 주장은 이제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주장을 망상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규정했다. 사실 강단주류사학의 낙랑군 교치설은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추적해 보면 어김없이 조선총독부가 만들어낸 식민사관에 가 닿는다. 일반인은 이들의 주장이 이들이 연구해서 수립한 역사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확인해 보면 모두 조선총독부가 원조임이 드러난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강단주류사학계는 조선총독부가 만들어낸 것을 반복하거나 변형시킨 것을 가지고 학계의 오래된 연구 성과라고 자랑한다.

낙랑군 교치설은 이미 조선총독부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총독부는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라는 것을 두고 우리 역사를 날조 왜곡했다. 조선반도사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 ‘한나라 영토시대’라는 장이 있다. 이 장에 낙랑군 교치설을 실었다. 「요동 장통이 고구려 미천왕과 싸우다가 “313년에 그 땅을 버리고 그 백성 천여 가를 이끌고 모용 씨의 요동으로 이주했다. 이후 지리적 호칭으로 낙랑. 대방이란 이름은 조선 반도에 남았다. 요동에는 두 군의 교치가 있어 정치적 호칭이 남았다.”」

일제가 얼마나 우리역사를 연구해서 왜곡했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료가 전산화 되지 않았다. 지금은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원하는 자료나 내용을 바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종이 사료만 있어서 일일이 다 뒤져서 찾지 않는 한 원하는 내용을 찾기 어려웠다. 중국은 사료만 하더라도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일제는 그 많은 사료를 다 뒤져서 해석했다는 얘기다. 또 우리 사료도 낱낱이 뒤져서 해당 조항을 찾아 중국 사료와 연결시켜 낙랑군 교치설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국가차원에서 모든 국력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것이 식민사관이다. 이 방대한 우리역사말살범죄를 깨려면 세월이 얼마나 필요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세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민족사학계는 국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가운데 사비를 털어 제도권 밖에서 ‘유사역사’, ‘사이비역사’로 낙인찍히는 가운데 고군분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에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제도권 강단주류사학은 국가로부터 막대한 재정지원을 받으며 후학들을 대학을 통해서 꾸준히 양산하고 있다.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2278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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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제국 17-08-26 12:40
   
징기스 17-08-26 17:40
   
코리아히스토리 타임스에서 기사가 떴군요. 인류제국님 링크하신 주소로 한번 가 봐야 겠네요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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