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7-10-24 15:37
[한국사] 우리가 가장 잘나갔을때가 고구려 발해때인듯
 글쓴이 : 인류제국
조회 : 2,490  

e9662dda6054c2f55ac50b32a18aacd3_elux21bef7aFCxEtgI.png


고구려 최전성기 시절 모습




구당서의 고구려 강역


高麗者,出自扶餘之別種也。其國都於平壤城,即漢樂浪郡之故地,在京師東五千一百里。東渡海至於新羅,西北渡遼水至於營州,南渡海至於百濟,北至靺鞨。東西三千一百里,南北二千里。


번역:고구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그 나라는 평양성에 도읍하였으니, 곧 한나라 낙랑군의 옛 땅이다. 장안에서 동쪽으로 5천 1백리 밖에 있다. 동으로는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으로는 요수를 건너 영주에 이른다.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백제에 이르고, 북으로는 말갈에 이른다. 동서로는 3천 1백리이고, 남북으로는 2천리이다








통전의 고구려 강역


其地後漢時方二千里。至魏南北漸狹,纔千餘里。至隋漸大,東西六千里。


번역:그 땅은 후한때에 사방 2천리였다. 위나라 때 남북이 점점 좁아져서 겨우 1천여 리였으며, 수나라 때 점점 커져서 동서가 6천리가 되었다.









울란바토르에서 남동쪽으로 700km 떨어진 유목지대에 위치한다. 중국과의 국경에 가까우며, 예로부터 몽골 초원과 중국 중원을 잇는 군사·교역의 요충이다. 따라서 고대부터 각 나라 사이에 세력 다툼이 치열했던 곳이다. 부근에 있는 솜 지역에서는 1994년 8월 한·몽 공동학술조사단에 의해 고구려 성터로 추정되는 3곳과 계단식 적석층 등을 발굴하여 고구려유적임을 입증하였다. 이로써 고구려의 영토가 대싱안링[大興安嶺] 산맥을 넘어 동(東)몽골의 광대한 초원지대에까지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다.
 
 







e9662dda6054c2f55ac50b32a18aacd3_ArzSCqAgvrIosArR.png

최전성기 발해 강역


발해의 강역은 사방5천리. 



요사지리지 동경도 , 동경요양부 


 
아들 대조영(大祚榮)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진왕(震王)이라 자칭하였다. 발해 북쪽을 영역을 병합하니 영토가 사방 오천리나 되고, 병사가 수십만이나 되었다. 


漢末 為 公孫度 所據, 傳子 康 孫 淵 自稱 燕王, 建元紹漢, 魏滅之.  晉 陷 髙麗, 後歸 慕容垂, 子寳 以勾麗王安 為 平州牧 居之.  元魏 太武遣 使 至其所居平壤城, 遼 東京 本此.  唐髙宗 平 髙麗 於此 置 安東都䕶府, 後為 渤海大氏所有.  大氏 始保 挹婁之東牟山, 武后萬歳通天中 為 契丹盡忠 所逼, 有 乞乞仲象者 度 遼水 自固, 武后 封為 震國公.  傳子 祚榮 建 都邑 自稱 震王, 併吞 海北, 地方五千里, 兵數十萬.  中宗 賜 所都 曰 輝罕州, 封 渤海郡王.  十有二世 至 彛震, 僭號 改元 擬建 宫闕, 有 五京十五府六十二州, 為 遼東盛國.  輝罕州 即 故 平壤城也, 號 中京顯徳府.  

한나라 말기에 공손탁(公孫度)이 점거하여 아들 공손강(公孫康)을 거쳐 손자 공손연(公孫淵)은 스스로 연왕(燕王)을 자칭하고 소원(紹漢)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위(魏)나라가 멸망시켰다. 진(晉)나라가 고려(高麗 ; 고구려)를 함락시켰고, 나중에는 모용수(慕容垂)에게 귀속하였다. 아들 보(寶)는 고구려 왕 안(安 ; 광개토왕)을 평주목(平州牧)에 임명하여 거주케 하였다. 원위(元魏 ; 북위) 태무제(太武帝)가 그들이 거주하는 평양성(平壤城)에 사신을 보냈으니, 요(遼)나라 동경(東京)이 바로 이곳이다. 당(唐)나라 고종(高宗)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여기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였지만, 나중에 발해(渤海)의 대씨(大氏)가 차지하였다. 대씨는 처음 읍루(挹婁)의 동모산(東牟山)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후(武后 ; 측천무후) 만세통천(萬歲通天) 년간에 거란(契丹) 이진충(李盡忠)이 핍박을 받자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요수(遼水)를 건너 스스로 지키니 무후가 진국공(震國公)에 봉하였다. 아들 대조영(大祚榮)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진왕(震王)이라 자칭하였다. 발해 북쪽을 영역을 병합하니 영토가 사방 오천리나 되고, 병사가 수십만이나 되었다. 중종(中宗)이 도읍한 곳에 홀한주(忽汗州)라는 명칭을 내려주고 발해군왕(渤海郡王)에 책봉하였다. 12대 지나 대이진(大彝震) 때에 참람되게 연호를 고치고, 궁궐을 본따서 짓고, 5경(京) 15부(府) 62주(州)를 두었으니 요동에서 가장 번성한 나라가 되었다. 홀한주는 바로 옛 평양성으로, 중경현덕부 (中京顯德府)라고도 한다. 

http://history-backup.tistory.com/23 ( 요사지리지 , 동경도 , 동경도호부 , 2번째문단) 










고구려 발해 유일하게 중원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음


고려때도 초반에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다가 결국에는 중원의 연호를 사용했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감방친구 17-10-24 15:42
   
첫번째 고구려 지도는 솔직히 납득이 어렵습니다
북만주에 뭐가 있었는데요?
실위, 두막루국?
그 애들은 고구려 영향권 아니었습니까?

깽단사학자들은 고구려 동쪽 영역의 최대치를
겨우 의무려산 정도로 보는 게 실정입니다
     
촐라롱콘 17-10-24 18:02
   
[[깽단사학자들은 고구려 동쪽 영역의 최대치를 겨우 의무려산 정도로 보는 게 실정입니다]].
.
.
동쪽이 아니라 서쪽의 오류같습니다만.... 고구려 동쪽은 동해로 막혀있는데....???

아니지! 영토부풀리기주의자들은 오호츠크해를 고구려 동쪽으로 보겠지요...

그리고 님의 의중은 위의 고구려영역이 작다는 것인지 넓다는 것인지....???
솔직히 위의 저 지도도 상당히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고구려 서쪽영역이 몽골 깊숙한 안쪽까지로 나타나있는데,

5세기 장수왕시기 지두우분할을 고려했다 하더라도 지두우의 근거지인
대흥안령산맥~몽골동단의 한힌골 언저리보다 더욱 서쪽으로 나아갔다는
근거가 있는 것인지...???
심지어 장수왕 이후시기에도 지두우는 북위에 사신도 보내고 했던 것으로봐서 고구려에게
타격은 입었을지언정 부족이 죄다 고구려에 넘어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요.

위 지도상의 고구려 동북쪽영역 또한 잡다한 부족들의 나열체인 말갈의 영역 거의 전부를
고구려영역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고고학적 유물-유적으로 보자면 농안-장춘-길림-혼춘-두만강-연해주최남단을 경계로
대략 그 서쪽과 남쪽에서 고구려양식이 두드러지고, 동쪽과 북쪽은(북만주와 연해주 대부분포함) 고구려양식과는 구분되는 숙신-말갈계 양식들이 상대적으로 더욱 두드러지게 발견됩니다.

따라서 고구려가 말갈의 상당수 부족들을 비록 부용화했다고는 하지만
말갈영역을 죄다 고구려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
          
감방친구 17-10-24 18:31
   
서쪽 얘깁니다
잘못 썼어요
동쪽은 책성, 염주성 그 쯤으로 보더군요

위 본문의 고구려 전성기 지도가 납득이 어렵다는 것은
ㅡ 가로로 지나치게 넓어서 상식에 어긋난다는 것이죠
ㅡ 저런 식으로 크게 할 거면 그 논리로 북만주는 왜 빼먹냐 이 얘깁니다

그리고 저 전성기 지도가 어느 시대를 특정한 것이냐도 의문이죠
          
감방친구 17-10-24 18:33
   
말갈은 흑수부만 제외한다면 다 고구려 지방민이라고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흑수부도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고
하여 말갈 영역도 다 고구려 판도에 넣어야 한다고 봅니다
          
감방친구 17-10-24 18:37
   
이 고구려 지도는 서쪽도 동쪽도 납득할 수가 없는데
ㅡ 서쪽은 중국여사지도에 근거하여 말갈 근거지를 다 집어넣은 것으로 보이고
ㅡ 동쪽은 거란을 다 집어넣고 지두우 분할은 커녕 다리강가 유적을 근거로 동몽골을 다 집어넣은 것으로 보이네요
ㅡ 다리강가 유적에 대한 깽단사학의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뭐꼬이떡밥 17-10-24 15:49
   
고조선 때 일듯
꼬마러브 17-10-24 16:22
   
고조선 때라고 생각함
     
탈레스 17-10-24 16:35
   
고조선이 고구려나 발해 보다 영토가 넓었나요??
고조선이 최전성기라는 근거가 무엇인가요?
또한 고조선의 최전성기는 언제이죠? 위만조선 시기인가요? 아니면 연나라와 티격태격하던 시절인가요??
태클이 아니라 순수하게 궁금해서 여쭤보는거니 오해하지 말아주셧음 합니다.
뭔가 고조선은 너무 베일에 쌓여있는 미스테리한 나라가 되어 버렸어요.
          
꼬마러브 17-10-24 17:56
   
우리가 고조선 당시에는 문명, 문화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선친국이었지요. 신석기, 청동기 모도 고고학적으로 중국보다 연대가 앞섭니다. 그래서 고조선도 중국의 하나라보다도 빨리 건국되었습니다.

백성들 살기도 중국보다 훨씬 나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원에서 하 상 주, 왕조가 3번 바뀔 때, 우리는 수천년동안 고조선 하나로 평화롭게 지냈다늗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한민족의 정체성은 이미 고조선 때 만들어졌지요.

특히 윤내현 교수의 <새로운 한국사>에 따르면,  고조선의 세율은 20 분의 1로... 당시 중국의 실질적인 세율은 10 분의 1 ~ 10분의 5인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탈레스 17-10-24 16:31
   
최전성기 기준이면 고구려는 5세기 발해는 선왕 시기 영토겠네요?
장진동 17-10-24 17:06
   
윗분들 댓글내용보니 부동산 투자하면 성공하실듯 ㅋㅋㅋㅋㅋ
레스토랑스 17-10-24 17:28
   
우리나라가 가장 잘나가던 시절은 지금아님?
     
장진동 17-10-24 17:35
   
아니죠 현재 분단상태 입니다.
     
Marauder 17-10-24 17:53
   
분단을 제외하고서라도 다섯손가락 안에야 간신히 들듯
          
탈레스 17-10-24 18:04
   
궁금증이 들어서 질문 드립니다.
잘나가던 시절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영토를 제외하고는 그래도 나름 전성기 아닌가요?
태클이 아니라 다섯손가락에 간신히 든다고 하셔서 질문드려요.
               
장진동 17-10-25 09:03
   
기준이라 개인의 차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같은경우는 국민의 힘이 강할때 좋은지도자가 나오죠 ^^
     
꼬마러브 17-10-24 17:57
   
상대적인 지위로 보면, 지금이 가장 못 나가는 시기일듯
감방친구 17-10-24 18:07
   
영향력으로 보자면
우리가 고조선이라 이름 하는 요서ㆍ요동ㆍ만주ㆍ연해주ㆍ한반도ㆍ규슈의 신석기ㆍ청동기ㆍ농경 문화 세력이지요

그 다음으로는 고구려
     
촐라롱콘 17-10-24 18:18
   
연해주가 고조선 영역이라는 근거는....??

그리고 만주가 얼마나 넓은 땅인데 뭉뚱그려 죄다 고조선 영역이라 하는지...??

고조선의 최북단을 후대의 부여일대를 포함한다 하더라도 최북단이
농안-장춘-길림라인으로 오늘날의 흑룡강성 일대는 대부분 미포함인데....

심지어 고조선 멸망되기 최대 200년 이전부터 고조선과는 구별되는 부여의 실체가
나타남으로 인해 과연 부여가 고조선의 계승국가인지도 의문점이 많은 것이
오늘날 주류적인 견해입니다.

해당 시기의 지역과 지명을 나열하려면 심사숙고해서 근거를 가지고
나열하기를 권고하는 바입니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주장한다고 남들이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방친구 17-10-24 18:40
   
이 양반은 이거 남의 글 제대로 안 읽고 혼자 풀발하는 습성이 있네? 누가 니미럴 영역이니 땅이니 그런 소리를 했어?

ㅡㅡㅡㅡ
우리가 고조선이라 이름 하는 요서ㆍ요동ㆍ만주ㆍ연해주ㆍ한반도ㆍ규슈의 신석기ㆍ청동기ㆍ농경 문화 세력
ㅡㅡㅡㅡ
훌쩍커버린 17-10-24 18:31
   
헐... 이 무슨 신환단고기인가?
     
대한국 17-10-26 14:11
   
몽고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견되고 시베리아 트로츠코예라는곳에도 발해유적이나왔는데 왠뜬금없이 환단고기가 나오는지?
설설설설설 17-10-24 20:40
   
걍 한국이 가장 잘나갔을때는 대체적으로 고대시대.

동북지방에서 가장 먼저 세력으로 발돋음해서 거란,말갈,왜 한국의 손아귀안에서 놀았지만

계속되는 중국과의 전란에서 많은 힘이 소진되면서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

무엇보다 아쉬운게 기원전2세기 위만조선의 멸망..

이 당시 조선은 완벽한 고대국가로서 진입하고 있는 시기였는데.. 한나라와의 전쟁 이후 멸망..

만약 위만조선이 건재했다면 한반도 일대에 정치체재의 출현이 더욱더 빨랐을거임.

동북지방 만주일대는 부여라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상관은 없지만요.
 
 
Total 5,28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909 [한국사] 고조선이나 삼한이 봉건국가였을 가능성은 없나요? (31) Marauder 10-29 1510
1908 [한국사] 삼한(마한)과 서진동진의 조공무역 기록 (6) 도배시러 10-29 1226
1907 [한국사]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고 (28) 화톳불 10-29 1552
1906 [한국사] 마지막 전투 패배때문에 과소평가된 조선시대 장수 (5) 레스토랑스 10-29 1800
1905 [한국사] 고구려가 피휘를 명분으로 북위황실계보를 요구헀을… (9) 국산아몬드 10-28 1820
1904 [한국사] 중일 고서 속의 의도적 조작의 흔적 (2) 징기스 10-28 1549
1903 [한국사] 주중국대사에게 조선상고사 일독을 권한다 징기스 10-28 1085
1902 [한국사] 갱단사기단이 "결사 은폐"중인 평양유적들의 진실 (12) 징기스 10-28 1972
1901 [한국사] 예맥을 동예로 창씨개명 시킨 사람이 누구죠 ? (12) 도배시러 10-28 1411
1900 [한국사] 고구려도 결국은 중국질서에 포함된 조공국이였다? (7) 로터리파크 10-28 1607
1899 [한국사] 이덕일은 환빠인가? (7) 감방친구 10-28 1850
1898 [한국사] 갈수록 가관이네 동아게를 환빠가 아예 점령했구만.. (18) 루리호 10-27 1352
1897 [한국사] 역대 존재했던 한민족 국가 중 (9) 화톳불 10-27 1249
1896 [한국사] 간도 임시정부와 하얼빈 협정 (5) 감방친구 10-27 1840
1895 [한국사] 산해경에 나오는 삼한(한안)의 위치 (2) 도배시러 10-27 1059
1894 [한국사] 간도와 조중변계조약 (24) 감방친구 10-27 2613
1893 [한국사] [역사툰] 중국의 콧대를 꺾은 조선의 천재들 (1) 레스토랑스 10-27 1452
1892 [한국사] 제가 요서경락설을 찾다가 흥미로운 주제를 찾았습… (4) 탈레스 10-26 1044
1891 [한국사] 요즘 갱단 물타기 수법이 바뀌었군요 (10) 징기스 10-26 833
1890 [한국사] 요서백제는 엄연한 史實입니다.개인적으로 요서백제… (39) 성물세라핌 10-26 1254
1889 [한국사] 중국의 돈벌이로 전락한 고구려 역사 (7) 징기스 10-26 1693
1888 [한국사] 한사군에 대한 궁금증 (11) 탈레스 10-26 903
1887 [한국사] 역사 팔아먹는 갱단에 해마다 1,000억 지원??? (9) 징기스 10-26 1282
1886 [한국사] 이덕일 소장, 내일 갱단의 낙랑교치설을 심판한다 (5) 징기스 10-26 791
1885 [한국사] 마한. 진한. 변한 (4) 공무도하 10-26 2204
1884 [한국사] 소름 끼치는 일 (18) 감방친구 10-26 1900
1883 [한국사] 한글에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한 사람 (8) 레스토랑스 10-25 2034
 <  121  122  123  124  125  126  127  128  129  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