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7-09-16 08:49
[한국사] 대한민국 vs 고려 공화국 국호 논쟁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2,849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 

1948년 6월 7일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위원 30명은 무기명 투표 끝에 압도적인 표차로 ‘대한민국’을 국호로 의결했다. 기초위원회를 거친 국호 ‘대한민국’은 제헌헌법의 다른 조항과 함께 만장일치로 국회본회의를 통과한다.(7월12일) 하지만 국호 ‘대한민국’이 결정되기까지 실로 엄청난 격론이 벌어졌던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당시 서상일 헌법기초위원장은 국회본회의 보고에서 국호를 정할 때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호 문제가 말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이냐. 고려공화국이냐. 혹은 조선이냐. 혹은 한국이냐. 이런 4가지 안을 두고 많이 논의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대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조선 국호 

사실 ‘대한’이라는 국호를 쓴 것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다. 

1897년(고종 34년)이었다. 황제국을 선포하려던 고종은 그해 10월 11일 전·현직 대신들을 소집한 확대어전회의를 열어 국호제정을 논했다. 

“지금 국호를 정해 써야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고종)

“우리나라는 기자(箕子)가 예전에 봉해진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의정 심순택)

심순택의 언급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기자가 누구인가. 중국 은(상)나라 왕족이다. 은(상)을 멸망시킨 주나라 무왕이 조선 땅에 책봉했다는 인물이다. 때문에 기자가 다스리던 조선이라 해서 ‘기자조선’이라 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는 중국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낙점을 받아 국호를 ‘조선’이라 확정했다. 그런데 이때의 조선이 단군 조선이 아니라 기자 조선이었다.

“1392년 윤 12월 9일 명나라 태조가 ‘동이의 국호에 조선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그것이 전래한 지가 오래 되었으니 하늘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려서 영구히 번성하라’고 했다.”(<태조실록>)

문하 좌시중 조준 등은 명나라 황제의 조칙을 “기자(箕子)의 옛 봉토를 다스리니 황제가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내려주었다”고 평가했다. 개국공신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을 보라.

“우리나라는 국호가 일정하지 않았다. 단군·기자·위만 등 조선이 셋 있었고, 신라·백제·고구려와 고려가 있었다. 이들은 중국의 명령을 받지 않고 몰래 땅을 차지했다. 오직 기자만 주나라 무왕의 명을 받아 조선후에 봉해졌다. 지금 명나라 천자께서 ‘오직 (기자)조선이라는 칭호가 아름답다’고 했으니….”

정도전은 “중국의 책봉을 받은 기자(箕子)의 정통성을 따른다는 의미에서 조선이라 국호를 정했다”고 천명했다. 전형적인 사대주의의 발로이다. 

심순택은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500여년간 섬겨왔던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과 황제국을 선포한 이상 ‘조선’이라는 국호를 고집할 이유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고종은 왜 ‘대한’이라 했을까 

고종은 ‘조선’ 국호를 버리고 ‘대한’을 새 국호로 정했다. 

“우리나라는 삼한(三韓)의 땅이다. 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특진관 조병세 역시 거들었다. 

“예부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조선을 한(韓)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부터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한’ 자의 변이 ‘조(朝)’자의 변과 기이하게도 들어맞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태평시대의 조짐입니다.” 

조병세는 조(朝)와 한(韓)의 변이 들어맞은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면서까지 조선을 대한으로 바꾸자는 고종의 명에 힘을 보탠 것이다. 

고종은 “원구단(황제가 하늘제사를 지내던 곳)에 행할 고유제의 제문과 반조문(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널리 알리던 조서)에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고 명했다. 

이틀 뒤인 1897년 10월13일 고종은 만천하에 “국호를 대한이라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한다”고 선포했다. 

“우리나라는 단군과 기자 이후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 때에 이르러서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三韓)’을 통합했다. 태조(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북쪽으로는 말갈, 남쪽으로는 탐라국을 차지했다. 사천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을 세웠으니….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고종실록>)

고종은 우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삼한(마한·진한·변한) 통합이라고 여겼다. 또 조선 건국 후 북방의 4군6진을 개척하고, 남방의 탐라국을 완전 병합한 것을 ‘4000리 강토의 확보’라 보았다. 이것을 ‘한(韓)’의 개념을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대한(大韓)’으로 국호를 정한 이유다.

1948년 9월1일 관보에 실린 대한민국 제헌헌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가 눈에 띈다. |국가기록원

1948년 9월1일 관보에 실린 대한민국 제헌헌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가 눈에 띈다. |국가기록원

■삼한과 삼국은 같은 개념인가

원래 <위략>이나 <삼국지> ‘동이전’이 언급한 삼한(三韓)의 위치는 어디인가.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 즉 마한·진한·변한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7세기부터 삼한은 원래의 역사적 실체와는 관계없이 삼국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그랬다.

예컨대 당나라 고종이 백제왕에게 보낸 국서(651년)에도 해동 삼국을 ‘삼한’이라 했다. 

“해동 3국은 창건한 역사가 오래며, 경계를 나란히 하여 지역이 실로 맞대어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근래에 전쟁을 번갈아 일으킴에 따라 무사한 해가 없게 됐다. 이리하여 병기를 장만해서 삼한의 백성들을 칼도마에 올려놓고 분풀이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조’)

중국은 아마도 삼한(마한·진한·변한)에 이어 3국(고구려·백제·신라)도 동질적인 국가로 이해했기에 ‘삼한’과 ‘삼국’을 혼용했던 것 같다. 

■최치원,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입니다” 

사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까지는 3국은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었다. 그러니까 신라의 백제·고구려 정벌이 무슨 민족적 차원의 통일의식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신라가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고구려를 멸한 뒤에는 상황에 180도 달라졌다. 당나라가 한반도 전체를 삼키려는 야욕을 노골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신라는 한때는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백제·고구려 유민들에 대한 통합정책을 폈다.

이때 표방한 것이 ‘삼한 일통’의 사상이다. 

“선대 임금 춘추는 자못 어진 덕이 있었으며. 생전에 김유신을 얻어 한마음으로 정치하여 삼한을 일통하였으니…”(<삼국사기> ‘신라본기·신문왕 12년’) 

“왕이 유신과 함께 신통한 계획으로 힘을 함해 삼한을 일통하고 국가에 큰 공로를 세웠으므로 묘호를 태종이라 했다.”(<삼국유사> ‘기이·태종 춘추공’) 

또 <삼국사기> ‘김유신전’은 673년(문무왕 13년) “김유신이 임종할 때 ‘삼한이 한 집안이 되었다(三韓爲一家)’고 말했다”고 전한다. 

1982년 충북 청주 운천동에서 발견된 사적비를 보면 “삼한을 통합하여 땅을 넓혔다”(民合三韓而廣地)“는 신문왕 6년(686년)의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 시기에는 삼한과 삼국의 개념도 혼용되고 있다. 

예컨대 최치원(857~?)은 “동쪽 바다 끝에 3국이 있으니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라고 언급했다.(<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삼한’은 고려시대 들어 우리나라 전체를 일컫는 단어로 자주 쓰였다. 943년 고려 태조 왕건이 남긴 그 유명한 ‘훈요십조’에도 ‘삼한’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내가 19년 만에 삼한을 통일했는데…후대의 왕들에게 요긴한 가르침(훈요)를 적어 전하니… 다섯째 대업을 이룸에 있어 삼한의 산천이 도왔으니 특별히 서경(평양)에는 1년에 100일 이상 머물며….”(<고려사절요>) 

■삼한을 통일한 것은 신라와 고려 

<조선왕조실록>에도 삼한이라는 단어가 폭넓게 쓰인다. 

예컨대 <태조실록> ‘총서’에는 1380년(고려 우왕 6년) 최영과 이색 등이 왜구를 무찌른 이성계의 공을 상찬하는 대목이 있다. 

“태조(이성계)가 개선하자 판삼사 최영이 백관을 거느리고 영접하면서 태조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공이여! 공이여! 삼한이 다시 일어난 것은 공의 승전 덕분입니다.’ 또 한산군 이색은 치하시를 읊었다. ‘적의 용장 죽이기를 썩은 나무 꺾듯이 하니, 삼한의 좋은 기상이 공에게 맡겨졌네….’”

이렇게 삼한-삼국이 오랫동안 같은 개념으로 쓰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조 고종은 왜 “고려 왕건이 삼한을 통일했다”고 했을까. 

조선왕조가 바라보는 ‘삼한 통일’의 개념을 잘 설명한 기록이 정조시대에 등장한다. 1799년(정조 21년) 지중추부사 홍양호가 조선 왕조의 개국 기원을 저술한 <흥왕조승(興王肇乘)>을 임금에게 올리면서 아뢴 말이 있다. 

“동방에 단군과 기자 이후 삼한(三韓)으로 나뉘고 구이(九夷)로 흩어졌다가 신라와 고려에 들어와 비로소 하나로 섞여 살게 되었습니다.”(<정조실록>) 

1897년 황제국 ‘대한’을 선포한 뒤 프러시아식 황제복으로 차려입은 고종.

1897년 황제국 ‘대한’을 선포한 뒤 프러시아식 황제복으로 차려입은 고종. 

홍양호는 “삼한(삼국)을 먼저 통일한 것은 바로 신라이고, 다시 후삼국으로 흩어졌다가 재통일한 것은 고려”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

이것이 고종이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종의 ‘대한’은 1910년 한일병합으로 13년의 단명으로 끝난다.

그러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10일 밤 중국 상하이의 독립운동가 현순의 셋집에서 중요한 모임이 있었다.

국내와 일본·만주·미국·시베리아 등에서 활약 중이던 독립운동가 29명이 이곳에서 ‘임시의정원’을 구성했다. 가장 먼저 안건에 오른 것이 바로 국호문제였다.

이 때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칭하자’고 결의했다. 3일 뒤인 14일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됐다. 기록으로만 보면 아주 쉽게 결정된 것 같다.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국호를 결정하기까지 만만치않은 진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시의정원에 참석한 몽양 여운형의 전기를 보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한 필치로 전한다.

“국호는…대한민국으로 낙착되었다. 그렇게 결정될 때까지 상당한 격론이 거듭됐다. 대한민국 외에 조선 또는 고려공화국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대한은 이미 우리가 쓰고 있던 국호로서 그 대한 때에 우리는 망했다. 일본에게 합병되어버린 망한 나라 대한의 국호를 우리가 그대로 부른다는 것은 감정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을 주장한 사람들의 논리도 일리는 있었다. ‘대한은 일본에게 빼앗긴 국호이니 일본으로부터 되찾아 독립했다는 의의를 살리고, 또 중국이 신해혁명 후 새롭고 혁신적인 뜻으로 민국(民國)을 쓰고 있으니 대한민국이라 하는게 좋다’는 것이었다. 결국 다수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이 국호로 채택됐다. 

■불붙는 ‘대한민국, 고려공화국, 조선공화국’ 논쟁 

이때의 ‘대한민국’ ‘고려공화국’ ‘조선공화국’ 논란은 해방 이후인 1948년 단독 정부 수립 때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제헌국회의 국회의장인 이승만과,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는 ‘대한민국’을 지지했다. 

1948년 5월 31일 이승만이 국회의장 자격으로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연설한 내용이 결정적이었다.

“…오늘 대한민주국이 다시 탄생된 것을 세계만방에 공포합니다.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 임정의 계승입니다. 이날이 29년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요….” 

여기서 이승만은 매우 중요한 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즉 곧 태어날 새 정부가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 임정의 계승’이라 선언했다. 무슨 얘기인가.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23일 13도 대표자 24명이 서울에서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 선포식을 열었다. 이것을 ‘한성정부’라 한다. 이때 이승만은 최고지도자인 ‘집정관 총재’가 된다. 이승만은 5개월 뒤인 9월 상하이에서 완전체로 통합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이 된다. 이승만은 한성정부의 집정관 총재-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승만으로서는 1948년 곧 태어날 단독정부도 한성정부-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이기를 바랐다.

이것이 이승만이 ‘대한민국’ 국호를 고집한 이유일 것이다. 

이승만의 제헌국회 연설은 1948년의 ‘대한민국’이 새로 건국한 것이 아니라 1919년 기미년에 탄생한 한성정부-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맥을 잇는 정부임을 만천하에 알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만만치 않은 ‘고려공화국’파 

‘대한민국’ 국호를 반대하는 측도 만만치 않았다. 원래 우파는 대한, 좌파는 조선, 중도는 고려를 국호로 내세웠다. 

그런데 우파의 중추인 인촌 김성수가 이끄는 한국민주당(한민당)이 고려공화국을 밀어붙인 것은 다소 의외이다. ‘고려파’의 논리는 탄탄했다. 

한민당 소속 제헌의원인 조헌영은 ‘고려민국’이 타당함을 조목조목 밝히는 기고문을 언론에 낸다.

“국호는 고려민국이 좋다. 그 이유는 첫째 고려는 전세계가 통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호이다. 둘째 고려는 우리가 완전히 통일된 때에 쓴 국호다. 셋째 고려는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주 독립한 때의 국호다. 넷째 고려라는 국호에는 민족적으로 반감, 대립감이 없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한(韓)은 어떤가. 조헌영은 “한(韓)은 삼한으로 분립됐을 때 쓰던 국호이고, 대한은 일본이 침략의 방편으로 과도적으로 산출된 자주성이 없는 나라의 때묻은 구호”라 했다. 조헌영은 “조선이라는 국호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폄훼했다. 

“조선은 단군조선을 빼놓고는 중국의 지배를 받던 기자·위만·이씨조선의 국호다. 더욱이 왜정 36년간 나라를 잃은 이 땅의 칭호일 뿐이다. 민족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선을 국호로 하자는 이는 없을 것이다.”(경향신문 1948년 6월6일) 

사학자 현상윤의 주장(동아일보 1948년 6월23일)도 비슷했다. 

“대한은 불과 13년(1897~1910년) 동안 일컬어진 명칭이다. 게다가 삼한은 부락국가다. 한강·임진강 이남의 분산적 지방적 명칭에 불과하다. 하등 통일적·전국적 구호가 이니다. 대한은 일한합병의 치욕을 받아 영구히 씻을 수 없는 오점이 찍힌 국호다.” 

1921년 열린 상하이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신년축하 기념식. ‘대한민국 3년 1월 1일’이라 쓰여진  연호가 도드라진다.

1921년 열린 상하이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신년축하 기념식. ‘대한민국 3년 1월 1일’이라 쓰여진 연호가 도드라진다.

■대한의 대(大)에서 제국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현상윤 등 ‘고려파’의 주장 중에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대한’이 제국주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대한(大韓)의 대(大)자는 대영제국이나 대일본제국처럼 제국주의적 사상을 본떠 지었던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국시로 표방하고 있는 때에 국호로 채용하는 것은 불가하다. 따라서 국호는 고려민국이 낫다.” 

지금 우리가 그저 아무 생각없이 쓰는 국호 ‘대한민국’에 제국주의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주장이 이미 70년 전에 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상윤은 ‘고려’를 재차 주장하면서 “500년 통일국가인 왕씨 고려와, 한민족으로서 중국과 당당히 패권을 다투던 동양 사상의 영웅적 존재인 고구려를 인용하는 만큼 국민의 영예와 이상에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사학자 손진태도 비슷한 견해를 표명했다. 

“대한은 제국주의적 성격이다. 대한은 우리 민족 사상 가장 큰 오점을 남긴 국호이며, 삼한은 지역이 한강 이남에 한했다. 아무런 위대성과 적극성과 진취성이 없다. 국민교육상과 민족정신사에 막대한 지장과 위축을 초래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불가하다. 조선은 어떤가. 단군조선은 전설이요, 준왕 때의 조선은 평안도의 미미한 나라였다. 이씨조선은 문약과 당쟁의 나라였고 국제적으로는 왜인에게 모욕을 받은 이름이다.” 

■보성전문이 고려대가 된 까닭 

한민당의 ‘고려민국’ 혹은 ‘고려공화국’ 주장에는 한민당 최고지도자인 김성수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김성수는 해방직후 보성전문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면서 ‘고려대’라는 새교명을 붙였다. 고려대 2~4대 총장을 지낸 유진오는 김성수가 ‘고려’에 특히 애착을 갖고 잇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대학 이름을 고려라 지은 것은 인촌의 발상이었다. ‘~조선이나 한국은 이민족에게 수모를 당한 일이 있어서 싫고, 고려도 여진·몽골의 시달림을 받았지만 고구려의 영광을 계승하여 좋다’는 것이 이유였다. 인촌은 ‘우리나라 외국어 명칭인 코리도 고려의 음을 표기한 것이 아니겠냐’고 누누이 말했다.”(유진오의 자서전 <양호기>) 

■태한, 새한, 한나라, 동화국… 

사실 ’대한’ ‘고려’ ‘조선’ 뿐 아니라 백가쟁명식 ‘국호’ 후보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얼마 후 초대 문교부장관이 된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안호상은 “순 한글식으로 한나라 혹은 고려라 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자기 나라 헌법에 한글대신 한문을 사용한다면 이것은 완전한 노예근성의 표현이요. 국어의 모독이자 외국에 대한 수치”라 주장했다. 천안 출신 이병국 국회의원은 “대한(大韓)보다 태한(太韓)이라 해야 한다”면서 “태(太)자를 쓰면 크다는 의미를 더 강조할 수 있으며, 태양의 의미도 담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어떤 이는 ‘공화국’보다는 ‘동화국’이 어떠냐는 이색주장도 펼쳤다.

언론인 설의식은 “새나라에는 새 국호를 사용하는게 옳다”면서 “새한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대한은 역사가 짧고 무게가 가볍고 권위가 약하며, 조선은 자국의 국호조차 스스로 짓지못하고 중국의 허락을 얻은 얼간이 조정이었다”는 것이다. 

■끝내 지키지 못한 이승만의 약속 

적절한 기회에 국호를 다시 논의하자는 이승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94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냉전분위기가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 1월 16일 국무원 고시로 “정식국호는 대한민국이나 편의상 ‘대한’ 또는 ‘한국’이라는 약칭을 쓸 수 있되 북한 괴뢰정권과의 확연한 구별을 짓기 위해 조선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못박아 버렸다.

사실 ‘대한’이 옳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으로 환국한 조소앙은 “우리가 ‘대한’의 용어가 애착을 갖는 이유는 한(韓)이 자주 독립을 상징하는 문자인 까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48년 6월 6일 한민당 소속 조헌영 국회의원이 경향신문에 ‘새 국호는 고려공화국이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1948년 6월 6일 한민당 소속 조헌영 국회의원이 경향신문에 ‘새 국호는 고려공화국이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한(韓)은 일본이 고의로 말살한 글자다. 그러기에 한(韓)은 자주독립의 상징문자이며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집결체다.”(<소앙선생 문집>)

조소앙은 일제가 침략 당시 국호인 ‘대한’을 말살하고 사대주의의 상징인 ‘조선’을 강요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닌게 아니라 일제는 한일병합 직전인 1910년 7월 7일 병합실무방법세목을 완성했는데, 제1조가 ‘한국을 개칭해서 조선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바뀐 이유이다. 

■‘대한’을 탄압한 조선총독부 

매국노 이완용 등은 병합자체는 수긍했지만 국호(한국)와 왕칭은 유지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제3대 한국통감이자 초대 조선총독이 된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는 딱잘라 거절했다. 그 이유가 기막힌다. 

“한국이라는 국호는 청일전쟁 후 일본이 권해서 붙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병합 후에도 한국이 존속한다면 나라의 안에 나라를 세우는 모양이 된다. 양국이 일가가 된다는 취지에 부응하지 못한다. 한국은 안된다. 대신 국(國)자를 떼고 그냥 ‘한(韓)’이라고 하던가, 옛 이름인 조선으로 돌아가던가 하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한가지 찜찜한 대목은 있다. “한국이라는 국호는 청일전쟁 후 일본이 권해서 붙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라우치의 말이다. 

그렇다면 ‘대한제국’은 일제가 권한 국호였다는 말인가. 

■통일 한국의 국호는 어떨까 

지금 이 순간도 이 땅에 태어났다 하면 자동으로 ‘대한민국’ 시민이라는 도장이 찍힌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국호가 탄생하기까지 이러한 우여곡절이 담겨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곰곰히 되씹어본다. 대한민국이 최선이었을까, 아니면 고려민국 혹은 고려공화국이 더 좋았을까. 아니면 조선민국이나 조선공화국은 어땠을까.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사학자들이 벌인 논쟁을 한번 다시 더듬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인문학 공부일 것이다.

아 참! 1948년 6~7월 제헌국회 의장인 이승만이 했다는 약속, 즉 “적절한 시기에 국호문제를 다시 논의해보자”는 이야기는 어찌 할 것인가. 아닌게 아니라 남북한 통일이 된다던가 하면 한번쯤 새로운 국호를 논의할 ‘적절한 시기’가 올 것이다. 통일한국의 국호는 과연 무엇으로 정해야 할까.(이 기사는 이선민의 <대한민국 국호의 탄생>, 나남, 2013과 황태연의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 청계, 2016를 주로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참고자료> 

이선민, <대한민국 국호의 탄생>, 나남, 2013 

황태연,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 청계, 2016 

김병남, ‘신라의 삼국통일 의식과 그 실제’, <한국사상과 문화> 제24집, 한국사상문화학회, 2004

김기빈, <일제에 빼앗긴 땅이름을 찾아서>, 살림터, 1995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300913001&code=960100#csidx5365c687b7ef34b8413527e73d70fbe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올바름 17-09-16 10:04
   
'한'의 1차적 의미는 삼한의 '한'에서 나왔겠지만 그 근본은 '칸'이 아닐까 합니다 왕을 표현하는 고대 순우리말이 칸이었고 한자로는 간, 한 등으로 표기됩니다 황제급이 대칸, 카칸(카간)이며 삼한은 마칸, 변칸, 진칸의 세 왕국을 가리킨다고 볼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대칸민국.. 황제가 다스리는 백성의 나라로 해석할수 있으므로 현재의 국호는 인본주의 및 나라의 웅대한 기백을 나타내는 바람직한 국호라 생각합니다
촐라롱콘 17-09-16 11:05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중국-일본인들이 보기에는 우습게 보여지기도 하지요....^^

대일본제국, 중화민국과도 의미상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는 국호이니.....

물론 '대한민국'을 울나라 사람이 울나라안에서 마음껏 사용하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냐만

(어느나라던지 그 나라의 국뽕이 가미된 해당국가 사람들만에게 통용되는 국호가 따로 존재하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를 외국-외국인들에게도 강요 아닌 강요를 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되기에~~~

그리고 오늘날 남북한이 각각 다른 국호를 사용하고, 제각기 자기가 한반도의 정통국가임을 강조하는 현상은

같은 한자문화권의 중국과 일본에게도 불똥이 튀어 특히 중국-일본의 외교부서와 언론에서는

남북한 어느 한쪽에도 책잡히지 않을 국호 또는 지리적 명칭을 선택하느라 나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전체 또는 남북한을 제각기 표현하는 여러 국호와 지리적 명칭들

대한민국, 한국, 조선, 북조선, 남조선, 북한, 남한, 한반도, 조선반도.... 등을 남북한 어느 한쪽을 자극시키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게끔 적절히 선택해야 하니... 해당 국가의 외교부서와 언론사 직원들에게는

나름 스트레스라 하더군요~~~
     
하린 17-09-16 17:39
   
애초에 김구선생의 증언을 보더라도
============
이북의 공산당 측은 제국주의 자체를 부정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한이라는 국호와 태극기 또한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협상과정에서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져가고
남쪽은 대한이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가져온 것이다.
==============
라는데요?
TimeMaster 17-09-16 16:30
   
개인적으로는 한웅의 '배달국'을 추천함.
ional 17-09-16 18:31
   
영어로는 이미 고려 공화국이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tuygrea 17-09-17 09:01
   
저는 지금처럼 대한민국(한국), 코리아 이렇게 불리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91choi 17-09-18 09:55
   
영어랑 통일해서 고려가 나은거 같은데 말이죠
대한민국은 너무 국뽕성 국호라... 이름 처럼 크고 잘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중국이 고구려 자기 역사라고 우기는 마당에..
오자서 17-09-18 11:00
   
조선왕조실록

원문:丙午/遣藝文館學士韓尙質如京師  해설: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보내어 중국 남경에 가서

본문에 분명히 경사(京師)라했지 어디에도 중국남경이란 말은 어디에도 없건만 이리 해설하고 있네요..

경사란 도읍,중앙조정,중국이란뜻입니다. 결코 오늘날의 국호로써의 중국이 아닙니다.

松南雜識 송남잡지 (백과사전) 이나 자전에 보면  皇明 황명 : 1) 천자의 총명 2) 큰  명덕 (明德)  明王 명왕 : 1) 명철한 임금 2) (佛)악마를 황복 시킨다는 무서운 얼굴을 한 신장 . 이라고 나옵니다 명왕 이나 명황 이나 같은 해석으로 명철하신 밝은 임금이나 명철하시고 지혜로운 황제님이나 明은 해와 달의 합성어로 밤과 낮이 함께하면 태양이다

결코 명나라 황제로 해설하는것이 아닙니다. 한어대사전에도 역시 명(明 )은 결코 국명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국명이 나오지않으면 제후국이란 뜻입니다. 또한 주원장이의 남경은 현남경이 아니라 사천성 중경입니다.

화령은 이성계의 고향이고 그래서 화령군으로 불린것이고 화령군이신 명황(명나라황제가아닌 명철하신황제 즉 이성계)에게  나라를 세웠으니 신하가 국호를 뭘로할까요? 하고 태조에게 물어본것인데

자기나라국호를 정하는데 생뚱맞게 어찌 사천성이 주무대인 신생국에 불과한 주원장이에게 국호를 정해달라고 한단말입니까.

전세계 식민지에서 유일하게 오직 조선에서만 총독부직할로 조선사편수회를 두어 조선사를 전부 교열 폐기 하고 원본은 전부 가져간 일제가 식민사대반도사관의 주입으로

너네 조선은 한자의 종주국도아니고 사대만일삼은 대륙과무관한 반도의 소국이니 당연히 망해야하고 선진일제의 신민이 되야한다는 사관의 주입을 주목적으로한 사관이였고 현재의 사관역시 그것의 답습일뿐입니다.
 
 
Total 19,949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3838
19895 [한국사] 만주 동북평원(요하평원,송눈평원,삼강평원) (2) 하이시윤 02-25 603
19894 [한국사] 만주 3대평원ㅡ송눈평원 (4) 하이시윤 02-25 527
19893 [한국사] 글림킴이 올린 고구려 지도 재조명 되고 있다? 요즘 … (5) 아비바스 02-24 595
19892 [한국사] 조선 초기 북방 영토 분석: 신호수 지역 보리스진 02-15 1180
19891 [중국] 지나족 족보 세탁 - 지나 한족의 시작은 1930년 중화민… Korisent 02-09 1411
19890 [한국사] [ KBS ] 고려거란전쟁 양규장군 전쟁씬 모음 아비바스 02-09 882
19889 [기타] [K-문화] 세계인들을 열광시킨 케이팝 GODS 아비바스 02-09 748
19888 [한국사] 고려의 영토 분석: 개주, 선성을 중심으로 (지도 첨부 보리스진 02-06 987
19887 [기타] 동아시아 19세기 복장 Korisent 02-04 1384
19886 [한국사] 고려말의 파사부 행정구역 분석 보리스진 02-02 925
19885 [한국사] 과거를 용서하되 잊지는 맙시다.. (4) dtan 01-30 1051
19884 [한국사] 한국사의 대상범위 하이시윤 01-28 998
19883 [한국사] 압록강과 태자하의 어원 비교 분석 (2) 보리스진 12-22 1942
19882 [기타] [K-문화] 세계인들이 한국 게이머 만나면 치를 떠는 … 아비바스 12-18 2449
19881 [기타] [K-문화] 글로벌 게임회사들, K-문화에 젖어들다. ( 한… 아비바스 12-16 1578
19880 [기타] [K-문화] 유튜브를 장악한 글로벌 K-pop 모음 아비바스 12-16 1984
19879 [한국사] 국제정치학과 유튜버 - "국뽕" (1) 아비바스 12-15 1400
19878 [세계사] 캘리포니아 석사 썬킴, 정형돈 - 대환장 지식파티 (1) 아비바스 12-15 974
19877 [한국사] 역사학자 임용한, 정형돈 - 전쟁사의 모든 것 아비바스 12-15 1061
19876 [한국사] 역사학자 임용한, 정형돈 꿀잼 전쟁 이야기 아비바스 12-15 811
19875 [한국사] 서울의 봄 실존인물 + 실제 역사 파스크란 12-14 1231
19874 [한국사] 고려의 대륙 동부 영토 - 화북, 산동,강소 (23) 파스크란 12-13 1625
19873 [기타] 왜의 실제 위치, 왜 어디에 있었나 (6) 관심병자 12-10 1839
19872 [한국사] [FACT] 황현필 -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은 거란의 1차 … 아비바스 12-02 1453
19871 [한국사] [FACT] KBS 호평일색 "고려거란전쟁" ‘역사고증에 첨단… 아비바스 12-01 1651
19870 [한국사] [FACT] 역사유튜버 글림킴, 규원사화 원문 번역문 아비바스 11-29 1334
19869 [한국사] 고려영토 논란 종결. 지도, 고려사<고려거란전쟁?>… (9) 하늘하늘섬 11-27 2590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