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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7 12:39
[한국사] 간도와 조중변계조약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604  

일단 간도의 크기가 아주 큽니다
압록강 이북부터 시작해서 송화강~흑룡강 이남의 땅이 다 간도예요

애초에 17~20세기 초까지 조선ㆍ대한제국이 인식한 조선령 간도는
봉황성 동쪽 ㅡ 토문강을 따라 송화강 ㅡ 송화강을 따라 흑룡강에 이릅니다

청이 이 지역을 한족 봉금지, 조선과 청의 중립지대로 만들었다가
러시아가 동진, 남하하면서 영토 및 국경 문제가 불거지자 이 지역을 차지하고자 관심을 두면서 조ㆍ청 간의 국경문제가 발생합니다

강희제의 청나라는 이 지역의 지배 근거를 마련하고자 이 지역에 대한
지리정보를 담은 성경지의 국외유출을 금지하고 새롭게 신찬성경지를 만들고 지도를 새롭게 제작하는 등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굳히려는 역사공작, 영토공작을 실시합니다

그런데 171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며 주변 지리와 강의 수원과 지류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西爲鴨綠 東爲土門 식의 내용을 담아버렸고 당시 조선관리들은 그 지류에 돌무더기를 쌓아 표시를 하죠

즉 청나라는 토문을 두만강으로 보고 토문이라 적은 것이고 조선은 토문을 토문이라 보고 토문이라 적는 데에 합의한 것이죠

그러다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게 19세기에 들어서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종 20년(1883) 청나라의 지린·훈춘 초간국(吉林琿春招懇局) 진영(秦煐)과 청나라 둔화(敦化)현 지현(知縣) 조돈성(趙敦誠)이 함경도 경원부와 회령·종성부에 공문을 보내면서 이 문제가 본격화.
ㅡ 청국은 “올해 추수를 마친 후 9월 안으로 ‘토문(土門) 이북과 이서(以西) 지방의 조선 사람들을 모두 쇄환(刷還:외국 등지에 있는 사람을 데려감)하라”고 요구.


해당 지역의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개간한 토지가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에 명시된 토문강과 두만강 사이의 조선 영토라고 주장.

조선인들은 직접 백두산정계비를 찾아가 강의 발원지를 답사한 뒤 종성부사 이정래(李正來)에게 청국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호소. 이때 경원부에 있던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 어윤중(魚允中)이 종성 사람 김우식(金禹軾)을 백두산으로 보내 정계비와 토문의 원류(源流)를 조사하라고 명함.

김우식은 백두산정계비와 토문의 발원지를 조사한 결과 조선 백성들의 주장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 그래서 어윤중은 고종 20년(1883) 7월 종성부사 이정래에게 둔화현에 공문과 함께 ‘토문강과 그 이남 강토에 대한 옛 지도 모사본과 새 지도(土門江·分界江以南 舊圖移摸·新圖)’ ‘백두산정계비 탑본(榻本:탁본)’을 보냄. 어윤중은 양국에서 각자 관리를 파견해 백두산정계비와 강의 발원지를 답사하고 그 내용에 따라 국경을 분별하자고 요구할 정도로 (간도가 조선영토임에) 자신을 보임.

1903년 의정부 참정 김규홍(金奎弘)은 고종에게 간도시찰관 이범윤(李範允)을 북간도(北間島) 관리(管理)에 임명하자고 요청하. 그러면서 “북간도는 바로 우리나라와 청나라의 경계로…수십 년 전부터 함경북도 연변의 각 고을 백성들이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이 수만 호에 10만여 명이나 되는데, 청나라 사람들에게 혹독한 침탈을 받고 있다(『고종실록』 40년 8월 11일)”고 말함. 김규홍은 “백두산정계비 이후 토문강 이남 구역은 우리나라 경계로 확정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임.

조선은 서간도를 평안북도에, 동간도(북간도)를 함경도에 편입시키고 이범윤을 북간도 관리로 임명해 간도에 상주. 이후 간도 백성들은 대한제국에 세금을 납부.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53&aid=000002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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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당간 이런 흐름 속에서 대한제국은 조선시대까지 함경도 관할 하에 간접영유하던 간도를 적극적으로 행정구역화 하고 호구를 조사하여 세금을 걷습니다.

"대한제국은 광무 연간인 1897년부터 1907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호구 조사를 해 이른바 '신식 호적'을 작성했다."

이 때 조사된 간도지역의 호구 내용은 4~50 대 남성을 가장으로 둔 3인 내외(딸 제외, 아들만 포함)의 가구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1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369869


관련 기사 2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351006

관련 기사 3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540441


1909년 일본 간도파출소가 한 주민조사에 따르면 간도 지역 한국 이주민의 수는 8만 2999명으로, 중국인 거주자 2만 7371명을 압도했는데 대한제국 정부 역시 신식호구조사 완료 이전부터, 또 일제 간도파출소의 인구조사 이전부터 간도 조선인의 인구수를 10 만여 명으로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종실록』 40년 8월 11일).

그런데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상기 내용보다 러시아ㆍ소련과 대한제국 및 북한 사이의 간도 인식입니다

러시아 정부는 간도 분쟁에 대하여 대한제국 정부를 지지하며 대한제국과 간도 공동 통치에 대한 특별협약안을 작성합니다(1902년). 이 때는 바로 대한제국이 간도를 정식 행정구역으로 편성. 관리를 파견. 세금을 걷기 시작한 바로 그 때이지요.

물론 이는 러시아의 동방진출 계략과 대한제국의 청나라 견제라는 동상이몽의 이익이 맞물린 것이지요.


관련 기사 1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264253

관련 기사 2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531586

관련기사 3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1&aid=0002220831

아무튼
이 간도지역은 국권피탈 후 독립운동의 거점이 됩니다.

간도 관리사 이범윤은 그 후 연해주로 진출해 항일무장독립운동에 헌신합니다.

자,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일본 패망 후에 간도지역에 조선인들에 의해 간도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것입니다.

ㅡㅡㅡㅡㅡ

1945년 8월20일 간도지역에 일본이 물러가자 간도 조선인이 주축이 돼 '간도임시정부(間島臨時政府)'를 수립, 국적을 회복하는 등 간도를 관할했다.

간도임시정부의 간도 할양 요구에 5월20일 중공과 소련 대표는 할빈협정(Harbin Treaty)을 체결, 제13조에 '적당한 시기 북한에 편입시킨다'고 규정했다.

1948년 2월에는 북한과 소련, 중국이 2차평양협정을 체결해 간도·안동·길림을 북한에 귀속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들은 1948년 7월부터 간도(間島), 안동(安東), 길림(吉林) 3개 자치구를 직접 행정관할하고, 연길(延吉)·목단강(牧丹江)·무릉(穆陵) 지역에 북한 정규군을 주둔시켰다.

그러나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공산당 연변위원회가 '간도임시정부'를 접수하면서 간도의 독립과 북한 편입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북한과 중국은 1962년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 체결을 통해 백두산을 양분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국경을 확정해 간도를 중국 땅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관련 기사
http://www.inews365.com/mobile/article.html?no=477609
ㅡㅡㅡㅡㅡㅡ

즉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조중변계조약이라는 것이 실상은
간도임시정부의 활동과 밀접하며 그 뿌리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간도 실질 경영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간도 문제는 통일 후에 통일 대한민국의 국력과 의지에 따라 중국의 홍콩ㆍ마카오 수복의 사례와 같이

충분히 우리 쪽에 유리하게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죠.

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기를 부여했으리라 짐작이 가능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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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10-27 12:50
   
또 조선과 청 사이의 근 300 년에 걸친 간도 분쟁은
비록 조선이 청나라에 군신관계ㆍ조공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하나
엄연한 독립국이었음을 나타내는 가장 활활한 증거입니다.
촐라롱콘 17-10-27 14:04
   
이 넘의 간도 떡밥 이젠 정말 질리네요......

웬만한 지리적인 상식만 있더라도 논리상 허점이 한두군데가 아니라는 것을 알텐데....

[[고종 20년(1883) 청나라의 지린·훈춘 초간국(吉林琿春招懇局) 진영(秦煐)과 청나라 둔화(敦化)현 지현(知縣) 조돈성(趙敦誠)이 함경도 경원부와 회령·종성부에 공문을 보내면서 이 문제가 본격화.]]
.
.
위 기록으로 보자면 두만강 너머인 혼춘과 둔화일대가 청나라 입장에서의 변경지역 최전방 행정구역
두만강 이남인 함경도 경원부, 회령-종성부가 조선 입장에서의 변경지역 최전방 행정구역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런데 혼춘과 둔화일대는 고종시기의 조선이 주장하던 간도에 포함되는 지역인데
조선의 논리에 따른다면.....자칭 자기땅에 청나라가 들어와 무단으로 행정구역을 설치하고
관리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무단으로 설치한 행정구역에서 보낸 공문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그대로 접수하는 상황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상식적으로 판단했을때 조선측 주장대로 토문강이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의 지류라고 한다면....
그 논리대로 토문강~송화강에 이르는 동쪽땅은 조선땅이라고 치자....!!!

그 다음에 송화강은 바다로 흘러가는 강이 아니라 만주내륙을 흐르는 강인데
그렇다면 송화강에서부터 동해바다까지의 국경을 정하는 것이 상식중에서도 기본적인 상식이
아니냐 말입니다. 

그리고 고종시기 조청간에 국경분쟁이 일어나기 전인 1860년 청나라와 러시아간에 베이징조약이 체결되어
졸지에 연해주가 러시아에 할양되고, 조선은 두만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접하게 됩니다.

만약 조선측 주장대로라면 베이징조약 이전에 적어도 연해주남부일대는 조선땅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측 주장대로라면 국경이 아닌 조선의 한참아래 내지인 두만강까지 러시아가 들어와
조선과의 아무런 협의없이 국경을 설치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조선은 러시아인들이 두만강을 넘어와 통상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연해주가 러시아령이 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그리고 18세기 ~19세기의 고종치세 초기 시기에 걸처 두만강을 넘어가는 변경민들을
월경죄로 사형시킨 이들만 수 십인에 달하는데....
조선측 주장대로라면 두만강은 조선의 한참 안쪽의 내지를 흐르는 강에 불과한데
어떻게 국경을 넘었다는 월경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감방친구 17-10-27 14:14
   
그것도 고민하고 연구해볼 사실이요 사안입니다
님이 말한 내용이 저 2009 년을 전후(사실은 이미 90년대 말부터)하여 간도회의론이 돌 때에 근거가 되고 또 논리화 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저도 한 때는 회의론자였구요
     
감방친구 17-10-27 14:21
   
다만 국가 간의 힘의 우열과 조선의 정세적 자신감의 유무에 따라 행동과 태도를 달리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간도문제는
1712부터 20 세기 중반까지,
특히 19세기부터 대한제국까지 우리가 취한 행동과 태도를 중점하여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매번 성미가 급하게 극단으로 몰아가지 마시고
     
감방친구 17-10-27 14:25
   
또 저 시기에 간도 조선인들과 이정래, 어윤중, 김우식, 이범윤의 조사활동과 조선 정부의 입장 정리, 대한제국의 공세적 태세를 잘 봐야죠

그 전에는 간도에 행정력이 미치지 못 하니 월경인들을 처벌하여 주민 이탈 (세금)을 막은 것이고

우리 땅인데 청의 힘에 눌려서 우리것이라 하지 못한 것

제대로 다시 조사해보니 우리 땅이 맞고 국제 정세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니 과감하게 편입시킨 것이죠
     
감방친구 17-10-27 14:31
   
그리고 댁은 이 문제도 그러하거니와 늘상
어떤 사안에 있어서 긍정과 회의가 양존할 때에 늘 회의론, 부정론만을 들먹이는데

그거 왜 그러는 것이여? 예엥?
          
촐라롱콘 17-10-27 15:03
   
그러는 님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당연하고도 명확한

사실에 대해서.... 어째서 그렇게 회의론-부정론만을 들먹이는 것인가요....??? ^^
               
감방친구 17-10-27 15:20
   
그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의 그 내용은 향후 통일 시에 수정되어야 합니다
                    
촐라롱콘 17-10-27 15:37
   
님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의 헌법수정논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그토록 비판하면서
우리나라의 대외팽창적인 의도를 나타내는 헌법수정, 간도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얼버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당연하다는 듯 주장하는 행태에 대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따로 없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라고
생각하는데... 님의 주장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도 적어도 일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겠네요~

독도는 커녕 울릉도조차 공도정책을 폐지한 시기가 19세기 후반 고종시기에
들어와서이니..

적어도 19세기 후반까지도 독도와 주변해역을 활용하고 이용한 비율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으니 말입니다.
                         
감방친구 17-10-27 15:44
   
예, 예, 이 이야기 꺼낼 줄 예상했습니다

특히
ㅡㅡㅡ

그렇다면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도 적어도 일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겠네요~

독도는 커녕 울릉도조차 공도정책을 폐지한 시기가 19세기 후반 고종시기에
들어와서이니..

적어도 19세기 후반까지도 독도와 주변해역을 활용하고 이용한 비율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으니 말입니다.

ㅡㅡㅡ

이거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네요 ㅎㅎㅎ 참 내
                         
감방친구 17-10-27 15:46
   
일본의 헌법수정논의, 독도영유권 주장
=
우리나라의 대외팽창적인 의도를 나타내는 헌법수정, 간도영유권 주장

이런 이항 구도가 가당키나 합니까?
참 기가 막혀서

님 일부러 이러는 거죠?
어떨 때는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사람 같다가도 어떨 때는 우익전범꼴통 일본놈 같으세요
                    
촐라롱콘 17-10-27 17:27
   
그러니까 우리는 되고 일본은 왜 안 되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속시원히 설명 좀 해달라니깐요....!!!

머리나쁜 저로서는 정말로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그러니까...
자꾸 동문서답하지 마시고....

우리는 적어도 통일이후라면 간도까지 한국영토다라고 헌법수정이 언제든 가능하고

일본은 오히려 우리와 같은 직접적인 영토확대조항도 아니고 자위권 확대 등과 같이
문구상으로만 보면 우리의 간도까지 영토확대보다는 강도가 떨어지는 헌법수정인데
그건 안 되는 이유를 좀 논리적으로 풀어달라니깐....

그리고 우리는 간도영유권 주장해도 되는데, 일본은 독도영유권 주장하면 안되는
이유와 그것이 왜 비교대상이 이닌지도 논리적으로 풀어달라니깐요..... 플리즈~~~

막무가내식의 100년전 제국주의식 팽창논리, 국수주의 같은 말도 안 되는 논리 말구요!

물론 나 역시 내로남불이라고... 우리나라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독도를 일본에 넘겨주는
행위는 결사반대니까 그 점은 염려마시고~~~
예를 들어 내 가족 구성원이 남들과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에... 다소 내 가족의 과실이
좀 크다 해도 내 가족편 드는 것처럼...

다만 여기 동아게가 적어도 닥치고 우리나라-우리민족 최고다라고 주장하는 일방적인
사이트는 아니잖아요!
적어도 대부분의 게시자들이 이성적인 논리를 지향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 같은데....
                         
감방친구 17-10-27 17:45
   
ㅎㅎㅎ 에휴 어지간히 애쓴다
                         
감방친구 17-10-27 18:24
   
님아, 헌법은 수정되거나 명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요? 지금 하자는 게 아니라 통일 후에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ㅡ 통일 후에 국제정세, 동북아 힘의 논리가 변화할 가능성
ㅡ 통일 과정과 통일 후에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간섭 수작 차단을 위해 간도 문제를 걸고 넘어져서 일본ㆍ러시아ㆍ미국 등을 설득할 구실을 만들자는 것
ㅡ 중국이 한국은 원래 중국땅이었다는 개소리를 동북공정과 중국역사지도집 작업을 통해 논리화
ㅡ 여기에 대응할 논리가 없다는 것
ㅡ 그 다음으로는 간도를 조선말기와 대한제국 시절에 실제 행정적으로 경영했으며 거주민 대다수가 조선인으로 우리는 호구조사를 거쳐 세금을 걷고 마적대 등으로부터 거주민을 보호하는 치안 활동을 했다는 등등의 사실로부터
ㅡ 간도가 조선의 땅이었고
ㅡ 백두산정계비부터 그 이후 대한제국 망하기까지의 외교, 행정 등의 여러 사실을 통해 확인이 되며

ㅡ 청의 논리와 우리의 논리, 혹은 중공의 논리와 우리의 논리가 대척하면
ㅡ 지금은 비록 남북이 분단돼 있고 힘에서 밀려서 이런 이야기를 중국과 거론할 처지가 되지 못 하지만 통일 뒤에는 필시 간도문져가 불거질 것이고
ㅡ 동북삼성의 경제권이 통일 대한민국에 준종속되는 지경을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 바

이러한 분쟁에 대비하여 미리 논리와 그 근거를 마련하자는 게

뭔 년의 제국주의니 대외팽창이니 내로남불이니 개소리를 들을 이유가 되는 거유?

일본이
ㅡ 전쟁가능한 국가로 탈바꿈 하고자 헌법을 뜯어고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에 자리잡은 UN 체제에 역행하는 것이고
ㅡ 일본이 공격가능한 국가가 됐을 때에, 메이지 이후 아직도 일본의 정치ㆍ경제ㆍ언론 등의 대가리를 잡고 있는 우익들의 작금의 짓거리를 봤을 때에, 전범을 버젓이 야스쿠니에 뫼시고 숭배하는 짓거리를 봤을 때에 충분히 피해 당사국으로서 우려할 일이 아니오?

댁은 한국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언제 제국주의니 군국주의로 다른 나라와 그 인민을 침략, 폭압, 수탈한 이력이 있수?

독도? 독도랑 간도랑 같아?
그래 유사하다 볼 수는 있지오

그러나 독도는 오히려 일본에 조선땅이었다는 증거가 더 많아
19 세기에 일본애들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조업한 것도 우리 허락을 받고 했고

독도 강치 씨 말리는 식으로 조업전횡을 한 것은 우리의 국권이 일본에 잠식돼 마침내 식민지 처지가 된 을사조약, 한일합방 이후

이에 반해서

간도는
수천 년 간 우리 땅이었잖수

발해 멸망 후에
여진족 애들이 그곳에 터를 잡기 시작했고
이 여진족의 성분이 애매한데다
금나라 시대, 원이 북원으로 쫓겨나고 청나라가 들어서기 전까지 도합 4~500 백년밖에 안 돼

그 이후에는 봉금지, 무인지경이 돼버렸고
실제 그 지역을 개간한 것은 조선인들이고
(논농사도 최초)
거주민 대부분도 조선인이고
1712 정계비는 분명히 토문이라 적혀있고
그곳에 돌무지 표지도 남아 있고
19세기에 들어서 조선거주민들과 관리들이 재차 확인해 보니 조선땅이 맞다는 결론 도달

그래서 행정적으로 간접관리하다가 본격 편입

이러는 와중에 청과의 회담ㆍ협상은 계속 결렬

청나라는 조선에 조선인들 데려가라고 통보했음에도 조선은 적극적으로 나서고
조선이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청은 행정적으로 아무런 힘을 못 써

청나라가 당시에 힘이 없었던 것도 아니어서 서북한 지역 어업권을 거의 강탈하다시피 하고 대원군도 압송해 가는 마당인데

청나라 입장에서는 좆밥인 조선의 간도에 대한 주장과 행정력 집행에 아무런 힘을 못 써요

게다가 러시아도 일본도 우리 편을 들어

이게 어떻게 독도와 같습니까?

누가 지금 전쟁 일으켜서 중국한테 간도를 빼앗자는 거요? 외교적으로 논리를 개발하여 만의 하나라도 얻을 수 있으면 얻자는 얘기지
                         
감방친구 17-10-27 18:35
   
그리고 지금의
ㅡ 중화인민공화국
ㅡ 중화민국
이 청나라를 계승한 게 맞느냐의 문제도 관여하고

아니 간도문제에 있어서
이러저러한 사실을 봤을 때에
ㅡ 우리 것이었다
ㅡ 우리가 경영했다
라고 볼 근거가 다수고

이 문제를 당시 청과 조선이 외교적으로 협상을 하였으나 입장이 맞서서 해결이 안 됐고
그 와중에  조선은
행정단위로 편성하여
ㅡ 호구조사
ㅡ 징세
ㅡ 치안
까지 했는데

씨부랼것의 일본놈들 탓에 나라 주권 빼앗기고 도루묵이 됐으니

실질 양자 간에 협상 해결이 안 난 문제를 적당한 시일, 통일 후에

재협상을 하여 결과를 보자는 게

뭔 그렇게 길길이 날 뛰며 팽창주의니 침략이니 일본과 다를 바 없다며 악담을 할 일이요?

이게 조롱 받을 일이냐고 예엥?
                         
감방친구 17-10-27 18:38
   
이 양반은 이거 지  승질대로 마구잡이 떼 쓰는 것으로 뭔 스트레스 푸는 게 아니면 매번 왜 이러는 겨?

아니 내가 좋게좋게 촐라콘 댁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니 생각해 보자, 나도 회의론자였다ㅡ하며 온건하게 나왔는데도

뭔 당장에 때려죽일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 날뛰슈? 예?
                         
감방친구 17-10-27 18:41
   
ㅡㅡㅡㅡ

여기 동아게가 적어도 닥치고 우리나라-우리민족 최고다라고 주장하는 일방적인
사이트는 아니잖아요!

ㅡㅡㅡㅡ

이게 대체 뭔 나물 다듬다가 똥방구 뀌는 소리래요?
아니 누가 이런 소리를 했다고 그리 분해 하세요?
제가요? 제가 이랬다구요? 옛끼 이 양반아!
똥방귀 그만 뀌고
정신 차리슈
                         
감방친구 17-10-27 18:42
   
그리고

ㅡㅡㅡㅡ

머리나쁜 저로서는 정말로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그러니까...

ㅡㅡㅡㅡ

댁 대가리 나쁘신 걸 왜 저한테 하소연 하세~여?(성동일 말투로)
                         
감방친구 17-10-27 18:45
   
ㅡㅡㅡ
일본은 오히려 우리와 같은 직접적인 영토확대조항도 아니고 자위권 확대 등과 같이
문구상으로만 보면 우리의 간도까지 영토확대보다는 강도가 떨어지는 헌법수정인데
그건 안 되는 이유를 좀 논리적으로 풀어달라니깐....
ㅡㅡㅡ

내가 지금 영토확장 하자고 그랬수?
협상여지가 있다
논리를 개발하자고 했지
내가 댁 말도 일리는 있다고 깔고 들어갔잖어

제발 이런 대가리 나쁜(본인스스로 고백) 일뽕 코스프레는 하지 마세요
보기 흉해요
                    
촐라롱콘 17-10-27 22:07
   
무엇보다 감정이 어느정도 섞인 반시비조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비교적 논리적으로 비교적 장문의 답변을 남겨주신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답글의 맥락상 제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저 또한 인정하는 바이며, 더불어 님의 세부적이고 상세한 논리에 의해
이전까지 희미하게 인지했던 몇몇 사실들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히 알게 된 부분도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촐라롱콘 17-10-27 22:11
   
그리고 한 가지 오해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부분은
독도문제는 간도문제에 대한 논리적 비교차원에서 언급했을 뿐...

오늘날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고 해도
역사적 논거에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욱 우위에 있다는 점은
저 또한 인정하는 바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감방친구 17-10-27 23:22
   
뭐여 이 양반 싱거운 사람일세
갑자기 현자타임 오셨나
촐라롱콘 17-10-27 14:57
   
1. [[다만 국가 간의 힘의 우열과 조선의 정세적 자신감의 유무에 따라 행동과 태도를 달리한 것으로 볼 수 있고]]
.
.
.
그렇다면 일본의 러일전쟁시기 무렵부터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같은 제국주의적 참략주의와
논리상 다를 것이 뭐가 있나요....??


2.[[그 전에는 간도에 행정력이 미치지 못 하니 월경인들을 처벌하여 주민 이탈 (세금)을 막은 것이고
우리 땅인데 청의 힘에 눌려서 우리것이라 하지 못한 것]]
.
.
.
19세기 말엽의 간도영유권 분쟁은 1712년 숙종시기의 백두산정계비를 근거로 한 것인데....

조선측 논리대로라면 1712년에 이미 청나라와의 협의에 의해서 결론난 조선땅이 된 넓은 간도땅을
최소 170년 이상이 지난 19세기 후반까지도 그냥 무주공산으로 놀려왔다는 것인데.....

숙종시기부터 그 이후시기는 조선도 정치적-대외적으로 안정되어 인구가 이전시기보다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증가하여 이전까지 미개발에 가까웠던 강원-함경도의 산간오지까지 화전이 확대되는 등
농지가 부족해지던 시기였습니다.

19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이전시기부터 누적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전국의 산림황폐화로
(물론 온돌의 전국적인 보급으로 인한 땔감수요로 인한 산림황폐화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지만)
환경생태학적으로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입어 오히려 18세기에 비해서
인구와 경제성장률의 정체를 넘어 퇴보까지 진행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19세기 삼정문란으로 대표되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세도정치의 폐해로 흔히들 인식하지만
19세기 한계치에 달한 환경파괴도 근원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농지가 부족한 18~19세기의 상황에서.. 조선의 논리대로라면 이미 우리땅으로
인정받은 간도지역을 170년 이상이나 개척하기는 고사하고, 행정-치안-국방력도 행사하지 않고 방치한 이유를
머리나쁜 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요....!!

아니 머리나쁜 저의 논리에 따른다면 저런 상황에서도 이미 우리 땅인 간도지역을 방치한
18~19세기에 걸친 국왕 이하 문무관료들은 머저리들중에서도 상머저리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군의 반열인 영조-정조 조차두요~~~
     
감방친구 17-10-27 14:59
   
그렇군요
그런 식이면 우리 광무황제는 성군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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