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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4 18:11
[기타] 기자(箕子)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2,105  

1. 은말삼인 중 한 명

본명은 서여()이며, 상나라 28대왕 문정(태정)의 아들이자 29대왕 제을의 아우, 상나라 마지막 왕 의 숙부이다.

기자는 기(, 지금의 허난성 서화(西)현) 지방의 땅을 봉지로 받았고, 작위가 자()이기 때문에 기자()라고 일컫는다. 벼슬은 태사(, 황제의 스승)를 지냈으며 상(은)나라의 운이 다하자 조선으로 가서 동방군자국()을 건립하였는데, 그 유풍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기자는 미자, 비간과 더불어 ‘은말삼인()’으로 불린다


2. 시대상황

1) 상주혁명

상의 마지막 임금 주는 힘과 총명함을 동시에 갖춘 대단한 통치자였다. 하지만 자만심이 너무 강하여 나라를 독단적으로 통치하고 주색을 지나치게 밝히는 등 백성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 주왕의 또 다른 친척이었던 비간은 “군주가 과실이 있는데도 죽을힘을 다해 직언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에게만 죄가 있다는 말밖에 더 되겠느냐?”며 주왕에게 달려가 직언했다. 주왕은 크게 성을 내며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나 된다던데 정말 그럴까?”라며 비간을 죽여 심장을 갈랐다.

주왕의 배다른 형이었던 미자는 이런 동생의 모습에 놀라 태사() · 소사() 등과 함께 제기(, 제사에 쓰이는 각종 물품)를 들고 주()나라로 도망쳐버렸다. 주나라의 무왕은 이런 상나라 내부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고는 군대를 일으켜 일거에 주왕을 물리쳤고, 주왕은 타오르는 불길에 뛰어들어 xx했다. 이로써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서는 전격적인 정권교체(상주혁명)가 이루어졌다.

2) 기자의 견미지저

상나라가 점점 멸망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진작에 감지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주왕의 숙부였던 기자였다. 기자는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가 장차 더욱더 사치와 향락에 빠져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예견했다. 여기서 ‘미미한 것을 보고 앞으로 드러날 것을 안다’는 ‘견미지저’1)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사마천은 『사기』 「송미자세가」에서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주 임금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기자는 ‘상아 젓가락을 쓰기 시작한 이상 이제 옥잔을 사용할 것이 틀림없고, 옥잔을 쓰면 곧 먼 지방에서 올라온 귀하고 기이한 기물들을 사용하려 들 것이다. 앞으로 수레와 말 그리고 궁실의 사치스러움도 이렇게 시작되어 진정시킬 수 없을 것이다’라며 탄식했다.”

3. 기자조선 건국

기자의 예견대로 주왕은 날이 갈수록 음탕한 생활에 빠졌다. 기자가 충고했으나 듣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기자에게 차라리 떠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으나 기자는 “신하된 자가 자신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하여 떠나버리는 것은 군주의 잘못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나 자신도 백성들의 기쁨을 뺏게 되니 차마 그럴 수 없다”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다가 잡혀서 노예가 되었다.

미친 척하다가 감옥에 갇혀서 화를 피한 기자는 훗날 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여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한 다음에야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고 그에게 통치의 이치를 묻자, 기자는 ‘홍범구주2)로 통치의 요체를 설파했는데 이것이 『상서』 「홍범()」 편이라고 한다.

한편, 기자는 망국의 한을 담은 <맥수가()>를 지었다고 전한다.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다는 기록 때문에 기자조선의 실체에 관해 오랫동안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이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특히 일본 식민사학에 의해 기자조선이 철저하게 부정됨으로써 고조선 연구의 한 고리를 잃은 측면도 있어, 향후 이 문제에 관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고조선 문제에 대한 논의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4. 관련 유적

중국 내에 기자와 관련한 유적지가 몇 군데 전해오기는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평양에 기자의 무덤이 남아 있다는 기록이 『고려사』 등에 있는데, 고려 때부터 나타난 기자 숭배에 따른 것으로 본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은본기(殷本紀)」
  • 『상서(尙書)』 「홍범(洪範)」
  • 『논어(論語)』
  • 『성찰』, 김영수, 위즈덤하우스, 2010.

각주

  • 1)

    견미지저(見微知著) : 사소한 것을 보고 장차 드러날 것을 안다. 즉 큰일이 나기 전에는 대개 이런저런 작은 조짐들이 나타나니 미리 예방해야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 2)

    홍범구주(洪範九疇) : 하나라 우왕(禹王)이 정한 정치 도덕의 아홉 가지 원칙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자 [箕子, jī zǐ] - 은(상)나라 말기 3명의 현자 중 한 명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성()은 자(), 이름은 서여()이다. 기(, 지금의 西 )에 봉()해져 기자()라고 한다. 상()의 28대 군인 문정(, 이라고도 함)의 아들로 왕()의 숙부()이다. 농사()와  상업(), 예법() 등에 두루 능통하였으며, 상()을 떠나지 않고 왕()의 폭정()에 대해 간언()하다 유폐()되어 비간(), 미자()와 함께 상() 말기의 세 명의 어진 사람[]으로 꼽힌다.

기자()가 봉()해진 기()는 상()의 영토 가운데 가장 북쪽이고, 토방(), 귀방() 등으로 불리는 북방() 이민족()이 강성()했던 지역이다. 기자()는 이들 이민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여 복속()시켰고, 그러한 공을 인정받아 태사()로서 형인 제을()을 보좌하며 상()을 융성()케 하였다.

하지만 제을()의 뒤를 이어 왕()이 즉위한 뒤 상()은 급격히 쇠락하였다. 왕()은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여 신하의 간언()을 듣지 않았으며, 달기()를 총애하여 호화로운 궁궐을 짓고 ‘지육림()’의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기자()는 형인 비간()과 함께 왕()에게 거듭 간언()하며 정치를 바로잡으려 하였다. 왕()이 상아젓가락[]을 만들게 하자 기자()가 “상아젓가락으로 식사를 하게 되면 그 때까지 사용하던 질그릇이 성에 차지 않아 옥그릇을 만들게 하고, 옥그릇을 쓰면 요리가 성에 차지 않아 진귀한 음식을 만들게 하고, 다음에는 화려한 복장과 호화스런 궁궐을 만들게 한다”며 간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기에서 하찮은 낭비가 망국()의 사치로 이어진다는 ‘상저옥배()’라는 말이 생겼다.

하지만 왕()은 폭정()을 멈추지 않았으며, 간언()을 하는 숙부() 비간()의 충심()을 확인한다며 몸을 갈라 심장을 끄집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람들은 기자()에게 상()을 떠날 것을 권했지만, 기자()는 신하된 도리로 임금이 간언()을 듣지 않는다고 떠나는 것은 임금의 악행()을 부추키는 것으로 따를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리고 머리를 풀어 미친 척을 하며 남의 노비가 되려 하였다. 하지만 왕()은 그를 사로잡아서 유폐()시켰다.

()의 무왕()은 충신()을 잔인하게 살해한 왕()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제후들을 규합하여 상()을 공격하였으며, 기원전 1046년 상()을 멸망시켰다. 그는 갇혀 있던 기자()를 풀어고, 그를 찾아가 정치()에 대해 물었다. 기자()는 무왕()에게 하()의 우() 임금이 정했다는 아홉 가지 정치의 원칙을 전했다고 한다. 이를 ‘홍범구()’ 혹은 ‘기()’라고 하며, <서경()>의 ‘홍범편()’에 그 내용이 전해진다.

하지만 기자()는 ()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며 상()의 유민()을 이끌고 북쪽으로 이했다. 당시 기자()가 상()의 멸망을 슬퍼하며 지었다는 ‘맥수지시()’에서 ‘맥수지탄()’이라는 성어가 비롯되었다. 일부에서는 기자()가 한반도()로 옮겨가 그 곳에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러한 ‘기자동래설()’은 <사기()> ‘송미자세가()’, <한서()> ‘지리지()’, <상서대전()>의 ‘은전()’, <삼국지()>의 ‘위지()’ 등의 중국 사서()와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사략()> 등의 고려()와 조선() 시대의 사서()들에 나타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이러한 기자동래설()에 근거하여 단군()과 함께 기자()의 제()를 지냈으며, 그의 사당()을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요동()과 한반도() 지역의 청동기가 중국과 크게 다르며, 한() 이전의 기록들에서는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기자동래설()이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역참조항목

, 기범연의, 기자외기, 기자정전, 기자지, 내셔널프레스클럽, 숭인전

[네이버 지식백과] 기자 [箕子] (두산백과)


기자동래설

기자동래설에 관한 3가지 기록에 의하면,
① 복생()의 《상서대전()》에 "주()나라 무왕()이 재수중()의 기자()를 석방하니 기자가 그 석방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아 조선()으로 도망갔다. 이에 무왕이 조선후()로 봉()했다" 하며,
② 《사기()》 송미자세가()에는 "무왕이 은()을 멸하고 기자를 방문하여 안민()의 도()를 묻고 그를 조선후에 봉했다" 하고,
③ 《한서()》 지리지()에는 "은나라가 쇠하매 기자가 조선에 가서 예의()와 전잠()과 직조()를 가르쳐 주었더니, 낙랑조선민() 사회에는 팔조금법()란 법금()이 행하여졌다"고 기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종합해 보면, 기자가 조선후로 봉함을 받은 것같이 기록되어 학자들 간에 오랫동안 논제가 되어 왔으나 결과적으로 기자조선에 관한 사적 근거가 불충분하여 기자동래설을 부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석에 일본인 학자 가리노[]·시라토리[]·이마니시[西]의 주장이 있고, 국내학자 중 이병도()는 한씨조선설()을 주장한다.

즉 후한() 왕부()의 《잠부론()》에 보면, "주나라 선왕() 때 한후()가 있었는데, 연()나라 근처에 있었다. 그후 한의 서쪽에서도 성()을 한()이라 하더니 위만(滿)에게 망하여 해중으로 옮겨갔다(… 滿 )"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위만에게 망한 것은 준()왕이니,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의 성()은 한씨()임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조선왕조의 성은 기씨가 아니라 한씨이며, 중국인이 아니라 한인()인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후대에 기자를 한씨의 먼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의 성인을 자기의 조상으로 함으로써 가문을 빛내기 위함이었으며, 특히 기자릉()이나 기자묘()가 생기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의 사대사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참조항목

기자

역참조항목

기자조선, 이마니시 류, 잠부론

[네이버 지식백과] 기자동래설 [箕子東來說] (두산백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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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7-09-04 18:23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인' 기록일 뿐

실제로 기자는 누구에게 봉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선 땅으로 망명하여, 단군조선의 제후가 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함.

즉 '조선후'가 된 것.
도배시러 17-09-04 20:43
   
기자조선은 사실입니다. 기자가 너무 유명해서 기자조선을 부인할수는 없어요.
문제는
기자조선의 강역이  어느 범위인가 ? 기자조선과 고조선의 관계는 무엇인가 ?
막걸리한잔 17-09-04 21:01
   
기자는 중국인과는 전혀 관계 없고..
고려시대 사대주의로 인한것도 아니고요..

신당서의 기록을 보면 또 고구려는 기자가한신을 섬겼다고 기록되어있고요..

어떻게 보면 "키작 카안"으로 읽을수도 있는 단어라서..
카자흐 케레이 족보를 떠올려보기도 하네요..

부여의 조상들은 서쪽에서 왔다는 기록과..
고대 맥족은 중국의 서북쪽에 있었다는 기록들과..
환단고기의 파미르고원과..
모두가 일치한다고 봅니다.
비좀와라 17-09-04 21:44
   
기자의 자는 공자 맹자와 같이 이름이 아니라 선생이란 의미의 자子입니다. 본래 이름은 따로 있지만 기록이 없거나 있어도 착각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죠.

한국 말에서 스승은 선생과 같은 말인데 이 스승이란 말이 무당 즉 샤먼을 가리키고 지금도 사투리로 무당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기자는 기씨 성을 가진 무당이란 이야기죠. 모든 사제는 선생이라 불립니다. 유대교의 랍비나 이슬람의 이맘 모두 선생이란 의미로 저들 모두 샤먼의 한 부류인 것 입니다.

박수무당의 박수가 중앙 아시아 어에서 박시 벅시로 불리는데 이 박수가 지금은 박사博士로 불리는 것이죠. 백제의 왕인이 일본에 유교를 전달해 주었다고 하는데 왕인역시 무당이란 말이죠.

기자는 당시 은나라의 사제 가문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추정 할 수 있는 것이고. 바로 이 사람이 박혁게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봐야 하는 것이죠. 박혁게세는 박수무당이고 그의 부인은 무당이라는 것을 이름에서 알 수 있죠.

한국말로는 북경 중국말로는 베이징 영어로는 페이킹이라 하는데 이 말이 모두 같은 말입니다. 음운학자들이 북의 원음이 perk이라 하더군요. 따라서 영어의 페이킹은 고어에 가까운 발음이고 베이징은 그 다음 단계의 발음 한국어는 최근 발음 이렇게 되는 것이죠.

이 perk가 park하고 같은 말입니다. 박혁거세에서 혁은 평平이란 말과 같은 말이고요. 혁이 피로 발음이 되고 평은 북쪽말로 피로 발음이 됩니다. 평양을 피양이라 발음 하거든요. 거세는 황제를 말하는 것 이고요.

다시 말해서 박혁거세는 북평대제 이런 의미란 말이죠. 북평은 지금의 북경이라 박혁거세는 북경사람이고 이가 바로 기자란 말이죠.
     
Marauder 17-09-04 22:16
   
자만 따지면 공자 맹자도 선생이라는 이름의 자 아닌가요.
도배시러 17-09-04 22:00
   
기자가 동이족인지 알수없지만 상나라 귀족인것은 확실함.
배스킬러 17-09-05 01:49
   
번한 또는 번조선 땅에서 발굴된 번간서인 이라 세겨진 은제 도장과
춘추, 후한서 등에 기록된 서국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기자가 망명할 당시 혹은 직후 동이의 왕족은 서씨였으며
삼성기 환단고기를 신용하긴 힘들지만 서우여와 서여 (같은 서자는 아님)
의 권력 투쟁에서 서우여가 밀려 서여가 단군이 되었다 기록되어 있고
이후 한씨와 서씨는 준왕의 후손이라 서로 주장하는데
어쨌든 동이 36국의 군사를 통솔, 중국 주나라를 공격하여 산동 반도와
오 땅을 점령하여 중국 영토의 반을 삼킨 서언왕은 중국 고대사에서 정설로
인정되는 바.  실제 단군의 성씨는 서씨로 보는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도배시러 17-09-05 02:36
   
번조선은 진번을 오역하여 진조선, 번조선으로 확대해석한것 아닌가요 ?
한나라 현도군은 진번의 영토내에 설치되었죠.
          
배스킬러 17-09-05 02:46
   
한나라가 생기기 훨씬 전인 주나라 시대 얘기입니다.
상서에 보면 번 이라 쓰여진 땅이죠 진번이라....  그런 명칭은 생기기 훨씬 전 얘기인데  진번의 오역이라뇨?
               
도배시러 17-09-05 03:20
   
일단 원문을 가져오세요.
                    
배스킬러 17-09-05 03:36
   
귀찮습니다
     
도배시러 17-09-05 02:40
   
서국 서언왕의 영토는 500리 입니다. - 후한서
偃王處潢池東,地方五百里,行仁義,陆地而朝者三十有六國。
          
배스킬러 17-09-05 02:50
   
왜곡이죠....
후한서 에 기록으로 국한 한다면 서주 의  옛 이름이라 기록해 놓고 500리라니.... ㅎㅎ 그건 서국 멸망 직전 기산 일대로 수도를 이전한  때의 국경으로
망하기 직전 강역이죠
후한서 휠씬 이전 상서에서는 서국의 영토가 오땅과 서주 전체 그리고 산동 반도라 되어 있습니다.
          
배스킬러 17-09-05 03:47
   
후한서의 결정적 왜곡의 증거는 말이죠....
서언왕이 중원을 공략한 시기는 주나라 강왕 때이고
후한서에 서나라 멸망 시기는 주 목왕인데....
웃기는건 동이전 외에 춘추 사기  인용한 항목에서는 춘추시대
초 장왕 에게 서국의 서언왕이 무능하여 나라가 망했다고 기술했죠
대체 서언왕은 몇년을 산거죠?

상서, 사기, 박물지, 심지어 후한서 까지도 주의 수도를 공격하여
주나라가 수도를 옮기고 황하 상류까지 침범했다 기술해놓고 500리라니 ㅋㅋㅋ  당시 주나라 수도는 연경인데.... 지금의 대련 근방인 서이의 근거지에서
연경 근방 황하 상류까지면 최소한 2천 킬로미터는 될텐데 500리?
ㅎㅎㅎ
거참 재미있는 '사기' 라니까요 ㅎ
               
도배시러 17-09-05 07:43
   
초문왕의 땅은 겨우 100리
배스킬러 17-09-05 01:54
   
한참 후에 진시황이 불로초를 얻기위해 산동의 도인 서복을
동이로 보냈다는 기록은 패전후 승전국이였던 한나라의 기록으로
진시황을 폄하하는 악의적 기록일수 있으며
실제로는 반란을 막으려는 지원군 요청 혹은 단순한 외교적 사신으로
고조선으로 보낸 사신일수 있다고 봅니다.
     
도배시러 17-09-05 02:33
   
會稽海外有東鳀人,分為二十餘國。又有夷洲及澶洲。傳言秦始皇遣方士[徐福]將童男女數千人入海,求蓬莱神仙不得,徐福畏誅不敢還,遂止此洲,世世相承,有數萬家。人民時至會稽市。會稽東治縣人有入海行遭風,流移至澶洲者。所在絕遠,不可往來。후한서 왜전 서복관련
          
배스킬러 17-09-05 02:54
   
평민이였던 유방의 정통성과 당위성을 위해 춘추 이후의 명문 왕족인 진시황에 대해 기술한 승자의 필법을 그대로 믿으시는지?
위지와 삼국지연의를 비교해 보시죠 유비가 이겼다면 정사가 되었을
삼국지연의....
               
도배시러 17-09-05 03:19
   
후한서는 삼국지 보다 백년뒤에 만들어졌습니다. 남북조시대의 서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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