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성 하얼빈, 이춘, 다싱 등의 지역이 여진의 본거지
이곳이 회령
흑룡강성 목단강시는 고려의 동북지역
금시조 완안아골타의 막내 숙부 되는 영가가 이 하얼빈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서
고려의 동북지역인 목단강시에 고려 백성으로 살고 있던 흑수여진을 비롯한 동여진을 충동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고려에 진압됨
고려 문종 때에 여진이 주를 설치하여 행정적으로 편입해 달라 자청하여 11개주를 설치하는데
이 지역은 흑룡강성 동부를 비롯한 연해주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고려사 지리지 서문에서 고려의 강역이 고구려에 비하여 서북은 못 미치나 동북은 더 컸다고 한 기록과 부합하여
최근 러시아 학자들이 발굴 조사, 발표한 남연해주 지역의 고려성과 그 유물과의 상관성을 깊이 시사하고 있다
하얼빈의 완안여진은 고려에 복속한 세력으로 귀덕장군의 직책을 대대로 세습하였던 바 그들이 거한 지역 또한 고려의 간접지배 영토였다 해도 무방하다
고려 전기의 강역은 요사 지리지, 명일통지, 금사, 독사방여기요, 성경통지를 토대로 볼 때에
그 북계가 현 길림성 장춘과 흑룡강성 하얼빈 일대에 미쳤다 비정 가능하다
다만 동북9성을 현 흑룡강성 목단강시로 봐야 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심도고찰이 요구된다 하겠다
금말원초의 여진족은 목단강시를 근거지로 삼았다가 격파된다
한편 명일통지와 독사방여기요에서 당시 명나라는
ㅡ 여진국의 영역을 길림합달령 북쪽으로
ㅡ 조선의 영토를 그 아래로 보고 있는 것이 관찰된다
적극적 해석의 경우
고려는 11세기 전체에 걸쳐서 여진족을 완전히 복속하고 있었으므로 특히 동여진의 활동지이자 본거지인
현 중국 흑룡강성과 연해주 전체가 고려의 영토였다 해도 무방하다고 판단된다
내 말이 거짓이라 여기는 이가 있다면 우선 고려사를 보라
여진족은 11세기 100여 년 동안 고려 백성으로 살았다
즉 고려인이었던 것이다
금시조 아골타가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한 것은 다 이런 사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