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여진족 지도자는 신라출신이라는 글이 적혀있는 중국사서들 과
청나라 국서의 존재를 제시한 이 후 너무많은 논란이 있는것 같습니다
지지하는 쪽은 금,청나라 역사를 복원하자는 의견이고
반대하는 쪽은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다 라고 하시는 군요.
자, 좋습니다 객관적인 자료가 증명하는 것이니 여진족 추장은 신라출신은 명확해 보입니다
여기서 여진족 우두머리집단이 신라에서 나온건 분명해 보이는군요
생각해볼것은 다만 한 개인이었을까요? 호전적인 여진사회를 평정할 정도라면 일단의 무력집단이 동원되었다고 봐야되겠군요 그 대표자가 김함보로 나오는거구요
신라의 멸망과 고려에 투항을 거부한 일단의 집단이 (대표성을 지닌 왕족일 가능성이 크죠) 여진사회로 들어가 여러부족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회를 평정한듯 보입니다
반대하는 쪽은 족장이 한민족이라고 해서 한민족의 역사가 될수 없다고 하는데 위에서 보듯이 일단의 무력집단이 동원된 여진사회의 통합이 있었다고 보는게 타당할것 같습니다..그 통합은 여러 세대가 흐르면서 절정이 되고 마침 중원을 정벌하는 것이죠..금나라와 그 뒤를이은 후금(청나라)의 경우 입니다
우두머리집단이 한민족이라면 역사는 어떻게 될까요..훈족도 휘하에 수많은 부족(게르만족,고트족등)을 거느렸고 징기스칸도 외국정벌시 몽골족보다 더 많은 이민족집단을 이용했고 당나라도 고구려정벌시 수많은 부족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공략했습니다.
이들역사는 훈족,몽골족,당나라의 역사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청나라 역사를 우리민족의 역사로 보는것도 무리가 없을듯 합니다
여진족의 출신에 관해서는 여진족(만주발음으로 `쥬신`)자체가 스스로 `쥬신`이라고 칭한 무리들로 숙신,조선과 같은 발음으로 화하족들이 다르게 표기했지만 같은 민족일 가능성이 큼니다..이 문제는 복잡해질수 있으니 뒤로하고
여진족들과 반도민족들의 관계를 봅시다
잘 알다시피 국서인 만주원류고에 자신들의 뿌리를 신라라고 못박았습니다
황제 성이 애친각라(한자 뜻을 그대로 풀이하자면...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을것입니다
*만주어로는 아이신 쥐러라고 하는데 아이신(김)+줘러(씨.겨례) 즉 김씨 입니다
영화 `마지막황제`에서 푸이의 재판 중에 재판장은 `애친각라라...특이한 성을 가졌구나`라고 말했죠
또 아직까지도 `김`씨 성을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나라이름에도 그랬듯이 `쇠-금`과 관련)중국에는 드문 성이죠.
또 여진족들은 전통적으로 고려에 공물을 바치고 부모의나라라고 받들어 모셔왔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후에 청태조 누르하치는 `부모의나라를 침략한 쥐새끼같은 왜구들을 섬멸할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저의 휘하에는 날렌 2만의 정예기병들이 있사옵니다`라고 거듭 칭했습니다. 하지만 조정에선 거부하죠 누르하치는 후에 이 군사들로 중원을 정벌합니다
또 청나라는 유조변(버드나무 방책)을 길게 설치하여 한족의 동북지방 출입을 엄금했습니다
이를 어긴자는 극형에 쳐했죠 이것은 화하족과 동북지방 민족이 썩이는걸 거부한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들은 한족과는 다르며 동북지방민족(반도포함)들은 같은민족이라는 생각이 묻어있다는걸 알수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한족과 동화되기를 극히 꺼려했음을 알수있습니다 자신들의 피와 겨례를 보존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죠.
김함보는 현재 여진족이 한족에 동화되어가는 상황을 예견했던걸까요...슬프군요 우리민족의 단면을 보는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본다면 금,청나라 황실은 수백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들이 신라출신임을 기억하고자 끝임없는 자각과 노력을 했으며 한족과는 다른 정권임을 만천하에 피력하고 있었음을 알수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실`입니다...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문제겠죠
---답글달려면 최소한의 의견피력을 위한 증거를 제시하고 토론중에는 예의를 지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