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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03 23:19
[한국사] 중국에 예속된 존화 사대주의자들의 정권 고려와 조선, 그들이 역사를 썼다면 어떤 역사를 썼겠는가??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1,732  




우리의 시원 역사를 단절시키고 파괴한 여러 손길이 있었다. 그 가운데 첫째가, 중국에 의한 역사 왜곡과 그 왜곡 내용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우리 유학자들의 존주사대尊周事大 사상’이다.


공자가 주창한 유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요, 그 밖의 민족은 중국에 예속된 오랑캐에 불과하다는 중화주의(中華主義)를 제창한다. 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은 고려와 조선의 존화(尊華) 사대주의자들은 이 중화주의 사관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역사에 끼친 해악은 너무나 심각하다.


고려의 유학자들은 한민족의 국통(國統) 맥이 기자조선에서 위만조선, 남삼한, 신라로 연결되는 것으로 왜곡하였다. 그에 앞장 선 인물이 고려 중기 때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묘청의 북벌운동을 진압하고 우리민족의 고유사상, 낭가사상(郎家思想)을 말살한 경력을 가진 삼국사기의 저자로 신라의 독자적인 연호사용을 사대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하고 우리민족을 침략한 당나라 이세민을 우리 당태종(我唐太宗)”이라고 칭하였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비아(非我)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으로 우리 역사를 편찬할 때 발해사(渤海史)를 논하지 않았을 정도로 중국을 지극 정성 섬기며 삼국사기 서술 주체가 중국이고, 객체가 한국이다.

그의 열렬한 모화(慕華,중국의 사상을 숭상하여 섬김)정신은 망국멸족(亡國滅族, 나라와 민족을 함께 망하게 함)의 사대사관의 전통이 되어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위징 등이 쓴 『수서(隋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고구려(高句麗)가 교오불공(驕傲不恭)해서 제장토지(帝將討之)라.” 고구려가 교만하고, 오만하고, 공손하지 않아서 수양제가 장차 토벌을 하려고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고구려를 아(我)로 바꿔놓고는 "아(我)가 교오불공(驕傲不恭)해서, 제장帝將, 이걸 상장토지(上將討之)라.


우리나라의 역사를 쓰면서, 우리가 교만하고 오만해서 중국의 임금이 치려고 했다… 는 식으로 쓸 수가 있을까? 참으로 황당한 내용인 것이다. 이처럼 "김부식은 비아(非我)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신라 650년 진덕여왕 4년에 당나라 고종의 ‘영휘’라는 연호를 처음 쓴 부분에 대해서도 주석을 달기를, “옛날에 법흥왕이 연호를 스스로 썼는데, 아, 편방(偏邦,중국의 변두리)의 소국으로서 왜 연호를 쓰나?


당 태종이 꾸지람을 했는데도 연호를 고치지 않다가, 650년에 고종의 연호를 갖다 쓰니, 허물을 능히 잘 고쳤다고 할 수 있도다” 이런 식이다. 이것이 국보로 보존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역사서에 나오는 구절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사정이 이러하니 중국의 입장에서 쓰여진 사대주의 책이라고 비판받아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통해서 중국을 흠모하고 존중하는, 존화사대주의 사상을 정립한 것이다. 그가 지은 삼국사기는 그 이후의 모든 역사왜곡의 기본 원전이 되었다. 한국을 점령한 일본제국주의자들도 바로 이 책을 얼씨구나 하고 악용하여 소위 반도사관, 식민사관, 왜식사관을 날조해 낸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러한 사관에 따라 학교에서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삼국사기를 저술하면서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발해)의 역사는 완전히 지워버린 반면, 같은 시대 신라 역사는 망하는 날까지 세세히 기술하였다. 그러면서도 신라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은 사대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묘청, 정지상 등이 고토 회복을 위한 발판으로 벌인 서경천도 운동을 벌였을 때, 김부식을 대표로 하는 집권층 유학자들이 이것을 권력 장악을 위한 음모라고 몰아붙였다.


유교를 국교로 신봉하는 조선은 개국 초 춘추(공자)와 자치통감 강목(주자)만 사필(史筆)로 여기고, 한민족 정통사서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압수 소각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철학,종교,문화의 중요한 자료들이 말살되었다.



주체적인 사관을 주장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는 최악의 상황이였다. 그래서 우리역사가 사대주의 사관에 의해서 철저히 왜곡되고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모든 역사가 왜곡이 되었다.


태종은 서운관(書雲觀)에 보관되어 있던 고유사서들을 공자의 가르침에 어긋난다하여 소각하였으며, 세조에서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전국 관찰사에게 사서 수거령을 내렸다. 이렇게 우리의 정통 사서들이 소실된 것은, 오늘날 우리 역사의 올바른 인식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한민족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국측 사료와 이 땅의 사대주의 사서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광해군 때 청 태조 누루하치가 보낸 국서를 보면 조선의 사대 근성이 적나라하게 고발되어 있다.


“요동은 본시 조선의 국토다. 지금 명나라 사람들이 그 땅을 빼앗았는데, 너희는 명나라가 원수인 것도 모르고 도리어 신복하고 있다”고 조선을 꾸짖고 있다.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조선 유학자들이 보였던 중국의 사상을 숭상하여 섬기는 모화정신(慕華精神)이다. 이것은 진실로 한국사의 뿌리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망국멸족(亡國滅族)의 표본이다.





세종 때 최만리는 훈민정음 제정 반대 상소를 올리면서 “조종(祖宗)” 이래 지성으로 중국을 사사(師事)하고 모두가 중국 제도를 본받아 왔는데 만약 훈민정음이 중국에 전해지는 날에는 사대모화에 부끄러운 일이라“하였다.


조선의 학자들은 명(明)을 ‘본조(本朝)’,즉 ‘내 나라의 조정’이라 부르며, 우리의 역사에 대해 ”단군시대는 아득한 태고시대라 증명할 수 없고, 기자(箕子)가 봉해지고 나서야 겨우 문자를 통했으며, 삼국시대 이전은 별로 논할 만한 것이 없다“고 폄하하였다(대동야승(大東野乘) 기묘록별집(己卯錄別集)


또한 명나라 군주를 ‘우리의 황상(皇上)이라 하고, 명나라 조정을 ’천조(天朝), 또는 ‘성조(聖朝)로 불렀다(본국청개종계주본(本國請改宗系奏本) 기자께서 동쪽으로 오셔서 가르침을 베풀었으니 오랑캐가 바뀌어 중국인[夏]이 되었고 드디어 동쪽의 주(周)나라가 되었습니다['숙종실록(肅宗實錄)' 7, 9]”라고 하였다.




옛날 유학자들의 의식이 다 이렇게 되어 있다. 유가문화의 썩어빠진 역사의식으로 인해 나라가 망해 버렸다. 伏草 최인(崔仁)은 이 같은 행태를 두고 ‘조선은 한일합병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전에 한중합병으로 망하였다’라고 일갈하였다.


조상의 비문 첫 머리에 유명조선(有明朝鮮:명나라에 속한 조선)을 내세우고, 조선 백성을 명(明)의 신민(臣民)이라 하고, 한문은 진서(眞書)로 존중하면서 한글은 언서(諺書)로 무시하였으니, 분명히 한중합병이라는 것이다. 고려와 조선 역사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혼 빠진 민족이 아니고 무엇인가.



단재 신채호는 외래종교, 외래사상에 물들어 역사와 문화를 다 잃어버린 가련한 한민족에 대해 이렇게 통탄하였다.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함으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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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2-03 23:35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유교적 가치기준으로볼때 참람하게 저술된 서적 입니다. 반유교 서적
장진동 18-02-04 02:53
   
조선이야 그렇다 쳐도 사대랑 아무 관계없는 고려를 끌어 넣는이유가 뭐여? 듣보잡 블로그 글 끌어 올려면 읽고 끌어 오세요
     
스리랑 18-02-04 10:43
   
우리나라에서 사대주의의 시작은 ‘신라에서 A.D. 650년, 당나라 고종, 영휘(永輝) 원년에 연호를 갖다 쓰면서 사대주의가 실제 시작됐다’ 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연호를 썼다는 것은, ‘속국(屬國)’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A.D. 649년에 당태종 이세민이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에 왼쪽 눈을 맞아서 죽는 그 해에 고종이 등극을 했는데, 그 때를 즉위년이라고 하고, 그 다음 해, 650년을 ‘원년(元年)’이라고 하고 개원을 하는데 이 때부터 ‘영휘(永輝)’라는 연호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연호를 신라에서 갖다 써 가지고, 사대주의의 뿌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때는 당나라, 고려시대 때는 송나라, 조선시대에 와 가지고는 명나라, 청나라. 이렇게 연호를 가져다 쓰는 것이 국시처럼 돼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사대주의이며, 이렇게 되다 보니까 역사를 쓰는 역사학자들이, 아(我)의 입장에서, 우리 나라 사람으로서 우리 역사를 쓰는 게 아니라, 중국사람의 입장에서 역사를 쓰게 된 것입니다.
ashuie 18-02-04 03:42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 고난의 연속이었던건 맞지만
명과의 사대주의와는 상관없지않나요?
실제 고려말 요동정벌도 감행했고.
비좀와라 18-02-04 04:05
   
삼국사기의 진본은 이미 오래전에 상실되었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삼국사기는 근세조선 숙종본 입니다.

숙종시기 이전에 삼국사기가 사라졌고 민간에 퍼져있던 사본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아주 우연치 않게 어는 민가에서 발견된 삼국사기 필사본을 수거해서 재 작성된 것이 지금 남아있는 삼국사기 입니다.

이미 발견된 시기에 원본과는 많이 다른 상태라는 것을 인지 하고 있었지만 유학자들 중에 삼국사기 원본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원본과 많이 틀리지 않다는 인증을 받고 채택된 것으로 김부식이 쓴 원본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 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화주의와 사대주의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으로 둘이 같이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지해야 하는 것 이고요.

재미있는 사실은 심양왕과 고려왕과의 분쟁에서 심양왕이 탄생이 된 계기가 고려로 시집온 몽골공주의 후손이 없어서 양자로 들인 사람에게 몽골공주가 받은 영지를 주면서 시작 되는 것 이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몽골공주들은 고려로 시집 올 때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받은 영지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고 근세조선 초 중기나 몽골 등은 여성에게 재산을 주었다는 것이죠. 근세조선 후기 까지도 공주나 옹주는 영지를 할당 받았고 이의 소유는 당연히 공주와 부마의 소생에게로 주어졌습니다.

지금도 서울에는 당시 공주가 받은 땅을 기반으로 성장한 가문이 몇 있죠. 말죽거리의 상씨 가문이 대표적인 케이스 입니다.

아무리 봐도 근세조선의 풍습은 몽골의 풍습과 많이 닮아 있단 말이죠.

몽골공주의 추존명을 보자면 제국 공주 계국 공주 노국 공주 등으로 일단의 연계된 지역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들 모두는 부마국이자 외손의 국가인 고려 왕실 소유 영토라는 것 입니다.

당시 고려 왕실의 영토는 요동과 요서 그리고 산동성을 아우르는 대 왕국의 형태라는 것으로 서희의 담판 이후로 또 하나의 고려왕실의 신의 경지에 이르는 외교적 성과라는 봐야 한다고 봅니다.

고려와 원 나라와의 관계는 영국과 프랑스와의 관계와 같음을 알 수 있는데...

영국 노르만디 지역의 영주 이었던 월리암이 영국으로 침공 해 들어가 왕이 되었지만 또한 동시에 프랑스 노르만디 지역의 프랑스 영주 이었고 그 후의 영국왕은 이 신분을 유지 했습니다.

이런 신분을 유지 하였다가 헨리 5세가 프랑스 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프랑스 공주와 결혼 하면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얻게 됩니다. 이 후에 이런 상황이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죠.

고려와 몽골과의 관계도 마찮가지 입니다. 고려왕은 고려의 절대적인 군주이자 몽골의 영주 이면서 몽골왕실의 외손으로 몽골왕실과 동격이면서 신하이고 또한 강력한 라이벌이자 파트너인 관계 였다는 것이죠.

과거 고려 왕실이 몽골의 황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 배경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죠.
     
장진동 18-02-04 10:30
   
삼국사기 판본 문제는 이전부터 했던 주장인데 이제 인정하는 분위기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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