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금수강산으로 표현하여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비단으로 뒤덮인 땅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비단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시와수다 38편]에서는 白衣(백의)가 흰옷만이 아닌 비단옷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후한서 동이열전 서(序) 『東夷苹皆土著 憙飮酒歌舞 或冠弁衣錦』
『동이는 거의 모두 토착민으로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하고,
변(弁)을 쓰고 금(錦)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전 『在遼東之東千里,… 地方二千里, 多大山深谷, 人隨而爲居.
少田業, 力作不足以自資, 故其俗節於飮食, 而好修宮室… 其公會衣服皆錦繡, 金銀以自飾.』
『고구려는 요동(遼東)의 동쪽 천리....그 나라의 넓이는 사방2천리인데,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으며 사람들은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산다. 농사지을 땅이 적어서 힘껏 농사를
지어도 자급(自給)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그 습속(習俗)에 음식을 아낀다.
그러나 궁실(宮室)은 잘 지어 치장한다….
공공 모임에는 모두 금수(錦繡)로 지은 옷을 입고, 금(金)과 은(銀)으로 장식한다.』
위의 문헌에서 보면 부여와 고구려인은 누에고치를 이용한 다양한 비단 종류로 옷을 해
입었습니다. 누에는 온대기후에서 자라는 뽕나무 잎을 먹으므로, 위의 기록과 같은 다양한 비단
종류를 생산하려면 필수로 넓은 뽕밭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부여와 고구려의 위치가 온대와 한대 기후대이므로, 과연 온대에서 자라는 뽕나무로
부여와 고구려인들 모두가 비단옷을 해 입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한대기후대에서 양잠이 가능한지부터 살펴보아야겠습니다.
한대기후대에서도 누에가 먹을 수 있는 잎이 있다면 온대와 한대기후대의 부여와 고구려인들의
다양한 종류의 비단생산이 현실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