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음력 7월7일
웅치전투
음력 6월5일 있었던 용인전투에서 대패를 경험한 조선군은
6월 15일 전라도로 귀환하였다
사실 전라도의 조선군은 개전이래 계속해서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전쟁 발발 이전부터 전라도 순찰사 이광의 무리한 전쟁준비로 인하여
백성들의 민심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개전 직후 소수의 전라도 장수들이 병력을 이끌고 경상도의 구원에 나섰다가 실패하였으며,
음력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의 충주전투의 구원에 나섰다가
신립의 부대가 궤멸되는 바람에 그대로 후퇴하여 사기가 저하하였고,
음력 5월1일 대규모 근왕병이 다시 한번 북상하였다가 사기저하로 와해되었었다
거기다가 작정하고 반격하였던 용인전투까지 패전
전라도의 많은 지역에서 사기 저하와 가혹한 전쟁준비로 인하여
곳곳에서 조선군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와중에 전라 병사 최원이 2만 2천의 병력을 차출하여 다시 한 번
근왕을 위해 출전하였다
전라도의 전력은 부끄러울 수준이었다
한편, 전라도 공략의 임무를 갖고 있던 왜군이 바로
고바야카와 다카카케의 왜6군이었다
왜6군은 음력 5월26일 정암진 전투에서
2000의 선봉대를 잃고 전라도 공략을 보류하고 있었으나,
선조의 파천으로 전쟁이 장기화 될 조짐이 보이자 급히 다시 공략을 준비하였다
음력 6월17일 무주에 출현한 왜6군은
22일 금산에 도착하여 금산성을 공격하였다
금산 군수 권종이 최선을 다해 수비하였으나,
권종은 전사하고 부대가 전멸하며
23일 금산성이 함락된다
왜6군의 다음 목표는 전주성이었으며,
전주성으로 향하는 길목은 두개
웅치 고개와 이치 고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