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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8 02:37
[한국사] 고구려도 결국은 중국질서에 포함된 조공국이였다?
 글쓴이 : 로터리파크
조회 : 1,604  

중국 사서를 보면 고구려 장수태왕 대에 수많은 조공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이 기록들을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을 바쳐, 중국의 책봉조공체제에 편입하여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동북공정의 주요 논리중 하나로 활용하고있다.하지만 그것이 진짜 명분과 실제가 일치하고 실체가 있는 조공이었을까?

장수태왕 23년(435년) 고구려는 북위에 사신을 보내 북위 역대 황실 계보를 바치라고 요구한다. 역대 황실 계보를 바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를 바치는 것으로 신하의 나라가 임금의 나라에게만 행하는 행위이다. 그 예를 북위가 고구려에 행한 것이다. 더욱이 장수왕이 죽자 북위의 고조는 소위모라는 흰색 모자와 포심의라는 상례 때 입는 옷을 입고 동쪽 교외에 나가 애도를 표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뿐만 아니라 519년 문자명왕이 죽었을 때 북위에서는 전왕 세종의 부인이자 숙종의 어머니인 영태후가 슬퍼하며 동쪽 사당에서 애도를 표시했다. 게다가 508년에는 당시 북위의 세종이 청주에 고구려 시조를 제사지내는 고려묘라는 사당을 세우기도 했다.

더욱이 문자명왕은 북위의 사신이 왔을 때 접견을 거부하기도 했다. 만약 고구려가 북위의 질서에 포함된 조공국이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북위는 고구려의 사신이 오면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그래서 남제의 사신이 고구려 사신과 자신을 동급으로 대우한다고 항의하기도 하였다. 이래도 고구려가 중국 질서에 포함된 종속국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고구려가 북위 왕조에게 책봉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당시 책봉 조공 체제는 동아시아 국제질서로 하나의 외교 관례이다. 일례로 한이 자주 조공을 바친 흉노와 돌궐 역시 중국 왕조로부터 책봉을 받은 바 있다. 흉노와 돌궐은 자주 중국을 공격하여 중국을 위기로 몰고간 종족인데(천고마비라는 고사성어는 흉노의 한나라 침탈에서 유래했다고 함), 이들 종족이 중국 왕조에 책봉을 받았다고 해서 흉노와 돌궐이 중국 왕조의 종속국인가? 아니다.

역대 중국사가들은 춘추필법이라며 자국의 불리한 기사는 숨기는 것을 사서의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웃 국가의 사신이 오면 이를 무조건적으로 이웃 국가가 우리 중국 왕조에 조공을 바쳤다는 식으로 기술했다. 중국 사서에 기록된 것들이 전부 다 사실은 아니고, 그 기록이 쌍방이 아닌 일방적이기 때문에 주요사례들을 살펴봐야한다

대표적으로 한나라와 남북조 시대의 강자 북위와 서위 등은 각각 흉노와 돌궐에 조공을 바쳤다. 그런데 중국 사서에는 거꾸로 이들 종족이 중국 왕조에 조공을 바쳤다고 기록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가 북위에 조공을 바쳤다, 남조에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른 기록들과 교차검증을 통하여 무리가 있다고 받아들일수밖에 없다.

물론 고구려는 전연에 확실하게 조공을 바친적이 있었고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전연에 조공을 바친 이유는 전연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고구려가 중국의 체제에 편입되기를 원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조공을 바친 전연은 중국 한족과 무관한 선비족이 세운 왕국으로, 고구려가 전연에 조공을 바쳤다고 해서 고구려가 중국의 질서에 편입되었다는 말은 무식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342년 전연의 공격으로 고구려는 환도성이 함락되고 미천왕의 시신과 고국원왕의 어머니 주씨와 왕후가 잡혀간다. 고구려는 미천왕의 시신과 왕모, 왕후를 돌려받기 위해 전연에 조공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13년 후 왕모가 고구려에 돌아옴으로써 고구려는 전연에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만약 고구려가 전연의 속국, 조공국이라면 370년 전연이 전진에게 멸망당하고 전연의 모용평이 고구려에 망명했을 때, 소수림왕이 그를 붙잡아 전진에 보냈을까?


.............................................

제가 역사에 문외한이라서 인터넷에서 이런글을 읽었는데 진짜인가요? 지금껏 고구려가 장수왕때에 북위에 조공한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니..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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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밥c 17-10-28 03:10
   
조공은 신하국이 상국에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신하국과 상국은 조공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밖의 일종의 여려 절차가 있습니다.

 사실 신하국은 상국에 조공을 보내지도 않아요.  조공은 대등한 국가의 공무역이기 때문이죠.

 같은 나라면 오늘날처럼 세금징수를 합니다. 절대로 조공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조공이라는 것을 가지고 기념사진 찍거나 기록을 남기지도 않지요.

 왜냐하면 조세법으로 일반화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당신이 세금낸다고 구청장이 사진찍자고 하지는 않죠.

 그리고 이러한 조세법은 진시황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라 , 북위때나 지금이나 딱히 특별할 것도 없어요.

 게다가  북위는 흔히 말하는 '한족'도 아닙니다.

 오히려 고조선과 상당히 연계가 깊은 나라죠.
도배시러 17-10-28 03:25
   
> 북위-백제의 조공
백제가 북위에 조공을 받치면서 원했던 것은 공직 하사가 아니라 고구려 정벌이었죠.
어마어마한 조공을 할테니 고구려를 박살내다오.
게다가 백제는 고구려가 중국의 사절을 죽였다는 물증을 함께 보내면서 고구려정벌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북위는 고구려를 잘 타일러볼테니, 조공을 계속 바치라고 백제를 꼬셔봅니다.
백제는 아니다 싶어서 북위에 대한 조공을 중단합니다.

475년 갑갑해진 북위는 청주 산동반도 동래에서 백제로 사신을 파견합니다.
삐지지말고 꾸준히 조공을 받쳐라. (어떤 대단한 특산물에 북위가 관심을 가졋는지는 모르겠네요)
뭐... 폭풍우를 만나서 중단되었다고 기록했지만, 이후에 백제를 공격한것으로 볼때
군사 스파이 역할을 하는 사신을 파견했으리라 봅니다.
.
그리고 북위-백제 전쟁이 488년 발생 합니다.

유사한 사례로 고구려와 백제 정벌을 요청하는 신라의 대당 조공도 있었지요.
러키가이 17-10-28 05:36
   
중국은 허상입니다.

중국이라는 정통성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진게 없습니다.

중국질서 라는 거 자체가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중국사라는 거 자체가 아전인수 역사입니다.
촐라롱콘 17-10-28 10:22
   
결론적으로 보자면 떡밥에 낚이신 겁니다....

[[장수태왕 23년(435년) 고구려는 북위에 사신을 보내 북위 역대 황실 계보를 바치라고 요구한다.
역대 황실 계보를 바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를 바치는 것으로 신하의 나라가 임금의 나라에게만 행하는
행위이다. 그 예를 북위가 고구려에 행한 것이다.]]
.
.
.
왜곡도 정도껏 해야 하는데... -.-
위 글의 내용에 해당하는 위서(북위) 고구려전의 원문입니다...!!!
[[世祖時,釗曾孫璉始遣使者安東奉表貢方物, 並請國諱. 世祖嘉其誠款,詔下帝系名諱於其國,遣員外散騎侍郞李敖拜璉為都督遼海諸軍事、征東將軍、領護東夷中郞將、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

원문대로라면 고구려가 사신을 보내 방물을 조공하고 국휘를 청한 것이,
어떻게 고구려가 북위왕실계보를 바치라고 요구한 것으로 180도 둔갑하는지....??? ^^

고구려가 국휘를 청한 것은 고구려가 북위의 권위를 인정하여 북위황제를 비롯한 중요한 북위황실인사들의
이름자를 피해서 문장을 짓고, 고구려왕과 그 이하의 이름을 지을때 역대 북위황제들의 이름자는 피해서
짓겠다는 제스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느왕조의 신하,귀족,사대부 등이 해당왕조의 역대 국왕 또는 중요한 왕족들의 이름자를
피해서 이름을 짓는 피휘를 행하는 것이 거의 필수적인 관례이지요!

이는 결국 국휘를 청하는 쪽이 아랫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장수왕이 북위의 권위를 인정한 것입니다.

물론 고구려와 북위의 관계는 훗날의 조선과 명-청과의 관계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명분과 권위는 북위에게 양보하는 대신 실익을 취한 고구려의 능동적인 필요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며
북위 또한 실질적으로는 고구려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동아시아정세가 위로부터 북방의 유연, 북중국의 북위, 남중국의 남조, 동방의 고구려가
세력균형을 이룬 상황이기 때문에... 유연과 남조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인 북위의 입장에서는
고구려의 향배에 따라 국가의 안위가 흔들릴 수도 있는 위치인지라 고구려를 우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치 고구려가 북위의 상국인 것 마냥 왜곡하면 안되겠지요~~~
     
로터리파크 17-10-28 12:50
   
그렇군요.. 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대표적으로 한나라와 남북조 시대의 강자 북위와 서위 등은 각각 흉노와 돌궐에 조공을 바쳤다. 그런데 중국 사서에는 거꾸로 이들 종족이 중국 왕조에 조공을 바쳤다고 기록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가 북위에 조공을 바쳤다, 남조에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른 기록들과 교차검증을 통하여 무리가 있다고 받아들일수밖에 없다.”

이부분도 사실이 아닌건가요?
          
촐라롱콘 17-10-28 13:48
   
물론 중화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중원왕조들이 북방민족으로부터의 시달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는 북방민족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물자 등의 세폐를 바쳐서 달랜 것을 가지고
도리어 하사했다고 포장한 측면이 크기는 합니다.

그런데 북위시기 북방의 강자는 흉노가 아닌 유연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북위와 유연은 대체로 어느 일방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시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시기 고구려는 위 댓글에서처럼 형식적으로는 북위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지만
북위의 가상적국인 유연과 남조와도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었고...
서로 멀리 떨어진 유연과 남조 사이를 능동적으로 중계하기도 하는 등,
언제 사이가 틀어질지 모르는 북위를 늘 견제했습니다.

그리고 북위가 동위가 서위로 분열되고, 동위가 북제로, 서위가 북주로 이어지는 시기에
북방에는 유연이 해체되고 돌궐이 북방의 유일한 강자가 되었고...
이 돌궐은 동위와 서위, 그리고 북제와 북주에 대해 힘의 균형상 우위에 있었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후 북주를 이은 수나라가 북제는 물론 남중국의 진(남조)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게 되고... 돌궐은 동서로 분열됨으로써 이전 돌궐이 우위에 있었던
역학관계는 중화권의 우위로 바뀌게 됩니다.
     
국산아몬드 17-10-28 17:54
   
이것 보세요. 피휘를 한다고 황실 계보를 달라고 한 한민족의 왕조는 없습니다.
고려도 조선도 피휘를  했지만 황실계보를 요구한 적은 없습니다.
고구려만 북위를 상대로 황실계보를 달라고 당당히 요구를 했죠.
북위가 황실 계보를 그냥 바치기 창피하니까 억지로 피휘를 핑계로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고구려가 피휘의 명분을 내세우지 않고 북위가 고구려의 속국임을 각인시키기 위해 그냥 황실 계보를 달라고 했을 수도 있단 뜻입니다. 그당시 고구려는 대북위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피휘를 할리가 없죠
그리고 실제 피휘를 한적도 없습니다.
북위의 2대 황제인 명원황제(明元皇帝)와 고구려 문자명왕의 명(明)
남안은왕(南安隱王)와 고구려 안장왕의 안(安)등 겹치는 글자를 당당히 지속적으로
쓰고 있거든요
그러니 고구려가 피휘를 황실계보 요구의 명분으로 삼았을 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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