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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08 19:20
[한국사] <속한서> 지리지의 요동군 및 현도군에 관한 문제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1,633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chigan358&logNo=221026801033&parentCategoryNo=&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후한서> 지(志)의 일부분은 범엽(范曄)의 저작이 아니라, 범엽이 처형당하면서 완성하지 못하게 된 부분들을 후세 사람들이 사마표(司馬彪)의 <속한서(續漢書)>에 있는 부분들로 채워넣음으로써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후한서>의 지리지는 사실 <속한서> 지리지인 셈이다.


사마표는 3세기 후반~4세기 초엽을 살았던 인물이고, 범엽은 5세기 초에 활동했던 사람이므로, <속한서>가 나름 후한 말기와 비교적 가까운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작 그 원본이 된 <속한서>는 현재는 실전되어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범엽이 <후한서>를 저작할 때 주로 참고했던 것이 <동관한기>인 것을 봤을 때, 당대에는 그다지 완성도 높은 문헌으로 평가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마표는 서진(西晉)의 황족으로, 후한 말 군웅할거의 시대상을 정리했다고 평가되는 <구주춘추(九州春秋)>를 저술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이력을 살펴봤을 때 지리지의 기준연도는 아무래도 후한 말이 될법하나, 정작 <속한서> 지리지의 군·현 목록은 140년 무렵의 상황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리지의 내용도 이전의 <한서>에 비하면 상당히 간소하고, 연혁도 불충분하며, 오류도 간혹 발견된다.


사실 범엽이 <후한서>를 저술할 무렵에는 <수경(水經)>·<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 같은 전문적인 지리서들이 완성되어 돌아다니던 무렵이었다. 만일 범엽이 지리지까지 작성했다면 이런 문헌들을 참고하여 후한 말의 상황과 전반적인 후한대의 군·현 연혁까지 작성하지 않았을까 추정되지만, 실제 이행되지 못했고, 훗날 북위(北魏) 때는 후한 말을 기준으로하는 지리서인 <십삼주지(十三州志)>가 완성되었으나 앞서 언급한 지리서들과 함께 모두 실전되고 말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속한서> 지리지의 요동군조에는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는데, 무려현(無慮縣)은 요동속국(遼東屬國)으로, 후성현(候城縣)은 현도군(玄菟郡)으로 이관된 사실을 각각 요동속국조와 현도군조에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현을 요동군조에 중복하여 표시했다. 현 목록에 기재하지 않은 요대현(遼隊縣)은 고구려 관련 기록이나 사마의가 공손연을 토벌한 과정 중에 버젓이 등장함으로써, 당시에도 실존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들게 만들고, 마찬가지로 기재하지 않은 거취현(居就縣)은 <진서> 지리지에는 있는 것으로 등장함으로써, 후한 대에 폐지되었다고 보기엔 곤란하다. 특히, 요동군조의 현 목록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목록에서 삭제된 경우를 제외하면 그 기재된 순서가 <한서> 지리지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점은 후한 당대자료를 보고 목록을 작성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한서>를 보고 임의대로 편집한 것이란 의구심을 사게 만든다.


<한서> 지리지

<속한서> 지리지

<진서> 지리지

襄平

襄平

襄平

新昌

新昌

新昌

無慮

無慮(요동속국 이관)


望平

望平

(현도군)

(요동속국 이관)


候城

候城(현도군 이관)


遼隊



遼陽

(현도군 이관)


險瀆

(요동속국 이관)


居就


居就

高顯

(현도군 이관)

(현도군)

安市

安市

安市

武次



平郭

平郭


西安平

西安平

西安平

番汗

番汗


沓氏

沓氏




樂就

力城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일 무려현과 후성현이 중복된 오류를 수정해, 임의로 빠진 2개현을 요대현과 거취현으로 보충한다고 하더라도, 또다른 문제가 있는데, 바로 망평현(望平縣)의 위치에 대한 문제이다.


서기 106년경 현도군이 현재의 푸순(抚顺) 일대로 이전(?)하면서 요동군 북부에 위치하던 요양(遼陽)·고현(高顯)·후성현이 요동군에서 현도군으로 이속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견해의 근거는 <속한서> 지리지 현도군조 말미에 안제(安帝) 즉위년도에 3현을 내속했다는 <동관한기>의 기록을 제시하는 주석에 있다. 문제는 지리지의 내용에 따르자면, 망평현의 경우엔 계속 요동군에 남아있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는 것에 있다. 아래 지도를 한번 살펴보자.



이 지도는 전한 말엽을 기준으로 당대의 해안선과 주요 수계 및 요동·현도·낙랑군(樂浪郡)의 속현들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파란색의 경우엔 개인적으로 독자연구에 따라 비정한 위치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 지도에서 요동군 북부의 요양·고현·후성현의 위치와 망평현의 위치를 비교해보자. <한서>지리지에 망평현은 새외를 흐르던 대요수가 처음으로 경내로 들어오는 지점으로 표현되고 있는 만큼, 망평현이 요동군 가운데 최북단에 위치한 지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만일 요양·고현·후성현의 위치에 현도군을 이동시켜 놓는다면, 망평현은 요동군과의 직접적인 연결이 차단되는 월경지가 되는 형국이 되는 셈이다.


사실 <속한서>지리지의 현도군조도 앞서 요동군조에서도 나타나는 문제가 동일하게 관찰되는데, 이 시기의 현도군은 현재의 푸순으로 이동된 것이므로, 위 지도를 기준으론 후성현의 동쪽 가까이로 옮겨지게 된 셈인데, 지리지에선 여전히 현도군이 요산 근처에 위치한 것처럼 서술하고, 심지어는 전한 말기에 있던 서개마현(西蓋馬縣)과 상은태현(上殷台縣)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속한서> 지리지가 후한 이후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대체로 <속한서> 지리지의 내용을 존중해서 후한 중반무렵까지 요동군 경내로 이동해온 현도군을 따라 서개마현과 상은태현도 함께 이동해온 것으로 간주하고, 심지어는 132년에 현도에 둔전6부를 복치(復置)했다는 기사를 현도군 6현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나 <속한서> 지리지의 내용을 그대로 신뢰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망평현의 경우에는 거취현의 경우에서처럼, <진서> 지리지에는 현도군의 소속으로 기재된 바, 후한 때에 이미 현도군의 소속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제2현도군과 제3현도군은 어떠한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기록상으로 확인해 볼 수가 없다. 다만 이전 뒤에도 여전히 그 수현(首縣)의 명칭은 '고구려현'이었다는 점 정도만 확인된다.


오히려 <삼국사기>에는 기원후 14년에 유리왕이 양맥을 정복하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차지[襲取]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후한의 현도군에 관한 기록은 앞서 언급한 요동군 3현의 소속 변경과 108년에 현도군의 빈민을 구휼했다는 기사 이전의 것은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 이전까지 고구려와 선비가 번갈아가며 혹은 공동작전으로 '요동군'을 습격하는 기사들이 쭉 이어져오고 있는데, 유독 고구려와 선비 사이에 놓인 현도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 신비로운 경지이다.


만일 제3현도군이 제2현도군을 '이동'시켜온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선비의 협력관계를 약화시키고, 양측과는 다소 적대적인 부여와 안정적으로 통교할 가능성을 높이면서, 양측의 공동작전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있는 요동군 북부의 방어를 개선하고자 100년 무렵에 '복치(復置)'한 것으로 본다면 어떨까? 이 관점으로는 고구려현을 푸순에 재건하면서 이를 엄호할 목적으로 망평현이 처음부터 소속되어있다는 가정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동관한기>에서 3현이 안제 즉위년도에 이동해왔다는 기사는 새로 설치된 현도군의 역량을 좀 더 강화시키고자 취해진 조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망평현이 요동군의 목록에 잘못 기재된 것으로 보면서 발생하는 요동군에 1현이 부족해지는 부분은 <속한서> 지리지에서 사라졌다고 본 무차현이 그대로 존속해 있던 것으로 대신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후한시대의 요동군과 현도군 지도를 그리면 아래와 같다. 



이 접근의 문제점은 <속한지> 지리지에서 현도군이 '6성(城)'이라는 조건은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를 보충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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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11-08 19:59
   
후한서가 대충 넘어간 요동군이 청주에 속했다는 진서의 기록을 보면
후한대의 사실 보다는 전한의 영광을 그대로 남겼다고 볼수있음.
꼬마러브 17-11-08 20:00
   
은근슬쩍, 낙랑군 평양설 정당화하기?
밥밥c 17-11-09 03:13
   
정작 가장 큰 문제는 '후한서'나 '속한서'가 아니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옛 사서들의 기록을 평가하고, 임의대로 위치지정을 한다는 것이죠.

 본래 후한서는 기존의 기록(속한서)을 옮겨적은 것이지 , 범엽이 자기 멋대로 기록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블러그 저자는

 기존의 기록을 자기멋대로 평가하면서 다른 곳으로 마음대로 위치지정을 해 버렸죠.

위의 특징은 주류사학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옛기록은 믿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

 정작 근거하나 없이 마음대로 정해 버린다는 것이죠.
     
도배시러 17-11-09 04:21
   
대신 재야사학에서 주류를 흉내내어 마음대로 위치지정하면 맹폭을 가하죠. ㅋ

"기존의 기록을 자기멋대로 평가하면서 다른 곳으로 마음대로 위치지정을 해 버렸죠. "
밥밥c 17-11-09 03:22
   
게다가, 본문에서

사실 범엽이 <후한서>를 저술할 무렵에는 <수경(水經)>·<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 같은 전문적인 지리서들이 완성되어 돌아다니던 무렵이었다.


<수경(水經)>·<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 이런 지리지들이 한반도 인근을 설명한다고요??????

 이런 완성도 높은 전문적인 지리지는 한반도와 한반도 인근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이런 지리지 인용하면서  한반도 인근에 그림을 그리네요.

 정작 본문에는 그따위 설명도 없는데요 .

 고대사의 기록이 적고,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소설질, 망상질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도

 힘들죠.
밥밥c 17-11-09 04:05
   
더더욱 웃기는 것은 '험독'을 요동군의 서쪽에 그렸다는 것이죠.

 본래 후한서에는 '험독'에 고조선의 왕검성이 있다고 적혀 있거든요.

 그러면 최소한 저따위로 설명하려면 왕검성은 대릉하를 최소한 넘어야 정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강역도 최소한 대릉하는 넘지요.

 이 모든것은 본문 그대로 후한서의 기준입니다.

 아래에서 후한서 요동속국의 5번 험독.

⑪ 요동속국(遼東屬國)
遼東屬國, 故邯鄉, 西部都尉, 安帝時以為屬國都尉, 别領六城, 雒陽東北三千二百六十里. 昌遼, 故天遼, 屬遼西.[1] 賔徒, 故屬遼西. 徒河, 故屬遼西. 無慮, 有醫無慮山. 險瀆,[2] 房
료동속국(遼東屬國), 옛 감향(邯鄉)이며, 서부도위(西部都尉)가 (다스린다). 안제(安帝) 때에 속국(屬國)으로 도위(都尉)를 삼았으며 별도로 6개의 성을 다스린다. 락양(雒陽)에서 동북쪽으로 3260리 떨어져 있다.
1) 창료현(昌遼, 교려, 창려), 옛 천료(天遼)이며 요서(遼西)에 속했다.[1]
2) 빈도현(賔徒, 빈종), 옛 요서(遼西)에 속했다.
3) 도하현(徒河), 옛 요서에 속했다.
4) 무려현(無慮), 의무려산(醫無慮山)이 있다.
5) 험독현(險瀆),[2]
6) 방현(房)
[1] 何法盛 晉書 有青城山. 하법성(何法盛)의 진서(晉書)에 청성산(青城山)이 있다고 했다.
[2] 사기(史記)에서 말하기를 왕험(王險)인데 위만(衞滿)이 도읍한 곳이라고 했다.


https://sites.google.com/site/coreahistory/books/geography/huhanso
     
도배시러 17-11-09 04:38
   
요서군이 낙양에서 3,300리인데...
요동속국을 3,240리라고 표기하니 당황한거죠. 그래서 짐짓 서쪽으로 표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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