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방친구님. 평소 님의 주장에 동의여부를 떠나 늘 많은 것을 배우기에 반박이 좀 조심스럽다는 점을 미리 밝히고 또 양해를 구합니다. // 전부터 친구님께서 '고구려 시기까지 압수는 요하'라고 주장하시는 것을 보았는데요. 솔직히 동의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 만주원류고 15권에서 밝혔듯.. 압수의 압은 오리를 의미하고 이는 강 특성이 '오리머리'를 닮았기에 부쳐진 이름이다.라고 분명히 정의되어 있습니다. (髙麗圖經 鴨緑之水 源出靺鞨 其色如鴨頭 故以名之 『고려도경』 압록수는 말갈에서 발원하는데 그 빛깔이 오리머리와 같다고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 요하가 압수라면 요하의 상-중-하류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이 강은 빛깔이 오리머리..' 운운하는 기록이 있어야 할 터인데... 전 이러한 기록이 없다는데 100원 겁니다. ^^ - 요하의 요는 '멀다'를 의미합니다. 즉 '강폭이 크다 '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도배시러님의 이 발제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요하는 큰 강입니다. 압수에 비해서도 말이죠. // 결론은 '압수는 변함없이 압수요 요하는 요하 그대로'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단 제가 압록수/압록강을 지금의 압록강이 아니었다가 지금의 압록강이 되었다고 보게 된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입니다
1. 지금의 평양이 고구려 시대의 그 평양이 아니었고, 동경요양부는 고구려의 옛 평양이었으며 또한 위만조선의 왕검성이었다 하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ㅡ 하여 고려의 서경도 지금의 평양이 아닐수 있다는 심증을 가지게 됐고
ㅡ 제가 알고 있던 기자묘니 하는 게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을 알게 되면서 의혹이 더 강해진 것이죠
ㅡ 지금 평양은 고려시대 서경도 고구려시대 평양도 위만조선의 왕검성도 아니라면 그러면 압록강은 무엇이냐 히는 것이죠
2. 복기대와 이덕일 박사, 그리고 그 관련 학자들의 주장들을 수 년 간 읽고 또 강연영상으로 수회 씩 보면서 그들의 주장에 경도된 게 큽니다
ㅡ 물론 이는 중심을 잡지 못한 것이므로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ㅡ 특히 인하대 고조선 연구팀의 두 개의 압록강 주장이 아주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ㅡ 하여 제가 직접 사료를 면밀히 보면서 검증해 보자 하면서 철령위부터 해서 강동 6주까지 오게 된 것이죠
3. 지금의 압록강이 그 압록강이 아니라는 것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비롯됩니다 90년대에 고전읽기 열풍이 불었는데 그 때 박지원, 정약용 등이 각광을 받습니다
ㅡ 일단 박지원은 서북한 한사군설에 회의를 품는 사람이었고 특히 압록강에 대해서 그가 인용한 글이 주목을 받습니다
《황여고(皇輿考)
천하에는 세 개의 대수(大水)가 있으니, 황하(黃河), 장강(長江), 압록강(鴨綠江)이 그것인데, 압록강은 또한 외이(外夷) 지역에 있다.
또 다른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부》
압록강은 바로 화이(華夷)의 경계가 된다.
《향조필기(香祖筆記)》
남쪽의 장강과 북쪽의 황하 두 물줄기 외에 북쪽으로 고려에 있는 것을 혼동강(混同江)이라 하고 압록강이라 하는데, 이들은 모두 먼 변방 바깥에 있어서 우(禹) 임금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다.
《장거유서(莊渠遺書)》
대지(大地)의 산맥(山脈)은 모두 곤륜산(崑崙山)을 조산(祖山)으로 삼는데, 남쪽의 산맥과 북쪽의 산맥이 가장 크다. 북쪽의 산맥은 유연(幽燕) 지방에서 끝나는데, 대하(大河)가 이곳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 압록강과 만난다. 동쪽에는 하사(下沙)가 있는데, 이곳은 산과 물이 한 번 크게 모여 만나는 곳이다.
이러한 기록은 지금의 압록강이라 볼 수 없게 합니다.
4. 또한 요라는 말이 북쪽, 동북쪽 끝을 이르는 말인데 중원세계의 요동은 계속해여 그 세계가 커가면서 외부로 이동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ㅡ 하여 요수의 위치
ㅡ 하여 요동의 위치
를 시대별로 고증하는 게 뜨거운 쟁점입니다
ㅡ 하여 지금의 요하 역시 시대변천에 따라 붙여진 것이고 본래 이름은 다른 것이었으라 하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죠
5. 저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어원에 관심이 많습니다
ㅡ 십대부터 엄리대수와 압록강과 아무르가 어쩐지 비슷하다 느껴졌습니다
ㅡ 성인이 되어 보니 학자들도 그리 여기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ㅡ 즉 패수가 다양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살수의 어원이 오리무중인 것처럼
ㅡ 압록이라는 강이름도 고대에는 한 개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ㅡ 압록, 한강의 옛 이름 아리수, 엄호수, 엄체수, 엄리대수, 엄수, 송화강 지류의 아리수, 아무르, 엄지손가락의 엄 등이 모두 ㅇㆍㅁ /ㅇㆍㄹ/ㅇㆍ라는 어근을 가지고 있고 이는 어라하, 으리으리하다, 우람하다, 우렁차다, 아름하다 등의 어근과 동원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ㅡ 하여 음차하여 한자로 적은 것이 많았던 시대를 염두할 때에 충분히 여러개의 압록을 상정할 수 있다고 저는 판단하는 것이죠
6. 물론 지금의 압록강을 묘사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기록이 아주 많습니다
ㅡ 신당서
ㅡ 통전
ㅡ 송사
ㅡ 대명일통지
ㅡ 명사
ㅡ 성경통지
등등
허나 이렇다 하더라도
앞의 다른 기록이 존재하고
요사와 고려사에 미심쩍은 정황이 존재한다면
따져봐서 엄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하의 그 요는
ㅡ 강폭이 크다는 의미에서 온 게 아닙니다
ㅡ 요동과 관계가 있습니다
ㅡ 요하는 본래 요수라 불리웠고 요수의 시대별 위치에 대해서 이견이 쟁쟁하니 확인해 보세요
압록의 압을 오리머리의 푸른빛으로 풀이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중국에 살던 사가들의 풀이입니다
ㅡ 압록이라는 말은 제가 위에 풀이했듯이 고대 당시에 중국 입장에서 동북방의 사람들이 붙인 강이름을 한자로 음차하면서 와전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며 실제 압록계열의 강이름이 많다는 것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바로 그 '요동'이 '요하의 동쪽'이라는 의미이고, 그 요하의 요가 바로 그 동만주 일대에서 큰강을 의미하는 '크다, 널다'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 요수의 명칭 이나 별칭은 당연히 시대나 그 지역을 지배한 민족에 따라 많을 것이고 이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 그럼에도 저는 요수가 가진 그 근본적인 속성, 즉 그 일대 (동 만주)의 가장 큰 강이라는 것은 시대 불변이라 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러한 의미에서도 만주에서 그 규모에서 2등도
아닌 (아무르만 해도 뭐..) 압수 정도가 감히 결코 요수를 대신 할 만한 강이나 명칭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 친구님께서 너무 무리한다고 보여집니다.
감방친구님. 이 새벽에 저의 졸필에 너무 과분한 답글을 달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100원 겁니다. ^^"는 표현에 언잖으시도록 한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도 함께 전합니다. // 사실 그 표현을 쓰고 난 후 친구님이 언짢아 하시지 않을까? 사실 순간적이나마 걱정하였으나..네티즌 사이에서 설전이나 논쟁이 있을 시, '나도 가볍게 공격하는 것이니 지나치게 무겁게는 받아들이지 말아줘' 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지라.. 저도 그런 의미로 사용했음을 밝혀드리며 친구님을 조롱하거나 가볍게 대할 의도는 없었음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고대의 압록강은 지금의 요하거나 요하의 지류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해왔지 꼭 지금의 요하다 하는 견해를 펴지는 않았음을 확인드립니다
또한
다음의, 압록강을 묘사한 비교적 초기 기록을 보십시오
《한서》
현도군(玄菟郡)의 서개마현(西蓋馬縣)에는 마자수(馬訾水)가 있다. 마자수는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鹽難水) -삼가 살펴보건대, 지금의 파저강(婆豬江)이다.- 로 들어가고,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지나는 고을이 둘이고, 1200리를 흘러간다.
《신당서》
마자수가 있는데, 그 근원은 말갈(靺鞨)의 백산(白山)에서 나온다. 물의 빛깔이 마치 오리 머리와 같이 푸르므로 압록(鴨綠)이라고 부른다. 강물은 국내성(國內城)의 서쪽을 지나서 염난수와 합류한 다음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안시(安市) 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그리고 평양은 압록강의 동남쪽에 있는데, 큰 배를 타고 건너야 하므로 이를 의지하여 참호로 삼는다.
《통전(通典)》
마자수는 일명 압록강이라고도 하는데, 그 근원은 말갈의 백산에서 나온다. 물의 빛깔이 마치 오리 머리와 같이 푸르므로 압록이라고 한 것이다. 요동에서의 거리가 500리이다. 국내성의 남쪽을 지나서 다시 서쪽으로 흐르다가 한 물과 합류하는데, 바로 염난수이다. 두 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의 물 가운데에서 이 물이 가장 커서 푸르고 맑은 물결이 일렁이며, 지나가는 나루에는 모두 대선(大船)을 놓아둔다. 그 나라에서는 이 강을 의지하여 천참(天塹)으로 삼는다. 물의 너비는 300보이다. 평양에서 서북쪽으로 450리 되는 곳에 있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쪽으로 480리 되는 곳에 있다
ㅡ 현재 통설은 마자수는 압록강의 옛이름, 고대의 압록강은 지금의 압록강, 염난수는 지금의 동가강이라는 것입니다
ㅡ 이는 송ㆍ명 시대를 통해 거의 고정이 되는데
위에 보이 듯이 그 전 시대의 기록은 조금씩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압록강으로 보기에는 무언가 이상합니다
그런데 이 조금씩 다른 내용들이 님이 제시한 중ㆍ근세 사서 기록에 이르면 통일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음의 추정을 가능케 합니다
ㅡ 고대 중국에서 이 쪽 지역의 지리정보에 대해서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거나 부정확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ㅡ 이것이 지리정보가 현장정보로서 확대ㆍ확보되면서 정확해졌거나
ㅡ 서로 다른 것을 이르던 명칭이 우리의 강역이 축소되고 더들의 강역이 확대되면서 오늘의 압록강과 동가강에 집중되었다
또한 요하, 요하가 포괄하는 여러 물줄기 가운데 중심줄기는 만주에서 발원해 동서로 흐르다가 큰물줄기가 되면서 서남쪽으로 쭈욱 내려옵니다
그리고 요하의 지류 중 요동반도를 흐르는 강들(이를테면 혼하)은 서남으로 흐르다가 중심줄기에 합해집니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의 양상은 고대 사서가 묘사하는 마자수, 압록수와 역시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국내성이나 졸본 등은 통설로서 비정된 것이지 확고부동한 게 아닙니다
이를테면 졸본과 홀승골성으로 비정된 오녀산성의 경우 AD3세기 이전의 유물ㆍ유적이 나오지 않아서 재검토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