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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7 12:22
[기타] 지는 척하고 이기는 유목민의 위장퇴각 전략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452  

http://blog.naver.com/aghon/220564216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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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은 어떤 상황이든 승리가 가장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유목민 군대와 농민군대가 전쟁을 벌일 때 유목민은 언제나 약자였다. 그들은 모든 게 부족했다. 인구도 적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도 별로 없었다. 인구가 많아 일부 사람만 참전하는 농민군에 비해 성인 전부가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유목민은 패하면 부족의 생존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병사 숫자가 부족하기에 상대방과 비슷한 규모로 병력을 소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겨야 하고 병사의 소모를 줄일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그들이 채택하는 전략은 무조건적인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는 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전략과 다르지 않다. 자금도 부족하고 인적자원도 약한 소기업이 폼나고 멋진 전략을 쓰면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자원을 소모하고 패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소한의 자원투입으로 승리를 얻고 생존할 수 있는 것을 채택해야 한다. 

유목민이 썼던 전쟁 전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위장퇴각 전술이었다. 유목민은 아군의 희생을 줄이고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정의로운 전투를 치른다는 생각은 애초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숫자가 많은 적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보다는 일단 적을 유인해서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는 유리한 지역으로 끌어들였다. 그 후 강력한 화살과 빠른 말로 무장한 기병들이 적을 살상했다. 또 두려움에 떨어 도망치게 하거나 항복하게 만들었다. 유목민의 역사에서는 이러한 위장퇴각 전술을 쓴 사례를 꽤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묵돌선우의 등장
전국시대 말기에 이르렀을 무렵 북방 흉노 땅에는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고 있었다. 흉노족 두만 선우에게 묵돌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그런데 총애하는 아내인 연지에게서 작은 아들을 얻게 되자 두만은 베갯머리송사 때문이겠지만 예뻐 보이는 작은아들을 태자로 삼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묵돌을 태자에서 폐위시키고 이웃나라 월지국에 볼모로 보냈다. 월지국과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태자를 볼모로 보낸 것으로 보면 아마도 그쪽에 패한 적이 있었던 듯하다. 어쨌든 힘을 회복한 무심한 아버지인 두만은 아들이 볼모로 가 있는 월지국을 공격했고 아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월지국에서는 볼모인 묵돌을 당연히 죽이려 했지만 능력이 뛰어난 묵돌은 좋은 말을 훔쳐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아들을 죽음의 위험에 빠뜨릴 만큼 무심한 아버지지만 아들이 용감하게 돌아오자 이를 칭찬하고 1만 명의 기병 대장으로 삼았다. 이 때 묵돌은 태자 자리를 빼앗고 월지국에 볼모로 보냈으며, 계략을 써서 죽이려고 까지 했던 아버지와 그 애첩인 연지를 잊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있다가 또 어떤 계략에 당할지 몰랐기에 가장 좋은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그는 적극적으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이때 묵돌이 명적(소리 나는 화살)을 이용해서 병사들의 절대적 충성을 얻게 된 이야기는 꽤 재미있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사냥을 나가 명적을 동물에게 쏘아 이를 쏘지 않는 병사들을 처형했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애마를 죽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애첩에게 명적을 쏨으로 해서 병사들이 자신의 지시에 반드시 따르도록 했다. 세 번째는 아버지가 아끼는 말을 향해 명적을 쏘자 주변에 있는 병사들은 모두 화살을 날렸다. 이제 병사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를 것이라 확신한 묵돌은 아버지와 사냥을 나가게 되자 아버지 두만 선우를 향해 명적을 쏘았고 주변에 있던 병사들도 모두 선우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묵돌은 사냥에서 돌아와 아버지의 애첩 연지를 죽이고 태자 자리를 위협했던 아우, 그리고 그들의 세력들을 모두 죽이고 나서 스스로 선우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해서 흉노 수장 자리에 오른 묵돌은 흉노족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위장퇴각과 평성의 치욕
권력을 차지한 묵돌은 주변의 동호나 기타 유목민 세력을 평정하고 있었고, 중원에서는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제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유방은 기원전 202년 관중지역을 수도로 삼았고 국호를 한(漢)으로 정했다. 그런데 북방 유목민이 겨울만 되면 쳐들어와 농민들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들을 꺾어놓지 않고서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고조 유방은 맹장 한왕(韓王) 신(信, 한신韓信과 다른 인물)을 대(代)의 땅 마읍으로 이주시켜 흉노를 토벌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한왕 신은 평소 흉노 기마병단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화평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자 한 조정에서는 이를 배신으로 간주하고 토벌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한왕 신은 흉노에 투항했다.

기원전 200년 묵돌은 한왕 신이 투항 하자 40만 대군을 일으켜 마읍과 태원을 공격했다. 이때 고조는 32만 대군을 이끌고 태원을 지나고 태항산맥을 넘어 평성지방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이때 묵돌은 유목민의 특기인 위장퇴각 전술을 펼치는데 선봉대를 보내 싸움하는 척하다가 이기기 어렵다는 듯이 미리 준비해둔 지역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한의 본대는 이 계략에 말려들어 백등산(白登山)에서 7일간 고립당하는 처지에 빠졌다. 당시 한의 군대는 보병이 주축이었고, 기병대는 전차를 주로 사용했다. 

중국 역사에 나오는 군인 숫자는 믿기 어렵듯이 이때 흉노나 한나라 병사 숫자는 믿을게  못 된다. 후대 몽골군 전부가 10만을 넘지 않았던 것처럼 흉노병사도 많아야 10만을 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한고조의 군대는 농민군이므로 숫자가 많았을 것이다. 흉노족이 40만이나 된 것은 군사 숫자가 훨씬 많았던 것으로 그리고 싶었던 후세 사가들의 입장 때문에 이런 숫자가 나온 것이다. 

평성지방은 매우 건조한 지역으로 1년 강수량이 400-500mm수준으로 매우 건조한 준 사막지대다. 당시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 식량과 물이 부족한 한나라 군대는 전멸의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유목민은 장기전에 매우 능하다. 주변 목축지대에서 양과 말을 키우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오래 견딜 수 없던 한 고조는 묵돌선우의 연지(흉노의 황후를 칭함)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간계(姦計)를 쓰게 된다. 즉 "중국에는 미인이 많기 때문에 묵돌선우가 중국을 정벌하게 되면 묵돌선우는 중국미인에게 빠져 연지를 폐위시킬 것이다." 연지의 질투심을 부추겨서 연지를 따르는 세력과 묵돌선우의 세력과 대립하게 하여 흉노 스스로가 한의 군대에 대하여 포위망을 풀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나라 스스로의 치욕을 감추기 위해 역사 기록자가 만든 트릭이고 실제로 유방은 묵돌 선우에게 항복한 듯하다. 어차피 유목민은 중원의 풍부한 물자를 받으면 목적달성을 하는 것이기에 유방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를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기록을 보면 유방의 맏딸 노원공주를 묵돌에게 시집보내고 매년 보물을 바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차마 맏딸을 보내지는 못하고 다른 여자를 공주라고 속여 흉노에 보내고 형제의 맹약을 맺게 되었다.   

이때부터 한나라는 매년 흉노에게 무명, 비단, 술, 곡식 등을 보내주기로 했다. 치욕을 당한 한고조 유방은 흉노와는 전쟁을 하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고 후대에도 평성의 패배를 치욕으로 여겨서 평성지치(平城之恥)라는 고사 성어가 만들어져 내려오고 있다.


위장퇴각의 명수 수에베테이

흉노족 묵돌로부터 천년이 지나 몽골족 시대에 오면 유목민의 위장퇴각 전술은 더욱 완벽하게 자리 잡는다. 칭기즈칸 군대의 참모총장 격이었던 수에베테이는 그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유럽 기마병들을 무참히도 꺾었다. 칭기즈칸이 콰레즘을 정벌한 후 도망친 무함마드 샤 2세를 뒤쫓는 별동대를 수에베테이가 이끌게 되었다. 그는 샤의 뒤를 쫒아 이란 고원을 정벌하고 카스피 해안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미 샤는 배를 타고 멀리 안전한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남겼고 어쩔 수 없이 수에베테이는 칭기즈칸에게 작전 실패를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샤는 카스피해의 작은 섬에서 굶주림에 지쳐 죽었다는 사실을 수에베테이는 알지 못했다. 수에베테이는 전령을 보내 카스피해 너머에 있는 얼굴은 갸름하고 밝은 색 머리에 눈이 파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킵차크의 땅에 대해 전했다. 그리고 자신과 제베 그리고 2만 군사가 그 지역으로 원정하여 탐색 하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칭기즈칸은 괜찮은 의견이라고 생각하여 3년의 기한을 주어 떠나도록 허락했다. 


1220년 늦은 여름 제베와 수에베테이가 이끄는 2만5천에서 3만 명가량의 몽골 군사들은 인류 역사상 놀라운 기마 탐색대가 되어 카스피해 부근 초원을 출발했다. 그들 앞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얼마나 강력한 군대가 지키고 있을지도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수에베테이의 능력을 시험해볼 뿐이었다. 


몽골족과 수에베테이의 특기중 하나는 정보수집 능력이었다. 정보수집을 담당하는 막료를 두었고 다양한 언어와 지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항상 가야할 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현지인들을 재물로 포섭했다. 인구는 얼마나 되며 군사력은 어떤 수준인지 지배층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등을 알려고 노력했으며 특히 지리적 특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이 아조프 해안은 답사할 때에 만난 베네치아 상인들과는 협약을 맺어 그들로부터 서방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이때 헝가리, 폴란드, 실레지아, 보헤미아 등 지역 군사동향이나 인구, 농산물 종류와 산출물 등도 알아냈고 현지기후에 대한 정보도 필수였다. 반대로 베네치아 상인들에게는 그들의 상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다른 상인 세력을 척결해 주기로 약속했다.  


수에베테이는 군사들을 이끌고 카프카즈 산맥을 넘었다. 도중에 만난 도시들을 철저하게 파괴하거나 항복을 받으면서 정벌하고 지역 전사인 쿠르드족에게서는 병력을 조달했다. 특히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던 조지아군을 만나서는 그들의 특기인 유인전략을 사용해서 파괴했다. 독실한 기독교 국가인 조지아는 중세 유럽 방식의 기병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몽골군에게 두 번 패한 후 군사력이 완전히 소멸되었다. 


할하강 전투 - 위장퇴각 그리고 섬멸

몽골군이 침입해 아조프해를 정찰하고 드네프르강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러시아 대공 므스티슬라브는 지역 영주들에게 호소하여 8만 명에 이르는 러시아 연합군을 편성했다. 러시아군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알게된 수에베테이는 숫적으로 우세한 러시아군을 격파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최적의 지역을 골라냈다. 겨우 2만 명 수준의 군대로 중무장 기병을 보유한 러시아군을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몽골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이 가까이 접근하자 몽골군은 서서히 퇴각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수시로 궁병을 후위로 보내 므스티슬라브군을 괴롭혔다. 러시아군과 몽골군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9일 동안 추격과 후퇴를 거듭했다. 하지만 후퇴는 수에베테이가 사전에 정찰했던 지형을 갖춘 지역으로 가는 것이었고, 영주들 연합으로 구성된 러시아군 전열을 흩트리기 위함이었다.


1223년 봄, 몽골군은 칼가 강 서쪽 강기슭에 후퇴를 멈추고 러시아군을 기다렸다. 이때 러시아군은 빠르게 이동한 우수한 기병대와 후위 보병대간에 엄청난 거리로 이어져 있었다. 전투대형을 갖추고 기다리고 있던 몽골군을 발견하자, 제대로 된 지휘체계가 잡힌 군대라면 후위부대가 따라와 전열을 정비할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전공에 눈이 어두운 므스티슬라브는 정면공격을 명령했다. 


좁은 계곡으로 몰려든 러시아군에 대항하여 몽골군은 집중적으로 화살공격을 퍼부었고 당황한 러시아군 기병 일부가 퇴각하자 후위에 따라오던 아군과 부딪혔다. 혼란한 와중에 몽골군은 화로를 던져 뿌연 연기를 일으켜 시야를 어둡게 한 후 중기병대를 투입해 러시아군을 둘로 나누었다. 이후 전투는 몽골군의 특기인 포위, 화살공격, 그리고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이 전투로 1만 8천명의 몽골인과 지역에서 흡수한 5천명으로 구성된 몽골군은 대공 6명과 귀족 70명을 포함한 4만 명의 러시아 연합군을 괴멸시켰다.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몽골군의 맹렬한 추격은 드네프르 강에 이를 때까지 약 250킬로미터에 걸쳐 패잔병의 학살로 이어졌다. 승리를 위한 위장퇴각 전술은 적은 전력소모로 그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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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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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아몬드 17-09-07 23:04
   
겨우 2만의 몽골군의 일격에 러시아는 나라가 거덜났는데 고려에게는  평균 3만의 몽골군이 8차례나 쳐들어 왔습니다.  절대 군사규모는 작지만 몽골의 군대규모를 감안할때 절대 작지 않은 비중이었습니다
     
루리호 17-09-08 21:42
   
고려도 대단하긴했지만 아예 물리친나라도 있습니다.

바로 베트남이죠
위구르 17-09-09 10:34
   
조심스럽게 지적을 하자면 흉노 군대가 40만이라는것은... 아마도 치욕을 당한 한나라 측에서 '적이 강했기 때문에 진거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과장시켜놓은 기록 같군요. 흉노 인구가 추정치는 100만에도 못미치니 아마도 최대 10-20만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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