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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21 17:41
[한국사] 169척 vs 1000척 "칠천량 해전"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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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음력7월16일

칠천량 해전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 이후 전쟁을 점점 소강상태에 빠졌고,

1594년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만 전투를 벌이다가

결국 조명연합군과 왜군은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1596년 음력7월6일

왜란 개전 이래 최대의 반란이었던 왕족 서얼 출신의 이몽학의 난,

초기에 7백여명으로 시작했던 반란은 점점 그 수를 불려 수만명에 이르는 군세가 되었었으며,

이를 간신히 제압한 조선군이었지만 이때 많은 전쟁영웅들이 반란에 가담되었다는 의혹을 받으며

체포되었었고,

대부분은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의병장 김덕령은 고문 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는 조선의 민심이 바닥을 기고있었다는 반증이었다

게다가 이 사건으로 인해 선조는 정치에 대한 자신감을 모두 잃고 말았으며,

또한 백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은 장수가 병력을 끌어모아 자신을 죽이는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런 선조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위협할 만한 모든 전쟁영웅들에 대한 의심뿐이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1597년 정유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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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7년이 되자 왜군은 슬금슬금 병력을 전진배치하며 다시 전투의지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때 가토 기요마사와 사이가 좋지 않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신의 손을 이용하지 않고 가토를 제거하기 위해서

음력 1월 11일에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왜로 돌아갔던 가토가 바다를 건너 다시 부산으로 들어온다. 배타고 있을때 죽여버려라"

라는 첩보를 알려주었다

 

음력 1월19일에 이 첩보를 보고받은 조정은 당장에 '웬 떡이냐'를 외치며

 도원수 권율에게 이 일을 처리할 것을 지시했고,

권율은 서둘러 한산도의 삼도수군통제영을 방문하여 임무를 맡아줄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당시 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의 공무를 처리하기 위해 여수에 있었고,

갑지기 거쳐진 풍랑으로 인해 복귀가 늦어졌다

결국 이순신이 한산도로 돌아와 명령을 받았을 때는 이미

가토는 육지에 상륙한지 오래였다

거기다가 가토의 육지 상륙일은 사실 음력1월13일.

애초에 불가능한 임무였다

결국 수군의 입장에선 '가토은 이미 육지에 있는데요? '라는 보고밖에 올릴 수 없었고

조정 역시 상황을 이해하여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라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직후 조정은 가토는 놓쳤지만 부산포를 압박하면 다른 부대는 못 건너올 것이라 판단하였고,

이순신의 수군은 그 논리에 수긍하여 음력 2월9일에

충실히 부산포까지 출정하여 무력시위를 하였다

여기까지도 문제는 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음력 1월21일

원균이 올린 '저라면 할 수 있었는데, 이순신이라서 실패한겁니다' 라는 내용의 장계를 올렸고,

이몽학의 난으로 잔뜩 전쟁영웅들에 대해 의심병이 심각하게 도져있던 선조는 23일에 대뜸

'왜 하늘이 준 기회를 저버렸지, 혹시 그 자가 나를 무시하는가?' 라며 화를 내었다

결국 음력 2월4일, 선조의 눈치를 버티지 못한 사헌부가 이순신의 탄핵 절차에 들어갔고

음력 2월6일에 이순신의 파직이 최종 결정되었다

 

부산포에서 무력시위를 마치고 음력 2월26일에 한산도로 귀항한

이순신은 갑옷을 벗기도 전에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당하였다

그의 후임은 바로 원균으로 내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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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음력3월7일

거제도 기문포에 왜선3척이 정박해있다는 소식을 들은 원균은 함대를 출정시켜

그들에게 선물과 술을 주어 안심시킨 이후 기습을 가하였다

하지만 왜군의 반격에 판옥석이 강탈까지 당하였고

원균은 판옥선을 침몰시켜 왜군들을 죽였다

 

소식을 들은 조정은 원균을 칭찬하였으나

이내 왜군의 항의를 받게 되었다

 

그렇다

아직까지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는 정전기간이었다

 

이후 원균은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고,

통제영의 작전회의실에다가 기생들을 불러놓고 술판만 벌였다

이쯤되자 선조도 원균을 못마땅하게 보며 언제 출정할 것인지 계속 압박을 가하였고,

원균은 처음의 '나 혼자 다 쓸어버릴 수 있다' 라는 말에서

 '대규모 원군만 있다면 언제든지 할 것이다!' 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자 조정은 기다렸단 듯이 원균에게 육군 5천은 수군으로 전향시켜 지원해주며,

이번에 안나가면 진짜 죽일 거라는 듯이 압박을 주었다

원균은 마지못해 음력 6월18일에 출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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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로 향하던 중 안골포에서 왜수군을 만난 원균은 적선2척을 격퇴하는 등 공을 세웠으나,

이 와중에 보성군수 안흥국이 전사하여 함대를 퇴각시켰다

목표인 부산포는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장수까지 전사하자

조정은 다시 한 번 원균을 닥달하였고

음력 7월7일 169척의 함대를 이끌고 다시 한 번 출전하여 다대포에 정박하였다

 

음력 7월8일

8척의 빈 왜선을 격파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음력 7월9일

왜군의 반격에 겁을 먹고 부대를 무질서하게 후퇴시켰고

20척의 판옥선을 잃었다

 

음력 7월14일

왜 본토에서 오는 수송선단을 발견한 원균은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전 함대를 이용하여 수송선단을 추격하였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추격을 하여

12척의 판옥선이 격군들이 모두 탈진하여 해류에 휘말려 표류하고 말았다

결구 12척의 판옥선은 되찾을 수 없었다

 

결국 과거엔 생각도 못 했던 10 : 32라는 교전비를 보이며 한산도로 돌아온 원균은

화가 있는대로 난 권율에 의해 곤장을 맞았다

 

더 이상 벗어날 구석이 없던 원균은 당일 다시 함대를 꾸려 출정하였다

하지만 가덕도에 수군 400명을 식수를 구하러 상륙시켰다가 왜군이 기습하자,

곧바로 함대를 뒤로 후퇴시켰다

가덕도에 버려진 수군 400여명은 모두 포로가 되거사 전사하였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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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15일,

부산 앞바다의 기상이 악화되자 원균은 함대를 돌려

거제도 앞의 칠천도 앞바다에 정박하여 병력을 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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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조선 수군이 전투 의지가 미약하다고 판단한

왜군은 도도 다카도라와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대규모의 함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대규모의 육군병력을 칠천량으로 진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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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밤 10시

조선수군의 군량선이 왜군의 공작으로 불타 올랐다

군량선의 화재를 간신히 제압한 다음날 음력 7월16일 새벽4시

왜선 2척이 선발대로 기습을 가해왔다

 

하지만 조선 수군은 이 왜선 2척이 함대 한가운데로 침입할때까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결국 이 왜선 둘은 조선수군에 선제공격을 가하였고,

깜짝 놀란 원균은 후퇴를 명령했다

 

하지만 사도첨사 김완은 적선이 겨우 두척인데 왜 후퇴하냐고 명령을 거부하고 싸우다가

왜군 본대가 이어서 공격해오자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왜군 본대의 공격이 시작되자

결국 오랫동안 이순신을 도와왔던 전라우군 수군절도사 이억기와, 충청수군절도사 최호가 전사하였다

경상우군 수군절도사 배설은 적선 8척을 격파하였으나 전황이 불리하다 판단하여

독단으로 자신의 직속 판옥선 12척만 대동하여 전선을 이탈했다

 

한편 원균은 우왕좌왕하다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함대에게

춘원포로 향하여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갈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절반의 함대는 개별적으로 전선을 이탈하여 뿔뿔히 흩어져 도주하였지만,

나머지 절반의 함대는 충실히 명을 따라 춘원포로 집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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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모두 오합지졸의 부대라 도망간 절반처럼 전원이 제각각 흩어졌다면 피해가 덜했겠지만,

그들은 잘 훈련된 정예군이었고 결국 명령에 충실히 따라 춘원포로 집결한 절반의 함대는

왜수군과 육군에게 포위되어 전멸하였다

춘원포에서 잃은 전력만 해도 판옥선은 100여척에 육박했고, 3척의 귀선을 모두 잃었으며,

수천이 넘는 병력이 전사했다

 

이 전투로 인해 무적을 자랑하던 조선 삼도수군 연합함대는

모조리 와해되었으며,

그나마 경상우수사 배설이 비록 겁에 질려 전선에서 이탈하였지만

그 와중에도 한산도의 통제영에 들려 군영과 창고를 모두 불태워 군수품과 기밀이 적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고,

12척을 책임지고 통솔하여 전라좌수영으로 귀환하였다

당장에 싸울 수 있는 조선수군의 전력은 이 12척이 다였다

 

이때 잃어버린 전력은 전쟁이 끝날때까지도 복구되지 못하였고,

그나마 남해 각지로 숨어들어간 잔존함대가 본대로 합류하는 것도 뒷날의 얘기였다

 

이 전투로 인해 왜 수군은 개전 이래 한번도 갖지 못했던 남해상 제해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자신감을 얻은 왜군이 전쟁을 속행할 것을 결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유재란의 시작점이 된 것이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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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아몬드 17-11-21 18:39
   
한국인의 고질적인 문제점. 능력도 안되면서 영웅과 동급으로 생각하는
     
황금 17-11-21 18:50
   
그게 왜 한국인의 고질적인 문제입니까.. 몇몇 사람의 문제점이겠죠.
          
국산아몬드 17-11-21 19:09
   
그렇기도 하네요. 한국역사에서 영웅이 모함받아 불운하게 된 경우는 이순신장군이 유일하네요
숲속의소녀 17-11-21 18:41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는 이때 멸망했어야 한다고 믿는 일인입니다. - 개색희들.. 늘 천대받던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 나라를 지켰으면 감지덕지할 일이지. 왕권에 도전할까봐.. 무엇보다 이성계가 칼과 피로 세운 그 알량한 이씨
 왕조가 무너질까봐..  죽이고 견제하고... 개자식들.. // 선조와 동시대를 산 인물인 일본의 군주 토쿠카와 이에야스의 유언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읽어보면 충격 받을 것입니다. 선조 개색희 뿐아니라 역대 조선의 왕 (아.. 우리의 세종대왕님은 제외함)의 마인드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지도자의 마음이니까요..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이에야스의 유언: 내 목숨이 비록 경각에 달렸다 해도 쇼군(아들 히데타다를 가리킴)이 있기에 천하의 일에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쇼군의 정치가 도리에 어긋나 억조의 백성이 고통을 겪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누군가가 그 임무를 대신해야 한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의 천하이다. 비록 다른 사람이 천하를 다스린다 해도 세상이 편안하고 만인이 그 은혜를 입는다면 이는 내가 바라는 바로서 조금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 가문의 막부가 멸망하더라도 천하는 우리 가문의 것이 아닌 천하의 천하다! 너무 대단하지 않습니까?
숲속의소녀 17-11-21 19:10
   
참고로 이에약스의 유훈도 함께 올리오니, 죽고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해온 이에야스의 후세에 대한 마지막 충고가 무엇인지도 살펴보도록 하죠. /// 이에야스의 유훈: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말거라. 불편함은 늘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부족할 것이 없으리라. 마음에 욕심이 일거들랑 곤궁했을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바탕이다. 분노를 적으로 알아라. 이길 줄만 알고 질 줄을 모르면 해가 몸에 닥치리라. 자신을 책망할지언정 남을 책망하지 말거라. 좀 부족한 편이 넘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 이 유훈은 단지 일본인에게 한 말이 아닌 후세를 살아갈 인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용하지만 무겁게 다가오는 충고일 것입니다. (선조.. 풋.. 어디서 감히 이런 수준 높은 가르침에 빗대..)
     
구름위하늘 17-11-21 19:15
   
일본소설 대망을 2번 이상 완독했음.
이에야스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본받아야 하는 위인이나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음.
전국시대의 혹독한 시절을 참 열심히 버텨서 살아남은 승자 정도로 생각함.
인생의 상당부분을 인질이나 불리한 환경에서 끈기로 버틴 것은 맞지만,
백성을 향한 지도력(?)이란 것이 있었는지는 찾아보기 어려웠음.

대망 소설 상의 이에야스와 실제 역사적인 이에야스가 얼마나 차이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는 인상과 님이 느끼는 인상의 격차는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사람은 그가 살면서 행한 말과 행동으로 평가받는 것이지
죽으면서 남기는 유언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숲속의소녀 17-11-21 19:58
   
구름위하늘님. 어머나.. 가생이에서 때때로 하늘님 닉을 볼 때마다 '시바 료타로'의 장편소설인 '언덕 위의 구름'이 연상되어서 쉽게 각인이 되더군요. 그래서인지 "언젠가 한 번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반갑습니다, 하늘님" // 하늘님께서 하신 말씀인 '사람은 생전에 행한 말과 행동으로 평가받는 것'에 저역시 동의하고, 또한 하늘님께서 비록 '야마오카 소하치'가 본 이에야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하늘님 나름대로 느끼신 점에 저는 당연히 존중한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럼에도.. 저 같은 경우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의 경우 그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살펴보는 중대한 창문의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뭐.. 저 개인의 믿음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에야스의 드러나는 객관적인 말과 행동으로 평가하심은 좋습니다. - 허나 (가령) 어떤 다른 두 사람이 동일한 말과 행동을 했다고 치죠. 저는 두 사람을 동등하게 평가하기엔 이르다고 봅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 마인드로 그러한 말과 행위에 접근했는지의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 대망에도 나옵니다. 한 예로 이에야스가 선정을 베풀지.. 아니면 좀 군기를 잡아 다스릴 지를 고민하자. 덴카이가 말하죠 "시대의 흐름을 보라. 지금 당신이 부처가 될 시기인지.. 오니가 될 시기인지" 그 말을 듣고 이에야스는 관동과 나아가 나중에 일본에 기강부터 확 잡는 정책을 취합니다. 허나 그렇다고 이에야스가 매정할까요? 전 그리 보지 않습니다. 노부나가처럼 매정했다면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 마.. 할 말을 많지만 지면상 여기까지.. 하늘님의 수준이시라면 제 말과 하고자 하는 말을 벌써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국산아몬드 17-11-21 22:23
   
도쿠가와의 세금정책이 "백성이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세금 쥐어짠다"라고 알고 있어요

에도시대에는 귀족과 상인들의 천국이있지만 에도시대 일본인 신장이 가장 작았을
정도로 농민들에게는 가혹했습니다

오히려 조선은 대동법,균역법등 농민들을 위한 많은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정치는 조선이 일본보다 몇수 위인데
사료도 아니고 고작 소설로 미화된 도쿠가와의 유언으로 일본을 찬양하다니!

당신은 일뽕이 아니라 일본인인것 같은데!

이런 말도안되는 주장에 한국인이 넘어갈 줄 아는가?
한국인을 바보로 알고 있거나 당신이 바보이거나 둘중에 하나이네
                    
감방친구 17-11-21 22:29
   
일본인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뽕에 찌든 것은 분명하며
아주 음침하고 교활한 화법과 처세술을 구사하는 사람입니다
                    
촐라롱콘 17-11-21 22:37
   
도쿠카와 이에야스 좋아하는 것이 어떻게 일본을 찬양하는 것으로 비약되는지....???
게다가 위의 숲속의 소녀님 댓글 어디에 한국인을 바보로 묘사했던 내용이 있는지....???

더군다나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물론 자기 가문을 위해서이긴 하지만...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대척점에 서 있었던 인물이고
도요토미 사후에 그의 아들과 잔당들을 제거하고 260여년 동안이나 이어지게되는
에도막부를 안착시킨 인물인데.....

특히 조선과는 한일간의 역사에 있어 모범이 될만한 200여 년 동안이나 이어진
평화관계를 구축했던.. 딱히 우리 입장에서 보더라도 부정적인 측면은 거의 없다고
보여집니다만....???
                         
감방친구 17-11-21 22:40
   
ㅋㅋㅋㅋㅋ
                         
감방친구 17-11-21 22:40
   
님도 비약하고 있구만 뭘 그러슈
                         
감방친구 17-11-21 22:43
   
ㅋㅋㅋㅋ 현웃 터지네요
나는 지금까지 저 사람 풀네임이 뭔지도 몰랐네요
스마트폰을 쓰니까 뒤에가 안 보여서

그런데 닉네임이 숲속의 소녀? ㅋㅋㅋ 미치겠다

하긴 뭐 내 닉도 좀 그렇지만

그래도 소녀라니 ㅋㅋㅋ
                         
국산아몬드 17-11-21 23:23
   
"한국인을 바보로 묘사했던 내용이 있는지?"

제글을 글을 이해못하시는 모양인데
말도 안되는 근거로 조선을 까고 일본을 찬양하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한 말입니다
얼마나 한국인을 바보로 알기에 저런 허튼 주장을 당당하게 하는가 싶어서 말입니다

조선은 민본사상을 기본 철학으로 세워진 국가이고 역대왕들도 대체적으로 그 이념에
충실했습니다.
에도 막부가 이념으로 세워진 정부인가요?
그냥 힘으로 세워진 정부이고 지향점이 없는 정부입니다.
조선과 에도막부를 비교하는 것조차 기분이 나쁠만큼 조선은 완전 차원이 다른 국가인데
도쿠가와 막부와 비교하며 선조들을 모욕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가요?

"선조.. 풋.. 어디서 감히 이런 수준 높은 가르침에 빗대"
"선조 개색희 뿐아니라 역대 조선의 왕 (아.. 우리의 세종대왕님은 제외함)의 마인드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지도자의 마음이니까요.. "

도쿠가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숲속의 요괴"인지 뭔지가  도쿠가와를 지나치게 우상화하고 역대 선조들을 모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숲속의소녀 17-11-22 04:08
   
이 새벽에야 아몬드님의 글을 보았네요. - 이것 참.. 일단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1. 분명히 말하건데 전 한국과 한국의 역사를 얕잡아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존중하고 있습니다. 단 사안별로 잘못된 역사라고 판단되거나 못 난 조상은 가차없이 매섭게 비난할 것입니다. 조상이라할지라도 욕먹어야 할 사안을 두둔할 마음이 저는 없기 때문이죠. 제가 조상을 설사 욕을 했다하더라도 조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2. 일본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하시고 논하시기 바랍니다. 허점이 너무 많으십니다.

3. 조선의 민본사상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과연 그것이 통치 이념의 근본사상이었까요?  저는 그리 단순히 말 할 수 없다고 봅니다. 허나 여기서 논하는 것은 사양합니다. 다른 기회가 있겠지요.

4. 조선의 전분6등법/연분9등법 -> 영정법 -> 대동법으로 넘어가는 과정.. 그리고 수많은
 실패 및 모순 그리고 부패 사례 자체가 조선의 토지정책이 얼마나 농민의 복지와는 거리가 먼 것인지 증명하는 것이니 님께서는 다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5. 임란 때 일본에 끌려왔던 이들이 전쟁 포로 신분이었던 자신의 처지가 오히려 조선에서의 대접보다 낫다고 판단하여 대부분 귀국을 거부한 사례에서 보듯.. 당시부터 벌써 일반 민초를 위한 사회가 어느쪽이 더 탁월했는지 이미 정답이 나와 있다고 봅니다. 전쟁 포로들이 그러한데.. 자국민인 일본 농부의 대접은 하물며..

--> 아몬드님의 열정은 존중하나, 자국 역사에 대한 지나친 보호심리가 더 나아갈 진보를 방해한다고 보여지네요.
                         
스스슥 17-11-22 11:32
   
"분명히 말하건데 전 한국과 한국의 역사를 얕잡아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존중하고 있습니다."
 
 은연중에 1인칭이 아닌 2,3인칭의 뉘앙스를 확실하게 풍겨 주는 군요. 통상적으로 님이 말하는 한국인들은 이럴때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얕잡아 보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 하며, "굉장히 자부심을 갖는다." 라고 합니다. "존중해 준다."라는 말은 타인이나 나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제3자, 혹은 제3의 관계에게 하는 말입니다.
 
한국인인척 하고자 한다면 좀 더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눈과 머리로 분석하지 마시고 마음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마음 깊숙하게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핥다 끝내실꺼면 그냥 포기하시구요..
                         
국산아몬드 17-11-22 12:44
   
일본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하시고 논하시기 바랍니다. 허점이 너무 많으십니다.
-> 일본역사에 대해서는 몇권의 책을 읽어서 약간은 알고 있습니다.
  허점이 많다면 근거를 대야죠. 무조건 허점이 많다면 설득력이 있을까요?
  오히려 당신은 조선에 대해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조선의 민본사상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과연 그것이 통치 이념의 근본사상이었까요?  저는 그리 단순히 말 할 수 없다고 봅니다. 허나 여기서 논하는 것은 사양합니다. 다른 기회가 있겠지요. "

-> 조선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했고 유교의 핵심은 민본사상입니다.
그리고 민본이념이 사상에만 그치지 않고 많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대동법,균역법 , 동의보감 ,활인원, 혜민서, 농사직설 신문고 ,격쟁등 백성을 위한 많은 정책들은 민본이념때문에 가능했습니다(만약 당신이 이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면 일본인입니다. 교과서에 나오기 때문에 한국인 대부분은 알고 있죠)

"대동법으로 넘어가는 과정.. 그리고 수많은
 실패 및 모순 그리고 부패 사례 자체가 조선의 토지정책이 얼마나 농민의 복지와는 거리가 먼 것인지 증명하는 것이니 님께서는 다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

 -> 정책의 시행과정에 약간의부패는 있을수 있어요. 이념은 정책의 방향성과 관계있지 부패와는 무관합니다. 그리고 조선에서야 부패로 여겨지지 일본에서는 합법인것도 많아요
님이야 말로 공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오히려 조선에서의 대접보다 낫다고 판단하여 대부분 귀국을 거부한 사례에서 보듯.. "
-> 그 이유는 조선의 백성이 일본에서 우대를 받았기 때문이지 조선에서 천대를 받았다는 뜼이 아닙니다. 끌려간 조선백성들이 자기/도기 제작, 선진 농사기법등 많은 고급 기술을 가지고 있기에 우대를 받았지만 조선에서는 평범한 기술이었죠. 그러니 우대받는 일본이 좋다는 거죠. 이 사실을 가지고 조선은 헬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사실을 왜곡한 지나친 비약입니다
설마 조선이 5공5민으로 가혹한 수탈을 일삼는 일본보다 헬이겠어요?

자국 역사에 대한 지나친 보호심리가 더 나아갈 진보를 방해한다고 보여지네요. ??
난 팩트를 말하고 있는겁니다.
지나치다는 주장은 제가 과장이나 허구를 주장할때나 가능합니다. 제 주장의 어디에 허구나 과장이 있던가요?
               
올바름 17-11-21 23:30
   
저는 비록 대망을 1번 읽었지만 이에야스가 대단하단 생각은 안드네요 그냥 참을성 있고 처세에 능했던 인물정도.. 원래 일본은 겉과 속이 달라서 주군이 죽을때 가신을 떠보기위해 그리고 대를 이은 충성을 다짐받기 위해 진심이라기보다는 떠보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야스의 진심이 어떤 쪽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위인으로 느껴지진 않네요 대신 노부나가는 영웅인거 인정합니다
     
rozenia 17-11-23 03:39
   
궁극적으로 이에야스는 무력으로 지배하는 장군 즉, 스스로 무력에 의해 권력을 취한자이고 이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백성들과 주변을 다루는 나름의 노하우가 존재하겠죠.

반대로 조선의 왕들이란 피로이어진 관계. 당연히 생각의 시작자체가 민본이 되기 힘듭니다. 그건 명목상 존재하던 일왕들도 마찬가지 였어요.
무라드 17-11-21 19:54
   
이와중에 빠지지 않고 일뽕 등장 ㄷㄷ
     
숲속의소녀 17-11-21 20:00
   
ㅋㅋ 무라드님. 저를 일뽕으로 벌써 낙인찍으시다니.. 섭섭합니다. 언제 부산에 한번 내려 오시면 꼼장어라도 대접하겠습니다. ^^
     
감방친구 17-11-21 20:17
   
"본색이 고질적인 일뽕이고 한국이랑 한국역사를 은근히 돌려까는 국까이기 때문에 입이 근질근질해서 오래 못 참고 티를 낼 겁니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8198&sca=&sfl=mb_id%2C1&stx=cellmate&page=3
          
숲속의소녀 17-11-21 20:32
   
오이.. 친구. 이 양반아. 자네 입으로 "(서로의) 글에 참견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던가? 푸훗.. 임자가 내 글에 기어들어오리라 내가 짐작했다면 자네 믿겠는가? - 약속대로 나는 임자 글에 참견은 물론이요, 접근도 하지 않았네.  (아.. 자네 글인지 모르고 2번인가 들어간 적은 있네.. 허나 난 약속대로 읽어보지 않고 바로 나왔다네)  // 국까인지.. 일뽕인지.. 그런 것은 모르겠고 다만 나는 내가 느끼고 보는 역사를 말할 뿐이라네. 뭐.. 날씨 추우니 감기 조심하드라고.. (이시구로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 보고 자네도 문인이라면 느낀 것이 있을 것일세. 자네라도 노벨상 좀 받아서 한국 문학 좀 빛내 보더라고..)
               
감방친구 17-11-21 21:05
   
웃기고 자빠졌네
               
감방친구 17-11-21 21:06
   
자네? 똥물에 수제비 뜨는 소리하네
                    
숲속의소녀 17-11-21 21:23
   
마.. 마.. 됐지 않는가? - 암튼 내가 이유없이 우리 한국을 모욕하거나 또는 틀린 논리로 우리 조상을 욕인다면 임자가 와서 질책해 주시게나. 그럼 되지 않겠는가? // 자네가 상호간의 맹세를 먼저 깨뜨렸으니.. (오해는 마시게.. 난 별로 이일로 임자를 책망할 생각없으니까. 뭐랄까.. 그냥  다가올 일이 왔구나의 감흥 정도..) 그럼 이제부터 나도 임자 글에 들어가서 임자의 논리의 불투명함을 가생이 회원이 보는 앞에서 설파하겠네.  // 임자 글은 뭐랄까... 노력은 한 것 같은데.. 뭔가 확실하지 않고 구름 위에 뜬 것 같은 그런 느낌이야..
                         
감방친구 17-11-21 21:30
   
아휴 일뽕 똥내 나니까 제발 아가리 털지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예?
                         
무라드 17-11-21 21:42
   
마...이거 왜놈말인데

쪽빠리새퀸가
뭐꼬이떡밥 17-11-21 20:30
   
대망은 이에야스의 쉴드 소설입니다.

역사와 소설상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많이 납니다.

가령 이에야스와 츠끼야마 사이가 안 좋았다거나
노부나가와 노히메 와 사이가 좋았다는건

반대였다고 합니다.

이에야스는 그냥 히데요시가 죽었으니 일본은 내꺼다 였습니다
     
숲속의소녀 17-11-22 04:16
   
제가 가생이에 온 보람이 있네요. 덕밥님, 정말 멋지십니다. ^^ - 대망을 한줄기 글로 요약하면 "그냥 히데요시가 죽었으니 일본은 내꺼다" 라.. 정말 탁월한 요약입니다. 괞찮으시다면 제가 이 표현을 좀 차용해서 사용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실런지요?
          
화병의근원 17-11-22 06:41
   
토요토미히데요시가문을 제거하고 정권잡은 가문인데..승자의 역사기술...세월이 흐르면서 더해진 뻥...그 결과물이 소설이였을 겁니다...한마디로 날조로 다져진 역사를 조선역사와 비교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인간이죠...쪽국 핏줄이 아닌 이상 우리나라 사람 입으로는 나올 말이 아닌 듯...님 뎃글중 "분명히 말하건데 전 한국과 한국의 역사를 얕잡아 보지 않습니다." 이말로 보아 쪽빨이 인정 잘가 쪽빨아
가남 17-11-2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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