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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3 22:14
[세계사] 단군에 대하여(역사와 기후변동)
 글쓴이 : history2
조회 : 647  

 현재 유라시아 대륙에는 크게 황인종과 백인종 그리고 드라비다계를 중심으로한 흑인종이 있고, 인도아대륙을 제외하고는 나름, 종교와 문화 그리고 지역적 특성으로 인종적 고립화와 민족적 구분이 되어있는 상황이다(물론 그것이 완벽하지 않아 크고 작은 전쟁,테러등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신석기혁명시기부터 초기철기까지 인종의 지역적 정체성이 확고하지는 않았다. 


발굴되는 고고학적 유적으로 볼 때, 몽골도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동부에는 오히려 코카서스(서양인) 계통의 인골이, 서부에는 전형적인 황인족 유골이 발견되고, 좁은 한반도만 해도 신석기시대, 부산의 인골유적과 구석기 상원유적만(승리산) 해도 코카서스인의 유골임이 이미 확인되었다. 


선사를 막 지나, 문자가 발생하고 문화가 형성이 되면서 동아시아는 크게, 황하강의 황제헌원씨(중국인)와 내몽골,요서지역의 '홍산문화 세력' 그리고 치우를 중심으로한 묘족(사천성~양자강 남부)이 나름의 문명을 발달시키고 있었다. 


황제헌원씨 무리는 치수와 수리 천문 그리고 역학에, 묘족은 나침판, 지리 등에 두각을 나타내었고(이는 그들의 신화를 바탕으로 추측한 것이지, 결코 과학적인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정황추측이다, 이는 인문과학의 한계라는 점에서 아쉽다) 


홍산문화 세력은 역법과 선진농사 기술법(콩 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는 기후변화가 상당히 심한시기여서, 1)기존에 비교적 온화했고 오아시스도 잘 발달된 내몽골과 그 주변부(타클라마칸 사막 일대)에 급속한 사막화가 진행되었고(이미 알타이 지역은 농경이 불가능 할 정도로 사막화가 이루어짐), 

2)황하지역은 오히려 잦은 홍수로 수해를 심하게 입었으며, 

3)묘족의 땅은 점차 열대 우림화 되어갔다. 


처해진 기후조건을 이겨내지 않으면, 세 문화의 정체성(여기서 문명이 아닌 문화로 표기한 것은 여전히 금속제 도구, 문자,국가체계 등이 완벽하지 않고, 각 문화마다 하나씩 부족했기 때문이다)이 무너질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상황에 맞게, 그들의 지혜를 발휘하며 1)헌원씨는 치수를, 2)묘족은 열대우림에 맞는 쌀농사를 그리고 3)홍산문화세력은 사막화를 이길 수 있는 조나 콩 등 기후에 강한 작물을 재배하며 극복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모두 부족하나마 문자, 청동기(혹은 옥제품), 그리고 원시국가체제를 갖추며 그들의 영역을 확대하게 되고, 세 세력이 맞붙으면서 전쟁으로 표현되는 역사시대가 어렴풋이 나타타난다(역사와 선사의 차이는 기록의 유무이나, 그 기록이 반드시 진리는 아니다) 


먼저 묘족의 치우와 황하의 헌원씨가 맞붙은 사실이 역사로서 기록이 되고, 묘족이 처음에는 우세하다 헌원씨가 점차 세력을 회복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동북쪽의 홍산문화 세력은 조금 양상이 달랐다. 그들은 내몽골 적봉에서 부터, 요서의 하점층문화까지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지만, 그들의 환경은 중국이나 묘족보다 더 척박했고, 그들은 생존을 위한 식량자원의 확보가 중요해 졌다. 


이는 자연스런 거주지 이동을 의미했고, 또 사막의 개방성으로(고비나 타클라미칸 사막은 초원길이 형성될 정도로 개방성이 좋다) 외부의 침입이 용이하다보니, 기후 외에도 흉노족의 침략은 그들을 남만주나 

요동으로 이동시키게 하였다.  


홍산문명이 동으로 이동하고, 이 때부터는 동호라는 명칭으로도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동호 그들은 인종적으로 백인종과 황인종이 다양한 방법으로 섞여있었고 (이는 고고학적 인골발굴로 증명이 되는데, 동호,흉노,돌궐 모두 인종적으로 단일한 집단은 아니었고 민족적 개념은 더더군다 아니었다. 유대인을 보면 황/백/흑 인종이 유댜교라는 믿음으로 히브리 민족을 구성한다. 즉 디아스포라 같은 이동성이 많은 집단에게 인종은 별문제가 되지 않고, 같은 집단을 구성함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있는 예이다) 


또 기후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진 당시 상황에서, 인종을 초월하여 선진기술(야철이나 농업,직조기술)의 가진 집단의 유입은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본론으로 동아가서 동호의 계파(전 홍산문화 집단)도 여럿이고, 특징적인 신화도 여럿이었으나, 가장 우리민족에게 익숙한 단군신화를 통해 그들의 단면만 보면 전형적인 이질적 집단간의 결합이 신화에 녹아있다. 


우선 단군이 떠나온 지역이 동호의 전통적 거주지가 아님은 신화가 증명하고 있으며, 단군무리 정확히 그 아버지의 무리가(환웅) 뛰어난 농사기술을 지니고 있으며, 천문지식을 지니고 있었으나, 원 거주지의 인구증가 혹은 거주지의 환경파괴로 떠나온 집단이었고, 

환웅집단이 첫 정착지(내몽골로 추정, 홍산문명이 있던 적봉)에서 마주친 두 집단이 웅족과 호족(곰,호랑이 토템족)이다. 


즉 환웅집단의 정체성은 신화를 통해서만 본다면 이주집단이고(원 거주지는 명확히 비정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서쪽의 이란북부라는 추정을 해 본다 ) 원 거주지가, 빠르게 사막화가 진행되어 내몽골쪽으로 이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한 무리의 이주민과 정주민인 웅족의 결합(이주민은 코카서스인, 정주민은 고아시아인임을 짐작해 보면 두 집단의 새 수장인 단군은 백,황 혼혈로 추정된다)은 내몽골의 사막화라는 반복되는 위기에 직면하고, 그들 두 집단이 융합된 첫 정주지는 점차 사막의 땅으로 변화하였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당시 상황을 흉노와 동호족간의 전쟁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야기 해 준다

(내몽골 지역으로 새로 유입된 흉노세력과 기존의 동호세력간의 전쟁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흉노선우 묵돌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된 자로, 동호는 흉노를 깔보아서 여자, 말등을 요구하였고 흉노의 묵돌선우는 묵묵히 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러자 동호는 방심하였고, 동호와 흉노 모두에게 쓸모없는 땅을 동호가 요구하자 흉노의 묵돌은 분개하며, 동호를 철저히 붕괴시켜 동쪽으로 내 몰았고 그들이 훗날 선비와 오환의 후예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신채호는 동호 세력을 환웅-단군세력으로 보아았는데, 요사히 어느정도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당시 동으로 쫓겨간 오환의 후예인 거란이 요나라를 건국하고(물론 우문선비가 거란의 선조라는 설도 있다), 자신들이 단군조선의 적법한 후계자임과 8조법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단군조선은 우리민족 만의 나라가 아니었다. 


아무튼 동호 세력(이 동호에는 선비, 오손, 실위, 숙신,그리고 단군조선이 포함된 개념이다. 단군조선은 우리만의 나라도 아니고 당시 조선지배세력은 또 황인도 아닌 백,황 혼혈의 다양한 인종이었다) 


아무튼 환웅이 세웠다는 신시를 버리고, 왜 단군이 새로 아사달에 도읍을 했는지는 명확하다. 1)흉노등 외부유목 세력의 압박  2)기존 내몽골 적봉지역의 사막화 3)만주지역에서 발견된 콩의 놀라운 식량학적 우수성 4)농경이 가능한 지역으로의 이동 나는 항상 왜 단군은 아버지의 나라를 그리 쉽게버리고 새로운 땅으로 가야만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기후학적 측면에서 사막화가 진행되는 적봉에서 남만주로의 이동은 필연적인 것이였고, 농경을 위한 근거지 이동이, 목축을 위한 이동을 행한 흉노에게 패배한 역사로 기록된 사마천의 사기의 기록이 맞다, 틀리다 굳이 평가할 의미없이 동호(구 홍산문화 세력)이 남만주와 요동으로 이주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즉 흉노에게 밀린탓도 있지만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자발적 이동이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그 광활한 영토를 빼앗기고 세력을 잃었다는, 중국의 사기의 기록은 그저 중국인들의 눈에, 이동한 동호족 대신 유목민인 흉노가, 그들의 전쟁의 역사의 상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환웅과 단군사이에는 부자관계의 시간 그 이상의 시간과 세대가 존재했을 것이다. 새로운 이주민(환웅세력)과 기존 정착민(웅족)의 결합의 시간, 그리고 내몽골 적봉지역의 사막화의 시간을 고려하면 적어도 30년 많게는 500년의 격차가 환웅과 단군사이에는 존재할 것 이다. 


다만, 단군조선이 한국인만의 조상만은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리고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열국시대 -삼국시대 등 역사를 도표로 단순화 하는것은, 어불성설 이다. 


한국의 몇몇 학자들은 고조선의 이칭이 숙신이고, 숙신이 말갈로 여진으로 이어져, 만주족으로 연결이 되었고 여진과 만주족의 두령이 한반도 이주민이니(금나라 시조 아골타는 신라인 함보의 후손) 한국의 역사로 편입되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만주족의 청나라는 '만주원류고'에서 분명히 단군조선의 신화를 채택하고 있지않고, 그들의 역사에 고구려를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오히려 발해를 언급하여 고구려와 발해를 역사적으로 분리시킴으로서, 현재 발해가 우리역사라는 한국인의 생각을 위협한다. 


그럼에도 특이한것은 오히려 신라를 그들의 역사로 인식하고 길림성의 길림이 신라의 계림에서 명칭이 왔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인문학은 절대성이 없다. 즉 상황과 힘의논리가 지배한다는 말이다. 거란의 요나라도 단군조선을 그들의 부모국가로 여기면서도, 또 단군신화는 채택하지 않으나, 8조법 등 조선의 문화적 부분은 당시 고려나 여진에 비해 강하게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정리하면 


1)환웅집단은 기후난민으로 내몽골에 이주한 집단 이었다 


2)그들은 농경이 가능한 내몽골에서 웅족(퉁구스)과 결합하여 

  홍산문화를 이루었다.     


3)내몽골 적봉지역도 농경이 어렵게 되자 남만주로 근거지를 옮겼고, 그들의 땅내몽골을 흉노가 차지하면서, 중국인의 눈에서 벗어 났고, 그것은 동호 세력의 쇠망처럼 중국인의 눈에 보였다 


4)환웅-단군은 부자관계가 아니라, 적어도 30년 많게는 500년의 gap이 있고 단군이 조선을 세운것은 선조상 환웅처럼 내몽골 적봉이 더이상 농경이 불가능한데  있다 


5)만주에서 발견된 콩은 종족유지를 위한 기초식량의 역할을 했고, 당시 만주는 지금의 한반도 정도의 온화한 기후였다 

6)당시 한반도는 베트남 정도의 열대기후였다(한반도의 코끼리 발자국 화석, 물소화석을 통해 유추)


결론) 
1)단군조선은 독점할 수 있는역사가 아니며, 여러종족(거란,실위,숙신,예맥,선비,오환)이 공유하는 역사이다. 

2)단군조선족은 혼혈족, 기후난민의 역사이다. 

3)단군조선과 흉노는 인종이 아닌, 농경이냐 유목이냐 라는 생계의 유무로 나뉘고, 중국과는 재배하는 곡식과 도구의 재료로 나뉘지 인종적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당시 모든 세력의 공통적인 특징이며ㅡ인종적, 민족적 구분은 17세기 이 후의 일이다. 

4)기후는 인류역사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며, 기후를 읽어야 역사를 읽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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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8-02-14 00:03
 
동북쪽의 동이족은 조금 양상이 달랐다. 동이족은 내몽골 적봉에서 부터, 요서의 하점층문화까지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지만, 그들의 환경은 더 척박했고, 그들은 생존을 위한 식량자원의 확보가 중요해 졌다.

- 당시 중국 사서에서 나오는 동이족이란 산동반도와 회하 지역에 사는 종족들을 뜻하지, 그 동쪽의 종족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한 시대 이후 동이족에 漢한족으로 편입하면서 확장된 동이족의 개념입니다.

산동반도와 회하 지역에는 동이족이, 그리고 난하 이동의 지역에는 동이와는 별개의 숙신족이 있었고... 이 숙신이 바로 조선입니다.

成王旣伐東夷肅愼來賀
성왕이 동이를 정벌하자, 숙신이 와서 축하했다.

https://zh.wikisource.org/wiki/%E5%B0%9A%E6%9B%B8%E8%AA%AA_(%E5%9B%9B%E5%BA%AB%E5%85%A8%E6%9B%B8%E6%9C%AC)/%E5%8D%B76

그리고 우리 고대역사를 동이족으로 치부하고, 우리 민족의 발원지가 막연히 북방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유사역사학입니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 자생했습니다. 바이칼 같은 북방이나 중국 등의 남방과는 두개골만 봐도 차이가 있습니다. ( 사실 북방과 남방을 나누는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

-상고시대의 두개골에 대한 근래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것과 주변 것의 평균관계편차는 중국 황하 유역 사람은 0.81, 일본 쯔구모 사람은 2.51, 연바이칼 사람은 1.65, 자바이칼 사람은 0.79로 나타났다. 평균관계편차가 0.4보다 클 때는 통계학적으로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위의 수치는 우리 민족이 처음부터 한반도와 만주에서 독자적 특성을 지니고 형성된 민족임을 알게 해준다.

http://lawsun.com/kosay/minjok2.htm

우리 민족이 북방에서 온 것보다는
도리어 우리 민족이 북방으로 진출한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당장 빗살무늬토기만  보더라도
동유럽에서 시베리아, 만주-한반도 지역으로 이어지는 분포도에서
가장 오래된 빗살무늬토기는 바로 한반도-만주 지역에서 출토됩니다.

환웅집단이 코카서스인이다?
그들은 만주-한반도 지역에서 자생한 토착 종족입니다.

카자흐나 바이칼, 코카서스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과의 연관성은, 우리 민족이 그 지역으로 진출했음을 증명합니다.

언어학계에서도도 한국어를 알타이어족이 아니라 고립어로 보지 않습니까?

우리는 고대부터 중국이나 북방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민족 문화 체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Vanguard 18-02-14 01:47
 
민족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한동안 주장하시더니 여기선 민족이라는 단어를 많이 언급하시네요?
          
Vanguard 18-02-14 01:49
 
"민족은 허상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나머지는 인간의 관념이죠."

이거 꼬마러브 님이 하신 말씀.
               
꼬마러브 18-02-14 10:42
 
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만약 민족이라는 것이 혈연적인 의미가 아니라 관념적인 뜻이고

그것이 자유롭게 가입-탈퇴할 수있는 형태라면

저는 굳이 민족을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민족을 부정하든 말든

역사는 사실 그 자체로 그냥 존재하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습니다.

고대의 한반도-만주 지역은 비록 나라가 다르더라도 단군을 중심으로 하나의 사상과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Vanguard 18-02-14 11:34
 
아하 그렇군요. 저번에 완강히 민족의 개념을 부정하시길래 이번 댓글을 보고 심히 혼란스러웠거든요. 꼬마러브 님 글은 항상 잘 보고 있어요.
밥밥c 18-02-14 02:05
 
사실 생각해보면 지구온난화는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지요.

 몇천년전만 하더라도 훨씬 기온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때가 더욱 살기 좋았죠.
감방친구 18-02-14 04:27
 
재야사학계의 상상적 역사주의 가운데 한 문제가 단군과 환웅을, 나아가 고조선의 주체세력을 외부, 그것도 코카서스 등지에서 찾는 외부유입론입니다

이거는 일제식민사학의 조선역사 비주체성론과 하등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하북성 동북지역으로부터 대흥안령 서부의 내몽골지역의 동쪽에 해당하는 만주, 연해주, 한반도는

후기 구석기ㅡ신석기ㅡ청동기에 이르는 누만 년 동안 독자적인, 고유한 문화를 창달하고 누린 지역입니다
history2 18-02-14 08:54
 
민족이란 단어는 수정하도록 하구요.... 꼬마러브 님의 지적은 정확하십니다...다만 여전히 머리속에서 지적하신 부분에 대한 수정의 욕구는 강한데, 정리가 안되네요 .....저도 중국과 북방과는 다른 우리만의 발전모형으로 역사를 지보시켜 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제 스스로 오류를 범하느 부분이 많습니다.....수정 가능한 부분은 다시 수정해 보겠습니다...그리고 이 글은 사실 여전히 환티지의 영역에 있슴도 인정합니다.
history2 18-02-14 08:54
 
기후변동과 역사라는 프레임에 너무 갇혀있는 듯 합니다....제 자신이
6시내고환 18-02-16 20:43
 
고조선이 아시아의 프랑크왕국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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