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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23 14:04
[한국사] 진짜 식민사관은 무엇일까? - 삼별초 문제 -
 글쓴이 : 빨리문좀
조회 : 1,280  

애초에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삼별초를 대단한 애국지사인냥 띄운 사람도 생각보다 별로 없었고
정통성없는 군사정권과 여순반란으로 정통성을 잃은 세력들과 야합으로 미화된게 삼별초죠.

일단 고려사에 나온 삼별초가 어떤 집단인지 이야기를 해주겠습니다.

"정문감은 과거에 급제해 직학(直學)에 임명되었다. 원종 11년(1270), 삼별초(三別抄)가 반란을 일으켜 제멋대로 관직을 설치하고는 정문감을 승선(承宣)으로 임명해 정무를 맡게 했다. 정문감은, “적도 편에 붙어서 부귀를 누리느니 차라리 저승으로 가 몸을 깨끗이 지니련다.” 하고는 바로 강물에 투신해 자결했다. 그의 처 변씨(邊氏)도 정문감이 자결하는 것을 보고 역시 강물에 투신했다. 변씨는 서해(西海) 안찰사(按察使) 변윤(邊胤)의 딸이다. "

고려사 정문감 충의 열전 

"진도(珍島 :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군)로 들어간 반적들이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 주·군(州郡)을 노략질하자 왕은 김방경(金方慶)을 시켜 토벌에 나서게 했다."

고려사 배중손 반역 열전.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유경은 강화경( : 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다가 가족을 데리고 옛 수도로 배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적에게 잡혀버렸다. 유경은 처자를 작은 배에 태우고 재물을 큰 배에 실어 두고는 적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가 더위를 먹은 것처럼 부러 구토를 하고는 작은 배로 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적이 허락하자 유경은 닻줄을 끊고 달아났는데 적이 뒤쫓았으나 따라 잡지 못했다."

고려사 류경 열전.

"고을 사람 조천(趙仟)이 군수(郡守)를 죽이고 진도(珍島)의 반적(叛賊) 삼별초(三別抄)와 호응하였기 때문에"

세종실록(참고로 조선왕조실록 중에 제일 믿을수 있는 실록) 

"임연의 무리인 삼별초(三別抄)가 승화후(承化侯) 를 왕으로 옹립하고 진도(珍島)를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원종(元宗)이 김방경에게 명하여 이를 토평(討平)하게 하였는데, 삼별초의 무리가 탐라(耽羅) 로 도망해 들어가니 김방경이 또 이를 토벌하여 평정하였습니다.

단종실록

우리나라 역사서 중 가장 믿을만하다는 조선왕조실록도 삼별초를 저렇게 기록하는군요.

갑신정변때 반란보다 훨씬 추접스럽고 더럽네요. 친원파도 아닌 사람들도 저러했으니. 

뭐 고려사에 내용도 내용이지만 실상 길속기 등을 통해 다시한번 만천하의 역적이라는게 드러나는게 바로 이것입니다.

"몽고가 일본을 공격하려 할것이다 군사와 식량을 보내달라" 

삼별초정권의 세력권 확보 1271년(원종12) 진도에 입거(入據)한 초기 삼별초정권은 몽골 아카이(아해, 阿海, Akai)군에 대한 군사적 제압에 고무되어 기세를 올렸다. 삼별초군은 전라·경상도 남부 연안의 섬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연해 지역에 대해서도 일정한 세력권을 확보했다. 밀성(밀양)·개경 등지에서는 진도에 호응하는 봉기가 일어나는 등 정세는 비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확보된 세력권이 주로 남부 연안의 연해와 도서지방이었기 때문에 향후 몽골군의 강력한 공세를 지속적으로 막아내는 문제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 같은 여건은 삼별초정부로 하여금 일본과의 연결을 희망하게 했다. 진도정부의 일본에의 사신 파견 진도정부가 일본에 사신을 파견해 대몽항전에 공동의 보조를 취하며 협조해줄 것을 타진하게 된 것은 1271년(원종12)의 일이다. 진도에서 보낸 서신은 진도정부가 몽골군에 의해 무너지고 한참 뒤인 9월 초에야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를 거쳐 경도(京都)의 조정에 전달되었다. 이 첩장(牒狀)을 가져간 삼별초의 사신은 대략 1개월 쯤 전인 7월 말 이전에 일본의 하카다(博多) 부근에 도착했을 것이라 추측되고 있는데, 진도에서의 출발은 진도가 공함(攻陷)되는 5월 15일 직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진도정부가 일본에 보낸 서신의 내용은 <길속기> 1271년 9월 4일조의 기록에 의하면, 진도정부는 몽골이 일본을 치게 될 것임을 먼저 경고하고 아울러 지금 몽골과 싸우고 있는 삼별초정부에게 식량과 병력으로 협조해 줄 것을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볼 때 몽골군의 대공세를 앞둔 삼별초군은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병력과 식량, 두 가지 모두 상대적인 열세를 느끼고 항전의 수행에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감이 일본과의 연대를 통한 대몽항전 전개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현재 사용 중에 있는 고교 일본사 교과서의 하나인 삼성당 <상해() 일본사()>에는 고려의 대몽항쟁 및 삼별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이 같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하여 각지에서 저항이 일어났다. 고려에서는 삼별초라 불리는 군대와 민중이 강화도와 탐라(제주도)를 근거지로 1273년까지 원에의 저항을 계속하고, 또 대월()에서도 1257년 이래 3회의 침입을 물리쳤다.”

이 책에서는 삼별초의 항전을 다음과 같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

“삼별초는 당시 고려정부의 군사조직으로 고려왕조가 원에 복속한 이후도 저항을 계속했다. 그들은 민중의 지지를 강하게 받고 고려 각지에서 민중이 이 반란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원이 일본을 정복할 수 없었던 이유로서 일본군의 분전도 있었지만, 고려 삼별초의 란에서 보아지는 것처럼 동아시아 사람들의 원에 대한 저항이 각지에서 있었던 것을 들지 않으면 안 된다.”

<상해(詳解) 일본사(日本史)>등을 비롯한 기타 논문 등등


결론적으로 일본사에서 평가하는 삼별초나 길속기나 고려사 반역 열전 고려사 김방경 열전 등등을 미루어보면 조선으로 치면 반청주의한답치고 갑신정변 꼴랑 3일 일으킨거 삼별초는 2년 6개월 즉 옛날 군대기간만큼 일으켰죠. 쉽게말해서 외환유치죄고 고려 최고의 악질 친일 매국노들이군요. 단순히 일본원정전이 태풍때문에 실패한게 아니라 삼별초가 저렇게 타이밍뺏고 창칼잘쓰는 장수나 병사들 여럿 죽이느라 일본사에서는 저리도 적을 수 밖에 없죠. 


이쯤되면 삼별초가 그냥 뭐 박영효급이군요.  

그렇다고 원나라에 빌붙은 인간들도 악명높은 세도정치를 구축했던 조선말 친청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실제로 고려사 김방경 열전에선 주화파인 김방경 장군조차도 탄압하고 죽이려들었죠.

김방경 장군도 원나라에 편든건 사실입니다. 실제로 김방경 장군은 김경손 장군이 바닷물에 빠지는 것을 모를리 없었고, 그일을 잘알았는지 원나라에 편들었죠. 이 사건 역시 별초집단들이 연루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나라 역시 김방경 장군의 편이 아니였죠.


외교도 외교 나름이지 자기들 반란때릴려고 외세에 손벌릴려고 하는 외교는 외교가 아닌 요즘말로 외환유치죄이고, 반역죄중에선 가장 질이 더럽기로 손꼽히죠. 전란중에 반역과 더불어서 가장 질나쁘기로 소문났죠. 고려말에 왜구들이 갑자기 쳐들어온 것도 웃기기 그지 없는데 결국 삼별초 문제까지가면 이상할리도 없네요.


그렇다고 원종도 잘난거 하나 없습니다. 권신들은 원나라의 입김이 오기전에 자신이 직접 척살했어야 했습니다. 고려 고종은 그래도 그를 돕던 사람들이 권신들을 자체적으로 척살했지만 원종은 이틈속에서 권신들을 키웠는데, 뒷통수맞고 결국 원나라에 콜을 치고 권신들을 척살했죠. 


뭐 원종문제는 둘째쳐도 삼별초는 그냥 고려 최고의 친일 매국노들이었군요.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서 반역자라고 했는데, 반역도 일본이란 외세에 빌붙어서라도 했던 반역이라서 반역도 보통 반역이 아니였네요(길속기 일본 교과서 등등) 결국 고려의 진정한 충신은 바닷물에 빠져죽은 김경손 장군이고, 김방경 장군이었군요.  

근데 참 웃기네요. 일본에 빌붙어서 병사들을 쳐죽이고 여러 사람 납치하고, 여러 사람 죽이려고 했고, 친원파가 친일파라고 우겨대더니 삼별초야말로 친일파들이군요. 하긴 강화도에서 술처먹고 탱자탱자 격구놀음하던 인간들이 일본과 손을 잡고 반란이라. 웃기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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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리 18-01-23 18:00
   
진짜 식민 사관은 나라를 약하게 만드는 모든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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