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사학계의 소위 통설에서는
발해의
압록부를 현 압록강 중상류를 중심한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남해부를 현 함경도에 비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비정에 근거한 발해의 강역은
요동을 전혀 차지하지 못한 것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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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사 지리지와 신당서 등에 근거할 때에
발해는 대릉하 일대까지 그 서쪽 영역이 뻗어있었고
최근의 러시아 지역 발굴 성과에 따라
만주 전체, 연해주 전체, 남시베리아까지 그 강역이 확인된다
발해의 압록부는
고구려의 압록강, 고려 전기의 압록강에 위치하였던 바
이들 압록강은 혼하~태자하로서
고대의 장백산인 길림합달령을 시원으로 한다
요사 지리지에 근거하면
발해의 압록부는
현 중국 요녕성 본계, 무순, 환인 등을 아우르는 지역
발해의 남해부는
요동반도에 해당한다
또한 발해의 상경용천부를 현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현에 비정하는데
이는 상경 자리의 비정으로 용천부 자체는 매우 넓어서
목단강시와 길림성의 북부, 하얼빈 등을 포괄하며 흑룡강성을 중심한 지역으로
옛 부여의 자리이자 후대 여진족의 회령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곳이 금나라가 일어선 곳이며
금나라 건국 전까지 고려의 관직인 귀덕장군을 대대로 세습한 완안여진의 본거지이다
요나라는 고려의 북계를 바로 이 지역인 발해 용천부까지로 인정하고 있었다
숙종 2년, 1097년 요(거란)가 보낸 숙종 책봉문
十二月 癸巳 遼遣耶律思齊·李湘, 來賜玉冊·圭印·冠冕·車輅·章服·鞍馬·匹叚等物. 冊曰,
而海隅立社, 北抵龍泉, 西極鴨緣, 祗禀正朔, 奉輸琛賮.
12월 계사일. 요나라에서 야율사제(耶律思齊)와 이상(李湘)을 보내 왕을 책봉하는 책서(冊書), 옥으로 만든 인장, 면류관, 예식용 수레, 예복, 안장 갖춘 말, 비단필 등의 물품을 하사하였다. 그 책문은 이러하다.
“고려는 바닷가에 나라를 세워 그 영토가 북쪽으로는 용천(龍泉), 서쪽으로는 압록강까지 펼쳐져 있으며, 공경히 우리의 제도를 따르고 공물(琛贐)도 성실히 바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