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영토 크기와 위치를 알 수 있는 기록이 ‘관자’에 있다. 관자는 제나라 환공(서기전 685∼643년)과 관중(서기전 ?∼645)의 대화록이므로 서기전 645년 이전의 기록이다. 그 관자에 ‘팔천리지발조선(八千里之發朝鮮)’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동안 이 기록을 ‘발조선이 제나라에서 8000리 떨어진 나라’라고 해석해왔으나 사실은 ‘발조선은 8000리 영토를 가진 나라’라는 말이다.
이 관자와 ‘산해경’, ‘여씨춘추’, ‘사기’ 등에 수록된 조선 위치 관련 기록을 종합적으로 연구·분석한 결과 고조선 영역은 서쪽으로 영정하(베이징·톈진의 서부)에 이르고, 발해의 북쪽에 있던 8000리 대제국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나카 미치요와 이마니시 류는 ‘단군’은 평양지역의 박수무당, ‘왕검’은 ‘선인’으로서의 호칭이라고 하였다. 이 주장을 이은 최남선은 ‘단군은 무당의 일명인 당굴, 왕검은 대인·신성인의 뜻’을 가진 단어라고 하였고, 이병도는 ‘제정일치 시대에는 단군뿐이요, 제정이 분리된 후로는 제사단체의 장은 단군, 정치단체의 장은 왕검’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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