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태왕비의 본질 내지 핵심은 여전히 비켜가고 있는 느낌이네요.
결론적으로 비문에 등장하는 왜는 고구려 태왕의 업적을 더 부각시키기위해 등장하는 악의 세력으로 묘사되는 존재일뿐입니다.
이러한 악의 존재는 비문상에서 비단 왜만 있는게 아닙니다. 태왕비의 초반 업적을 드러내는 부분 서두에 등장하는게 비려입니다. 그리고 거의 후반부에 정확한 존재는 비문 마모로 정확히는 알수없지만 후연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들 비문속에서 광개토태왕이 무찌른 악의 세력들은 이유 없이 악의 세력이 된게 아닙니다.
그이유에는 비려나 왜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려의 경우 애초에 고구려변방을 습격하여 고구려백성 1만명을 뺏아간게 이유라고 비문에 나옵니다.
왜는 아직도 해석과 조작논란이 진행중이지만 구시속민 옛부터 고구려의 속민인 백제 신라에 침공하여 온 외부세력으로 묘사됩니다.
한발 더나아가 백제는 이 왜와 결탁했든 이용했든 계속 고구려의 질서에 반기를 든다고 나오죠.
그러니까 5세기 초 고구려 지배층의 눈에 악의 세력이란 고구려의 천하에 침입해들어오는 외부세력입이다.
당시 고구려의 천하관은 중국처럼 유아독존이 아니라 각각의 천하가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니까 몽골초원은 거기대로 정원은 중원대로 그리고 대흥안령산맥 동쪽과 한반도는 고구려의 천하라고 각각 본것이죠.
그런데 이런 고구려의 천하에 침입해들어오면 고구려인의 눈에는 당연히 악의 세력이 되는 것이죠.
비문속에서 이 고구려의 천하에 포함된 존재는
명시적으로 백제 신라 그리고 동부여입니다.
백제 신라는 앞서말했듯 구시속민이라하여 고구려의 것이라 했고 동부여도 추모왕때부터 조공해온 속민이라고 명시합니다. 그런데 이들 속민중에 백제 동부여는 고구려의 질서에 반기를 들어 태왕이 혼을 내주지만 왜와 비려처럼 외부세력 내지 악의 존재로 격하되어 고구려천하에서 축출해낼 존재로 그려지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말안듣는 고구려 천하속의 내식구일뿐입니다. 비문속에서는 어떻해서든지 고구려가 어르고 달래서 고구려천하속에 끌고 가려는 존재로 나옵니다.
그러나 비려와 왜는 쳐내야할 외부세력내지 복속하되 속민인 백제 신라 동부여와는 다른 이질적인 정복대상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와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말그대로 쓸어버려야할 대상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비문속 고구려천하관은 토곡 배신의 묘사에서도 드러납니다. 동부여 정벌전 백신이 군대를 보내 감시했다고 나올뿐 속민으로 본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즉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감시해야할 이질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던 대상으로 봤다고 봅니다.
이걸 정리해보면 태왕비속의 태왕의 업적 그러니까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위대성을 드러내기위해 짜놓은 시나리오는 처음엔 추모왕의 혈통에서 오는 위대성. 그리고 본론에서는 태왕의 정복사업이지만 주먹구구식의 정복욕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정복사업이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구려의 품안에서 편안하게 잘지내는 고구려 백성들과 국민들을 외부의 악의 세력이 침입하여 괴롭히기 때문에 군사를 일으켰고 또 본래 속민으로서 과거에도 앞으로도 당연히 고구려의 천하질서에 예속되어야할 속민인 동부여 백제가 말을 안들어 부득이하게 토벌했지만 결국엔 은혜로 포용해준다는 내용입니다.
어째서 동부여 백제 신라가 고구려의 속민인지는 비문속에서 자세히 안나옵니다. 그저 당시 고구려인들의 눈에 동부여 백제 신라는 당연히 자기들의 속민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것은 확실합니다.
당시 고구려인들의 눈에 너무 당연한 속민이었던 백제 신라 동부여.
반면 고구려와 인접해있고 똑같이 정복된 백신 토곡과 비려는 속민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문속의 고구려인들이 만만한 놈들이나 정복한놈들한테 내키는대로 제멋대로 오만함으로 속민이라 부른게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말해 제멋대로 속민이라 부른게 아니라 당시 고구려인들 눈에 동부여 백제 신라가 너무나 당연히 혹은 어느 누가 이의를 제기하기도 뭐할만큼 이들사이의 친연성으로 인해 고구려의 천하속 일원으로 보는데 충분했다고도 얘기할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비문의 마지막 태왕릉을 지킬 국연과 간연을 태왕이 잡아온 신래한예인들만 시켰는데
비문에서 단순히 한예인으로 표기하지않고 신래한예 즉 새로이 들어온 한예인으로 표기한것은 최소한 고구려안에 한예인들이 많이 살았거나 고구려인들 스스로 자신들을 한예로 인식했거나 한예인을 가까운 종족 내지 동족으로 인식한 흔적을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조작설 내지 해석문제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비문내용의 핵심은 당시 고구려인들이 백제 신라 부여인들에 대해서만큼은 거란 숙신 선비족 왜인들과는 확실히 다르게 고구려천하속 일원으로 동류 좀더 엄밀히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비숫한 문화 언어 혈통을 가진 종족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건 최소 동북공정의 궤변 즉 고구려인은 백제 신라와 달리 중국 화하족에서 기원을 두는 중화민족의 계통이라는 헛소리를 정면으로 밟아버리는 확실한 근거가 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