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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5 20:45
[한국사] [도재기의 천년향기](1) 중앙박물관 수장고 가보니
 글쓴이 : 러키가이
조회 : 1,336  




ㆍ38만점 문화유산이 사는 집…여기선 숨도 마음대로 못 쉰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는 한국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38만여점의 문화유산이 보존·관리되고 있다. 한국의 ‘보물창고’답게 유물의 특성을 고려한 항온·항습 등 최적의 보존환경, 보안시스템을 자랑한다. 사진은 도자기 문화재들이 있는 ‘3수장고’ 내부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예상과 달리 완전히 딴판이다. 감성이 들어찰 빈틈 하나 없는 철저한 이성적 공간이다. 드넓은 방엔 창문도 장식물도 없다. 사각형 목제장들이 열과 오를 맞춰 각을 세웠다. 한 톨의 먼지까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하다. 철통 보안 속에 온도와 습도가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방들, 방 안의 공기마저 철저히 통제된다.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보물창고’인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다.

‘도재기의 천년 향기’는 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첫발을 내디딘다. 우리 문화유산을 이야기할 때 가장 상징적·대표적인 곳이어서다. 중앙박물관 수장고를 시작으로 유무형 문화재가 품고 있는, 그 문화재 안팎의 흥미롭고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두루 할 예정이다. 문화재에는 수백, 수천년의 시간이 응축돼 있다. 그 세월만큼의 정보와 사연이 담겨 있다. 학계의 연구 성과를 씨줄로, 필자의 오감을 날줄로 삼아 문화재 이야기를 엮으려 한다.

자, 이제 한국의 보물들이 있는 수장고로 가보자. 수장고의 첫인상은 극히 딱딱하고 묵직하고 미니멀하다. 이렇게까지 감성을 짓누르는 공간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짓눌린 오감들이 하나씩 깨어난다. 수십만년 전의 토기편을 시작으로 38만여 점의 문화재가 스멀스멀 피워내는 아우라 때문이다. 그 ‘천년의 향기’가 심장까지 쿵덕쿵덕 뛰게 한다. 문화재의 힘이다.

■ 9단계를 거치는 금단의 공간

수장고의 사전적 의미는 ‘귀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다. 박물관 수장고는 ‘문화재의 집’이다. 1월 현재, 22개의 수장고 방에 38만여 점의 유물이 나뉘어 있다. 전국에서 발굴·발견된 선사~조선시대까지의 석기와 토기, 목기, 철기, 금관, 청자와 백자, 회화, 갖가지 공예품…. 우리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고 증거하는 문화유산이다. 당대 사람들의 삶의 자취이고 여운이다. 문화재는 쉽게 훼손되면서도, 한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특성을 지녔다. 그래서 ‘무가지보’(無價之寶)다. 값을 매길 수 없기에 값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문화재의 집’을 찾아 들어가는 일은 무척 힘들고 까다롭다.

조선 후기 한국의 대표적 문인화로 국보 180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선 중앙박물관 수장고 위치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해 300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지만 대부분 잘 모른다. 수장고는 특별한 안내표지도 없다. 박물관 정면에서 볼 때 건물의 동쪽편, 즉 관람객들이 찾는 상설전시실 아래쪽 1층의 특별 공간이 바로 수장고다. 대부분 박물관 수장고는 깊숙한 지하에 있는데 지상에 있는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한강 범람까지 대비, 한강 수위보다 높여서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수장고 여정은 사무동 건물 로비에서 시작했다. 물론 ‘수장고’ 팻말은 없다. 대신 ‘보존과학팀’ 표지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문화재의 보존처리와 수리·복원으로 ‘문화재 병원’이라 불리는 보존과학실을 지나쳤다.

묵직하고 육중한 철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제 수장고 영역이다. 철문 너머가 더 궁금해진다. 사실 수장고는 외부인은 물론 박물관 직원들에게도 “금단의 공간”이다. 지문을 등록한 10여명만이 드나들 수 있다. 철문을 마주하고 서자, 담당자가 온몸을 ‘무장해제’시킨다. 가방은 물론 문화재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소지품을 모두 꺼내놓았다. 신발을 바꿔 신든지 덧신을 신어야 했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특히 출입 가능한 직원도 혼자서는 이 철문을 넘어설 수 없다. “적어도 2명 이상이어야 합니다. 도난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하는 거죠. 출입 가능한 이들도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망설입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에도 보존환경이 오염·왜곡될 수 있으니까요.” 박진우 유물관리부장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보안, 보존 환경의 유지·관리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국보 95호

마침내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철문을 여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보안시스템 해제 때문이다. 디지털·아날로그식 열쇠가 모두 동원됐다. 철문을 한 발 넘어서자 독특한 분위기의 공간이다. 기다란 복도, 길이가 140m에 이른다. 장식 없이 매끈한 벽과 바닥, 메마른 형광등 빛이 환하다. 폐쇄된 공간인 복도의 길이, 깊이 때문일까. 압도된다. 문득 한국 고건축의 걸작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정전’(국보 227호)이 떠올랐다. 목조건축물 중 가장 긴 101m에 이르는 정전에 들어서면 그 길이와 깊이감,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와 줄지어 선 기둥들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장엄하다. 수장고 복도도 위압감 뒤로 슬며시 장엄함이 다가온다. 이 복도 양쪽에 모두 19개의 수장고가 자리하고 있다.

김홍도의 <풍속도첩> 중 ‘씨름’, 보물 527호

‘3수장고’ 앞에 섰다. 또 철문이다. 철문과 다른 문 하나를 더 여니 유물이 있는 본실 앞의 전실이다. 각 수장고는 모두 전실과 본실로 구성돼 있다. 전실에는 본실 내부의 여러 상황을 미리 점검하고, 유물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전실을 네댓 발자국 가로지르자 내부가 보이는 문이 또 있다. 마지막 문. 문 너머로 유물을 보관한 나무장들이 보인다.

마지막 문을 열기 위해서는 지문 확인이 필요했다. 유물을 만나려면 외부에서는 9차례, 내부 직원도 7차례의 단계를 거쳐야 했다. “침입자가 이 공간까지 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최흥선 학예관이 말했다. 이곳까지 침입했다면 어떻게 될까. “수장고 내부 센서가 즉각 작동되고, 모든 전등이 불을 밝히면서 CCTV 녹화가 이뤄지죠. 동시에 여기서 밖으로 나가는 문이 차단돼 침입자가 외부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문도 열렸다. 갖가지 형태, 색감, 문양의 도자기들이 있는 도자기실이다. 반듯한 나무장들 속에 도자 유물이 저마다 고유 번호를 달고 ‘모셔져’ 있다. 한국 도자사와 미술사, 나아가 역사를 써온 문화재들이다. 더 깊은 연구에 따라 향후 한국사를 다시 쓰게 할 문화재다.

청동기시대 청동방울(팔주령), 국보 143호

■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맞춤형 공간

중앙박물관 수장고는 19개 수장고가 집합된 이 공간을 포함, 모두 22개다. 문화재의 특성에 따라 서화가 모인 서화실을 비롯해 피모직물, 전적, 철기, 비철금속, 목제품, 석제, 토제, 도자기 등으로 공간이 구분된다.

각 수장고 방은 소장하는 유물의 특성에 맞춰 최적의 보존환경을 유지한다. 온도와 습도, 공기 질은 물론 화재나 정전 등 유물에 해를 끼칠 수많은 요건들을 점검, 늘 자동으로 유지·관리하는 것이다.

유물을 보관하는 가구장은 모두 천연목재다. 뼈대는 미송으로 뒤틀리지 않도록 결까지도 따진다. 내부 판재나 상자는 오동나무다. 오동나무는 수분을 흡수·방출하는 특성이 있어 습도 조절이 가능한 데다 방충에도 탁월하다. 온도는 대부분 20±4도로 유지된다. 온도 변화가 심하면 문화재가 수축, 이완을 반복해 원형이 변할 수 있어서다. 공기 중의 이산화황 등 부식에 영향을 주는 공기 질도 규제된다. 조명은 자외선이 차단되며, 벽 등에는 조습패널이 사용되기도 한다.

가장 까다로운 유물은 서화나 직물, 칠기류다. 이들은 습도에 민감, 너무 건조하면 바스러지고 습하면 상한다. 따라서 메마르지도 습하지도 않은 습도 50~60%로 유지된다. 서화실은 다른 유물들과 달리 바닥, 벽, 기둥, 천장까지도 모두 조습패널이다. 또 유물들은 빛도 차단된다. 물론 온도는 20±4도다. 도자기나 토기, 석재, 유리, 옥 유물은 상대적으로 보존환경이 덜 까다롭다. 습도는 40~60%다. 도자실은 서화실과 달리 벽이나 천장이 조습패널이 아니다. 반면 철기·비철금속은 습도 50% 이하로 유지된다. 실제 각 방들에서 체감되는 공기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물론 이 수장고 영역 전체는 지진(진도 7)이나 한강 범람 같은 자연재해, 화재나 정전 같은 인재 예방이 가능토록 설계됐다. 블랙아웃(대정전)이 되더라도 1개월 정도는 항온·항습이 유지된다. 전쟁 같은 만약의 사태에도 대비한 특별 대책이 마련돼 있기도 하다.

황남대총 북분 금관(신라), 국보 191호

■ 보이지 않는 손길, 역사·문화를 쓰다

중앙박물관을 드나드는 모든 문화재는 반드시 수장고를 거친다. 전시를 위해 들어오는 해외 유명 문화재도, 소장 유물이 국내외 전시를 위해 박물관을 떠나거나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문화재는 언제 어디서나 최상의 보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한순간의 방심이 회복할 수 없는 훼손으로 이어진다. 불에 탄 숭례문(국보 1호) 2층 문루가 복원됐지만 화재 전과 같을 수는 없다. 회화 유물이 전시실에서 3개월 전시됐다면 반드시 수장고로 돌아와 9개월 정도 쉬는 것도 보존을 위해서다. 박물관에 복제품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도 문화재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약해지고 상하기 마련이다.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수장고 안팎 사람들은 기꺼이 이를 감당한다. 이 시대만이 아니라 대대로 전해져야 할 문화유산이기에 상처와 병을 치료하고, 생명까지 연장시키려 애쓴다.

우리는 전시실에서 언제라도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앙박물관 전시실에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 한 점이 전시실이라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수장고에서 평안한 시간을 보내며 컨디션을 조절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뒤편에 많은 스태프들의 땀이 있고, 밥상에 오른 한 톨의 쌀에 농부의 손길이 여든 여덟번이나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시의 뒤편, 스태프와 농부의 땀과 손길은 관람객에게 보이지 않는다. 또 드러내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전시실에서 조명을 받는 문화재만이 아니라 그 뒤편 보이지 않는 여러 수고로움들, 그 손길에도 한번쯤 경의를 표해야겠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써나가는 손길들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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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 18-01-06 09:29
   
아직 파악 조차 안되는 유물들이 수두룩하게 쌓여있다라는 소문이 생각나네요.
수장고에 있는 유물들 다 정리하고 파악 하는데만도 몇십년이 걸릴수도 있다하던데......
고종의 칼도 모르고 있다고 우연히 발견 되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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