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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9 13:36
[한국사] 정약용이 본 요동정벌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2,094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029/44021718/789752372/820284146/f747e002000f0c1ba7ae4ee02f110e38.JPG


나는 요동을 수복하지 못한 것은 나라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요동은 중국과 오랑캐가 왕래하는 요충지이다. 여진(女眞)은 요동을 거치지 않고는 중국에 갈 수 없고, 선비(鮮卑)와 거란(契丹)도 요동을 차지하지 못하면 적(敵)을 제어할 수 없고, 몽고(蒙古) 또한 요동을 거치지 않고는 여진과 통할 수가 없다. 진실로 성실하고 온순하여 무력(武力)을 숭상하지 않는 나라로써 요동을 차지하고 있게 되면 그 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요동을 차지하고 있을 경우, 서로 화친한다면 사신(使臣)의 접대에 드는 비용과 병정(兵丁)을 징발하여 부역시키는 일 때문에 온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또 서로 사이가 좋지 않게 된다면 사면에서 적의 침략을 받아 전쟁이 그칠 때가 없을 것이므로 온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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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동 17-10-29 13:38
   
가치도 없는 조선쉴드 ㅋㅋㅋㅋ
감방친구 17-10-29 13:41
   
이게 바로 조선 망국의 바탕입니다
Marauder 17-10-29 13:52
   
돈을가지고있으면 도적을 만나므로 부를 쌓지않겠다는 생각...
     
감방친구 17-10-29 14:03
   
이런 조선시대의 망조 들린 소심증이 일제의 식민사학과 만나서 정신병 유전자로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지금도 이런 정신병자들이 이 땅에 수두룩합니다
반의반의반 17-10-29 14:04
   
득보다는 실이 클 수도 있지 그 당시에는

하지만 조선의 선비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실용성을 따졌는지...?

물론 실학파 정약용은 예외일 수 있겠지만
비좀와라 17-10-29 14:16
   
이러한 모습이 조선말 천주교도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이런 사상이 후일 황서벽서 사건을 유발하는 것 이고요.

근세조선에서 왕실은 좌파적 성격을 띄는데 이성계 가문이 기존의 다른 고려 문중보다 낮은 계급이란 그런 것이죠. 반면에 후일 고려유신의 후손이라는 사림은 우파적인 성격을 띱니다.

근세조선은 내내 좌파적인 성격의 왕실과 우파적인 성격의 사림간의 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던 국가죠.

근세조선 왕실은 소위 민중의 지도자임을 강조하고 그 것에 자부심을 가졌고 반면에 사림은 고려귀족문벌의 자부심을 가져 왕실과 대척점을 세웠고요.

그래서 사림은 기본적으로 근세조선 왕실을 깔보았다는 것이 맞는 말이고 왕실은 이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사림을 감시하고 탄압하게 되는 것 입니다.
굿잡스 17-10-29 14:20
   
요동은 중국과 오랑캐가 왕래하는 요충지이다. 여진(女眞)은 요동을 거치지 않고는 중국에 갈 수 없고>

역으로 보면 이것 때문에 조선의 군사력이 약해질 수 밖에.

기본적으로 만주를 지배하던 고조선, 고구려(부여)가 강했던 이유는 이런 요동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기본 수렵이 강한 말갈을 잡고 있을 수 있었고 이런 말갈부족들 역시도 문화적으로나

식량 각종 생산지원을 받아야 하는 인간인 입장에서 이런 전략적 교통로를 우리가 장악하고 있으니

이들을 평시에는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유사시에는 군사력으로

동원할 수 있었기에 강한 전력을 구사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된 거군요.

그기에 이미 요나라 시절을 봐도 알겠지만 이미 요동 일대는 상당한 곡창지대.

만약 우리가 이런 요동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면 여진족을 지속적 복속 아래 두면서 이후 정묘, 병자 호란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겠죠.(임진왜란 시기에 이런 여진족 기병을 직접 활용했을 수도 있었고)


또 나아가 중요한게

고구려만 봐도 이런 요동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굳이 서토문명에 의지하지 않고 북방

초원길을 따라 유라시아와 소통할 수 있는 독자적 교류를 열 수 있었던것도 상당한 메리트였군요(또한

북방 전력과 연대를 통해서 서토왕조를 압박하기도 쉬웠고 요동일대에 선제적 강력한

밀집 공방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내지 중요 대도시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여차하면

서토왕조의 혼란기에 영토를 더욱 확장)

조선시대에 이 요동을 잃음으로써 그기에 명,청의 해금정책까지 이어지다 보니 조선은 국제적으로

점차 은둔 아닌 은둔의 나라처럼 비추어졌고 결국 근대 산업 물결 역시도 독자적 교통로를 육지나

해상으로도 확보하는게 늦어짐으로써

왜에게 뼈아픈 강점기를 당해야 했던 일련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결국 그 국가와 민족이 평화에 안주해서 전쟁을 두려워하고 잊어버리는 순간 이미 보수화로 혁신

보다 정체와 쇠퇴의 길을 가게 되는게 역사적 교훈.
기드맨 17-10-29 14:28
   
오유의 원글의 댓글과 이곳의 댓글의식이 차이가 크군요. 후대로서 이글을 쓰신 이유를 세세히 알리고 싶지만 게시판 특성상 분란만 일으킬 소지가 있어서 원글 링크만 달겠습니다. 다 읽어보시고 이게 진정 조선을 쉴드 치려했던 글인지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istory&no=14990
     
감방친구 17-10-29 14:39
   
고구려 때는 강토를 멀리 개척하였다. 그 북부는 실위(室韋)[지금의 만주로 또한 북부에 들어있다]에 접했고,  그 남부는 개모(蓋牟)[지금의 산해관(山海關) 이동이 모두 그 땅이다]에 이르렀다.

고려 이래로부터 북부남부는 모두 거란이 차지하였고, 금, 원 이후 다시는 우리 것으로 되찾지 못하였고 압록강 일대가 천연의 경계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 세종, 세조 때에 이르러 마천(摩天) 이북으로 천리의 땅을 개척하고 육진을 바둑돌처럼 설치하였으며, 밖으로는 창해에 닿았다. 그러나 요동은 끝내 되찾지 못하였다. (다른 여러) 논자는 그것을 유감으로 여긴다.

신(臣)은 요동을 되찾지 못한 것이 국가에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동은, 화이(華夷)가 왕래하는 요충지이다. 여진은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중국에 도달할 수 없고, 선비, 거란은 요동을 얻지 않으면 그 적을 제어할 수 없으며, 몽고는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여진과 통할 수 없다. 진실로 삼가고 온순하여 무(武)가 없는 국가가 요동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화친하면 사신을 맞아들이는 큰 비용과 병정을 징발하는 부역에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화친을 잃으면 사면이 적이니 병화가 없는 때가 없을 것이므로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이조(二祖 : 태조와 태종?) 때는 대명이 북경에 도읍을 정하여 요동과 심양의 사람들이 기내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를 엿보아도 차지할 수 없었다. 설령 요동과 심양이 오히려 여러 오랑캐에 속했다 해도 이조(二祖)께서 이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니 어째서인가? 척박한 황무지로 이득이 없는 땅을 얻고 천하에 적을 늘리는 행동은 영명한 군주라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당 때에도 오히려 주, 진 때의 옛 일을 살펴 도읍을 관중에 정한 후에 위세를 얻어 천하를 제어하였다. 고로 중국의 지략가들이 논한 바는 오로지 동서 이경(낙양과 장안)의 우열뿐이었다.

대명의 성조 문황제는 세상을 뒤덮을 뛰어난 지략이 있었으나 강성한 몽고와 여진을 멀리서 제어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마침내 대명[부](大名[府] : 北京)에 귀속시켰다. 이후 중국의 주인은 이를 바꾸지 않았고 대명[부]는 중국의 도읍이 되었다. 이러한즉, 요동에 대해 다시 말할 수 있었겠는가?

또 우리나라의 지세는 북으로 두 강[두만과 압록이다]을 경계로 삼고,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강역의 형태가 혼연히 천혜의 요새이니 요동을 얻는 것은 반대로 군더더기를 붙이는 것이다. 어찌 유감으로 여기겠는가?

그렇지만 진실로 나라가 부강하고 병사가 강성하여 하루아침에 천하를 다툴 뜻이 있고 한걸음이라도 중원을 엿보려 할 경우에는, 먼저 요동을 얻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어쨌든 서로 요동을 얻고 동으로 여진을 평정하고 북으로 경계를 넓혀 흑룡강의 근원까지 올라가고 우측으로 몽고와 버틴다면 충분히 큰 나라가 될 수 있으니 이 또한 하나의 통쾌한 일이다.

高句麗之時。疆土遠拓。其北部接于室韋。[今滿州。亦入北部。]其南部至于蓋牟。[今山海關以東皆其地。]自高麗以來。北部南部。悉爲契丹所據。金元以降。不復爲我有。而鴨綠一帶。遂成天限。至我世宗世祖之時。摩天以北。拓地千里。六鎭棋置。外薄滄海。而遼東終不能復。論者恨之。臣謂遼東之不復。國之幸也。遼東者。華夷往來之衝也。女眞不踰遼東。不達中國。鮮卑契丹不得遼東。不能控制其敵。蒙古不過遼東。不通女眞。苟以愿順不武之邦。而擁有遼東。其害可勝言哉。和附則使价供億之費。兵丁調助之役。竭一國之力而不能支也。失和則四面受敵而兵革無已時。竭一國之力而不能支也。二祖之時。大明已都北京。遼瀋人爲畿甸。闚之固不可得。設令遼瀋尙屬諸胡。二祖不取矣何者。得荒鹵無益之地。而增敵於天下者。英主不爲也。漢唐之世。尙按周秦之故都於關中而後。方得以威制天下。故中國智謀之士所論。唯東西二京之優劣而已。大明成祖文皇帝英略蓋世。知蒙古女眞之強。不可以遙制也。遂以大名爲歸。而後之主中國者。莫得以易之也。大名爲中國之都。則遼東豈可復言哉。且我邦地勢。北以二河爲界。[豆滿及鴨綠。]三面環以海水。疆場之制。渾然天成。得遼東反爲贅也。何爲恨之哉。雖然苟使國富而兵強。一朝有抗衡天下之志。而欲窺中原一步者。非先得遼東。不可爲也。不然西得遼東。東平女眞。北拓境上。窮黑龍之源。而右與蒙古抗。斯足爲大國。亦一快也。

- 與猶堂全書 第一集詩文集第十二卷 遙東論
          
촐라롱콘 17-10-29 14:50
   
바로 위에서 감방친구님이 인용한 글 내용 가운데....

또 우리나라의 지세는 북으로 두 강[두만과 압록이다]을 경계로 삼고,
[且我邦地勢。北以二河爲界。[豆滿及鴨綠。]
.
.
게시글 주제인 요동정벌과는 별 관련 없지만...

며칠 전쯤 감방친구님과 제가 몇 차례 댓글 주고받았던 간도문제와 관련한
동북쪽 국경의 경계가 토문강이냐 두만강이냐 논란과 관련지어서는

백두산정계비에 의해서 이미 조청간에 국경이 정해진 숙종시기보다
훨씬 이후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정약용 또한 우리나라 동북방경계를
두만강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네요~~~

추가로 덧붙이자면 조선후기~말기로 넘어가는 19세기 중후반에 완성된
당시 울 나라 지도의 끝판왕 대동여지도에서도 압록강~두만강이 북방경계임을
확실히 잘 보여주고 있지요~~~
               
감방친구 17-10-29 14:59
   
그런데 그것을 19 세기 고종 때 다시 조사하면서
그간의 영토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행정편입하는 것이지요

이거 긁어다 붙일 때 댁이 한 마디 하실 거란 거 예상했음죠~~~ㅋㅋㅋ

게다가 대한의 땅이 남북 4,000리라는 문구도 지도에 있습죠~~~
     
감방친구 17-10-29 14:41
   
일부만 긁어다가 저렇게 사진으로 만들어서 퍼트리는데 저희 같은 무지랭이들이 그 깊은 뜻을 어찌 헤아리겠는지요?
도배시러 17-10-29 15:45
   
정약용의 예맥족
貊은 種族名이고 濊는 地名 또는 水名이라고 보아, 濊貊은 九貊 중의 一種을 지칭한 것이라고 하였다.
(『疆域考』「濊貊考」)
뭐꼬이떡밥 17-10-29 18:26
   
요동을 차지하면 그로 인하며 많은 물류가 흘러 부유하게 될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

아 저분은 선비...

상업과공업을 금하는 주의니 ....
     
셀틱 17-10-30 15:10
   
다산이 그냥 선비라니...
6시내고환 17-10-29 22:54
   
하...거길 먹고있었다면 중국에 의존도 안했겠지요...만주족이 발흥 하는 일은 더 더욱 없었을것이고
인류제국 17-10-29 23:04
   
정약용을 포함한 조선시대 실학자들을 비난해야할건 비난하고 칭찬해야하는건 칭찬해야지요

기자숭배 사상 때문에 기자가 진짜 한반도로 오셔서 나라를 건국했다고 믿어서

평안남도 평양시 기림리에 기자묘까지 만들어서 제사까지 지냈다는 기록도 있더군요

그래서 한사군 한반도설을 강력히 주장했을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자는 한반도에 온적이 없었죠 기자가 이 사실을 안다면 참 황당해 하실겁니다

그리고 그 조선실학을 이용하여 일제 식만사학자들이 한사군 한반도설을 정설로 만들어 버렸죠
호갱 17-10-30 13:00
   
맞는말이고만
저시절에 요동이 뭔 가치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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