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고조선 시대 이후 열국의 위치와 한사군의 위치를 추정하려면 먼저 중국의 군현제에서 주(州), 군(郡)들의 크기를 고려하여야 하는데...우리 예전 교과서의 한사군(이병도 설)의 크기는 군의 크기가 아니라 거의 주의 크기로 비정하고 있지요. . 더욱이 거주자가 많지 않아 진번과 임둔은 낙랑의 동부도위 등으로 통폐합되는 것을 고려하면 이병도 설에서 주장하는 크기(한반도의 한사군 크기)는 타당할 수 없지요.
이병도는 지리적 개념이 매우 부족하고 문헌 상의 명칭을 한반도 유사지명에 억지로 갖다 붙이는 과정에서 한반도 한사군을 설정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만조선이 망하면서 한의 사군으로 편입되는데 그 그 지역은 후의 중국의 유주와 평주가 되는 지역입니다. 그렇다면 한사군의 위치는 일반적인 주(州)의 크기 정도로 고려하여야 하는데 문제는 평주가 우리 한반도까지 설정된 적이 있냐가 중요한데...그렇지 않다면 평주는 아무리 확장된다고 하더라도 요동반도 쪽까지이겠지요.
그리고...사학자들이 한사군이나 요동군을 그릴 때 일개 태수가 관리하는 군의 지리적 크기를 어떻게 자사가 관리하는 주의 크기 비슷하거나 아니면 이 보다도 더 크게 비정하여 군을 잡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책만 보다가 지리부도 한 번 제대로 안봤는지... 어쨌든 이 병도는 역사서만 알았지 지리적 개념은 빵점인 사학자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만... 이 병도나 일부 사학자들의 경우 몇 개의 현으로 구성되는 군을 엄청 크게 잡아놓는 그런 바보스러움은 공통적이지요. 그래서 문헌에만 의존하여 지리적 범위를 설정하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군이란 행정단위는 기본적으로 태수가 관리할 수 있는 지리적 범위를 넘어서 설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주와의 차이입니다. 여러 개 군으로 구성되는 주는 변경지역은 크게 됩니다. 이는 우리 나라도 여말선초 시기 함길도를 보면 다른 도보다 크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행정구역이 정비되면 그 크기는 일반적인 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한사군 내지 평주의 위치설정에 있어 낙랑군의 위치가 가장 중요한데...이는 고조선의 강역인 동시에 낙랑군이 중원의 왕조가 사라졌어도 고구려 등의 공격에 오랜 기간 살아남으면서 버틸 수 있는 위치 즉, 중국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중국과의 교통적 연계될 수 있는 지역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위치는 요동반도 끝단일 수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요동반도 끝단은 조그만 열도 내지 군도로 산동반도 북단으로 연결됩니다. 고구려는 이들 군도로 하여 중원왕조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이들 군도가 내려다 보이는 비사성을 세웠지요.
어쨌든 낙랑의 교통적 위치를 중심으로 설정할 경우 한사군은 현 요동반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요서지역을 비정하기도 하는데...특히 일부 재야사학자는 한반도설을 폐기하려 요서지역에 그려 놓으려 하는데...그렇다면 한사군이 중국의 유주지역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유주지역은 그 어떤 중원왕조(북방 유목민족이 세운 왕조 까지 포함하여...)에서도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즉, 유주 쪽에 한사군이 위치한다면 중원왕조와 별도로 오랜 기간 낙랑군이 살아남을 수 없지요.
즉, 한사군의 낙랑군을 생각할 때 중국과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하면서 해상교통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요동반도 끝단 밖에 없지요. 이 위치는 바로 다렌시와 산동반도 북단으로 연계되는 군도들을 통한 고대 해상교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중원과 한반도에서 연안항로가 아닌 해상교통은 산동반도 북단에서 요동반도 쪽으로...산동반도 동쪽에서 한반도 경기만 지역 밖에 없지요. 발해만을 타는 연안항로를 이용하여 한반도 북부와 남부로 오는 것도 가능하지만 엄청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한반도 특히 평양 쪽에 낙랑을 설정하거나 할 경우 교통적으로 중국과 연계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대방군도 마찬가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