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둔군에 속해 있다가 후에 낙랑군에 속하게 된 소위 영동7 현 ㅡ동이·불이(不而)·잠대(蠶台)·화려(華麗)·야두미(邪頭味)·전막(前莫)·부조ㅡ를 강단주류사학계에서는 최씨 낙랑국의 전신으로 보고
임둔군을 애초 강원도, 함경도 등지로 비정했던 만큼 최씨 낙랑국(낙랑군이 아닌)의 위치를 함경남도 쯤으로 비정하는 모양입니다
낙랑군 재한반도설을 논박할 때에 제일 걸리는 문제가
바로 다음의 기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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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 이사금
13년(서기 36) 가을 8월, 낙랑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타산성(朶山城)을 점령하였다.
十三年 秋八月 樂浪犯北邊 攻陷朶山城
14년(서기 37), 무휼(無恤, 대무신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키자, 그 나라 백성 5천 명이 투항해왔다. 그들을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十四年 高句麗王無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17년(서기 40) 가을 9월, 화려(華麗)와 불내(不耐) 두 현(縣)의 사람들이 함께 모의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북쪽 국경을 침범하였다. 맥국(貊國)의 우두머리가 병사를 동원하여 곡하(曲河) 서쪽에서 맞아 공격하여 이들을 물리쳤다. 임금이 기뻐하여 맥국과 친교를 맺었다.
十七年 秋九月 華麗不耐二縣人連謀 率騎兵犯北境 貊國渠帥 以兵要曲河西敗之 王喜 與貊國結好
19년(서기 42) 가을 8월, 맥국의 우두머리가 사냥을 하여 새와 짐승을 잡아 바쳤다.
十九年 秋八月 貊帥獵得禽獸 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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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0 년 화려와 불내 두 현이 신라의 북쪽 경계를 침입하는 기사가 버젓이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 두 현은 임둔군 소속이었다가 낙랑군에 다시 소속된 현이구요
그래서 강단주류사학계에서는
ㅡ 대무신왕의 낙랑정벌은 함경남도 지역의 최씨낙랑국을 정벌한 것이지 평양지역의 낙랑군이 아니다
ㅡ 이 정벌 이후에 와해된 낙랑국 세력이
ㅡ 화려ㆍ불내현의 신라 침입
ㅡ 맥국이라는 신흥세력의 등장으로 나타났다
라고 설명합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3825882
그런데 이는 또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조의
ㅡ 백제 동쪽에 낙랑
ㅡ 백제 북쪽에 말갈
기사와 또 맞지를 않습니다
말갈을 부리는 주체가 낙랑으로 나오는데
ㅡ 함경남도에 낙랑이 있었다면
백제는 평안도/황해도에 위치했는가?
그게 아니라면 북한 지역은 모두 낙랑군이었나?
모든 게 꼬여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낙랑을 정복했으면 신라와 고구려의 접촉이 활발해야 하는데
고구려 본기와 신라 본기 모두
이 두 나라의 첫 접촉을 3 세기로 적고 있습니다
<고구려 본기>
동천왕
19년(서기 245) 봄 3월, 동해 사람이 미녀를 바치니 임금이 그녀를 후궁으로 들였다.
겨울 10월,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 북쪽 변방을 침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