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사기 기록
AD37 二十年 王襲樂浪 滅之 낙랑을 습격하여 멸하였다 -삼국사기 대무신왕
AD44 秋九月 漢光武帝遣兵渡海 伐樂浪 取其地 爲郡縣 薩水已南屬漢 -삼국사기 대무신왕
가을 9월에 후한의 광무제가 바다를 건너 낙랑을 정벌하고 그 땅을 취했다. 정말로 ?
■ 후한서 기록
AD44 建武二十年 秋,東夷韓國人率衆詣樂浪內附。<東夷有辰韓、卞韓、馬韓,謂之三韓國也〉
건무 20년 가을에 동이 한국인들이 낙랑군에 내부하였다. - 후한서 광무제 본기
AD44 建武二十年,韓人廉斯人蘇馬諟等,詣樂浪貢獻。光武封蘇馬諟為漢廉斯邑君,使屬樂浪郡,四時朝謁。
건무20년 한국인 염사인과 소마시 등이 낙랑군을 방문하여 공물을 받쳤다.
후한 광무제가 소마시를 한나라 염사읍군(하위 관직은 읍장)으로 삼고서 낙랑군에 속하게 하니
사시에 조알 하였다.- 후한서 동이전
*** 해 석 ***
대무신왕(호동이 아빠)이 습격하여 박살낸 낙랑은 AD44년 가을에 멀쩡하게 잘 돌아가네요 ?
AD44년 가을에 광무제가 낙랑을 정벌했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했는데,
AD44년 가을에 광무제는 삼한의 염사인, 소마시의 낙랑 방문에 기뻐합니다.
낙랑군은 AD44년 가을에 큰 재난없이 정상적으로 기능합니다.-후한서 광무제 본기
가을 9월에 군사를 보내어 정벌할 이유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AD44년 (가을?), 낙랑으로 소마시 방문 => 秋 가을, 광무제에게 통보 => 소마시를 염사읍군에 봉함.
이 기간 동안에 광무제가 낙랑을 정벌했다는 것인데... 이상하죠 ?
낙랑에서 광무제에게 보고를 하려면 몇달 걸릴까요 ? 낙랑 - 낙양, 5천리(후한서 군국지)
(중국 기병이 빨리 이동하면 27KM 하루 100리 미만, 100리 인정하면 50일 거리)
다시말해서 AD44년 낙랑군에서 황궁으로 연락을 합니다. 연락 받은게 가을...
삼한의 소마시가 방문하여 이런저런 공물을 받쳤나이다~
어라~ 낙랑군이 초토화 되어 개박살 난게 아니던가 ? 희안하네~
암튼 기특한 소마시에게 읍군을 하사하여라~
AD44년 가을... 낙랑군은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광무제가 낙랑정벌을 한다면 미친놈이 된다는 것이죠.
게다가 승리한 전투에 대한 기록이 후한서와 위서동이전에는 없다는것. - 교차검증 불가
전투승리 보다 소마시가 낙랑군에 내부한 기록이 더 가치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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