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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9 00:58
[한국사]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2) ㅡ 학야성과 내원성의 위치 고찰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275  

1. 학야성


요(거란)와 고려의 경계로서의 고려 서북계는 고려 선종 5년(1088) 9월(음)에 고려가 요나라에 보낸 표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란은 고려을 처음 침략하여 유명한 서희의 담판으로 당시 여진의 활동지였던 이른 바 강동 6주 지역을 고려에 양보하였습니다. 고려는 여진을 몰아내고 그 지역에 성을 쌓고 땅을 개척하였는데 거란은 그 강동 6주를 계속하여 탐내며 2차, 3차의 대규모 침략뿐만 아니라 여진이 금을 세우고 요동을 접수하기 전까지 근 120 여 년에 걸쳐 고려를 도발합니다. 또 고려의 땅인 보주와 정주를 빼앗아 각장(시장)을 열어 요동과 고려에서 몰려드는 물산과 재화를 소통시켜 부를 축적합니다.

고려는 이에 빼앗긴 두 주와 압류된 사신을 돌려줄 것과 강동 6주를 도발하지 말 것을 거란에게 요청하는 외교전(동시에 군사적 방어전)을 역시 마찬가지로 근 120 년에 걸쳐 진행하는데 1088 년의 표문도 이러한 노력의 한 사례입니다.

표문에서 고려의 서북계의 단서가 될 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自天皇鶴柱之城, 西收彼岸, 限日子鼈橋之水, 東割我疆.

<고려사 세가 선종 5년>

1) 이에 따라 우리의 강역은 서쪽으로는 화표주(華表柱)가 있는 요동성 건너 강안(江岸)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옛 고주몽(高朱蒙)이 건넜던 개사수(蓋斯水)로 확정되었습니다. (국역 고려사)

2) 승천황태후가 허락하신 이래로 서쪽은 화표주가 있는 고려 쪽 강안부터 동쪽은 동명성왕(일자)의 별교수(엄리대수, 개사수, 시엄수)까지 고려에게 할양되었습니다. (본인)

승천황태후는 요나라 성종(재위 982년∼1031년)의 어미되는 자로서 이 표문의 발언은 993 년 거란의 1차 침입과 서희의 담판으로 말미암은 강동 6주 할양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너희가 그 때 이 땅을 우리한테, 그것도 태후와 황제의 명으로 줘 놓고 왜 자꾸 돌려달라고 못 살게 하느냐?” 따지는 것이죠

원문에는 국역본과 달리 요동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鶴柱之城(학주지성)은 어디일까요? 학주는 화표주가 있는 학야성, 혹은 학야현을 이르는 말입니다. 학주지성이라 했으니 학야현에 있는 성, 즉 학야성을 이르는 말이겠습니다

즉 요와 고려의 경계가 화표주가 있는 학야성이라는 것인데 학야성을 찾아보겠습니다

화표주는 정영위(丁令威)라는 설화적 인물과 관계된 것입니다 화표(華表)는 궁전이나 성, 능묘 앞에 세우는 쌍기둥을 이르는 말입니다 화표주라는 것은 즉 이 화표의 기둥을 가리킵니다

정영위는 도를 닦은 도사인데 도를 닦은 지 천 년이 흐른 뒤에 그 전에 본인이 살던 요동땅에 학이 돼 돌아왔다고 합니다 화표주 설화는 이 사람과 관련된 것으로 이 정영위가 학이 돼 돌아왔다는 곳을 학야(鶴野)라 부르며, 이 학야는 요동지방의 별칭이 됩니다

이 때문에 국역 고려사에서는 학주지성을 ‘화표주가 있는 요동(의)성’이라 번역한 것입니다. 즉 특정 지역이 아니라 요동지방의 수사적 범칭이라 본 것이죠

그러나 제 견해는 다릅니다 비록 표문의 해당 발언이 수사적으로 표현돼 있다고 하나 동과 서의 방위가 나오고 이(고려)쪽 강가(彼岸)라고 국부적 표현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학주지성이 요동지방을 널리 뭉뚱그려 이르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한 것일까요? 사서에서 찾아보겠습니다

鶴野縣 本 漢 居就縣地, 渤海 為 雞山縣. 昔 丁令威 家此, 去家千年, 化鶴來歸, 集於蕐表柱, 以咮畫表云, “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來歸, 城郭雖是人民非, 何不學仙塜纍纍” 户一千二百.

<요사 지리지>

1) 학야현은 본래 한나라 거취현으로 발해 때에는 계산현이었다
2) 옛날에 정녕위라는 사람이 천년 만에 학이 돼 돌아와서 화표주 위에 앉아서 부리로 새기기를(울며 읊기를) “새야 새야 정영위야, 집 떠나 천년만에 이제 돌아오니, 성곽은 예와 같으나 사람들은 다르구나. 어찌 신선되기 배우지 않아 무덤만이 잇대어 있는고?”라고 하였다

화표주 설화는 구체적으로 요 동경요양부 속현인 학야현과 관련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속현이라 함은 요양 근처에 있다는 말이 되겠죠

한나라 거취현은 어디일까요?

居就, 室偽山, 室偽水所出, 北至襄平, 入梁也.

<한서 지리지>

1) 거취현은 요동군 속현
2) 거취현의 실위산(室偽山)은 실위수(室偽水)가 나오는 곳인데, 실위수는 북쪽으로 양평현에 이르러 량수(梁水)로 들어간다.

현의 크기가 점이 아니라 면이라는 것을 염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야현은 요양 근처이고, 학야현에서 나오는 실위수는 요양 북쪽 70리 경의 양평현에 이르러 량수로 흘러든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위치 정보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서를 더 찾아봤습니다.

鶴野城司西八十里。漢居就縣地,屬遼東郡。晉因之。後廢勃海,置雞山縣於此。遼改為鶴野,屬遼陽府。金因之。元廢入遼陽縣。

<독사방여기요 산동8>

1) 학야성은 요양 서쪽 80리에 있다
2) 한나라 요동군 거취현이다
3) 진이 그것을 이었다
4) 발해가 폐지했다가 계산현에서 다스렸다
5) 요나라가 고쳐서 요양부에 속하게 하고 학야현으로 삼았다
6) 금나라가 그것을 이었다
7) 원나라가 폐지하고 요양현에 속하게 했다

鶴柱之城(학주지성)은 요양 서쪽 80리에 있는 학야성으로 봄이 타당합니다 따라서 이 근방이 요와 고려의 경계인 것이죠

요 동경요양부 속현에 석목현과 자몽현도 있습니다

析木縣 本 漢 望平縣地, 渤海 為 花山縣, 户一千.

紫蒙縣 本 漢 鏤方縣地, 後 佛寧國 置 東平府, 領 紫蒙縣.  後徙 遼城, 并入 黄嶺縣.  渤海 復為 紫䝉縣, 户一千. 

<요사 지리지>

1) 석목현(析木縣) 본래 한나라 망평현(望平縣)

2) 자몽현은 한나라 누방현(鏤芳縣)

그런데 독사방여기요에는 보다 구체적인 기록이 있습니다

析木城衛東南四十里。漢望平縣地,屬遼東郡。後漢因之。晉改屬玄菟郡。勃海置花山縣。

紫蒙城在司東。《遼志》:漢樂浪郡鏤方縣地。後佛涅國置東平府,領蒙州紫蒙縣。尋徙遼城並入黃嶺縣,渤海復置紫蒙縣。遼因之,屬遼陽府。金廢。

<독사방여기요 산동8>

1) 석목성은 해주위(비사성) 동남쪽 40리
2) 석목성은 한나라 요동군 망평현인데 진(晉)이 고쳐서 현도군에 속하게 하였다

3) 자몽성은 요양 동쪽에 있다
4) 한나라 낙랑군 누방현 땅이다

비록 고려 서북계 고찰의 논지에서는 벗어나지만
서기 2~3 세기에 현도군이 요양 근방까지 교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고구려의 활동으로 인한 것으로 이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 교차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앞서서 고찰한 바에 따르면 후한~위~진 시기에 한나라의 요동ㆍ현도ㆍ낙랑은 모두 요하 서쪽으로 점차 교치돼 갔으며 그 속현과 호수를 잃게 되었는데 이 역시 고구려의 다물 활동의 결과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 교차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정주와 보주, 그리고 내원성


고려와 요의 경계 지대인 학야성이 요양 서쪽 80리에 있다면 요가 빼앗은 고려의 땅인 보주와 정주도 이곳과 가까워야 할 것입니다

요는 고려의 정주와 보주를 빼앗고 이곳에 각장(搉場), 즉 무역시장을 설치합니다. 요나라 말기에 요가 금에게 쫓겨가며 고려에 이를 맡기는데 고려군사가 성안에 들어가 보니 재화가 쌓여있어서 좋아하며 그것을 꺼내온 기록이 고려사에 있을 만큼 각장이 번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는 근 100 년 동안 요나라에 보주와 정주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요나라는 역으로 역시 근 100 년 동안 강동 6주를 돌려달라고 하며 계속적인 외교전과 국지적을 포함한 전투를 벌입니다

그런데 학계 통설에서는 이 보주, 정주 두 주의 위치를 평안북도, 즉 압록강 하류의 남안으로 잡고 있습니다

사서를 통해 살펴 보겠습니다

定州保寧軍 髙麗置州, 故縣 一曰 定東.  聖宗統和十三年 升軍, 遷 遼西民 實之, 隸 東京 留守司, 統縣一 定東縣, 髙麗所置. 遼 徙 遼西民 居之, 户八百.

保州 宣義軍 節度, 髙麗置州, 故縣 一曰 來逺.  聖宗 以髙麗王詢 擅立 問罪, 不服.  開泰三年取其保定二州.  統和末 髙麗降於此 置㩁場, 隸東京統軍司, 統州軍二縣一.  來逺縣 初 徙 遼西 諸縣民 實之, 又 徙 奚 漢 兵 七百防戍焉.  户一千.  宣州 定逺軍 刺史, 開泰三年 徙 漢户置, 隸保州.  懐化軍 下 刺史, 開泰三年置, 隸保州.

來逺城 本 熟女直地, 統和中 伐 髙麗 以燕軍驍猛, 置兩指揮, 建城防戍.  兵事 屬 東京統軍司.

<요사 지리지>

1) 정주(定州) 보녕군(保寧軍)은 고려가 설치한 주이다.
2) 성종 통화(統和) 13년(995)에 군으로 승격되어 요서 지역의 백성을 옮겨 채웠다. 동경유수사에 예속되었다.
3) 정동현(定東縣) 고려가 설치한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4) 요서 지역의 백성을 옮겨 거주케 하였다. 호구수는 800이다.

5) 보주(保州) 선의군(宣義軍), 고려가 설치한 주이며 옛 현은 내원(來遠) 하나이다.

6) 성종이 고려의 국왕 순(詢 ; 현종)이 멋대로 즉위한 것을 문죄하였으나 불복하였다. 개태(開泰) 3년에 보주(保州)와 정주(定州)를 취하였다. 통화 말년에 고려가 항복하였다.
7) 그곳(보주 정주)에 각장(搉場)을 두었다.
8)내원현(來遠縣)은 처음 요서 지역의 백성을 옮겨 채웠고, 다시 해(奚)와 한(漢)의 병사 700명을 옮겨 지키게 하였다. 호구수는 1,000이다.

9) 내원성(來遠城) 본래 숙여진(熟女直) 지역으로 통화 연간에 고려를 정벌할 때 연군이 용맹하다고 하여 두 지휘(指揮)를 설치하고 성을 쌓아 방어하였다.

요사 지리지의 상기할 기록이 독사방여기요에 있으나 거의 모두 산동9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산동9는 당시의 조선 땅, 즉 한반도 안에 요동ㆍ만주의 우리 역사와 관련된 모든 지리를 구겨넣고 있어서 교차 자료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산동8에서 다음의 기록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永豐堡衛西南六十里。又西有臨清、廣積、保寧、鎮海等四堡。

<독사방여기요 산동8>

1) 영풍보는 해주위(비사성이 치소, 요양 서남 120리) 서남 60리에 있다.

2) 또 (해주위) 서쪽에 임청, 광적, 보녕, 진해 등 4개의 보가 있다

保寧과 관련된 기록은 산동8에서 이것 하나입니다. 해주위 서쪽의 4개의 보 가운데 하나가 보녕인데 이 보녕은 정주 보녕군과 관계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입니다

비록 이 부분에서 견강부회로 비춰질 수 있으나 이미 앞에서 고려와 요의 경계인 학야성이 요양 서쪽 80리인 것을 고찰하였으므로

보주와 정주의 위치는 요와 고려의 경계에서 고려쪽으로 조금 들어온, 학야성과 가까운 거리여야 하고

보녕보가 요양 서남쪽 120리 해주위의 서쪽에 위치하는 보이므로 충분히 거리와 그 명칭 상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의 지명은 유래가 있어서 아무런 연고 없이 같은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주와 정주의 호구수를 요서지역의 백성을 사민하여 채운 사실이 주목됩니다 요서와 가까운 지역일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생각됩니다

보주와 정주는 거란, 여진, 고려의 상인과 물산이 모여 번성한 무역시장입니다 교통과 수운이 편리하여 각 지방에서 머여들고 또 각 지방으로 흩어지기 편리한 곳이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압록강 하구와 요하 하구 지역을 비교해 보십시오

1) 요서 지역에서 백성을 사민하여 호구수를 채웠다
2) 거란, 여진, 고려의 상인과 물산이 모여드는 무역시장이 번성했다

마지막으로 다음 기록을 보십시오

又來遠城,亦在司西南。《遼志》:本屬女真地,統和中,伐高麗,置城於此。金升為來遠軍,又升為州。元廢。

<독사방여기요 산동8>

1) 내원성은 요양 서남쪽에 있다
2) 요사 지리지에 따르면 본래 여진의 땅으로 통화 년간(983~1011)에 고려를 정벌하여 이곳에 성을 설치했다

내원성은 학야성과 마찬가지로 요양과 가까운 성입니다
학야성은 요양 서쪽 80리에 있고,
내원성은 거리는 기록돼 있지 않으나 요양 서남쪽에 있다고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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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12-19 01:10
   
이런 분량의 글을 매번 다 핸드폰으로 쓰는데 정말 눈알이 빠질 것 같다
눈 아픈 건 차치하고
무슨 영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고생을 하고 있나
     
도배시러 17-12-19 01:44
   
살살 하셔요
     
남해 17-12-19 09:00
   
그러다 눈 나빠지실 텐데.. 노트북으로라도 작성하시지;;
     
진정해진정 17-12-19 12:34
   
항상 많이 배우고 갑니다.
본래, 사람이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할터인데, 아직까지도 시대에 뒤떨어진 보상체계가 존재하니 그에따른 사회적인 손실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Attender 17-12-19 15:32
   
감방친구님 힘내세요,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감방친구님 같은 인재분들이 너무나도 많이 필요해요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구 글쓰시는것은 컴퓨터로 편히 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진정해진정 17-12-19 12:43
   
논리 전개 방식이 지적 재산권에 포함된다는 표현은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군요. 혹시, 글의 서술방식을 뜻하시는 것인가요? 흔치않은 서술방식인 것은 맞지만, 감방친구님이 역사상에 처음으로 사용하신 서술방식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또, 논리 전개 방식을 창작물로써 간주함은 위험한 생각으로 보이네요.
북극의곰 21-09-16 19:02
   
감방님의 이러한 자료를 책으로 내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학술지에 발표하시면 더 좋을 둣 하고요~~~
뒤에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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