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음력 6월2일~6월5일
당포해전~1차 당항포 해전
음력 5월 29일 있었던 사천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조선 수군은 사량도에 정박하여
그곳에서 밤을 보낸다
이튿날, 척후선으로부터
당포에 왜선 21척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당포로 향하였다
음력 6월2일
당포에 도착한 조선 수군을 발견한 왜군이 반격을 가했으나
조선군은 귀선을 앞세워 왜군의 대장선을 집중 포격하였다
이 와중에 왜장 도쿠이 미치토시가
중위장 권준이 쏜 활 2발에 맞아 쓰러졌고,
사도첨사 김완과 군관 진무성이 대장선에 올라
적장의 수급을 베었다
그 모습을 본
왜군은 전의를 잃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주하였다
왜선은 21척이 격침되었다
조선수군은 당포에서 승전을 한 후,
그 자리에 정박하여 회의를 하고 수색활동을 계속 하였다
음력 6월4일 저녁,
당초 합류하기로 하였던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이억기의 함대 25척이 합류하여
조선의 함대는 51척이라는 큰 규모를 자랑하게 된다
이 연합함대는 음력 6월 5일 아침 안개가 걷히자
당항포로 진격하였다
왜선은 26척이 있었으며, 조선군에게 반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왜군의 육지로의 도주를 막기 위해 바다 쪽으로 적을 유인한 조선함대는
바다 한가운데서 적들을 포위해 섬멸한다
이때 대다수의 왜선이 침몰한다
이때 도주하는 왜선 한척을
방답첨사 무의공 이순신이 끝까지 추적하여
음력 6월 6일날 불사른다
이때 원균이 적선에 올라타 수급 50을 베었고,
무의공 이순신 역시 활로 적장을 쏘아 죽였다
이렇듯 조선 수군은 연승을 거두며 대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한편, 당항포 해전과 같은날인 음력 6월 5일은
그동안 망신만 당하던 조선육군이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실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