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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07 20:54
[한국사] 위서라 주장하는 식민사학자들의 관점으로 동서양 경전과 각 분야의 고전을 재단한다면, 인류문화 유산은 없을 것이다.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2,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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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론자들은 자유, 평등, 인류, 세계, 원시국가, 문화,문명, 개화, 부권(父權), 헌법과 같은 어휘가 쓰인 것을 빌미로, 환단고기를 일제강점기 때 독립 운동가들이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꾸며낸 책이라 한다. 그런데 이 어휘들은 고문헌에서도 발견되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 자유는 ‘자기가 주인이 되다’라는 뜻으로, 평등은 산스크리트어의 번역어로서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자유와 평등도 그러한 뜻으로 쓰인 것이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나온 시선집인 옥대신영(玉臺新詠)에 수록된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분함을 품고 있었는데, 네가 어찌 멋대로 할 수 있는가(吾意久懷忿 汝豈得自由)라고 하여 ‘자유’라는 어휘가 나온다.

 

인도 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된 금강경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편에 이 법은 차별이 없어 높고 낮음이 없다(是法平等 無有高下 )라고 하여 ‘평등’이란 어휘가 사용되었다.

 

장자 지북유(知北遊)편에서 “생물은 이를 서러워하고, 사람은 이를 슬퍼한다(生物哀之 人類悲之)라 하여 ‘인류(人類)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당나라 때 한문으로 번역 된 능엄경의 ‘무엇을 중생세계라고 합니까(何名爲衆生世界)라는 구절에 ’세계‘라는 어휘가 사용 되었다.

 

 

 

주역 계사하(繫辭下)의 ‘군자는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립해 있을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집안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라는 구절에서 고대로부터 사용된 ’국가‘를 확인 할 수 있다. ‘문’과 ‘화’가 결합된 문화라는 말은 고대에 이미 사용 되었으며, 문으로써 가르쳐 변화시키다(以文敎化)를 뜻한다.

 

 

전국시대의 역사서인 국어(國語), 진어(晉語)편을 보면, “선행을 상주고 간악한 행위를 벌주는 것은 나라의 법이다(賞善罰姦 國之憲法也)하고 하여 ‘법’, ‘법전’을 뜻하는 ‘헌법’이 나온다. 백번 양보하여 정말 근대어가 가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환단고기 자체가 완전 조작된 위서임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인류사의 여러 경전들을 돌이켜 보라.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날의 경전이 되지 않았는가. 주역(周易)은 태호 복희씨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고, 도덕경은 왕필이 덕경과 도경의 본래 순서를 뒤집어 재구성한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과 각 분야의 소중한 문화원전 가운데 순수하게 원본 그대로 전하는 것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동서양의 종교 경전이나 의학, 불멸의 고전은 반드시 숱한 보정작업을 거쳐서 거듭난 것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모든 고전은 그 전승과정에서 적잖은 첨삭과 교정이 이루어졌지만 그 누구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처음에 책 이름이 『태사공서太史公書』였다. 여러 손을 거치면서 다른 사람의 글이 잘못 뒤섞여 들어가고, 몇몇 대목은 망실된 상태로, 수백 년이 지나 『사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판본의 연대조차 확실하지 않은 사본들이 전하지만 오늘날 『사기』를 위서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삼국유사도 초간본은 없고 조선시대 판본만 전한다. 판본들 사이의 차이도 상당하다. 조선 중종(1512년) 때 간행된 정덕본을 기준으로 하여 기존 판본들을 대조하면 연표인 ‘왕력편’에만 5천5백여 글자 가운데 30여 곳이 다르다. 삼국사기도 1981년에 발견된 고려 때 판본을 기존 판본과 비교한 결과 오자誤字가 무려 3백여 개에 이른다. 이처럼 우리 고대사의 근간이 되는 두 사서도 판본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오자, 탈루, 중복 등 다양한 오류가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학계에서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동서양의 종교 경전도 다르지 않다. 오늘의 모든 불교 경전을 석가모니가 직접 저술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경은 동서양의 많은 언어로 수없이 번역되었고, 여전히 그 자체로 부처의 진리 말씀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자의 가르침이 잘 나타나 있는, 유가의 경전 『논어』는 어떠한가? 처음에 이 문헌은 그 이름이 없었고 누가 지었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논어』를 위서라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신구약新舊約 성서는 어떠한가? 구약성서를 구성하는 책은 대부분 언제,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환단고기를 위서라 주장하는 식민사학자들의 관점으로 만일 동서양 경전과 각 분야의 고전을 재단한다면, 이 숭고한 인류문화 유산은 끝없는 의혹과 시비만 던질 뿐, 진정한 고전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양의학의 성서인 황제내경은 황제 헌원을 가탁하여 전국시대를 거쳐 한 대에 성립되었고, 불교의 화엄경도 분리되어 있던 경전들이 수차례의 결집을 거쳐 후대에 합쳐진 것이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의 사서가 천 년에 걸쳐 쓰인 사실과 그 중 가장 나중에 쓰인 태백일사가 나온 지 400년이 지나 환단고기가 묶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원래 다섯 저자들이 쓴 원본이 무수한 전란과 외세의 사서 강탈을 무사히 피하여 전해졌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계연수가 모은 다섯 권은 필사 과정에서 인물, 연대, 장소가 오착되기도 하고 부족한 내용에 가필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환단고기의 일부 술어와 연대 표시가 사실과 다르거나 다른 사서들과 다소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민족의 국통 맥, 태곳적 한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밝혀 주는 환단고기의 독보적인 가치가 전적으로 매도 될 수 는 없다.

 



 

『환단고기』의 기록을 검토해 볼 때 그 내용이 유물로 입증된 사례도 있다.


『환단고기』에는 장수왕의 연호와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는데 이 내용이 1915년에 발견된 불상에 새겨진 기록에 의해서 입증된 것이다.『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장수왕이 즉위하자, ‘건흥建興’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기록이 있는데 건흥 연호가 1915년 충북 충주 노온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광배명光背名에서 나타난 것이다.

 

역사기록의 진실여부는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입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사례를 과학적 용어로 검증이라고 한다. 시기적으로 볼 때 기록이 먼저 있고 그 기록의 사실여부를 밝혀주는 유물이 발견되면 그 기록의 진실성이 검증된다.

 

“천남생묘지(泉男生墓誌) 비문(碑文)”도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천남생(泉男生)은 고구려의 재상이자 영웅인 연개소문의 큰 아들이다. 그의 묘비명이 1923년에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남생의 아버지 개금(蓋金), 할아버지 태조, 증조부 “자유(子遊)”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태백일사太白逸史』가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밝힌 기록과 일치한다. 이 책은 여기에 남생의 고조부, 즉 연개소문의 증조부 이름을 “광(廣)”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또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환지 17세손’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광개토태왕은 추모鄒牟왕의 13세손’이라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다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 『환단고기』를 보면 그 이유가 밝혀지게 된다.

 

『환단고기』에는 고구려 제왕의 계보가 제1세 해모수(BCE 194년에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 건국)로부터 →제2세 고리국의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 건국)로부터 →제2세 고리국의 제후 고진(해모수의 둘째 아들)→제3세 고진의 아들→제4세 옥저후 불리지(고진의 손자)→제5세 고추모(고주몽, 고진의 증손자) … 제17세 광개토태왕(주몽의 13세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주몽의 선조는 해모수이며 그로부터 치면 광개토대왕은 17세가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도 광개토대왕비도 모두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환단고기』가 해명해준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환단고기』가 후대의 창작이 아닌 진서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환단고기』가 진서임을 알려주는 여러 증거들이 『환단고기』 자체 내에 많이 들어있다. 문제는 그 증거들을 일일이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환단고기』를 대하는 자세이다. 왜 자세히 연구하고 검토하지 않고 굳이 위서라고 낙인찍는가 하는 것이다.

 

민족사학자이건, 역사학계의 주류 사학자이건 누구라도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사람은 우선 『환단고기』에 담긴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 문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열린 태도와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환단고기』를 읽어가면서 그 극적 클라이막스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행촌 이암(杏村 李灸,1297~1364) 선생이 쓴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문이다. 단군세기 서문에 대해서도 위서론자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 강단사학의 태두들이 자리 잡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단군세기 서문을 보면 너무 근대사의 술어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계만방이라는 말이 옛날에 쓰던 말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국유형(國猶形) 사유혼(史猶魂)”하니,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이게 박은식 선생의 한국 통사(韓國痛史)에 있는 얘기를 끌어다 썼다고 한다.



그런데 박은식 선생의 책 원본, 한자로 된 책을 보면 내가 옛사람의 글을 인용해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박은식 선생이 단군세기(檀君世紀)를 베낀 것이다. 그런데 그 앞에 한 구절을 빼고서 거꾸로 뒤집어가지고서 한국통사에 있는 그런 한 구절을 단군세기에다 끌어다 썼다고, 이유립이가 조작을 했다고, 그런 것을 보면 위서론자들의 심성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행촌 이암이 국록을 먹은 사람이 몽고니, 고려니 이런 말을 직설적으로 쓸 수가 있느냐’라고 묻는다. 행촌 이암은 고려말 사람으로 여섯 명의 왕을 모신 사람이다. 지구촌의 3분의 1을 통일한 원나라 대제국이 고려를 쳐들어 왔을 때, 원나라의 시녀로 전락한 고려의 오잠吳潛, 유청신柳淸臣 같은 역적이 나와 가지고 고려란 나라 간판을 떼고서 전부 보따리 싸들고 원나라 조정으로 귀속해버리는 이런 역적들이 날뛸 때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 행촌 이암이 어린 시절 자기 아버지의 명으로 열 살 때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 위에서 하늘에 맹세를 했다. 그 시詩에 제가 동방의 빛을 꼭 회복하겠나이다. 그런 젊은 날의 순정이 단군세기 서문에 보면 너무도 명쾌한 논리로 단군세기(檀君世紀)에 정리 돼 있다.

 

 

 

그들은 『환단고기』에 대한 태도부터가 잘못되었다. 일단 부정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꼬투리를 잡다보니 ‘잠청배(潛淸輩)’를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 땅에서 청나라를 몰아낸 일본이 ‘청과 몰래 내통한 무리’를 가리켜 한 말”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잠청배(潛淸輩)”는 원래 이암이 『단군세기』 서문에서 처음으로 쓴 말인데 원나라 간섭기 때 고려 인물로 정치적 문제를 일으켰던 오잠과 류청신의 이름을 빗대어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 같은 무리’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위서론자들은 이렇게 잠청배를 잘못 해석하여 『단군세기』 서문은 이암이 아닌 구한말 이후의 사람이 쓴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한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자가 역사 지식의 부족을 스스로 드러낸 주장이다.

 

 

 

그들은『환단고기』에 나오는 지명과 인명의 실제 사용연대가 저술 연대보다 훨씬 후대이므로 그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고탑이라는 지명과 잠청배라는 용어를 들어 단군세기나 북부여기가 청나라 이후에나 저술될 수밖에 없는 책이므로 고려시대에 저술된 책이 아니라 청나라 이후에 조작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위서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무지하고 억지스러운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고탑은 그들의 주장처럼 청나라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명대明代의 기록에 영고탑이라는 명칭이 나오고 있으므로 위서론자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그들은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각 역사서의 저자를 문제 삼는 것이다. ‘안함로와 원동중의 『삼성기』’라는 『세조실록』의 기록은 보지 않고 그보다 70여 년 후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함安咸·원로元老·동중董仲’ 세 사람이 황해도 해주 수양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삼성기』의 저자를 안함로, 원동중 두 사람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 주장한다. 얼핏 일리 있는 말로 들리지만 이 주장에는 커다란 모순이 있다.

 

일반적으로 책을 인용할 때 앞서 나온 책을 인용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 경우는 『세조실록』을 기록하는 사람이 70여 년 후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인용하였다는 상식 밖의 주장을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몇 가지만 지적하더라도 위서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비양심적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동경대에서 나와 있는 1904년도 삼국유사본을 보면 거기에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고 아주 뚜렷하게 나와 있다. 이마니시 류가 그걸 석유환인(昔有桓因)이라고 조작을 했는데, 우리나라에 여러 학자들이 쓴 책을 보면 야, 그것은 國 자나, 因 자나 그때 같이 그런 서체로 썼다고 한다. 조작한 게 아니라고 한다. 그걸 가만히 보면 심성이 잘못돼 있다.




- CNN 기자 조 카포라렐로Joe Capolarello와의 인터뷰 - 

 

 

Joe Capolarello: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전에 환국의 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습니까?

 

 

만리장성 밖에서 발굴된 홍산문화는 동북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문명으로서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문명입니다.

그래서 지난 백년 동안 발굴이 계속되어 온 이 홍산문화를 학계에서는 소위 ‘제 5의 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내몽고 유적지에서 발굴되기 시작한 이 문명을 해석할 수 있는 문헌과 사료가 중국에는 전혀 없어 발굴 현지에 가보면 홍산문화는 ‘신비의 왕국’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홍산문화는 중국 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북방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그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5,5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청동기 시대를 넘어 신석기 시대에 걸친 문명입니다. 이 새로운 문명의 흔적이 드러남으로써 우리들이 이제까지 생각해왔던 인류문명의 기원에 대한 고정관념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문명을 해석할 수 있는 문헌이 한국의 고대사서인 『삼국유사』라는 책에 나옵니다.



옛날에 환국과 그 뒤를 이은 배달국이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중앙아시아의 천산 지역에 있던 환국에서 환웅이 수천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동방에 와서 신시라는 수도를 정해 배달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그 후 단군조선이 배달에 이어 건국됐다는 내용이 간단히 소개돼 있는 것입니다.

 

중국 문화권에는 홍산문화에 대한 문헌이나 기록이 없어서 이 문명을 발굴만 하고 해석을 전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우하량에서 나온 천제를 올리는 제단이라든지 여신을 모신 사원, 제사장의 무덤에서 나온 옥기류, 상당히 발전된 축성술을 보여주는 석성 등으로 미루어 중국 역사학자들도 고국古國, 즉 국가 성립의 모든 기반이 이미 당시에 확고히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황하문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홍산문화 발굴로 중국 학계에서는 그들 중화문명의 태동을 새롭게 설명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중화문명이 황하문명 뿐 아니라 북방문화의 두 가지 요소로부터 탄생하였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과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홍산문화가 요하 유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요하문명이라고도 하며 또 발해가 고대문명의 탄생과 교류에서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여 발해문명이라도 합니다.



 

홍산문화의 발굴로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중국 학자들 뿐 아닙니다.

그 동안 일본 식민사학의 전통적 해석을 그대로 추종해온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환국과 신시배달,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을 신화로 부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홍산문화의 발굴로 그들이 신화로 치부하고 있던 옛 한국문명의 존재가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1983년 우하량 유적지가 발굴되었을 때 그 동안 중국에서 신화로 믿어오던 삼황오제 시대가 실제로 발굴됐다고 대대적인 보도가 이루어졌는데 이 때 중국인들이 충격을 받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옛 한국문명의 존재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는 기록이 전해져 왔습니다.

바로 『환단고기』라는 이름의 문헌으로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천년에 걸친 시기의 다섯 사람이 남긴 역사기록들을 묶어 편찬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환국과 배달국, 단군조선의 역사에 대한 귀중한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이처럼 홍산문화라는 고고학 유적과 역사 문헌 두 가지 모두가 옛 한국문명의 존재를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환국과 배달, 고조선의 역사는 결코 신화도 전설도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 추가로 지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한반도를 침략하였을 때 한반도에는 구석기도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일제가 물러난 이후 수만년 전의 구석기 유물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한국에는 분명히 구석기시대가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1만 2천년 전의 볍씨 알갱이도 발견되어 한반도에서 매우 오래 전에 벼농사가 지어졌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는 한반도에서 신석기시대가 1만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로부터 인류 문명의 개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5천여년 전에 홍산문화와 같이 발전된 문명이 출현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황하문명을 건설한 것은 동이족이었습니다. 상나라가 바로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으며 중국인들이 중화문명의 시조로 생각하는 인물들은 실제로는 중국의 화하족이 아닌 동이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5500년 전의 인물로서 팔괘를 그려 우주와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였던 동양철학의 시조 태호복희, 중국에서 농경과 의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신농, 이들이 동이족이라는 역사 기록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복희가 배달국의 왕자였다고 합니다.

동이족은 내몽골로부터 만주와 하북성, 산동성에 걸친 중국 북방을 지배하였던 고대 한민족의 조상입니다.

중국의 고대 사서에 동이족의 기록이 많이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중국문명이 동이족의 영향 하에 탄생하고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동이족이 홍산문화로부터 연원한 족속이었음은 물론입니다.

용과 봉황을 함께 신성한 동물로 신봉하였던 용봉문화가 그것을 입증해 줍니다.

 



 

 

 

 

Joe Capolarello: 홍산문화라는 지칭이 곧 고대 한국문명을 가리키는 이름인가요?

 

 

일본마저도 한국의 전통 사서로 인정한 『삼국유사』에 근거해 볼 때 홍산문화라는 이름 역시 고대 한국문명을 가리키는 것(한국의 일부 학자는 발해문명이라고 부른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고대문명을 총체적으로 가리키거나 나타내는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홍산문화는 현재 중국 내몽골 동남부, 요령성, 하북성 북부를 중심으로 발해 연안을 끼고 한반도까지 그 영역이 걸쳐 한민족이 이룩하고 발전시킨 문명입니다.

 



요령성 우하량에서 발굴된 총·묘·단의 3대 유적과 함께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1천년이나 앞선 것으로 판단되는 피라미드 유적(전면에 제단이 설치되었으며 폭 60m의 사각형 기단에 높이 10m 정도인 7층으로 아직 미발굴 상태이다)은 세계 각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피라미드 문화의 원조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집트나 중동 수메르 문명권의 지구라트, 중남미의 마야, 아즈텍 문명 등의 모든 초기 피라미드 유적은 통치자와 백성이 함께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천단이었습니다.

그런 피라미드의 원형이 5500년 전 우하량에서 여신전과 함께 발굴돼 나온 것입니다.


 

 

이 고대문명에 대한 기록이 중국에는 없기 때문에 중국의 학자들은 일단 홍산문화를 가리켜 ‘신비의 왕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공인된 기록인 『삼국유사』에서 홍산문화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근거와 단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가 『고기古記』라는 옛 사서를 인용해 전하고 있는 ‘옛적에 환국이란 나라가 있었다’(석유환국昔有桓國)는 기록입니다.

 

 

 

최초의 나라 환국은 우주 광명을 체험하고 살았던 인류 최초의 문명국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이 고대문명, 곧 환국은 배달, 조선으로 그 나라의 정통성이 계승되었습니다.

지금부터 6천년 전 인류의 기후와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이때 환국은 동과 서로 분화되었습니다.

당시 동방으로 온 인물이 환웅입니다.


환웅은 앞서 환국의 제왕인 환인으로부터 명을 받아 동방 백두산에 와서 도시국가 신시神市를 열었습니다.

한국의 고대사를 밝힌 역사서인 『환단고기』는 이렇게 환웅이 새로이 연 나라의 이름이 배달이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를 계승하여 나중에 단군왕검이 조선이라고 하는, 세 번째 문명국을 건설했습니다.

 


단군조선은 옛 조선이라고도 불립니다.

『삼국유사』는 중국 역사서인 『위서』(왕침 저, 삼국시대 조조의 위나라의 역사)를 인용해서 삼국유사가 지어진 당시(3세기 중반)로부터 거슬러 무려 2천여년 전에 단군이 있었고, 그가 아사달에 도읍하여 나라를 조선이라 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중국의 요堯임금(BCE 2350여년) 때입니다.

 

 

 





Joe Capolarello: 한국 고대문명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며 그 영역은 어떻게 됩니까?

 

 

한국의 고대문명은 환국 - 배달 - 조선으로 이어집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를 전해주는 사서가 『환단고기』입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인류 최초의 나라이자 동서 인류 최초의 문명국인 환국의 시조와 정치, 문화, 생활상 그리고 고대 환국 사람들이 지녔던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 나라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등을 소상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은 지금으로부터 9,200년 전에 건국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 동부, 천산을 중심으로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에 걸쳐 12 나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동방 한민족의 두 번째 나라인 배달은 그 도읍이 신시로 지금의 백두산 근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민족의 세 번째 왕조인 단군조선은 중국의 흑룡강성 하얼빈을 중심으로 건국되었습니다.

그 수도인 아사달은 ‘아침이 밝아오는 광명의 땅’이란 뜻입니다.

 



한국 고대문명은 환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국이 앞서 본 것처럼 지금부터 6천년 전 기후환경의 변화로 나비의 두 날개처럼 동과 서로 분화되는 극적인 대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이때 동방으로 분화되어 백두산 아래 터전을 잡은 것이 바로 배달입니다.

그 강역의 중심이 된 산이 백두산입니다.

반면 환국문명이 서쪽으로 분화되어 나가 자리잡은 것이 오늘 서양문명의 근원이 된 수메르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문명은 물론, 5천여년 전 이집트 문명,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등 모든 유럽과 중동 문화의 총체적 근원이 수메르 문명이란 것이 최근 밝혀졌습니다.

 



오랫동안 관련 학계에서는 서양문명의 근원인 수메르가 과연 5~6천년 전에 어디서 왔느냐가 관심이었습니다.

지난 1백여년 동안 수메르의 쐐기문자 수만 점이 발굴됐는데 일단 그 내용에 따르면 수메르인은 동방의 하늘산 즉 천산을 넘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뿐, 그동안 더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천산과 수메르의 뿌리인 동방문명의 구체적인 실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홍산문화가 발굴되고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동북아에서 5,500년 멀리는 9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홍산문화 유적이 지난 1백여년 동안 계속 발굴되었습니다.

그 유적과 유물이 밝혀주는 역사는 『환단고기』의 내용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것들이었습니다.

『환단고기』의 내용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환단고기』의 「삼성기」 상권과 하권, 「태백일사」의 환국본기에 의하면 중국 고대문명은 물론 서양문명의 근원이 되는 수메르 문명의 출원지가 바로 환국입니다.

 

오늘 한국이라는 이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도 인류가 세운 최초의 나라인 환국에서 왔습니다.

『환단고기』 중 「삼성기」 상권의 첫 문장 ‘오환건국吾桓建國 최고最古’라는 구절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첫 나라를 선포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환국은 광명한 삶을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광명을 뜻하는 환국이라 했습니다.

환국은 12개 나라의 연합체였습니다.

 



 

 

환국은 3,301년 동안 역사가 지속되었습니다.

오늘의 과학주의, 실증주의 사관은 유물론적 편향이 있어서 역사적 사실들의 이면, 즉 인류의 정신문화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역사서들은 태고 문명이라 하면 그저 움집에서 열매나 따먹고 소박하게 살던 문화로 그려냅니다.

그러나 환국 시대 사람들의 삶은 모두가 광명한 삶을 지향하면서 누구나 무병장수하던 장수문명을 누렸습니다.

 


환국을 계승한 환웅의 배달문명은 초기 도시국가로 시작되었습니다.

14세 자오지환웅, 곧 동방의 천자이던 치우천황 때는 산동성, 하남성, 강소성 등 지금 중국의 동부 지역을 배달국의 영토로 삼으며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배달에 이어 국통을 계승한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조선을 세웠습니다.

환국과 배달과 단군조선은 동북아 대륙을 통일하고 다스린 제국이었습니다.

 

 






 

Joe Capolarello: 고대 한국은 누가, 언제, 어떻게 발견했습니까?

 

 

20세기 동북아 최대의 역사유적 발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중국 영토 내 요서지역의 신석기·청동기 문화 발굴사업, 나중에 홍산문화라 불리게 된 그것입니다.

 

1908년 홍산 일대 유적과 유물을 처음 발견한 이는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이었습니다.

그후 프랑스인 에밀 리쌍(E.Licent)도 1922년부터 1924년 사이 내몽골 적봉赤峰 지역에서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던 1935년 동아시아 고적조사단을 만들어 홍산 일대 본격 발굴에 들어갑니다.

일본이 무력침공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문화를 침탈하려는 야욕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이 같은 탐사 결과 출토된 유적을 일단 ‘홍산후紅山後 유적’이라 불렀습니다.

 

 


 

 

중국 역사학계가 이 유적을 조사, 발굴하게 된 것은 훨씬 뒤인 1980년대부터입니다.

이윽고 1983년 요령성 건평현建坪縣 우하량牛河樑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세계는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이곳 유적지에서는 신전과 제단, 돌무덤 등이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연대로 보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꼽히는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앞선 문명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홍산문화는 ‘제5의 문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홍산문화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중국은 오래 전부터 황하문명이 최고最古라고 주장해 오던 ‘황하 중심의 문명전파론’을 철회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다중심多中心 문화발전론’이란 것을 내놓았습니다.

더욱이 홍산문명이 한국의 고대문명을 일군 주인공인 동이족의 것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요하문명’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Joe Capolarello: 중화사관, 식민사관이란 어떤 것인가요?

 

 

중화사관은 중국이 처음부터 문명의 중심이었으며 주변 족속들은 모두 오랑캐였기 때문에 중국의 문화가 중국 주변으로 일방적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앞에서 본 역사의 증거들과 배치됩니다. 중국문명의 태동에는 홍산문화로 대변되는 북방문화와 동이족 문화가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한국에 심어놓은 식민사관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도록 만들었습니다.

20세기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면서 일제는 한국의 정신, 역사, 문화, 전통을 지극히 열등한 것으로 변질시키려 했습니다. 식민지배를 정당화, 영구화하려는 획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요하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폄하하는 작업을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들 사이에는 자조적인 역사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고대 한민족의 활동과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도외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일본 관변사학자들이 주장하듯 단군조선의 역사는 신화이거나 기껏해야 부족국가들의 연맹이었을 따름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습니다.


중국에서 도망쳐온 한낱 망명자인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BCE 194)과 그것을 점령하고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한사군 등 날조된 역사에서 한국사가 비로소 본격 시작됐다는 그릇된 인식도 고착됐습니다.

 

식민사관에 의해 벌어진 더 큰 패악은 그처럼 비뚤어진 역사인식의 틀을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이 고스란히 이어받아 한국사회에 계속 통용하게 하고 후손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7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강단사학자들은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한국 역사의 틀을 견지합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떠들어온 역사가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자기들이 차지해온 자리와 기득권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이 쓴 초중고 교과서가 어떻겠습니까.

중국과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의 역사교육을 맡은 강단사학자들이 그것을 그대로 한국인에게 학습케 합니다. 당연히 한국인들이 고대 한국문명에 대해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Joe Capolarello: 한국의 고대사가 사료가 있고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도 있는데 왜 공식 역사로서, 특히 학문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 한국은 물론 세계 역사학의 주류 역시 앞서 말한 식민사관 및 서구에서 생겨난 실증주의 사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는 물질의 문명사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것이 응집돼 있습니다.


정치, 종교, 건축, 생활문화, 자연관, 우주론, 인간의 내면세계, 마음과 영성문화, 신관, 경제와 화폐문제, 정치제도, 국가간 교류와 이해관계 등등…, 역사를 제대로 보고 알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살펴보는 총체적인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역사학이란 어떤 것입니까?

유적과 무덤 발굴, 거기서 나오는 결과로만 역사를 판단합니다. 한마디로 유물론에 입각한 실증주의 사학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고 옳지 않은 방식입니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에는 반드시 우주관·신관·인간관·인생관 등 그 문명을 만든 주인공들의 정신문화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종합해서 시대를 바라보고 역사를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제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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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2-07 22:26
   
그 시대에 가장 가까운 문헌에 따르면 홍산문화지역은 산해경에서...
>해내북경
林氏國有珍獸,大若虎,五采畢具,尾長于身,名曰騶吾,乘之日行千里。
  昆侖虛南所,有氾林方三百里。
  從極之淵深三百仞,維冰夷恒都焉。冰夷人面,乘兩龍。一曰忠極之淵。
  陽汙之山,河出其中;淩門之山,河出其中。
  王子夜之尸,兩手、兩股、胷、首、齒,皆斷異處。
  大澤方百里,羣鳥所生及所解,在鴈門北。鴈門山,鴈出其閒。在高柳北。高柳在代北。

  舜妻登比氏生宵明、燭光,處河大澤,二女之靈能照此所方百里。一曰登北氏。
  東胡在大澤東。
  夷人在東胡東。
  貊國在漢水東北。地近于燕,滅之。
  孟鳥在貊國東北,其鳥文赤、黃、青,東鄉。


>해내동경
  海內東北陬以南者。
  鉅燕在東北陬。
  蓋國在鉅燕南,倭北。倭屬燕。
  朝鮮在列陽東,海北山南。列陽屬燕。

3국이 겹쳐지는 지역입니다. 夷人, 貊國, 朝鮮
신수무량 18-02-08 11:19
   
그들 현 주류강단사학집단(식민사학 역사매국노 가짜사학자들)이 위서라고 주장하지 않으면 그들이 그동안 배우고 그걸 바탕으로 쓴 논문으로 학자가 되었는데 그 뿌리가 사라지게되지요.
위서가 아니라도 어떻게든 위서로 주장합니다. 그 후예들과 부화뇌동한 무뇌아 추종자들은 '환빠'니 '국뽕'이니 '유사사학'이니 이런 단어로 공격하지요. (토론할 자세도 안되어 있고, 스스로 비겁하고 한심하다고 생각이나 할런지...)
아직도 삼국사기초기록 불신하고 (불신해야지...대신에 고구려 백제역사는 김부식이가 200년을 빼먹었다..서기전 200년을 추가해라..) 한일간에 옳바른 학자들사이에는 이미 끝난 임나일본부설을 아직도 교묘하게 말바꾸기만하여 인정하고 있는 부류(학자)가 있고, 짱깨들의 공북공정에 호응하여 한반도까지 만리장성을 연장해서 그어놓고, 낙랑국은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낙랑군은 근거가 되는 기록도 없이 지금도 재평양설 주장하고...(내가 어릴때 들고 읽었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는 뭔가...)

위 내용 중 '홍산문화' -->요하문명에 대한 주류강단사학집단은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연구하나 제대로 안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저기서 발견된 유적 유물들과 후대의 우리의 유물유적들과 비교하면 저 문명의 주인공은 우리조상이다(우리조상과 아주 밀접하다)라고 주장해도 무리가 없을텐데 연구된 논문이 얼마나 있을런지...
동북공정의 핵심은 '저 문명의 주인공이 지들 조상이다' -> 그래서 그 이후 동북아의 모든 역사는 지들 것이다 --> 고수전쟁은 전쟁이 이나라 내전이다 (짱깨들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답니다.)

단군조선은 실제했는데도 신화로 둔갑되어 우리에게 그리고 현재도 우리나라의 미래 아이들에게 신화라 가르치고 있으지....

고) 최태영 박사의 KBS 인터뷰 내용 중에..
https://www.youtube.com/watch?v=grBtOPNhUP8&t=36s

현재까지 기록으로 홍산문화 시기: 기원전 4500년 ~ 기원전 3000년
이시기의  나라는 단군조선밖에 없습니다.
가난한서민 18-02-08 12:29
   
동서가 2만리 남북이5만리 같은 기록이 말이 안되긴 합니다. ㅠㅠ
중국이 요임금을 역사로 가르치고 일본이 백제계를 부정하고 일본서기를 인용하여 가르치는데
우리도 인용해도 괜찮을거 같은데 말이죠
6시내고환 18-02-10 20:40
   
유일하게 다른 나라가 역사를 만들어준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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