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팔기들은 만주족 기득권층에 붙은 한족들 그러니까
애네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부원배들이나 친일파 조선인.. 같은 부류입니다.
애네들은, 만주족들에게 충성을 보여주고 자기들의 신분과 권세를 확실히 보장받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아까 말했듯이 양주학살 같은 것도 한족팔기들이 더 날뛰었습니다. 변발령 같은것도 마찬가지구요.
팔기는 청의 지배계층으로 청 조정에서 보장받는게 많았습니다. 대신 장사나 과거시험 같은 일이 아니라
군인으로서의 직업만 인정되었기에, 청나라 안정기에 들어선 할일이 없어져 유명무실해지는데, 또 팔기의 인구는 늘어나지.. 청나라 황실에서도 이들에게 보장해야 하는 생활비나 연금이 감당이 안되어
결국, 건륭제때는 한족팔기들을 사실상 혁파하기에 이릅니다.
청후기엔, 팔기보단 이홍장이니 증국번들의 한족 신사층을 기반한 녹영군들이 활약하죠..
팔기들은, 북경을 지키는 경사팔기(수도팔기)와 각 지방의 주요도시를 지키는 주방팔기(지방팔기)로 나뉘어 지고,이들이 주둔지에는 내성에는 만주족들만,, 외성에는 한족들이 거주하게 됩니다.
만주족들은 내성, 외성을 둘다 오갈수 있었으나,
한족들은 만주족 거주지인 내성에 들어가다 잡히면
법적으로 사형이였습니다.
태평천국난때, 괜히 한족들이 들고 일어나 내성을 불지르고, 만주족들을 처죽인건 다 이유가 있는것입니다;;
또,예를 들자면,, 봉금령이라고해서,, 만주지방에 한족들 들어오면 사형이였구요.
청도 언젠가 멸망하면, 고향으로 되돌아오려고 만주 비어놓았는데,, 아시다시피 잘 안되었지요-.-;;
또, 만한통혼 금지령이라고 해서,, 만주족들은 한족과 결혼을 못하게 했습니다.
단, 이건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것이고,, 실제론 만주족 남자들은 한족첩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은 만주족 부계를 따라서 만주족으로 인정되었구요..
만주족들은 인구가 부족했기에 용인된 것이죠.
이게 큰 문제가 되는건, 반대로 만주족 여자가 한족남자랑 눈맞은 경우입니다.
그 사이에서 낳는 아이는 결국 한족핏줄이라고 해서,, 이같은 경우엔 거의 집안망신이라고
내쫒기고, 족보에서 지워버렸다고 하더군요..
만한통혼이 정식으로 허가된 것은 청나라가 망할 무렵에서야, 서태후가 허가한 것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만주족들도 자기들의 정체성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노력하였고,
표면적으론 만한일가라고 립서비스는해도 세상일이란 차별이 다 없을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