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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7 18:16
[한국사] 여몽 전쟁에서 무신 정권이 비난받는 이유와 반론
 글쓴이 : 국산아몬드
조회 : 2,364  

나무 위키에서의 내용인데 너무 길어 정리하였습니다

https://namu.wiki/w/%EC%97%AC%EB%AA%BD%EC%A0%84%EC%9F%81

고려 무신정권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원의 수도와 가장 가까운 바로 옆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30년간의 항전으로 무조건 항복이 아니라 국가간의 조약을 맺고 국가의 정체성을 보전한 것은 무신정권의 공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져서 조약을  맺은 것이 아닙니다. 몽고는 고려를 무력으로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무신 정권이 비난받는 이유와 반론

1 '최씨 정권은 대몽항쟁에 있어서 주도적으로 몽골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운 적이 전혀 없었고 그저 강화도에 틀어박혀 항복만 대책 없이 무기한으로 연기했을 뿐'이라는 주장은 과장되었다.


물론 최씨 정권이 격구를 일삼고 향락을 누리며 백성들의 원망을 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몽골의 제2차 침입 당시, 최우는 미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버티다가 총사령관이 살해당한 몽골군이 철수하는 틈을 타 북계병마사 민희에게 가병 3천을 주어 홍복원을 토벌하고, 홍복원의 가족을 사로잡았으며 북부 여러 주현(州縣)의 대부분을 회복했다.
그리고 제3차 침입 때는 희경과 명준을 파견해 개주에서 몽골군을 격파했으며 4년간 버티다가 1238년 겨울에 강화를 제의했고 제7차 침입에선 1256년 6월 이천에게 수군 200명을 맡겨서 온수현에 상륙해 몽골군 수십명을 죽이고 주민들을 구출했고 그해 10월 애도에서 몽골군이 애도에 상륙하자 별초군이 출격해 모조리 도륙했다.
그리고 몽골군이 철수한 뒤 북부의 여러 주현 대부분을 회복하고 몽골에게 투항한 반역자들을 토벌했다. 만약 이 반역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제2의, 제3의 홍복원이 연이어 출현할 것이므로
반역자들을 토벌하고 영토를 회복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이자 공적으로 볼 수 있다.


2.  장수를 몇몇 달랑 보내서 현지에서 알아서 하라는 걸 높게 평가해서도 안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 당시 최씨 정권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당시 고려는 여몽전쟁 초반에 주력군이 야전에서 대패했기 때문에 몽골군과 제대로 된 야전을 치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뒤 주력군을 강화도에 배치시켜 몽골군의 침입을 저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좁은 수로만 믿고 병력을 내보냈다가 방어에 구멍이 생겨서 강화도에 몽골군이 상륙하면 그 뒤는 어떡할 것인가? 그리고 당시처럼 혼란스럽고 정부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경우 강화도에서 병력을 차출해 타 지역으로 보냈다가 그 병력을 손에 쥔 사령관이 마음을 달리 먹고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 가뜩이나 수도를 옮긴 뒤 본토 통제가 힘들어지는 상황인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고려는 내란에 휩쓸리고 말 것이다.


3 '애초부터 몽골이 고려를 정복할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은 몽골 측의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몽골 제국은 금나라, 호라즘 왕국, 서하, 남송, 키에프 공국. 아바스 왕조 등을 잔혹하게 짓밟았고 지배층의 씨를 말린 바 있다.



4. 몽골군이 강화도를 접수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애초부터 몽골이 고려를 정복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안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 또한 억지에 불과하다. 

당시 강화도는 지금 우리가 아는 강화도와는 지형이 판이하게 다르다. 당시엔 개간이 덜 되어 있어서 평야가 극히 적었고 육지와 가까운 곳은 대개 협곡이어서 상륙이 불가능했으며 그나마 상륙이 가능한 곳은 갯벌이어서 몽골군의 기마들이 지나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리고 강화도 앞바다의 폭이 압록강의 폭과 비슷한 정도이며 몽골군은 이보다 더한 폭의 강을 손쉽게 건넜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강'과 '바다'의 차이를 망각한 억지일 뿐이다. 당시 강화도 앞바다의 물살은 매우 거세서 배를 띄우기가 매우 힘들어서 날씨가 안 좋은 경우 보름에서 최대 한달 간 해로가 끊기기까지 할 정도였다. 게다가 고려 정부는 강화도 주변 육지에서 몽골군이 배를 제작하지 못하도록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렸고 강화도 주변의 수많은 섬들에 방어시설을 건설하고 몽골군이 근처에 상륙할 때마다 별초들을 파견해 때려잡았다.


5 고려군이 졸전만 했을 뿐이라고 단정짓지만, 당시 고려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저항했다. 최씨 정권은 강화도에서 버티면서 때때로 몽골군과 싸우면서 상황이 안좋아질때 항복 사절을 보내고 공을 세운 이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부락을 현으로 승격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했고 각지의 고려군은 자신들의 목숨과 주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으며 민중은 30년간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이런 그들의 투쟁을 단순히 '졸전'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지나친 비하이다. 몽골이 고려를 공격할 때는 5만 명을 넘긴 적도 없다지만 그 5만명이 한 두 차례도 아니고 아홉 차례나 쳐들어왔다. 고려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으로 대응했고 몽골은 그런 고려를 쉽게 이겨낼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그렇게 졸전이나 일삼았다면 고려 백성들은 어째서 30년이나 국가를 위해 싸웠는가? 물론 막바지에 몽골군에게 앞다퉈 항복하는 일이 벌어지긴 하지만 30년 동안이나 저항을 지속했다는 것은 고려 정부가 암울한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행정 체계를 놓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고려사에는 성공적으로 몽골군을 격파한 백성들에게 상을 내리고 고을을 격상시키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여몽전쟁의모든 책임을 고려에게 떠넘기는 것은 지나치다. 이런 식이면 어느 누구던지 비난을 할 수 있으며 비난받지 않을려면 완전무결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건데 이건 말도 안되는 것이다. 여몽전쟁을 야기한 세력은 어디까지나 몽골제국이며 한반도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세력 역시 몽골제국이다.
고려 정부가 잘못 한 것이 있더라도 이 일을 벌린 몽골군의 잔인무도한 만행도 잊지 말아야 하고 고려 백성과 군의 눈물겨운 투쟁의 역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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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chu 18-01-08 02:06
   
역사 공부를 좀더 하셔야할듯..
몽골이전에 거란유민들이 몽골에 밀려서 고려로 내려온적이 있었는데.. 당시 최충헌 무인정권이 했던일 알려줄까요?

1. 거란족이 내려온다라는 보고한자를 별일아닌일로 소란피운다고 귀향보냄.
2. 그러다 거란족이 쭉쭉밀고 내려오니 동원령 발동해서 토벌군대 편성할때 기존 군부대는 자신정권 호위해야해서 그대로 놔두고 새로이 백성들 징병해서 군대를 새로만들어 내보내서 개박살남.
3. 보다못해 도방의 무사들이 전투에 자진참전하겠다하면 먼섬으로 보내버리고

이유? 자신의 사병적 존재인 도방의 무사보다 더 많고 강한 군대가 생겨나는걸 최충헌은 원치않아서였고 이걸 졸라 견제했슴. 국가보다 자기안위가 먼저인꼴인데.. 뭔 반론 어쩌구 자빠진건지..

거란토벌군이끈 조충과 김취려가 해야한건 거란격퇴가 아니라.. 기본군사교육도 받지못한 농민병을 가르치면서 싸워야했었슴. 자신의 소수 정예사병들이 전투때마다 제일앞에서 나가야만했던거고 그래서 전쟁초기에 김취려 아들이 전사했던 이유임.
     
감방친구 18-01-08 02:21
   
님은 우리말 공부나 더 하시고 언어예절 배우러 초등학교 재입교 하셔야 할 듯
     
국산아몬드 18-01-08 20:09
   
맞아요.  무신정권이 못할 짓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은 지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공로는 무신정권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업적이라 할수 있을 겁니다. 30년을 독하게 버티지 않았더라면 한반도의 위치상 몽고는 어떻게 해서는 고려를 소멸시켰을 겁니다. 물론 정상적인 문민정부였다면 더 잘 싸울수 있었겠지만 그정도로도 충분히 평가할 만합니다. 국가의 정체성과 문화도 지켰고 형식상으로나마 국가간의 조약과 외교문서가 오갔으니까요. 자존을 위한 30년간의 우리 민족의 투쟁을 너무 폄하하지 맙시다.
          
빨리문좀 18-01-09 18:32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이라 무신정권이 말기에 사실상 끝났을때 일본 막부에 콜쳐가면서 자기 반란때리고 그러다 진압먹는데. 이게 정당화된다면 갑신정변때 개화파들이나 그때 친일파로 돌아선 사람들도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지켰네요. 차라리 김방경 장군이 주도한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전이 그점에서 낫겟죠. 병자호란때도 이렇게 나가고 몽골이 외조선, 내조선 되듯 나가도 몽골같은 나라처럼 살아도 지금 우리가 그걸로 만족했을까요? 그렇다면 친명반금도 정당화되고 병자호란때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 지켰고 여긴 조종짜 붙혔는데, 국가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지켰다기보단 "그때 조선왕조 망해야한다" "광해군이 나았다" 이런 소리나 하지요.

네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 지켰죠. 하지만 자신의 하찮은 열등감때문에 천출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최항이라는 망나니 덕택에 김경손 장군이 죽고, 이연년의 난처럼 전쟁중에 반란이 터지고, 이런게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인가요?  조선으로 치면 박원종, 유자광같은 인간들이 100년이나 해먹는게 그게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인가요? 애초에 고려의 주 본질은 통일인데, 전쟁중에 반란터지고 전쟁중에 잘싸우는 사람을 질투하고 시기해서 죽이는데, 통일이라는 본질과는 다르기 500년동안 사람간에 통일 나라간의 통합이 깨져서 시기, 질투가 들끓고 그로 인해서 서로가 창칼로 죽이고, 이게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인가요? 그냥 차라리 없는게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고려왕조 망했잖아요?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이라 그걸위해 잘싸우는 장군은 자신의 하찮은 열등감으로 죽이고, 그 사람들이 반란 터질까봐 무서운 나머지 여러 무장들을 숙청하고 이것이 민족의 투쟁인가요? 나당전쟁보다 더 최악이고 조청전쟁보다 최악인 여몽전쟁에서 얻은게 뭔가요?

고려가 존재하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저는 300년만에 김경손이나 김방경한테 걍 사직을 다 넘기는게 좋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국산아몬드 18-01-09 21:47
   
뭘 추장하고 싶은지 감이 안와요. 무조건 고려를 그기위해 아무거나 같다붙인 느낌
                    
빨리문좀 18-01-09 22:13
   
고려의 정체성은 통일에 있겠죠. 허나 오백년 고려를 보니 통일이란 이름이 참으로 무색했죠. 잊을만하면 터지는 생각하지도 못한 반란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면 반란이 터져도 국정이 마비될 지경이었죠. 이 와중에 또 잊을만하면 이민족들이 쳐들어왔죠. 통일이라는 근간을 고려가 오백년동안 지켰는지 보시면 답이 나오죠.
장진동 18-01-08 11:48
   
무신정권을 나쁘게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선이 고려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중 하나인거죠 ㅋㅋㅋ 특이한 인식중에 하나는 무인은  무식하다는  인식인데  이것또한 당시 귀족층에서 나온것인데 이게 조선까지 쭈욱 이어지면서 국방력 약화는 물론 국운을 꺽는 결과로 이어 집니다 ㅋㅋㅋㅂㅅ같은 조상들 ㅋㅋㅋㅋ이런 인식들이 결과적으로 한반도로 몰리는 원인중 하나 였죠 ㅠㅠㅠㅠㅠ
     
볼텍스 18-01-09 04:02
   
조선은 중기 이후까지 무인은 무식하다는 인식 한 적 없습니다.
조선에는 귀족층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구요.
더불어 고려시절 무인에 대한 천시는 고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송 역시 그랬죠.
두 나라의 공통점은 경제가 초호황이었다는 겁니다. 조상님들이 님 표현대로의 분들이어서
그랬던게 아닙니다.
          
빨리문좀 18-01-09 18:41
   
이런 식으로 치면 장보고라는 무장이 신라에서 죽었다고 욕할 것은 없죠. 심지어 궁예가 왕건을 시기해서 왕건이가 죽을뻔했다는 이야기를 하죠. 이제현 본인이 말하더군요. 고려사 이제현 논평에.

고려만의 문제가 아니죠. 네 송 역시 그러했죠. 가마쿠라 막부도 이후 전쟁한바탕 하느라 무인에 대한 천시를 했죠. 김경손 장군도 죽였죠. 하지만 고려가 그 정도가 심했죠. 일단 무과가 없고 그 무학재를 갈아치운게 고려였죠. 경제가 초호황이라 절간의 토지나 절간의 노비가 갈수록 증가하고 증가해서 우스갯소리로 국가의 재산이 절간이나 절간의 노비란 말이 있죠. 혹은 토지의 숫자라는 말이 있죠.

경제가 초호황이라 조선초기만큼 호황이었을까요? 송나라가 그렇게 해서 얻은게 있나요? 김훈 최질 사건 기억나시나요? 영업전을 강탈해서 문관들한테 뿌려서 일어난 사건

아 고려는 승려들이 무인들보다 좋았죠. 그래서 군인들이 쓰던 둔전마저도 강탈해서 절간에 팔아넘겼죠. 뭐 불교라는게 업보고 윤회고 그러니깐 살생을 금하니깐 무인들까지 핍박하는데 둔전을 절간까지 팔아넘기고 이걸 송나라가 하나요?

승려따위가 뭐시간데 무장들보다 더 대접받고 세금 안내고 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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