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 역사를 한국사에 편입하자거나
청나라까지 편입하자는 주장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아니 사실에 준거한 수준에서
우리 역사에 여진족을 포함시키는 정도는
다음의 경우가 적절하고 합리적입니다
1. 요나라와 고려의 힘의 균형시기
ㅡ 금나라가 들어서서 요-금-고려-송 체제가 되기 전까지
ㅡ 12 세기까지
ㅡ 고려의 서에서 동에 이르는 북쪽 경계가 요동반도 중부에서 남만주에 이르던 시대
ㅡ 여진족의 중심세력이 고려 영토 내에서 살고 있었고
ㅡ 요와 송 등이 여진과 교통하려면 고려를 거쳐야 했고 또 고려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며
ㅡ 여진족은 고려의 복속을 받고 있었으며
ㅡ 여진족들조차 저들이 고려에서 나왔다거나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일컬음
ㅡ 여진족과 고려의 분리시기는 여진의 반란과 윤관의 동북9성 (동만주 일원) 개척을 거쳐 그것을 반환하고, 이어 여진이 완안부를 중심으로 금나라를 세운 때
ㅡ 11~12 세기 지도에 여진족을 고려영토 경내에 표시해야 함
2. 여말선초
ㅡ 내로라 하는 여진부족들이 다 이성계 휘하에 있었음
ㅡ 특히 태종 이전의 역사지도는
ㅡ 조선과 여진을 하나로 묶어나 여진을 비슷한 색으로 칠하여 같은 계통임을 나타내야 함
ㅡ 또 명나라 휘하의 여진과 조선 휘하의 여진부족을 구분하여 색을 칠하고, 또 그 변화상을 나타내야 함
ㅡ 쉽게 말해서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왕이면서 여진의 칸이었음
3. 조선 세조 시기
ㅡ 쿠테타 이후 세조가 강성할 때는 만주의 여진족들이 대거 조선에 귀부, 자청 복속 하였음
ㅡ 즉 만주 여진족들에 지배력, 혹은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
ㅡ 태조부터 성종에 이르는 시기의 조선의 북방경계는 요동 남부에서 남만주~압록-두만강 라인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형태로 표시돼야 함
4. 여진족과는 직접 관련 없지만
ㅡ 대한제국 광무황제 시기의 조선 영토는 간도까지 직접적으로 행정력을 행사했고 청과 조선 간의 국경 분쟁이 군사적 충돌로 나타났으므로 간도까지 영토로 하여 '대한제국 남북 4,000 리'를 표시해야 함
ㅡ 몽골제국 시기에 원나라 영토 내에 표시하되 요동반도를 고려와 비슷한 색깔로 톤을 낮추어 표시하여 그곳에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고, 그곳이 고려왕가의 분봉지였음을 나타내야 함
ㅡ 고려 공민왕~우왕 시기에 요동반도를 고려의 영토로 표시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