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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18 17:19
[한국사] 중국 문헌으로 보는 마한(삼한) 외교 1
 글쓴이 : 도배시러
조회 : 1,723  

傳子至孫右渠,所誘漢亡人滋多,又未嘗入見;真番、辰國欲上書見天子,又雍閼弗通。
(위만)의 손자 우거에 이르러 유혹된 한나라 망명인이 많았다. 
진번국과 진국에서 천자를 보려고 상서를 올렸으나 통하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한서 조선열전

辰韓者,古之辰國也。진한은 옛 진국이다. -삼국지 위서동이전

初,朝鮮王准為衛滿所破,乃將其餘眾數千人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為韓王。
准後滅絕,馬韓人復自立為辰王。
당초에 조선왕(朝鮮王) 준(準)이 위만(衛滿)에게 패하여, 남은 무리 수천명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 
준(準)의 후손이 멸절(絶滅)되자, 마한 사람이 다시 자립(自立)하여 진왕(辰王)이 되었다.-후한서 동이전

위만조선이 3대를 이었으니 마한이 준왕에게 박살난 시점은 BC 194~180 으로 추정되며
진국(마한)은 진시황 BC 221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BC 108 위만조선 멸망.

AD 20-23 至王莽地皇時,廉斯鑡 爲辰韓 右渠帥,聞樂浪土地美,人民饒樂,亡欲來降。
(辰)鑡因將戶來(來)出詣含資縣,縣言(낙랑)郡,郡即以鑡爲譯,從芩中乘大船入辰韓
왕망의 “신”나라 지황때에 염사치가 진한의 우거수가 되었는데, 낙랑 땅이 좋고 풍요롭다는 소문을 듣고 
망명하고자 하였다. 낙랑군 함자현을 방문 하였다는데, 낙랑군은 염사치를 통역으로 삼고서 
금중에서 (萬兵을 싣고) 큰 배를 타고 진한으로 향했다. -위서동이전

대방에서 배를 타고 가야의 남쪽 구사한국까지 7천리인데, 신라의 진한까지 갈려면 만리이니 대군을 싣고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진한이 아니라 마한으로 추정해봅니다.

AD44 建武二十年 秋,東夷 韓國人率衆詣樂浪內附。<東夷有辰韓、卞韓、馬韓,謂之三韓國也〉
건무 20년 가을에 동이 한국인들이 낙랑군에 내부하였다. 
<동이에는 진한, 변한, 마한이 있는데 삼한국이다.>- 후한서 광무제 본기

AD44 建武二十年,韓人廉斯人蘇馬諟等,詣樂浪貢獻。光武封蘇馬諟為漢廉斯邑君,使屬樂浪郡,四時朝謁。
건무20년 한국인 염사인과 소마시 등이 낙랑군을 방문하여 공물을 받쳤다. 
후한 광무제가 소마시를 한나라 염사읍군(하위 관직은 읍장)으로 삼고서 낙랑군에 속하게 하니 
사시에 조알 하였다.- 후한서 동이전

121 安帝 建光元年 冬十二月,高句驪、馬韓、穢貊圍玄菟城,夫餘王遣子與州、郡並力討破之。
12월에 고구려,마한,예맥이 현도성을 포위 했는데, (북)부여왕이 아들(위구태)를 보내어 
유주의 병력과 힘을 합쳐서 토벌하고 쳐부수었다. - 후한서 안제 본기(G태조대왕 69년)

122 安帝 延光元年 春二月 夫餘王遣子將兵救玄菟 擊高句驪、馬韓、穢貊,破之,遂遣使貢獻。
2월에 부여왕의 아들이 병력을 끌고와 현도를 구원했다. 고구려, 마한, 예맥을 쳐부수고나서 
관리를 보내 공물을 받쳤다. - 후한서 안제 본기(G태조대왕 70년)

낙랑군이 대동강 평양에 있었다면, 마한의 현도성 침략로를 개방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동부여는 대무신왕때 병탄하여 고구려 속국이 되었으니 북부여가 개입한 상황.
북부여의 위치는 난하의 상류, 북동쪽... 현도군은 과거 진번국의 영역.
고구려 도성은 의무려산 북서쪽,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이주한 상태. 
(사서 원문에는 북부여, 동부여 구분없이 부여로 표기)

178-189 靈帝末,、濊并盛,郡縣不能制,百姓苦亂,多流亡入韓者。- 위서 동이전
영제(靈帝) 말년에 한국(韓)과 예(濊)가 모두 강성해져 (한나라의) 군현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자, 난리통에 백성들이 망명하여 한국(韓)으로 유입(流入)되는 사람이 많았다.

196-220 獻帝 建安中,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遣公孫模、張敞等收集遺民,興兵伐濊,
舊民稍出,是後倭遂屬帶方。- 위서 동이전
후한말에 공손강이 둔유현의 남쪽 황지를 분할하여 대방군으로 삼고, 공손모, 장창 등을 보내어 유민을 모아, 
병사를 일으켜 '한국과 예'를 쳤다. 옛 백성들이 점점 나오니, 이후로 왜와 한국이 대방에 속하게 되었다.

178~220 삼국사기 기록
193 十年 六月 倭人大饑 來求食者千餘人 -S벌휴, 왜의 난민이 식량구걸
197 十九年 中國大亂 漢人避亂來投者甚多 是漢獻帝建安二年也 -G고국천왕
209 十四年 秋七月 浦上八國謀侵加羅 加羅王子來請救 -S내휴, 가야 포상팔국의 난 진압
217 二十一年 秋八月 漢平州人夏瑤 以百姓一千餘家來投 王納之 安置柵城 -G산상왕
220 七年 冬十月 王城西門火 靺鞨寇北邊 遣兵拒之 -B구수왕,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략

馬韓居山海之間,無城郭,凡有小國五十六所 - 진서 사이전, 마한 56국

삼국사기 백제, 신라 기사에는 이런 일이 없고, 고구려본기(고국천왕, 산상왕)에만 전합니다.
백제 초고왕(166-214), 구수왕(214-234), 신라 벌휴(184-196), 내휴(196-230)
197년 고국천왕, 중국에 대란이 나서 한인들이 내투하는 자가 심히 많았다.
217년 산상왕, 가을에 한나라 평주사람 하요가 일천여가를 이끌고 망명.

1. 난리통에 예(고구려)로 망명한 한인은 있었다.
2. 난리통에 한국(마한)으로 망명한 한인은 있었는가 ? 후대의 서진 기록으로 보면 예전 마한 54국에서 마한 56국으로 변경된 것으로 볼 때 인구의 추가적인 유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3. 병사를 일으켜 한국과 예를 쳤느냐 ? 이 시기에 백제는 말갈의 침입으로 개고생을 했음. 
아마도 예전처럼 말갈을 사주하여 공격한 것이 아닐까 ?

238 明帝 景初二年 太尉司馬王率衆討公孫淵,(句驪)宮遣主簿大加將數千人助軍 -삼국지 위서 본기
238 十二年 魏太尉司馬宣王率衆 討公孫淵 王遣主簿大加 將兵千人助之
위나라 태위(太尉) 사마선왕(司馬宣王)이 무리를 이끌고 공손연(公孫淵)을 쳤다. 
임금이 주부(主簿)와 대가(大加)를 보내 병사 천명을 이끌고 돕게 하였다. -G동천왕

공손씨 평주목의 관할 : 昌黎、遼東、玄菟、帶方、樂浪

237-9(239) 景初中,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其次與邑長。
其俗好衣幘,下戶詣郡朝謁,皆假衣幘,自服印綬衣幘千有餘人。
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吏譯轉有異同,臣智激韓忿, 攻帶方郡崎離營. -위서동이전
 경초중에 명제가 몰래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에게 바다를 건너 이군을 평정 하게하였다. 
한국의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하사하고, 그 아래 계급에게는 읍장을 하사하였다. 
그 풍속에 의책(衣幘)을 좋아하는데, 하호들이 군에 조알할때 모두 의책을 한다. 
인수와 의책을 가진자가 천여명이나 된다.  부종사 오림이 낙랑으로 한국을 통일하자고 해서 
진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과 함께 하려는데, 통역을 전할때 같고 다름이 있어, 신지 '격한'이 노하여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其官有魏率善、邑君、歸義侯、中郎將、都尉、伯長. - 위서동이전 마한

=> 관련유물 : 위솔선한백장(率善韓佰長) 인장

242 十六年 王遣將 襲破遼東西安平
242년 동천왕, 장수를 보내 요동의 서안평(西安平)을 습격하여 깨뜨렸다.-삼국사기

238년 고구려와 연합하여 공손연의 평주 정벌을 진행하면서 뒤로 호박씨를 까네요. 
고구려에게 들킬까봐 몰래 태수 2명을 삼한으로 배를 띄워 파견하여 음모를 진행하는데... 
일이 꼬여서 대방군 기리영에 난리가 나고 사방팔방 소문이 났네요. 
그러니 고구려 동천왕이 서안평을 징계합니다.

~265 서진 건국 이전에 인수를 천여명에게 배포했는데... 전해오는 유물이 꼴랑 하나네요.
읍군, 귀의후, 중랑장, 도위, 백장... 그중에서 가장 낮은 직급의 위솔선한백장(魏率善韓佰長, 동장) 
아마도 기리영 전투의 분풀이로 인수를 녹여 버려서 후대에 전하지 않는 듯 합니다.(인수의 재질: 금, 은, 동)
의책은 소멸했을거구... 도자기도 하나씩 줬다면 유물의 흔적이 더 남았을텐데... 아쉽네요.

삼국지에서 손권의 오나라 외교는 있으나 기록은 없고 조조의 위나라와 삼한의 외교 기록이 전하고 있습니다.
삼한의 역사는 오직 유물과 중국 문헌에 의지해서 추적 할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주류사학이 싫어하는 중국과 삼한의 교류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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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라스 17-10-18 19:56
   
당초에 조선왕(朝鮮王) 준(準)이 위만(衛滿)에게 패하여, 남은 무리 수천명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
준(準)의 후손이 멸절(絶滅)되자, 마한 사람이 다시 자립(自立)하여 진왕(辰王)이 되었다.-후한서 동이전

이게 무슨 얘기죠?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패하여, 수천을 이끌고 바다를 건넜나.
말이 되게하려면 준왕이 건넌 바다는 황해가 아닌가요? 요동에서 바다를 건너 서울쪽에 정착하여 마한을 눌렀다면...
그러면 왜 바다를 건넜을까요? 그냥 뱅 돌아서 압록강 쪽을 건너 가도 되지 않나요?
아무튼 이게 맞다면 위만이 쳐들어온 방향은 서쪽이고, 즉 요서지방으로 연나라 영토겠지요?
     
꼬마러브 17-10-18 20:09
   
준왕은 정확하게 말하면 고조선(단군조선)의 왕이 아니라, 단군조선의 제후국 중 하나인 기자조선의 왕이지요. 위치는 현재 요서 (낙랑군 조선현) 이고요.

고조선 거수국 시절 당시 평양은 마한의 영토였습니다. 하지만 위만조선 멸망 - 단군조선 몰락 이후, 도미노 현상처럼, 요서-만주 지역의 거수국들이 한반도로 이주함에 따라 .. 마한의 영토가 지금의 남한지역으로 축소된 것이지요.

아마, 당시는 지금처럼 바다를 가로지르는 항해가 아니라 엄연히 연안항해였기 때문에 .. 요서지역에서 요동 연안을 따라 평양에 정착하여 마한 세력을 누른 것으로 보입니다.

낙랑군과 낙랑국의 '낙랑'이란 지명과 기타 나머지 지명이 중첩되는 이유도 당시 일어났던 도미노 현상 때문이구요.
마찬가지로 옥저 - 동옥저, 예 - 동예, 고구려현 - 고구려 등등 ..

일본의 아스카문명도, 이 시기에 급성장하지요.

漢나라, 위만조선 공격 - 위만조선 유민, 漢나라를 피해 한반도로 남하 - 한반도 세력, 위만조선
 세력을 피해 일본열도 진출 .. - 고대 열도의 아스카문명

이 때부터 지명이 꼬이기 시작함. 민족이 대이동하면서, 세력과 함께 지명도 같이 이동했기 때문 ..
     
도배시러 17-10-18 21:19
   
인원이 많으면 육로 진행 중에 이탈자 발생 가능성이 높을것 같구요.
배를 타고 넘어오면 서울 보다는 평양을 먼저 선택하게 될것 같습니다.

위만은 연나라가 망하고 이동한것이니 연나라 영토는 아니죠. 연, 제,조나라 사람의 연합이죠.
감방친구 17-10-19 05:25
   
소위 평양의 낙랑 유물ㆍ유적은 준왕의 유민이 남긴 것으로 충분히 추정 가능

이 때 마한은 한반도 남부로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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