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7-08-28 19:27
[기타] 고조선과 돌궐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789  

《고조선 국가는 영역이 요동 요서로 넓어짐에 따라 다수의 부족을 후국(侯國) 제도로 다스렸다.


후국은 2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제1형 후국은 ‘직할후국’으로서 매우 일찍 후국이 된 맥과 예(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던 경우), 부여, 옥저, 구려, 진(辰), 숙신(읍루) 등이다.


제2형 후국은 ‘변방후국’으로서 동호(東胡), 오환(烏桓), 선비(鮮卑), 해(奚), 오손(烏孫), 유연(柔然), 산융(山戎·흉노), 돌궐(突蹶·원튀르크), 실위(室韋·원몽골) 등이 들어간다.


고조선 제왕(단군·천제)은 후국에 왕족을 보내거나 부족장을 제후로 임명해 다스렸다. 이 때문에 후국 호칭이나 소왕에는 단(檀)씨가 많았다.


예컨대, 선비족의 왕은 단석괴(檀石槐), 유연은 대단(大檀·아발), 흉노의 왕 호칭은 단우(單于·‘선우’로 읽는 것은 후의 변화, 단후·檀后와 같음) 등이었다.


아사나(Asana·阿史那=조선·朝鮮)와 해(태양)와 같은 낱말의 자취도 찾을 수 있다. 돌궐의 왕족이 ‘아사나’이고, ‘아사나’의 축소 변음(ㅱㅱ→오손)으로서 오손의 국명, 해(奚)족의 국명, 오(烏)와 환(桓, 한·韓)의 합성인 오환의 국명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후국들은 전조선 기간만도 1500여 년간 고조선의 다스림을 받는 사이에 고조선 문화를 분유 통합하여 상위의 공통 ‘아사달(고조선) 문명’을 형성 발전시키게 되었다.


아사달 문명권의 원민족들이 공유한 주요 문명 항목으로는 △고조선 언어 △통치제도와 양식 △고조선 금속기술 △고조선 무기 △태양숭배 △천손(天孫)사상 △고조선 신앙과 종교 △고조선 기마문화 △고조선 궁사(弓射)문화 △고조선 축제문화 △고조선 경기문화 △고조선 음악과 무용 등을 들 수 있다.


고조선 사람들이 중국 산둥(山東), 산시(山西), 허베이(河北), 허난(河南) 성 등에 진출해 자치 소국들을 세워 삶에 따라 아사달 문명권은 산둥반도 일대와 만리장성 일대, 화이허(淮河) 일대에 미치게 되었다. 이 지역에는 고중국(하·夏) 문명이 뒤이어 들어왔기 때문에 두 문명이 변경에서는 겹쳐졌다. 따라서 아사달 문명권은 고조선 영역보다 그 지리적 범위가 더 넓었다.


○ 만리장성은 고조선에 대한 고중국의 방어선


아사달 문명권 민족들과 고중국 문명권은 처음의 협조와 평화 관계가 오래 이어졌다. 그러나 기원전 10세기쯤부터 고중국 계열 왕국들이 산둥반도의 고조선 계열 소국들(엄·奄, 서·徐, 수·遂, 거·거, 근·根, 모·牟, 서·舒, 회·淮, 우·우, 우·(옹,우))을 공격함으로써 평화는 깨어졌다.


기원전 284년 연(燕) 진개(秦開)의 고조선 공격과 반격, 기원전 214년 진시황의 고조선 공격과 반격이 이어져 약 200년 동안 아사달 문명권과 고중국 문명권은 갈등기에 들어갔다.


만리장성은 이 시기 아사달 문명권에 맞선 고중국 문명권의 방어선이었다. 한(漢) 고조 때까지도 열세였던 고중국이 한 무제(武帝)가 준비한 대병력으로 고조선을 쳤다. 기원전 108년 고조선은 무너지고, 고조선 문명권은 해체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조선 문명권에 들었던 여러 민족들은 각각 한족(중국족)과 싸우면서 때로는 한족을 굴복시키고 때로는 패전하여 쫓기기도 하면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갔다. 서쪽으로 옮긴 몇몇 민족만 들기로 한다.


고조선 문명권의 가장 서쪽에 있어 중국 한족을 공포에 떨게 했던 흉노(훈)족 아틸라(Attila)의 군단이 406년쯤 발칸반도의 판노니아(지금의 헝가리) 평원에 이르러 그곳 동고트(Goth·게르만족의 일부)족을 몰아내고 정착하여 훈 제국(Hungary·헝가리는 Hun·훈+gary·땅)을 세우고 커다란 제국으로 자랐다.


서양사의 게르만 민족 이동은 먼저 기원전 108년 고조선 해체로 말미암은 동방의 ‘민족 대이동’에서 파급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훈 제국은 아틸라가 죽자 멸망했다. 후에 마자르(Magyar·말갈)족이 도착하여 헝가리 왕국을 이었다.


이어 유연(아발, 대단·大檀)족이 서쪽으로 가 캅카스 지방과 다뉴브 강, 라인 강 동쪽 일대에 6세기 초에 정착해서 250여 년이나 이 지역을 다스렸다. 뒤이어 부여족이 캅카스 지방을 거쳐 발칸 반도에 들어가서 불가리아 제1제국을 세웠다.


오손족은 서쪽으로 가다가 강거(康居)족과 융합하여 오늘의 카자흐 민족을 이루었다.


뒤이어 돌궐(튀르크)족이 서쪽으로 갔다. ‘수서(隋書)’ 돌궐전은 “돌궐의 선조는 평양(平凉)의 잡호(雜胡)이다. 성은 아사나 씨다.”라고 했다.  캐어 들어가 보면 고조선 해체 무렵 고조선족 마을 하나가 외적에게 초토화됐다. 살아남은 한 소년과 몇 가족을 흉노족이 살려 안전한 몽골 지역까지 피신해서 혼혈하며 힘을 길러 재기했다. 현재 모든 튀르크 민족들은 기원지를 위투켄(¨Utuk¨an) 산과 기슭이라고 여기며 지금도 매우 신성시한다. 위투켄 산은 몽골의 항가이 산맥 가운데 높이 4021m로 우뚝 솟은 최고봉이며, 몽골인들은 ‘오트콘 텡그리’ 산, 지방민들은 ‘박달(때로는 복돌)’ 산이라고도 부르는 산이다. 위투켄 산 끝자락에는 방목에 알맞은 고원과 평지가 있다.


○ 튀르크 기원지 ‘위투켄’은 고조선 말에서 유래


필자는 ‘위투켄’은 고조선 말 ‘우뚝한(우뚜칸)’이라고 본다. 옛 중국 역사가들이 突厥(돌궐)이라고 ‘突’ 자를 채자한 것도 이 ‘우뚝한’의 뜻을 포함한 것이라고 본다.


왜 ‘우뚝한’ 산의 고조선어가 돌궐족 발생지에 붙여졌을까? 돌궐족의 시조가 고조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돌궐족은 이어 ‘유연(아발)’의 다스림을 받을 때에도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 역할을 하며 힘을 기르다가, 아사나 두만(Asana Tuman)이 기원후 552년 알타이 산기슭에 ‘돌궐제국’을 세워 제위에 올랐다.


왕족은 ‘아사나’족이고 최고 귀족은 ‘아사다르(Asadar, 아사덕·阿史德)’라 불렀다. 아사나 두만은 재위 30년간 돌궐 제국을 동쪽은 싱안링(興安嶺) 산맥으로부터, 서쪽은 카스피 해에 이르는 대제국으로 발전시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돌궐족이 알타이에 돌궐 제국을 세운 6세기 후반은 한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가 찬란했던 삼국시대라는 사실이다.


언어구조가 같은 ‘알타이어족’이라 한다고 해서 한국 민족이나 한국말이 알타이에서 왔느니, 몽골에서 왔느니 말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진실은 그 반대다.


이미 고조선 말을 분유한 고조선족의 후예 하나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쪽으로 이동해 가서 6세기에 알타이 산기슭에 제국을 세운 것이었다.


돌궐족은 580년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뉘어, 서돌궐은 당(唐)의 회유 정책에 꿇었다가 완전히 멸망했으나, 동돌궐은 682년 ‘아사나쿨튀르크(AsanaKulturk, 아사나골돌록·阿史那骨돌祿)’에 의해 재기해 다시 대제국을 건설해서 당과 겨루었다.


그 후 돌궐족은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면서 서서히 서쪽으로 옮기는 사이에 위구르(지금의 신장·新疆), 키르기스, 우즈베크, 타지크, 투르크멘 등 여러 나라와 겨레로 나뉘었고, 결국 오스만 베이(Osman Bey)가 아나톨리아 반도 끝까지 나아가 1299년 오스만 제국을 세워 오늘의 터키를 탄생시켰다.


이 사이 튀르크말을 쓰는 사람이 약 3억 명에 이른다.


종래 한국 민족의 기원과 고대문명 이동의 큰 흐름을 서방에서 동방으로 옮겨 한반도로 들어왔느니, 몽골, 바이칼, 알타이,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로 왔느니 하는 가설은 사실이 아니다. 패러다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물론 상호 교류는 있었지만, 역사적 진실은 반대로 동방 ‘아사달 문명’이 서방으로 옮긴 것이다. 고조선 국가 붕괴의 빅뱅으로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서 아사달 문명 후예들이 서방으로 옮김에 따라 유라시아 대륙의 고대역사가 격동하게 된 것이다.


일제 식민주의 사관이 고조선 역사를 말살 왜곡했고, 이제 중국 동북공정이 고조선과 아사달 문명을 빼앗아 중국 역사에 넣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민족의 기원인 고조선과 아사달 문명의 역사 진실을 밝히고 지키는 것은 한국 국민과 학자들의 의무이며, 역사의 독립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신용하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출처] 고조선과 돌궐|작성자 돈마니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도배시러 17-08-28 21:12
   
고조선 문명권, 적당한 표현이네요
 
 
Total 19,98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795
19765 [한국사] 한국,일본은 전혀다른 유전자 금성신라 09-18 1539
19764 [한국사] 제3차 여몽동맹(한몽동맹) 진행중 ㄷㄷㄷ 금성신라 09-18 1166
19763 [한국사] 마광팔, 디씨로 돌아왔네요 (2) doprsr 09-15 992
19762 [한국사] 대고조선제국(大古朝鮮濟國) 다큐 아비바스 09-05 1312
19761 [한국사] 기황후, 천추태후 이런 사극들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 천의무봉 09-03 1240
19760 [한국사] 대고구려제국(大高句麗帝國) 다큐 아비바스 09-03 1182
19759 [한국사] 고대 한국인, 예맥제국(濊貊帝國) (1) 아비바스 09-02 1301
19758 [한국사] 알려지지 않은 고조선(古朝鮮) 설들 아비바스 09-02 961
19757 [한국사] 역사 매국부역에 지분 태우지 말라 (1) 금성신라 08-23 1377
19756 [한국사] 태극기 민족 티벳 (충격) (6) 금성신라 08-23 2532
19755 [한국사] 400년전 보도검열 실태 ㄷㄷ (1) 금성신라 08-22 1405
19754 [한국사] 공험진을 반박할수없게되자 학계에서 뿌리는 요상… (4) 금성신라 08-22 1335
19753 [한국사] 고려의 국경 동계는 잠수함 감시용 해안초소인가? (3) 금성신라 08-22 1143
19752 [한국사] 강화도에 10만 인구가 38년간 거주한 흔적이 있능가? (4) 금성신라 08-21 1306
19751 [한국사] 노걸대 실로 놀라운 발음기록 ㄷㄷ (1) 금성신라 08-21 1053
19750 [한국사] 붓다 사카무니의 씨족명, 국명 금성신라 08-21 945
19749 [한국사] 금나라는 신라다 (2) 금성신라 08-21 1266
19748 [기타]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증조부의 비석을 파헤친 후손 관심병자 08-18 971
19747 [기타] 북한군이 촬영한 한국전쟁 관심병자 08-17 1456
19746 [기타]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의 삶 관심병자 08-16 1125
19745 [기타] 세금 1억 들어간 춘향이 그림..여러분의 의견은 (4) 관심병자 08-03 2694
19744 [한국사] 미국 옥션에 나온 신라금관 Korisent 07-30 3429
19743 [기타] 무능했던 제국 그리고 시작된 관동군의 폭주(황고둔… (1) 관심병자 07-27 1644
19742 [기타] 칭기즈칸의 마음을 홀랑 빼앗은 고려 여인은 누구일… (7) 관심병자 07-27 2281
19741 [기타] 옛날 사람들도 봉급을 받았을까? 관심병자 07-24 1199
19740 [한국사] 동아게가 주의하고 싸워야할 점 (3) 하이시윤 07-18 1203
19739 [한국사] 서악 華山 이동과 馬邑山 즉 평양성 (2) 구르뫼 07-18 1456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