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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05 21:31
[한국사] <삼국유사> 고조선기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1,411  




고려 때 일연 스님(1206~1289)이 지은 『삼국유사』는 민간에 전해오던 여러 사서나 비문 등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삼국유사』는 총 아홉 편으로 제1편「왕력편王曆篇」은 삼국의 연대표이다. 제2편은「기이편紀異篇」으로 상고시대 여러 나라, 그리고 삼국과 가야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고, 3편 「흥법편興法篇」에서 9편 「효선편孝善篇」까지는 불교 역사에 관한 기록이다.



왕력편은 연대표이므로 실제 본문은 기이편부터 시작되는데 그 첫 부분이 바로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이다. 바로 여기에 『고기古記』라는 책이 등장한다. 일연 스님은『고기古記』에 실렸던 기록을 옮겨 적었다. 그런데 사대주의 사관을 갖고 있었던 김부식은『고기古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일연은 우리 건국과 관련한 설화나 전설까지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수집하는 데 정성을 들여 김부식과는 생각이 전연 달랐다.『 삼국유사』의「 기이편」 서문에 그런 그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김부식은『삼국사기』「열전(列傳)」 설총전 말미에 ‘김대문(金大問)이 지은『고승전(高僧傳)』,『화랑세기(花郞世記)』,『악본(樂本)』,『한산기(漢山記)』가 아직도 남아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부식은『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수집한 당대까지 남아 있던 사책(史冊)을 모두『고기(古記)』라고 지칭하면서 당대(當代) 유가(儒家)의 가치관과 상이相異하다는 이유로 그 많은 서책(書冊)을 거의 무시를 한 것이다.





김부식이 삼국사 편찬을 마치고 임금에게 그것을 진상하면서 「진삼국사표進三國史表」라는 글을 붙여 올렸다. 여기서 김부식은『삼국사기』 편찬의 이유들을 들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고기古記』의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는 대목이 있다.“ 한마디로 ‘나는 『고기古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김부식의 주관적인 평가이다.


특히‘ 문자가 거칠고 졸렬하다’(文字蕪拙)는 표현은 김부식이 이 책에 대해 반감까지 갖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 상고사를 기록한 『고기古記』의 내용이 유학자의 사대주의 사관으로 볼 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연 스님의『삼국유사』는 그 당시 내려오던 정통사서 <고기古記>를 인용하면서 우리 역사의 뿌리를 전하고 있다. 그게 바로 <삼국유사> ‘고조선기’이다.


古記에 云 昔에 有桓國하니 庶子桓雄이 數意天下하야 貪求人世어늘 父知子意하시고 下視三危太伯하시니 可以弘益人間이라 乃授天符印三箇하사 遣往理之하시니라


“古記에 云 昔에 有桓國하니,『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고기古記』라는 책 이름을 언급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한 사례들로 미루어 고려말까지 세간에는 널리 알려졌던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를 직접 언급한 일연 스님 뿐 아니라 김부식도 이 책을 알고 있었다. 공민왕 때 재상을 지낸 행촌 이암도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두를 『고기古記』 가운데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원동중의『삼성기(三聖紀)』에도『고기古記』의 기록이 인용되어 있다.


이처럼 간접적인 정황들을 통해『고기古記』에는 우리 시원역사에 대한 소중한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 책이 지금까지 전해오지 않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당시에 원나라가 들어서면서 ‘우리 자주역사 의식을 드러내야 겠다’ 는 반성을 가지고 중국의 위서(魏書)를 인용하고 그 당시 내려오던 정통사서 <고기古記>를 인용하면서 우리 역사의 뿌리를 전하고 있다. 그게 바로 <삼국유사> ‘고조선기’이다.


魏書에 云 乃往二千載에 有壇君王儉이 立都阿斯達하시고 開國하사 號朝鮮하시니 與高同時니라.

<위서魏書>라는 것은 삼국시대 조조의 위나라의 왕침王沈이 쓴 책인데 이것을 인용을 해서 우리 한민족의 고대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을 쓰신 일연스님의 높은 뜻을 잘 봐야 하는데, 결론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나라에는 “乃往二千載에 有壇君王儉이”, 단군왕검이 계셨다는 것이다. 



“立都阿斯達하시고 開國하사 號朝鮮하시니 與高同時니라” 
이 말씀의 결론은 누가 어디에 어떤 나라를 세웠느냐는 역사의 구체적인 건국 주체와 나라 수도에 대해서 선언을 하고 있다. 여기에 핵심이 다 들어 있다. 단군왕검이 계셨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했고, 그리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때라는 것이다.



古記에 云 昔에 有桓國하니(謂帝釋也) 庶子桓雄이 數意天下하야 貪求人世어늘 父知子意하시고 下視三危太伯하시니 可以弘益人間이라 乃授天符印三箇하사 遣往理之하시니라


왜 일연스님이 다시 <고기古記>를 인용하냐면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우리가 <단군세기><삼성기><태백일사><북부여기>를 보면 이<고기古記>에 대한 모든 전적(前績)을 만날 수가 있다. 이 <고기古記>는, 옛날의 기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모든 초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삼국유사> ‘고조선기’를 번역본으로 실어놓고서 다 부정한다.




將風伯 雨師 雲師하시고 而主穀 主命 主病 主刑 主善惡하시며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하사 在世理化하시니라
時에 有一熊一虎가 同穴而居러니 常祈于神雄하야 願化爲人이어늘 時에 神遺靈艾一炷와 蒜二十枚하시고...


여기에 보면 “時에 有一熊一虎가 ... 願化爲人이어늘”,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이 ‘일웅일호一熊一虎’인데. 그런데 이것은 무슨 최면이 걸려서 그렇게 해석을 하는지. 저 시베리아,  북만주, 남북 아메리카 땅,  그리고 일본 북해도에 가보면  아이누 민속촌이 있다. 거길 가보면 곰토템을 섬기는 그런 문화가 있다.  실제로 그 사람들도, 지구촌 그 어떤 사람도,  한국인 이외에는 일웅일호(一熊一虎)를 한 마리 곰과 호랭이로 해석을 하는 사람이 없다.



맹호부대가 월남에 파병 갔다면 그사람들은 호랑이가 파병간 것으로 해석할 사람들이다. 그러면 이게 진짜 동물로서의 호랑이와 곰이라면 백두산 호랑이일 것이다. 마늘 쑥을 주면서 백일 동안 태양빛을 보지 말고 수행을 해라. 동물이 사람이 된다는 것도 그렇지만 호랑이가 소처럼 풀뜯어 먹는다는 소리는 이건 애초부터 그렇게 해석을 하면 그 구조가 신화로도 성립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내용이 원동중의 <삼성기> 下 에 “웅호이족(熊虎二族)” 이렇게 나와 있다. 



일웅일호(一熊一虎)라고 하는 이 대목의 글자는 똑같은데 구체적으로 “웅호이족(熊虎二族)”, 웅족과 호족이라는 것이다. 이 웅족과 호족중에 한사람씩 와서 저희도 천지의 광명을 체험한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서원을 한 것이다. 한마리 곰과 호랭이가 사람이 되겠다고 서원한 것이 아니라,  곰(熊)과 호랑이(虎)를 토템으로 하는 족속이었다. 이게 진짜 동물이 아니다.





일제의 역사왜곡 저본이 <삼국유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걸 살펴보면. <삼국유사>는 환국과 신시배달, 환웅과 사람으로 변신한 웅녀가 결혼을 해가지고 거기서 단군을 낳았다고 돼 있다. 이 내용이 환인,환웅,단군을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 3대 역사로 축약해 버렸다. 그리고 단군이 1908세를 살다 아사달로 들어가 산신이 돼 버렸다고. 한 사람이 2천년을 살았던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니까 충렬왕 1281년, <삼국사기>로부터 136년 뒤에 쓰여진 이 <삼국유사>를 보면  그 때까지만 해도 역사의 시원사가 단절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불교 스님의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 이것이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일연스님이 주석을 단 것을 보면 환국 옆에다가 “謂帝釋也(위제석야)라”, 불교의 제석신의 나라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그 다음에 배달 신시와 단군 조선이라는 것도 환웅이, 곰이 사람으로 둔갑한 여인과 결혼해서 단군을 낳은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일제가 삼국유사라는 역사책을 없애지 않았다. 


이 <삼국유사>의 역설이라는 건 무엇인가?  그것은 일연스님이 불교의 신화적인 사고로 그런 주석을 붙여서 이 책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한국사 왜곡은 일본인 식민사학자가 『삼국유사』의 ‘석유환국昔有桓國’에서 ‘국國’ 자를 ‘인因’ 자로 변조해 환국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이후 그것이 현재의 강단사학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적어도 고려 때까지 우리에게는 환국의 실체, 환국의 존재에 대해 기록하고 전하는 사서들이 여럿 존재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환국에 대한 기록이 담긴『 조대기』나『 삼성밀기』만 해도 조선의 사서수거령(유교와 입장이 다른 우리 사서들을 수거, 폐기한 일) 때 분명히 언급된, 엄연히 실재했던 책들이다. ‘환국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는, 환국을 이루던 12개 나라 이름들 가운데 상당수가 후세의 사서에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가령 중국 사서인 『진서晉書』의 「사이전四夷傳」에는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일군국 등 환국에 속했던 나라 이름들이 기록돼 있다.


비리국은 … 2만호를 다스린다. 양운국은 … 2만호를 다스린다. 구막한국은 … 5만여호를 다스린다. 일군국은 막한莫汗에서 다시 150일 갈거리만큼 떨어져 있다[裨離國 … 領○二萬. 養雲國 … 領○二萬. 寇莫汗國 … 領○五萬餘. 一○國去莫汗又百五十日].『 _진서』「 사이전」



『장자』에도 보면 상고(시대)의 혁서 제왕을 거론한다. 그러면서 그때 백성들은 편안하고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려가며 근심 걱정 없는 평화로운 생활을 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혁서 제왕은, 환국의 제2세 혁서 환인천제와 이름이 같다. 또 당시 태평성대의 삶 또한 환국의 백성들이 누렸던 생활과 부합한다. 과연 이런 것들이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원동중의『삼성기』에도『고기古記』에 “ 파내류산 아래 환인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의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으로 5만리요, 동서로 2만여리이니 통틀어 환국桓國이라 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처럼 『고기古記』에는 우리 시원역사에 대한 소중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계연수 선생이 1911년 우리 사서들을 묶어 내면서『 환단고기(桓檀古記)』라 이름붙인 것도 그『고기古記』라는 책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고기古記』의 내용은 일연 스님보다 더 자주적(自主的) 역사관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행촌 이암과 원동중에게는 더더욱 귀한 기록이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행촌 이암은 고려 때 재상을 역임했고 단군조선의 역사를 담은 『단군세기』를 편찬했다. 원동중은 한민족의 상고사, 환단桓檀 시대를 다룬 『삼성기』를 쓴 인물이다. 이들의 글에 『고기古記』가 인용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연이 그 책을 인용해‘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했는데, 신라 고승 안함로의 『삼성기』상권은 ‘오환건국최고(吾桓建國最古)’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환국은 7대 환인씨에 걸쳐 통치되었다고 기록되었다. 고려 때 인물로 추정되는 원동중도 『삼성기』하권서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고 쓰고 있다. 나아가‘ 환국의 통치자인 환인은 하늘을 대행해 널리 교화를 베풀어 싸움과 굶주림과 추위가 사라지게 되었고 백성들은 풍요롭고 인구가 많았다’고 그 시대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원동중은 안함로와 달리 초대初代 안파견 환인을 비롯해 7대 환인들의 이름을 들고 있다. 또 앞서말한 『고기古記』를 인용해 비리국, 수밀이국 등 12국으로 구성돼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 찬수관을 역임한 일십당 이맥이 편찬한 『태백일사』에도 환국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환국본기」라 해서 환국에 관한 옛 기록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맥 자신이 쓴 게 아니라 『조대기朝代記』와 『삼성밀기三聖密記』라는 두 책의 환국에 대한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대다수 우리 사서들처럼 이 두권의 사서 역시 전해지지 않는다.



『태백일사』에는 또 구약성서 「창세기」에 비견할 수 있는「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라는 글이 실려 있다. 여기에도 환국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환국의 통치자인 환인을 백성들이 추대하였다, 환인을 안파견이라고도 불렀다’면서 안파견의 뜻이 ‘하늘을 받들어 아버지의 도道를 확립시킨다’고 풀이했다. 나아가 「환국본기」는 『전傳』이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삼신의 후예를 환국이라 부른다’했다. 이는 환국의 백성이 하늘이 내린 민족 곧 천손족天孫族을 자처하는 사람들이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중동中東이라 부르는 저 수메르인들의 역사기록이나 유물을 통해서도 환국이 실재했음을 알 수 있다. 수메르인은 스스로‘ 우리가 안샨(Anshan, 천산天山)을 넘어왔다’고 말한다. 환국에서 건너왔다는 이야기다. 또 실제로 수메르 역사의 숱한 기록과 유물들은 환국과의 놀라운 연관성을 보여준다.



수메르라면 흔히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그렇게들 알고 있는데, 서양문명이 발원했다는 수메르 문명은 물론 지리로 보면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이를 그리스어로 ‘메소포타미아’라 한다)에서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지리가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바로 수메르인의 문명을 계승한 것이다.



기원전 2350년경 셈족族에 속하는 아카드인들이 북쪽에서 내려와 수메르를 정복했다. 그때 아카드인들의 왕이 사르곤이다. 바로 이 아카드인들이 수메르를 정복하고 이미 앞서 있던 수메르 문명을 그대로 계승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수메르-아카드 문명이라고도 한다.


함무라비법전으로 잘 알려진 바빌로니아 문명도 수메르―아카드 문명을 계승한 것이다. 실제 함무라비 법전도 아카드어로 기록됐고 그 법전의 내용 또한 수메르 법전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이처럼 수메르의 원래 도시국가들, 또 아카드 제국과 바빌론 제국에 의해 계승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점차 그리스로 전파되어 결국 서양문명의 원류인 그리스 문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스 문명이 애초에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발전한 것이 아니란 사실은 수많은 역사가들이 말한다. 그리스 문자만 해도 페니키아인에게서 받아들였고 천문학, 수학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부터 배워서 발전시켰다. 이런 까닭에 역사학에서 수메르 문명이 서양문명의 원천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수메르 문명이 대단히 일찍 발달한 것이지만 그 또한 아주 갑작스럽게, 앞선 문명이 전혀 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무엇보다 먼저 수메르인들은 우리가 안샨을 넘어왔다, 우리는 머리 뒷부분이 평평한 검은 머리의 인종이다, 스스로 자신들에 대해 말한다. 수메르인의 점토판을 해독해 그들의 생김새, 사회제도, 풍습, 언어 등을 연구한 크레이머 박사는 “수메르인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결론 내렸다.



한韓사상을 연구해온 우리나라의 김상일 교수는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을 바탕으로 “고대 수메르인과 한민족은 불함문화라는 공통 문화권에 살다 갈라져 나갔다”고 주장한다. ‘불함문화권이란, 중앙아시아에서 몽골에 이르기까지 산악 이름중 상당수가 공통적으로 박〔밝·白〕자를 쓰는 것에 착안해 최남선 선생이 동북아 문화권에 붙인 이름이다. 이 불함문화권이 바로 환국을 가리킨다. 학자들은 수메르인이 높은 산에서 신에게 예배하는 민족이라는 점과 그 언어가 우랄알타이어 계통이란 사실을 들어 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했다고 한다.


또 수메르인들은 우주를 안키Anki(천지)라 불렀다. 우주는 둥근 하늘인 ‘안’ 그리고 평평한 ‘키’로 이루어졌다고 믿은 것이다. 이는 동양의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원만하고 땅은 방정하다) 사상과 다르지 않다. 수메르인들의 언어 역시 우리 한국어처럼 주어나 목적어 같은 체언體言에 조사(토씨)가 붙는 교착어膠着語이다. 지구상에서 교착어는 한국어와 한국어의 영향을 받은 일본어 그리고 알타이어뿐이다. 게다가 수메르의 경우 우리말과 어순語順까지 거의 같다. 아빠, 엄마 등 아예 단어 자체가 같은 게 100여 가지나 된다.




이밖에도 동북아의 60갑자甲子처럼 60진법을 사용한다거나, 결혼 전 신부가 될 집에 함을 지고 가고 씨름을 즐기는 등 의식주 문화나 생활 풍습에서도 적잖은 동질성이 나타난다. 특히 주목할 것은 동방 한민족의 독특한 머리형인 상투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1923년 우르Ur 지역의 한 묘지에서 왕의 유골을 발굴했는데, 황금투구를 쓰고 있었던 그 왕은 머리카락을 뒤에서 묶어 상투를 틀고 있었다.


수메르인들이 스스로 (동방에서) 천산을 넘어왔다고 할 때, 또 수메르를 연구한 학자들이 수메르 문명은 동방에서 발원했다고 할 때 그 ‘동방’은 어디를, 누구를 지칭하겠는가. 일찍이 환국의 서남쪽에 자리 잡았던 환족 사람들이 이란의 산악지대를 거쳐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남하해 수메르 문명을 개척했다…, 결국 수메르인과 수메르 문명의 원래 고향은 환국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음양 문화 또한 역사성으로 보면 2, 3천 년이나 4, 5천 년 전에 나온 것이 아니다. 흔히 음양론의 원 뿌리, 연원을 하도河圖, 낙서洛書로 말하는데, 그 근원을 추적해서 들어가 보면, 최소 1만 년 전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 때의 유물이나 사람들이 살던 주거 터, 동굴 벽화 같은 자료들을 분석해 놓은 것을 보면, 태고시대의 사람들이 음양적 사고를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 음양론이 정리된 첫 작품이 『천부경天符經』이다.


『천부경』이 음양론의 출발점이며, 실제 그것을 문명화한 진리의 원본이 5,600년 전, 태호 복희씨가 삼신 상제께 천제를 올리고 받아 내린 하도河圖이다. 그 하도河圖에서 팔괘 문화, 주역 문화가 나온 것이다. 결론은, 음양론은 인류 문화의 원형인 신교(神敎, 以神說敎)의 우주론이다. 다시 말하면 음양오행법칙은 신교神敎의 우주관이다.
 

『 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 88쪽을 보면 ‘『천부경(天符經)』’ 의 유래가 나와 있다. 천부경은 “천제환국구전지서야(天帝桓國口傳之書也)”라. 천부경은 환국(桓國)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한 글이다. 환웅천왕의 배달국 때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해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하게 하셨는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 신지(神誌)가 남긴 전고비문(篆古碑文)을 보고 작첩(作帖)을 복원해서 傳於世者也라.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



환국 시대부터 전수되어 내려온『 천부경(天符經) 』,여기에는 우주론을 바탕에 깔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관계에 대한 인성론의 문제가 담겨있고, 환국 다음에 배달국의 개창자 배달환웅이 열어주신 우리 한민족의 신관, 신학의 원전『 삼일신고(三一神誥) 』가 있다. 그리고 고구려 재상 을파소를 통해 내려온 366가지 인간이 지켜야 될 윤리덕목을 기록한『 참전계경(參佺戒經 ) 』 이것이 우리민족의 3대 소의경전이다.



천부경을 보면 1, 2, 3이 나오고, 운삼사運三四(3, 4) 나오고, 성환오칠(成環五七)에서 5, 7이 나오고, 生七八九 생 7, 8, 9가 나오고, 일적십거(一積十鉅)에서 10까지 해서, 수의 원리가 1에서 10까지 다 드러난 것이다. 1만 년 전에 1에서 10의 수의 체제를 가지고 있었단 말이다. 이 지구촌 인류문화사상 처음으로 1에서 10수의 자연수를 발명을 한 것이다. 이게 무슨 아라비아인들 또는 중동 인도 유럽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금의 동지,소한,대한,입춘,우수,경칩...24절후와 해시계 규표를 태호복희(BC3528 ~ BC3413)씨가 처음 발명한 것이다. 이것을 시간 공간의 구성 원리로 다시 한 번 계시를 해주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도서관(圖書館)이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이다.
 
시간과 공간의 원리에 의해서, 1에서 10수의 구성 원리를 보는 것이다. 『 낙서(洛書) 』에는 1에서 9까지 수가 배열되어 있는데 2 7 6, 9 5 1, 4 3 8, 이것을 서양에서는 마방진魔方陣magic square이라 하며 교과서에도 나온다. 미국의 수학자 프랭크 슐츠F.Swetz는『낙서洛書의 유산Legacy of the Luoshu』에서 ‘낙서洛書는 비단길을 통해 동서양을 왕래한 아랍인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인도, 동남아, 중동, 유럽 문화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다.



서양 문명의 뿌리를 추적해 봤더니 이슬람 문화권에도 낙서(洛書)가 전달됐고 유대문화에도 낙서가 들어 있더라는 얘기이다. 2,500년 전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도 이것을 받아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가 자연수의 체계에 눈을 뜬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오늘의 서양 과학문명은 끊임없이 피타고라스로부터 영감을 받아왔다고 했다.


 

서양문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타고라스는 “모든 것은 수(數)에 의해 규정된다(All things are ruled by numbers).”는 유명한 얘기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동서양 문명의 뿌리가 바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라는 얘기이다. 낙서洛書의 수를 그대로 옮기면 3차 마방진이 되는데, 가로·세로·대각선의 합계가 모두 15가 된다. 마방진은 한마디로 숫자 속에 숨겨진 우주의 질서와 균형을 의미한다.




낙서(洛書)는 4,300년 전, 중국에서 9년 홍수가 일어나 우(禹) 임금이 치수공사를 하던 중에 물 속에서 나온 거북이 등에 있는 무늬를 보고 낙서洛書를 그리게 되었다. 당시 단군 성조의 맏아들 부루(扶婁) 태자가 아버지 단군 성조의 명을 받고 우(禹)에게 치수 비법을 전해주었다. 그 사실이 중국 역사책 『오월춘추』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책을 보면 ‘창수사자(蒼水使者)’가 나온다. 창수(蒼水)는 지금의 황해 바다 북쪽에 있는 발해(渤海)이다.


사자使者가 발해를 건너가서 금간옥첩(金簡玉牒), 금옥과 같이 아주 잘 만들어진 함에다가 치수비법을 넣어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행원리로 되어 있어서 ‘오행치수지법(五行治水之法)’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해서 우(禹)가 9년 홍수를 다스리고 요순시대를 이어 하(夏)나라를 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희씨가 받아 내린 하도(河圖)와 우(禹)임금이 받아 내린 낙서(洛書)가 중동과 그리스 지역에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서양에서 이미 2,500년 전에 수(數)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서양의 근대 과학 문명과 오늘날 컴퓨터 문명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서양에서 이진법은 17세기초에 고안되어 나왔는데,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주역 이론에 이진법이 함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체계를 정립시켰다. 그는 1697년 ‘파리 과학 학술원’에서「이진법 정수론 주해」 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논문의 부제가 ‘고대 동양의 태호복희의 괘상에 나타난 이진법 산술이 갖는 의미와 그 효용성에 관한 고찰’ 이라는 것이다.


그는 “나의 불가사의한 이진법의 새로운 발견은 5천여 년 전 고대 동양의 복희왕이 발견한 철학서이며 문학서인 주역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1709년에 복희팔괘와 함께 이진수를 나타낸 분석표를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면서, “주역은 모든 과학의 열쇠이다.” 라는 말을 한다.





서양사는 아시아 문명이 모태


20세기 초중반 미 컬럼비아 대학의 유명 철학자였던 윌 듀런트(1885∼1981)는 1930∼50년대 지식인들에게는 중요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지식인들은 그를 통해 철학과 역사의 교류에 눈을 떴다고 평자들은 풀이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은 아시아 문명의 응석받이이자 손자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조상인 동양의 풍요로운 유산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꼬집는다. 종래 서양사 중심의 서술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듀런트는 “서양의 이야기는 동양에서 시작된다. 아시아가 가장 유서 깊은 문명의 장으로 유명해서가 아니다. 동양의 문명들이 서양의 시작인 그리스 로마문화의 배경과 토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리스와 로마가 현대 지성의 모든 원천은 아니다”면서 “서양 문명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발명품들, 예컨대 서양의 정치 기구 및 경제 과학 문학 철학 종교의 뿌리가 이집트와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출처: 세계일보 - 2011년7월15일 






서양 중심의 세계사는 가짜다. 


리 오리엔트 = 다시 동방으로 !!!
저자 프랑크는  유럽중심주의의 잘못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재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2000년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 된 바 있는 이 책은 서구의 발전과 세계체제의 기원에 관하여 근본적인 재인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흥미진진한 프랑크의 역작이다.




" 오리엔트" "빛은 동양에서".

세계 문명의 근원은 동양이었고 동양 역사의 시작이 곧 세계 역사의 시작 이었다.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는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강조하며 유럽 중심주의에 빠져있는 역사관과 세계사를 수정 하기를 요구한다.  우선 프랑크는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 거세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1800년 이전까지는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 하고 있었다.



1800년 이전 변변한 자원도, 풍부한 자본도 없었던 유럽은... 자원과 자본뿐만 아니라 기술 역시 1800년 이전 유럽은 아시아의 기술에 미치지 못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계기는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 때문이었다. 출처: 경향신문 - 2003년 03월 07일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존 M. 홉슨 저 / 정경옥 역 / 에코리브르 / 2005년 1월/ 18,000원
 
 
동도서기(東道西器)가 아니라 동도동기(東道東器)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특징을 축약해 흔히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을 쓴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면 이 말은 동도동기(東道東器)로 바꾸어야만 할 것 같다.
정신문명은 물론이고 기계문명마저도 그 발원지는 동양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동양이 서양과의 문명발달 경쟁에서 근소한 시간적 우위를 점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역사의 전 과정을 통틀어 ‘숙련된’ 동양에서 ‘미숙한’ 서양으로 ‘모든’ 인문적 지식이 ‘전수’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이 전수목록에는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거의 완제품 수준까지 아우르고 있다. 저자가 참조하고 인용하는 사료와 자료들은 충분히 치밀하고 방대하다. 따라서 구태여 저자가 존 M.홉슨이라는 전형적인 서양인 혈통이란 걸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그러한 문명발달의 원조 논쟁에 있지 않고, 인류문명에 있어서 동양의 명백하고 압도적이었던 문명사적 역할이 얼마나 축소되고 은폐되어 왔는지를 밝히려는데 있다. 그 과정에서 서양이 자기기만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부터임도 알게 된다.
 
 

동양은 ‘창조’ 서양은 ‘모방’

“서양 사람들은 독일의 발명가 구텐베르크가 문명에 혁신을 가져온 인쇄기를 최초로 세상에 소개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그림자 뒤에 숨은 진실은 이동형 인쇄기에 사용하는 최초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것보다 적어도 50년은 먼저 한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 중)



흔히 인류의 3대 발명을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라고 한다. 이 발명품들은 모조리 동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서양으로 전수되었다. 앞서 저자의 서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구텐베르크는 인쇄기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해낸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 입수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고정관념의 먼지를 털어 내어야 한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은 훨씬 오래 전부터, 아니 역사의 전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교류를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교류는 일방통행이었다는 점이다. 즉 서양은 늘 문명의 수혜자였다. 동양은 ‘창조’하고 서양은 ‘모방’했다. 사실상 근대까지도 유럽인들의 기술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동양에 비해 아주 조악했다.
 
한 유럽 지식인은 그의 저서 『위대한 우(禹)임금과 공자(Yu le Grand et Confucius)』에서 ‘유럽이 17세기에 이르러 마치 ‘유전자 대혁명’을 겪는 것처럼 일대 변신을 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뉴턴 등을 비롯한 대과학자들의 세기가 열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동양은 더 이상의 ‘창조적 지식’의 출현이 없는 까닭 모를 정체기로 빠져들게 된다.
 
 
케플러(1571∼1630) 1619년 《우주의 조화》 출간
뉴턴(1642∼1727) 1687년 《프린키피아》 출간
데카르트(1596∼1650) 1637년 《방법서설》 출간
파스칼(1623∼1662) 16세에 《파스칼의 정리》 발표
보일(1627∼1691) 1662년 ‘보일의 법칙’ 발표
라이프니츠(1646∼1716) 1663년논문 《개체의 원리》 발표
페르마(1601∼1665) 17세기 최고의 수학자
 


서양인들의 모방과 착취

문제는 서양인들이 주도권을 쥐자마자 그것을 남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약적인 발흥은 단순히 동양에 대한 지적인 부채에만 기인했던 것이 아니다. 서양은 식민지화를 통해서 무상의 노동력과 자원, 무엇보다도 독점에 가까운 시장확보라는 이중 삼중의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 또한 동양으로부터 이러한 경제적인 이득뿐 아니라 기술적인 모방까지 동원되었다고 말한다. 현대문명을 말함에 있어서 수학(數學)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는 없다.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진 오늘날의 십진법 수 체계 그 외에도 항해술, 조선술, 천문학, 도로망 등 세계를 이미 하나로 만들었던 교통수단은 그 어느 것도 동양인들의 지적산물이 아닌 것이 없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이라고 착각하고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작명하기 훨씬 이전부터 동양을 비롯한 소위 제3세계인들은 전세계를 누비고 다녔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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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2-05 22:03
   
상투만 틀면 눈알이 뒤집히는 사람들은 이병도 추종세력이 아닐런지...
전쟁시에 상투를 안틀면 ? 생머리가 눈알을 가려서 앞이 안보일텐데... 어찌 전투를 할까 ?

선비족은 날리는 머리카락을 잘라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투를 틀었으니...
서융 남이 화하 동이 왜 ... vs 선비족 ?
나유키 18-02-06 14:28
   
일연도 뭐 딱히...당시 시대상 생각하면 국사까지 한 인물이 사대사상이 없는 인물이었을 리가 없죠.
김부식보다 좀 덜했다 뿐이지 사고관이 크게 차이났다고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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