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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12 11:48
[기타] 황화문명 주역은 한족이 아니다
 글쓴이 : 인류제국
조회 : 1,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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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문제제기] 黃河문명의 주역은 漢族이 아니다?

글 : 崔恩亨 前 연합뉴스 부국장 

 

⊙ 黃河문명 외에 長江·遼東에서 古代문명 발견되면서 중국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요구
⊙ 商(殷)문명은 夷族이 건설, 周는 西戎에 가까워
⊙ 周나라가 商을 멸망시킨 후, 자신의 뿌리 왜곡 
⊙ 夷族은 화하족과 동화되거나 동쪽으로 이동, 일부는 계속 황허의 중하류에 거주
⊙ 傅斯年의 ‘夷夏東西說’ 이후, 易華의 ‘夷夏先後說’, 葉文憲의 ‘新夷夏東西說’ 등 夷華관계에 대한
다양한 주장 등장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JhIe&articleno=8764684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306100058&ctcd=F&cpage=1

(월간 조선)

청동기시대를 연 商나라
  
  황허문명을 일궈 낸 대표적인 왕조는 상(商·殷)나라인데, 이 왕조를 검토하면 이 같은 사실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상나라 때를 ‘대표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왕조 때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甲骨文)이 발명돼 중국의 역사시대가 열렸으며 제기(祭器)와 농기구, 무기 등 정밀한 청동(靑銅)기구가 널리 제작 사용됐기 때문이다.
  
  세계 각처에 나름대로 문명의 발상지가 산재해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문명이 될 수 있는 기준인 청동기의 사용과 독자적인 글자의 발명, 국가의 성립 등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문명은 드물다. 중국에서 이에 합당한 시기가 상왕조 때인 것이다.
  
 각종 고대 문헌에 따르면 상나라는 이족인 자리(子履·湯王)가 세웠다. 20세기 이후 발굴된 갑골문이나 제기 등 유물에서도 이 왕조를 세운 민족은 이족임이 증명됐으며, 현재 이에 대한 반론은 거의 없다. 이는 황허문명의 가장 핵심적인 시기에 중원의 주인은 이족이라는 것을 말한다.
  
華夏의 의미
  
  주는 중국 서북쪽에서 세력을 얻은 주족이 상왕조의 제후국(諸侯國)이 되었다가 상을 무너뜨리고 중원의 패권(覇權)을 쥐게 됐다. 주왕조는 상왕조의 제후들을 몰아내고 이를 대부분 주족으로 대체했다. 이 제후국들이 자칭 제화(諸華), 제하(諸夏) 등이라고 하면서 오늘날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화하(華夏)라는 말이 나왔다.
  
  주족이 자신들을 제화나 제하로 부른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상의 전(前) 왕조인 하왕조를 계승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하왕조를 설립한 우(禹)를 자신들과 같은 서북쪽 출신 민족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제왕세기(帝王世紀》 등은 우를 ‘서강이인(西羌夷人)’으로 기록하고 있다.
  
  실제 주족과 우가 동족(同族)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족은 스스로를 하왕조와 같은 민족인 화하족이라고 자처하면서 황허문명을 화하족의 것으로 정의해 왔다.
  
 그럼 주족은 어떤 민족이며 하를 계승한 동족이라는 주장이 맞는 걸까?
  
(중략)

이들 기록이 맞다면 단보는 후직의 15대손이고 주 무왕은 후직의 18대손이 된다. 그러나 후직에서 주 무왕 때까지의 기간은 하왕조, 상왕조를 거친 1000년이 넘는 세월인데 18대에 불과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무왕에서 후직까지와 같은 기간 하·상왕조의 임금은 45명이며 800년이 채 안 되는 주왕조가 41대임을 감안할 때 18대는 300~400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주나라가 화하족을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라 우왕이 서쪽에서 온 강족 이민족으로.. 
주나라와 동족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헌데.. 1천년 세월을 18대로 끝내는데.. 
족보조작을 했는지 당최 말이 안되는 수준...

(중략)

傅斯年의 ‘夷夏東西說’

《夷夏東西說》을 주장한 푸쓰녠

 이족이 황허문명의 주역 중 하나임을 사실상 인정한 첫 논문은 중국학자 푸쓰녠(傅斯年・1896~1950)이 1933년 발표한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이다.

 푸쓰녠은 베이징(北京)대학 총장대리와 타이완대학 총장 등을 역임한 중국의 저명한 사학자로 그는 이 논문에서 중국문명을 일으킨 민족은 중국 동쪽에 거주했던 이족과 서쪽에 거주했던 하족에 의한 것임을 주장했다.

 그는 “은상(銀商)과 서주시기 지금의 산둥성과 허난(河南)성 동부, 장쑤(江蘇)성 북부, 안후이(安徽)성 북쪽, 허베이(河北)성 해안, 랴오둥(遼東)과 조선(朝鮮)의 양안(兩岸)에 거주하던 태호와 소호, 제(濟)와 서(徐)부족, 풍(風) 잉(盈), 언(偃) 성씨 등이 모두 이(夷)다”며 “이족이 중원 서쪽에 거주하던 하족과 수차 투쟁하고 융합하면서 중국의 문명을 열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지형을 크게 동평원구(東平原區)와 서고지계(西高地系)로 나누고 경제적·문화적 발전 여건이 좋은 동평원구에서 이(夷)와 은(殷)이 성립되고, 지형상 무력이 강한(싸움이 잦았던) 서고지계에서 하(夏)와 주(周)가 성립되어 이하(夷夏) 간의 대립구도가 형성되었음을 주장했다.

 그는 또 상(商)을 고조선과 같은 계통으로 보았으며 고구려 등의 고대 한반도까지를 고대 동이족의 범주에 넣었고 상이 망한 후 기자(箕子)가 고조선으로 향한 것을 ‘선왕이 살던 곳을 좇은 것(從先王居)이라고 판단해 기자가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임금이 되고 개화시켰다는 중국사학계의 정설도 부인했다.

 푸쓰녠이 이 같은 주장을 한 근거는 무엇일까?

 그가 논문을 발표한 시점은 대대적인 고대유적지 발굴을 시행하면서 중국 한자의 원형이 이족이 세운 상나라 때 만들어진 문자이고 중원의 선주민이 이족임을 증명하는 유물이 속속 밝혀지는 시기였다.

 특히 그의 논문이 발표되기 5년 전인 1928년에 상나라의 19대 왕 반경(盤庚)에서 마지막 왕인 제신(帝辛·紂王) 때까지(BC 1324~1065) 상의 도읍이었던 은(殷)에서 대량 발굴된 유물에는 세계 고고학상 최대 발굴의 하나인 갑골문이 포함돼 있었다.

 夷夏先後說의 등장

 은허로 불리는 이 유적지는 왕궁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1200m²의 집터와 유적지가 있는데, 그 안에 있는 700여 개의 땅굴에서 3만여 조각의 갑골문이 나왔다. 60여 명이나 순장된 큰 묘도 발견되었다.

 또 황허 상류를 중심으로 ‘양소문화’(BC 5000~BC 2000)가, 황허 중·하류에서 ‘용산문화’(BC 3000~BC 1500)가 발굴되었는데 푸쓰녠은 양소문화는 화하, 용산문화는 동이의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발굴이 계속되면서 ‘양소문화’ 상층에서 ‘용산문화’가 발견되면서 이 같은 가설은 부정돼 현재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하동서설>은 문명의 주역이 화하족만이라는 통설을 뒤엎는 일대 사건으로 하-주 중심의 정통 역사관을 비판하고 주변 세력으로 간주되던 이(夷)의 존재와 역할을 새롭게 제기해 황허문명 중심론에서 다원주의적 중국문명론으로 옮겨 가는 현실을 처음으로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중국의 역사, 신화, 고고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도 <이하동서설>을 잇는 논문이 속속 발표됐는데 이화(易華·中國社科院民族學與人類學所 硏究員)의 <이하선후설(夷夏先後說)>과 예원셴(葉文憲·蘇州科技學院 교수)의 <신이하동서설(新夷夏東西說)> 등이 그것이다.

 <이하선후설>은 ‘역사와 전설 등으로 하왕조 이전 동아시아는 이족(夷族)과 만족(蠻族)의 땅이었다. 우(禹)는 동이와 서이 가운데 하왕조를 세웠다. 고고학 발굴과 연구로 하왕조 이전은 유목과 농경의 구분이 아직 없었으며 이족이 동아시아 신석기 정주농경문화를 창조했다. 하족은 청동기 유목문화를 들여와 이와 하가 결합해 중국역사를 창조해 독특한 동아시아문화전통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夷夏先後說> 2012.2 民族出版社 부록 ‘靑銅時代世界體系中的中國’)

 <신이하동서설>은 ‘동이는 산둥지역을 중심으로 대문구문화나 용산문화 등으로 찬란한 문명을 일궜다. 이후 하왕조 때 지금의 기노예완지구(冀魯豫皖地區)의 서쪽은 하족이, 동남북은 동이족(동쪽은 東夷, 북쪽은 商族, 남쪽은 淮夷)이 거주했는데 하족은 회이(淮夷)와 혼인연맹 관계였고 동이와 상족은 밀접한 관계였다. 이족과 화하족은 대립적 관계를 지속하다가 화하족이 대거 동쪽으로 진입해 동이족은 축출되거나 화하족과 융합돼 동이문화는 소멸하게 됐다’는 것이다.(蘇州科技學院 발행 《中國史硏究》 2002년 3기 ‘新夷夏東西說’)

 기로예완(冀魯豫皖)은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허난(河南), 안후이(安徽) 등 중국 4개성의 간칭(簡稱)이다.

 <이하선후설>에 따르면 중국문명은 선주민인 이족이 먼저 이룩하고 후에 청동기를 가지고 진입한 하족과 함께 뒤를 이었다. <신이하동서설>은 이족이 선주민이지만 이족과 화하족이 동과 서에서 서로 다투고 융합하면서 중원문명을 이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들 논리의 공통점은 문명의 주역이 화하족만의 것이 아니라 이족과 화하족 공동의 산물이라는 것으로 전환,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장 핵심적인 문자발명과 청동기 사용, 고대국가 성립 등을 이룬 상족과 이족에 대한 기여 가중치를 주지 않은 평가에 그쳐 화하족 우선의 편향성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중국의 인터넷 <위키백과>에 동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해 놓고 있다.

 ‘동이문화는 진(秦)나라 이전 중국의 가장 오래된 문명의 하나다. 동이문명은 많은 방면에 중원문명과 쌍벽을 이뤘다. 동이인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활과 화살, 예제(禮制)와 금속을 발명, 사용한 민족이다’

 이 글은 이족이 문자, 예법, 금속 등을 발명한 민족이라고 하면서도 중원민족은 아니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황허문명은 황허 중·하류 중국 중원에서 발생한 문명인데 이족의 문명이 중원과 관계가 없다면 과연 중원문명은 무엇을 발명한 문명이란 말인가? 그리고 문자나 예법, 금속을 발명한 찬란한 이족문명의 이름은 무엇이란 말인가? 윗글은 짧지만 현재 중국인들의 역사 편견을 단편적으로나마 확실히 보여준다. 편향적인 시각은 문장의 이율배반성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한 것 같다. 




자세한 전문 내용은 블로그에 들어가 읽어보시길...

애시당초 주나라 자체도 화하족이라고 했는데.. 하나라 후예가 아닐 뿐더러.. 거기서부터 구라뻥~



애초에 중국이 외계문명&문화가 아닌이상  아무 외부에 간섭없이 문명이나 문화가 세워지는건 불가능


원래 문명 문화는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탄생하는것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JhIe&articleno=8764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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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제국 17-09-12 11:48
 
호갱 17-09-12 12:12
 
개인적으로 과거에 저렇게 문화영역이 넓었을리 없다고 생각함
루리호 17-09-12 22:49
 
동이인이라는게 개구라같음...

동이 = 우리나라 조상 이게아님....

동이중 아주일부 = 우리나라조상 이것임

환단고기 빠는사람들보면 어디 책에 한두문장가지고 어거지로 맞춰가는대 홍산문명이 동이라고치고 그문명인이 우리조상일확률이 얼마나된다고 생각하는것인지모르겠네요
     
꼬마러브 17-09-13 09:01
 
홍산문명을 동이라 치고 그 문명인이 우리 조상일 확률 ??

홍산문명이 왜 동이족의 문명이고
왜 홍산문명이 우리와 관련이 없다는 것인지 ??
루리호 17-09-13 08:39
 
상나라 세운왕이 서북쪽에서 왔다면 동이랑 아무관련도없는대 설마 동쩍과 서쪽 이라는단어를 모르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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