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면 1도(道)는 원래 왕업(王業)을 처음으로 일으킨 땅으로서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생각한 지 오래되어, 야인(野人)의 추장이 먼 데서 오고, 이란 두만(移闌豆漫;이란 투멘)도 모두 와서 태조를 섬기었으되, 언제나 활과 칼을 차고 잠저(潛邸)에 들어와서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었고, 동정(東征), 서벌(西伐)할 때에도 따라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여진(女眞)은 알타리 두만(斡朶里豆漫) 협온맹가첩목아(夾溫猛哥帖木兒;캬온뭉케티무르-퉁뭉케티무르/퉁밍거티무르), 화아아 두만(火兒阿豆漫) 고론아합출(古論阿哈出;쿠룬아하추-이사성), 탁온 두만(托溫豆漫) 고복아알(高卜兒閼), 합란 도다루가치(哈闌都達魯花赤) 해탄가랑합(奚灘訶郞哈), 삼산 맹안(參散猛安) 고론두란첩목아(古論豆闌帖木兒;쿠룬두란티무르/퉁두란티무르-이두란/이지란), 이란 두만 맹안(移闌豆漫猛安) 보역막올아주(甫亦莫兀兒住), 해양 맹안(海洋猛安) 괄아아화실첩목아(括兒牙火失帖木兒), 아도가 맹안(阿都哥猛安) 오둔완자(奧屯完者), 실안춘 맹안(實眼春猛安) 해탄탑사(奚灘塔斯), 갑주 맹안(甲州猛安) 운강괄(雲剛括), 홍긍 맹안(洪肯猛安) 괄아아올난(括兒牙兀難), 해통 맹안(海通猛安) 주호귀동(朱胡貴洞), 독로올 맹안(禿魯兀猛安) 협온불화(夾溫不花), 간합 맹안(幹合猛安) 해탄설렬(奚灘薛列), 올아홀리 맹안(兀兒忽里猛安) 협온적올리(夾溫赤兀里), 아사 맹안(阿沙猛安) 주호인답홀(朱胡引答忽), 인출활실 맹안(紉出闊失猛安) 주호완자(朱胡完者), 오롱소 맹안(吾籠所猛安) 난독고로(暖禿古魯)ㆍ해탄발아(奚灘孛牙), 토문 맹안(土門猛安) 고론발리(古論孛里), 아목라(阿木刺) 당괄해탄고옥노(唐括奚灘古玉奴)이며, 올랑합(兀郞哈)은 토문(土門)의 괄아아팔아속(括兒牙八兒速;파아손-유파아손)이며, 혐진 올적합(嫌眞兀狄哈)은 고주(古州)의 괄아아걸목나(括兒牙乞木那), 답비나(答比那), 가아답가(可兒答哥)이며, 남돌 올적합(南突兀狄哈)은 속평강(速平江) 남돌아라합백안(南突阿刺哈伯顔)이며, 활아간 올적합(闊兒看兀狄哈)은 안춘(眼春), 괄아아독성개(括兒牙禿成改) 등이 이것이다.
임금이 즉위한 뒤에 적당히 만호(萬戶)와 천호(千戶)의 벼슬을 주고, 이두란(李豆闌;이지란)을 시켜서 여진을 초안(招安)하여 피발(被髮)하는 풍속을 모두 관대(冠帶)를 띠게 하고, 짐승과 같은 행동을 고쳐 예의의 교화를 익히게 하여 우리나라 사람과 서로 혼인을 하도록 하고, 복역(服役)과 납부(納賦)를 편호(編戶)와 다름 없게 하였다. 또 그들이 추장에게 부림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모두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였으므로, 공주(孔州)에서 북쪽으로 갑산(甲山)에 이르기까지 읍을 설치하고 진을 두어 백성의 일을 다스리고 군사를 훈련하며, 학교를 세워서 경서(經書)를 가르치게 하니, 문무(文武)의 정치가 이에서 모두 잘되게 되었고, 천 리의 땅이 다 조선의 판도로 들어오게 되어 두만강으로 국경을 삼았다. 두만강 밖은 풍속이 다르나, 구주(具州)에 이르기까지 풍문으로 듣고 의를 사모하여 혹은 친히 내조(來朝)하기도 하고, 혹은 자제들을 보내서 볼모로 시위(侍衛)하기도 하며, 혹은 벼슬 받기를 원한다. 혹은 내지로 옮겨 오기도 하고, 혹은 토산물을 바치는 자들이 길에 늘어서니, 기르는 말이 좋은 새끼를 낳으면 자기네가 갖지 않고 서로 다투어서 바치기도 한다. 강 근처에 사는 자들이 우리 나라 사람과 쟁송하는 일이 있으면 관청에서 그 옳고 그름을 판결하여 가두거나 매를 치기까지 해도 변방의 장수들을 원망하는 자가 없고, 사냥할 때에는 모두 우리 삼군(三軍)에 예속되기를 자원해서, 짐승을 잡으면 관청에 바치고, 법률을 어기면 벌을 받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뒤에 임금이 동북면에 거둥하여 산릉을 참배하니, 두만강 밖에 사는 야인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뵙고, 길이 멀어서 뵙지 못한 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돌아갔다. 야인들이 지금까지도 그 은덕을 생각하여, 변방의 장수들과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면 태조 때 일을 말하고 감읍(感泣)하기를 마지 아니한다.
-『태조실록』권8, 태조 4년(1395/명 홍무 28년) 12월 14일(계묘); "당시 북방 야인들의 귀화 실태"
- 'iran tumen'의 한문 표기로 '세 만호부'라는 뜻이자 송화강과 목단강의 합류지점을 가리키는 지명. 몽골제국은 본래 송화강과 목단강의 합류지점 주변에 오도리(알타리), 후르하(후리가이), 타온, 탈알련, 패고강의 5개 만호부를 설치했는데, 제국 말기에는 이들 중 앞의 세 만호부만이 남았다. 그 중에서도 오도리 부족과 후르하 부족은 압록강-두만강 일대로 남하하여 조선과 명에 신속, 건주부 여진의 모체를 이룬다.
- 누르하치의 조상으로, 이란 투멘의 일원인 오도리 부족의 수장이다.
- 근성남 이만주의 조상이자, 이란 투멘의 일원인 후르하(후리가이) 부족의 수장이다.
- 바로 그 이지란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家?
- 여기서의 이란 투멘은 오도리, 후리가이, 타온의 세 부족명이 아니라 송화강과 목단강의 합류지점을 가리키는 지역명인 것으로 추측된다.
- 전체적으로 프로파간다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지만, 어쨌든 태조 당시에 여진 여러부족과 조선의 관계가 매우 우호적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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