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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1 08:53
[중국] 후한과 서진 유주 낙랑군의 인구지도
 글쓴이 : 도배시러
조회 : 1,917  

2CH4B.jpg


.
구글 서진의 강역에 지명을 삽입 했습니다. 노랑색 영역

서진은 인구수가 아니라 가구(戶)를 기준으로 진서지리지에 기록하여 

부득불 괄호()안에 후한의 호수를 병기 했네요.

인구가 저리도 줄어드는데... 저런 강역을 유지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발상이라 생각되네요.

대개 인구는 호수(戶) X 4~5인 



> 서한과 동한의 인구 비교는 블로그 참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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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11-11 09:18
   
> 서진-후한 비교는 맛배기구요.

> 서진-전한 비교는 동북의 인구변화가 심합니다.  괄호()은 전한의 호수 戶
진서 <> (전한)
유주
廣寗, 上谷 3,930戶(한36,008)  故屬上谷, 太康中置郡, 都尉居. 統縣三, 戶三千九百三十.
燕, 廣陽 29,000戶(한20,740)  統縣十, 戶二萬九千  薊
北平 5,000戶(한66,689)  秦置. 統縣四 戶五千.
范陽, 涿 11,000戶(한195,607) 統縣八, 戶一萬一千.
代郡 3,400戶(한56,771)  秦置統縣三 戶三千四百
遼西 2,800戶(한72,654)  秦置統縣三 戶二千八百

평주
昌黎 900戶(-)  漢屬遼東屬國都尉, 魏置郡. 統縣二, 戶九百.
遼東 5,400戶(한55,972)  秦立為郡. 漢光武以遼東等屬青州, 後還幽州. 統縣八, 戶五千四百.
樂浪 3,700戶(한62,812)  漢置. 統縣六, 戶三千七百.
玄菟 3,200戶(한45,006)  漢置. 統縣三, 戶三千二百.
帯方 4,900戶(-)  公孫度置, 統縣七, 戶四千九百.
     
도배시러 17-11-11 09:22
   
한무제의 전한과 비교하면 서진의 가구 호수가 1/10 이하로 줄었습니다.
줄어든 인구로 서진이 동북 강역을 그림처럼 유지 할수있었을까요 ?
꼬마러브 17-11-11 09:58
   
설사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가정해도

종주국인 전한이 망하고, 이후 중원에 들어선 4개 왕조가

본국과 바다 건너 떨어져있는 평양 일대를 지배했다는 게

문헌적으로나 도배시러님이 제시한 인구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가능한지 ㅋ

게다가 고구려는 이미 초기에 서쪽바다를 가지고 있었고...

그렇다면 낙랑군은 지도처럼 본국과 이어진 것도 아니고 섬처럼 떨어져 있게 되는셈인데

그게 400년 동안, 토착민족의 침입도 받지 않고 유지되었다는 게 참 ㅋ 초딩도 말이 안된다고 할

그러면 이제 주류사학계가 하는 말

" 낙랑군의 통치방식은 자유롭고 독립적이었을 것이다. "

이 놈들은 역사를 하는 건지 소설을 쓰는 건지 ...

그리고 여기에 반박하면

" 빼애액! 유사사학! 환빠! "

... 진짜 유사사학이 어딘가?
     
촐라롱콘 17-11-11 11:14
   
전한이 망하고 들어선 왕조들이 신-후한-위-진이 맞나요....??

당연히 본국이 혼란이 빠지고 본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축소된 시기에는

낙랑 또한 이를 기회로 여긴 고구려-백제를 비롯한 주변 한민족 국가들의 공세에 위축되다가

후한 광무제시기 바다를 건너 낙랑을 다시 회복했듯이, 중국본토의 지원으로 다시 지배력을

어느정도 회복하고.....

후한말기~위나라로 이어지는 혼란기 역시 요동의 공손씨를 비롯한 여러 호족-군벌들이

난립할 당시 역시 낙랑 등이 위축되었지만...(그렇지만 우리 한민족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본토로부터의 직접적인 낙랑에 대한 통제력은 약화되었지만, 공손씨가 낙랑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고 따로 대방군을 신설했기 때문에 어짜피 피장파장이기는 했지만...)

공손씨가 위나라에게 멸망하고 위나라가 낙랑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던

짧은 기간 동안 낙랑이 또다시 위축....

이후 관구검의 고구려침입과 명제시기 낙랑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게 되면서 다시 강화...

이후 한민족 국가들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더욱 강화되고... 중국이 위나라에서 진-5호16국

시대로 이어지는 혼란기에는 낙랑-대방이 지속적으로 축소됨을 거듭하여 결국

4세기 초반에는 한반도북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거의 이상할 것이 없는 시나리오입니다만.....???
          
꼬마러브 17-11-11 11:34
   
낙랑군이 중원 본토와 이어지지 않고 바다 건너 떨어져 있고, 게다가 당시는 연안항해인 점을 보았을 때,

그것이 400년 동안 촐라롱콘님이 말씀하신대로, 위축되었다 통제력을 강화했다... 반복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이야기죠.
 
애초에 본국과 왕래가 불가능합니다. 고구려가 서쪽 바다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육로는 물론이고 해로도 왕래를 못한다는 겁니다. 사신을 파견하는 것은 물론 태수를 임명하는 것도 말이지요.

만약 정말로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면, 진작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거나 주변 토착세력에게 점령당했어야죠.
               
촐라롱콘 17-11-11 11:50
   
사례를 들자면....

몽골이 러시아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 시기에도(대략 15세기 후반이지요??)

몽골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흑해연안의 크림칸국은 비록 지속적으로 축소됨은

면치못했지만 몽골로부터 단절된 이후로도 무려 300년 가까이 존속하여 18세기 후반에

가서야 완전히 소멸됩니다.

중세시기 스페인지역의 이슬람세력 또한 점차 위축됨은 면치 못했지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기 바로 전, 연도상으로는 같은 해인 1492년에

가서야 그라나다 함락으로 유럽대륙에서 소멸하게 됩니다.

본국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300~400년 간 버틴 사례는 의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게다가 낙랑은 적어도 문화적 역량, 인구상으로는 전반적으로 주변 한민족 국가들보다

우월했으니....(적어도 고구려-백제가 크게 성장하기 이전까지는) 400년을 지속했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여겨집니다만.....
                    
꼬마러브 17-11-11 11:56
   
시기가 다르잖아요. 그 때는 연안항해가 아니라 횡단항해입니다.

그리고 중원 본토와 이어지지 못한다면 촐라롱콘님이 말하는 '선진문물' 이라는 것도 주지 못합니다.

애초에 낙랑군은 중원본토와 떨어진 섬 같은 곳도 아니고요.

<삼국사기> 위(魏)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와 삭방태수 왕준과 더불어 고구려를 쳤다

문헌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낙랑군을 포함한 한사군은 동쪽의 고구려와 같은 세력들을 견제-정복하기 위한 중국의 군사기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감방친구 17-11-11 14:00
   
태강 지리지와 진서 지리지로 본 낙랑군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8695&page=2
          
감방친구 17-11-11 14:02
   
요서, 요동, 현도, 낙랑군의 서한, 동한, 진, 위 시대의 인구 변화 & 수나라 기주의 인구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8758&sca=&sfl=&stx=&spt=0&page=1
도배시러 17-11-11 18:49
   
진서지리지 평주
平州. 按, 禹貢冀州之域, 於周為幽州界, 漢屬右北平郡. 後漢末, 公孫度自號平州牧. 及其子康 康子文懿竝擅㩀遼東, 東夷九種皆服事焉. 魏置東夷校尉, 居襄平, 而分遼東 昌黎 玄莵 帯方 樂浪 五郡為平州, 後還合為幽州. 及文懿滅後, 有䕶東夷校尉, 居襄平. 咸寧二年十月, 分 昌黎 遼東 玄莵 帯方 樂浪 等郡國五置平州. 統縣二十六, 戶一萬八千一百.
평주(平州). 안(按): 우공(禹貢)에서 말하기를 기주(冀州)의 영역인데, 주(周)에서 유주(幽州)의 경계로 했으며 한(漢)에서는 우북평군(右北平郡)에 속했고 후한(後漢) 말엽에, 공손도(公孫度)가 스스로 평주목(平州牧)이라고 불렀다. 이에 그의 아들 공손강(公孫康)과 공손강의 아들 공손연(文懿)이 요동을 아우르고 그곳에 의거하니 동이 9종이 모두 복속하였다. 위(魏)에서는 동이교위(東夷校尉)를 설치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고 그리고 (이를) 나누어 요동(遼東) 창려(昌黎) 현토(玄莵) 대방(帯方) 낙랑(樂浪) 5개의 군을 평주(平州)로 하였고 후에 유주(幽州)와 합하였다. 이에 공손연(文懿)이 망한 후에 호동이교위(䕶東夷校尉)로 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다. 함녕(咸寧) 2년 10월에 나누어 창려(昌黎) 요동(遼東) 현토(玄莵) 대방(帯方) 낙랑(樂浪) 등의 군국(郡國) 5으로 평주(平州)를 설치하였다. 현은 26이고 가구수는 18,100이다.
***
한(漢)에서는 우북평군(右北平郡 북경 부근)에 속했고 ,
후한(後漢) 말엽에 공손도(公孫度)가 스스로 평주목(平州牧)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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