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군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가도 정벌전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며 상당히 치열하게 명군과 교전했습니다.
청군이 조선군을 고평가하는 첫 계기가 되기도 했죠. 가도 정벌전에서 의외로 조선군이 적극적으로 청군을 지원하며 명군을 격파한 것은 상당히 뿌리 깊은 불신과 원한과도 큰 연관이 있습니다.
가도는 17세기 초 명의 정치, 외교, 군사상의 전략기지였으며 조선에게 많은 피해를 감내하게 만들었습니다. 조선의 입어야 했던 피해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것이었고, 그 피해의 정도 또한 심각했습니다. 우선 그 규모가 매우 컸죠. 특히 경제적인 피해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이 시기 조선은 한인 수만 명이 머무르던 가도에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 었다. 모문룡이 가도의 수장으로 있던 시기인 1622년∼1629년까지 조선에서는 매해 최소 12만 석 이상이 보내지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비슷한 시기 1년 예산이 11만 석인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물량이 이들에게 들어간 셈입니다.
구체적인 기록을 더 살펴보면, 1627년에 국가 예산의 3분의 1이 가도 지 원에 사용된다는 보고서가 확인되며, 1629년의 집계에 의하면 전후로 가도에 지급된 곡식이 무려 26만여 석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모문룡이 원숭환에 의해 제거된 후에도 이러한 고통은 경감되길 커녕 유지되었고 조선은 여전히 가도에 매해 2만 6천여 석을 지원해줘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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