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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4 20:03
[기타] 탁발선비 북위(拓跋鮮卑 北魏)의 이원통치체제 유지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825  

첫 정복왕조의 출현
                                                             

홍원탁 (서울대 교수)

모용선비족 보다 더 후진적이었다는 탁발선비족

탁발선비 왕국은 처음에 대(代)라 칭했다. 341년, 대의 지배자 시이지안(r.338-76)은 모용황(r.333-49)의 누이동생인 처가 죽자 황(?)에게 또 다른 공주를 처로 삼도록 보내달라고 청했다. 모용황은 그 대가로 말 1천필을 요구했다. 그러자 시이지안은 아주 무례한 태도로 거절을 했다. 343년, 황이 태자
준(r.349-60)과 평(評)에게 군사를 주어 탁발선비족을 공격하게 하자 시이지안은 부족을 이끌고 산 속으로 달아나 숨었다. 344년, 시이지안은 모용황의 딸을 신부로 맞이 해 오도록 동생 질(秩)을 연나라에 보냈다. 몇 달 후, 모용황은 사신을 보내 자기한테도 공주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시이지안은 자신의 누이 동생을 황에게 시집 보냈다.  376년에 부견이 군대를 보내 대를 공격했을 때 시이지안은 무리를 이끌고 산속으로 달아나 숨어 있다가 죽었다.

만주의 여러 부족들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 해 가장 유목민적이었던 탁발 선비는, 전연(前燕)이 만들어낸 이원통치 체제를 답습 해, 처음으로 북중국 전체를 지배하는 이민족 왕조를 수립했다. 시이지안의 손자인
탁발규(r.386-409)는 396년에 북위(386-534) 황제라 선포하고 모용선비 병사들을 자신의 군대에 흡수했다.  모용 선비족 지배층은 탁발의 북위(386- 534) 조정 내에 지배 귀족층을 구성하는 주요 씨족의 하나로 살아남았다. 북위의 문민 관료제도는 한족들 또한 탁발 조정으로 끌어들였다.

북위는 후에 서위와 동위로 양분되고, 동위는 북제(550-77)가 된다. 북제(北齊) 기간 중에 쓰여진 안지추(顔之推)의 안씨가훈(顔氏家訓)을 보면, 북제 조정에봉직하는 한족 관리가 선비 고관들의 눈에 들어 출세길이 열리도록 자신의 아들에게 선비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나온다. 

탁발어와 선비어는 동일한 언어이었다. 탁발선비족이 북중국을 정복했을 때, 새지배자들은 그들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는데 자신들의 언어를 계속 사용했다. 하지만 후에 탁발 북위가 중국화 하자 이들 군사 명령어 중 많은 부분이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탁발 선비의 언어는 아마도 거란어의 직계 조어(祖語)이었을 것이다.

이원제도의 유지

부족 출신 군대 덕에, 보급이 잘되는 기병대를 보유했던 북위는 초원지대 깊숙이 원정군을 보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부족들은 부대 단위로 조직되어, 할당된 지역에 거주하면서, 국경수비 공동체의 구성원 역할을 하였다.  부족민과 군사에 관련된 문제는 각 부족 고유의 전통에 따라 처리되었다. 정복된 한족 거주지역은 한족 관료들에 의해 통치되었으나, 고위직은 대부분 선비 귀족들이 차지했다. 전통적으로, 한족들의 이상은 능력주의 사회인데 반해, 유목민족들은 세습적 귀족제도를 고수했다. 북중국 귀족가문들은 대부분
한족이 아닌 이민족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정복왕조 중앙정부의 고위직을 대부분 독차지하였다.

한편으로는 정복한 중국 땅을 중국식 관료제도로 다스려 다른 유목민족에 대해우위를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족중심의 유목민 전통을 바탕으로 부족의 정예들로 군대를 조직 해서, 정복한 한족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시종일관 하게 유지할 뿐 아니라,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다른 유목민족들에 대해서도 군사적인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모용선비가 시작하고, 탁발선비가 이어받은 2원적 국가조직은 요(遼), 금(金), 청(淸) 같은 정복왕조의 귀감이 되었다. 만주는 거의 모든 정복왕조를 낳고 키운 산실이며 요람이었다. Barfield(1989:105)는 “한(漢)이 멸망하고 첫 번째 만주족 정복국가(탁발북위)가 등장하기까지는 150년이 걸렸고, 당이 망하고 나서는 75년이 걸렸으나, 명(明)이 망할 때는 거의 동시에 만주족 정복왕조가 들어섰다. 한족왕조가 망하고 나서 정복왕조가 들어서기까지의 시간은 점점 단축되었지만, 그 방식은 똑같았다.”고 말한다.

한족 왕조들은 방어를 위해 장성을 쌓거나, 엄청난 선물과 교역특혜를 제공하거나, 대규모 공격을 반복하는 정책 중 하나를 택했었다. 그러나북중국을 점령한 만주족 왕조들의 전략은, 적대적인 유목민 부족장들을 혼인정책을 통해 인척관계를 맺어 자기편으로 만들거나, 적대적인 부족들이 합심하여 동맹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경쟁관계에 있는 부족장들을 지원하거나, 성장가능 부족세력을 초장에 깨 버리는 방식이었다. 만주족 지배자들과 군대는, 초원의 실상을 완전히 파악하기 때문에, 초원지대의
사촌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만주족은 단순히 초원의 적을 패배시키기보다는, 주민과 가축들을 한꺼번에 모두 빼앗아 감으로서 유목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려 했다.

439년에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 태무제(太武帝, 423-52)는, 일찍이 429년에 오르콘강 유역의 유연(柔然) 몽골을 정벌할 때, “한족들은 보병이고 우리는 기병이다. 망아지나 암소 떼들이 호랑이나 늑대 무리를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유연 몽골은 여름철에는 북쪽에서 방목을 하고, 가을에는 남쪽으로 내려오며, 겨울이 되면 우리 국경을 침범한다. 우리는 그들이 여름철에 목초지에서 방목을 하고 있을 때 공격을 하면 된다. 그때는 숫말들은 암말을 쫓아다니고, 암말은 새끼들 돌보기에 정신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말들은 모두 쓸모가 없게 된다. 그때 우리가 덮쳐서 그들을 목초지와 물가에서 쫓아내면, 며칠도 안돼서 모두 포로가 되거나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화 되고, 불교의 영향으로 무기력하게 되고

북위 조정이 마침내 중국화되고, 불교의 영향으로 무기력해지자, 국경정책도 옛 한족왕조들 모양으로 성벽을 쌓고 지키거나 유목민들에게 화평의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이 되었다.  북위의 효문제(孝文帝, 471-499)는 중국식으로 황제중심의 전제체제를 확립한다며 정부 관직을 온통 한족으로 채우기
시작했으며, 494년에는 수도를 선비족 고향에 가까운 평성(平城, 현재의 大同)에서 낙양으로 옮겼다. 그는 심지어 조정 내에서 선비 언어의 사용을 금지해버렸다. 

효문제의 아버지는 수도승이 되기 위해 왕위를 버릴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북위의 지배자들은 애당초 유교적 편견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이 없이 불교를 전폭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식 간다라 불교예술에서 영감을 얻어 그토록 신비한 모습의 거대한 (불상) 조각작품들을 만들었다. Grousset(1970: 66)은 “포악한 전사들도 일단 보살의 자비심에감화를 받게 되면, 인도주의적인 계율을 받아들여, 본래의 호전성을 잊어버릴 뿐만이 아니라, 아예 자기방어 조차도 소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유목민 정복자들이 중국화 되어, 새로 나타난 유목민족에게 망하던지, 아니면 한족에게 쫓겨나게 되는 순간이 항상 찾아온다. Twitchett(1979: 97)는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한때 북위의 국경선을 지키던 군대는, 한족들이 하던 식으로,범죄자들을 내다버리는 쓰레기장이 되었고, 관료들의 착취 대상이 되어,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한 반항집단으로 변했다. 마침내 524년에 북방의 국경지대를수비하던 선비족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선비 예술의 고유한 형태

중국대륙 북부의 탁발선비족 유적지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을 보면, 시베리아와 몽골초원 유목민들의 초기 예술적 전통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선비족들이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했던 옛 박트리아와 교류가 있었고, 로마 통치하의 중동과 교역을 했으며, 초기적 불상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와도 접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낯익은 사람들은, 섬서성에서 발굴된 (5호16국 시대) 갑옷을 입은 말 모양의 토기를 보고, 고구려 토기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특히
호흐호트(呼和浩特)에서 출토된 (맨손으로 빚어 만든) 말과 마부의 토기는 신라 토기로 오인될 정도다. 한국사람들은 이런 모양의 토기에 너무나도 친숙한 것이다.

선비족 예술의 특유한 양식은 평성(平城)시대 전반을 통해 지속되었고, 섬서와녕하성에 자리잡았던 북주시대 까지도 존속하였다.

534년에 북위는 동위와 서위로 갈라졌다. 이민족적인 요소가 훨씬 강했던 서위는 557년에 북주(北周, 557-81)가 되어, 577년에 북제를 정복하고 579년에 진(陳)의 강북 땅을 차지해,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북중국을 재통일할 수 있었다. 수(隋, 581-618) 나라는 북주의 후계자로서 천하를 통일한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 강의: 1-10 (2005. 2. 26.)
정리: 강현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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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12-04 20:13
 
동호-오환-선비의 주무대가 대 代이죠. 상곡의 서쪽 평지, 상곡의 동쪽은 산악지대
대부분의 선비족은 유목인데, 모용씨는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선비족의 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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