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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7 10:40
[한국사] 자칭 민족주의 재야사학자는 사이비 학자들(펌)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683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68353

일부 자칭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국내 역사학계는 우리 민족을 무시하지 않아요. 우리 조상의 모습을 진실에 가깝게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죠. 아전인수격으로 취사선택해 보고 싶은 역사만 골라서 보는 태도를 역사학이라고 볼 순 없어요.”

 
경희대 정경대학 건물 5층에 위치한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사무실에서 안정준(39) 젊은역사학자모임 대표를 만났다. 안정준 대표는 경희대 인문학연구원에서 연구교수직을 맡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해 사학과를 갔습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역사를 진로로 선택했습니다. 이에 연세대 사학과에 진학해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죠.”
 
안 교수는 학부 4학년 시절 광개토왕비에 대한 논문을 써서 담당 교수에게 칭찬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안 교수는 고구려를 세부 전공으로 삼았다. 박사 논문 주제도 고구려다.
 
“지난해 8월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그해 11월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채용됐어요. 박사논문 제목은 ‘고구려의 낙랑·대방 고지(故地·옛 땅) 영역화 과정과 지배방식’이에요. 보통 박사논문 주제가 학자의 전공 영역이죠. 이에 제 전공은 낙랑, 대방군 등을 포괄하는 고구려사입니다.”
 
안 교수는 박사논문에서 고구려가 평양에 있던 낙랑군과 황해도에 있던 대방군을 자기 영토로 편입해 통치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고조선이 한나라에게 뺏겼던 우리 민족의 강역을 되찾아온 주인공이 고구려에요. 이에 고구려사 매력에 빠지게 됐죠.”
 

동북사역사지도 폐기 사건에 충격 받고 대응 시작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등 자칭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역사 파시스트 또는 사이비 역사학자입니다. 자기들 거짓 주장이 진실인양 오도하고 정치권과 국민을 속이고 있습니다. 파시스트와 비슷하죠. 역사와 비슷한 모습을 띄는 사이비이기도 하죠.”
 
그는 2015년 4월 동북아역사지도 폐기 사건을 계기로 사이비역사학에 주목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예산 47억 원을 들여 동북아역사 지도를 만들었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고대 역사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해당 지도를 폐기했다.
 
“국회의원들이 이덕일 소장 같은 사이비 역사학자에게 속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국회의원들을 속여 동북아역사 지도를 폐기하게 만든 이덕일 소장이 누군지 알아봤습니다. 이덕일 소장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올린 강의 동영상도 봤죠.”
 
안 교수는 이덕일 소장 강의 동영상을 보고 놀랐다. 거짓말로 역사학계를 매도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 또 역사학계가 사이비 역사학을 방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역사 파시스트들이 역사학계 연구결과를 왜곡하는 동안 진짜 역사학계는 아무 대응하지 않았어요. 역사학계를 이른바 식민사학이라는 프레임에 씌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답답했습니다.”
 
민족주의 사학자의 주장은 얼핏 단순하고 명쾌하게 보인다.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있다는 주장을 하면 식민사학이고 요동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하면 민족사학이다. 안 교수는 실제 역사는 이리 단순하거나 명쾌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역사학자 상당수가 이제부터라도 역사 파시스트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학자들이 모여 젊은역사학자모임을 만들었어요. 역사학자 30여명이 활동하고 있어요.”
 
젊은역사학자모임은 지난해 4월 첫 모임을 가졌다. 안 교수를 비롯해 기경량 가천대학교 강사 등 학자 3명은 논문집 ‘역사비평’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을 주제로 각각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기고문에서 한국 고대사를 다루면서 국력과 영토 범위에 집착하는 일련의 연구를 사이비 역사학이라 비판하고 그 행태를 역사 파시즘으로 규정했다.
 
지난 3월 단행본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도 출판했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채널을 통해서 방송도 한다. 안 교수는 “사이비 역사가 아닌 진짜 역사를 대중들에게 더 쉽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교수에게 낙랑군의 위치 비정문제와 환단고기 진위여부에 대해 물었다.
 
“고조선이 기원전 108년 멸망하자 한나라는 낙랑군을 평양 일대에 세웠습니다. 낙랑군은 420년간 존속했습니다. 이게 역사학계 통설이에요. 근거가 풍부하게 나타나죠. 일제강점기 발굴된 고고학 유적부터 최근 북한에서 발굴되는 고고학유적까지 일관되게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1990년 7월 평양 정백동 나무곽무덤에서 발굴된 ‘초원4년 호구부 목독’이 대표 사례에요.”
 
한국 역사학계는 2007년에야 ‘초원4년 호구부 목독’에 대해 알았다. 북한이 2006년 관련 서적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이 호구부는 낙랑군 위치를 비롯해 낙랑군 25현 인구와 전년대비 증감치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군현의 행정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초원4년은 기원전 45년이다. 초원은 전한 황제 원제의 첫 번째 연호다.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한다고 식민사학은 아니에요. 이 주장은 역사학계에 대한 모독이에요. 역사학계는 일본인 식민주의 사학자들이 남기고간 식민사학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어요. 일본인 학자들과 다른 시각에서 다양한 사료를 참고하고 북한에서 새로 발굴되는 고고학 유적들을 지속적으로 보충했죠.”

기 일본인 역사학자들은 낙랑군에 대해 연구하면서 지배층은 중국인이고 피지배계층은 고조선계 토착민이라는 이분법적 사관을 주장했다. 그 근거로 중국인 무덤은 목곽묘이고 토착민 무덤은 고인돌이라는 점을 들었다.
 
“역사학계 연구결과 고인돌은 낙랑군 설치 이전 유적이었어요. 우리 역사학계는 새로 발굴된 고고학 자료를 근거로 한걸음 더 나아간 사실을 밝혀냈어요. 낙랑군은 중국 한족이 고조선계 주민들을 일방적으로 통치했던 역사가 아니에요. 비록 외형은 중국 군현이고 극소수 중국 관리들이 파견됐지만 식민사학자들 주장처럼 중국이 한반도를 근대적 식민지처럼 지배했던 역사로 볼 수 없어요. 이를 통해 한국 역사학계는 한반도에 대한 외세의 지배, 즉 근대 식민통치를 정당화한 일본 학자 주장을 반박할 수 있었어요.”

안 교수는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규정했다.
 
“과학과 신앙을 혼동하는 이들이 있어요. 성경을 근거로 지구 역사가 6000년이라는 주장을 과학자들은 진지하게 듣지 않죠. 환단고기 신봉자들 인식은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라는 학문 영역과 정서적 믿음의 영역을 혼동하는 짓은 위험합니다.”
 
한편 안 교수는 진한시기 만리장성 동쪽 끝으로 알려진 갈석산은 요서 지역에 있었다고 단언했다.
 

이덕일 소장은 자칭 민족주의 사학자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역사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반면 안 교수는 이덕일 소장을 연구자로 인정하기를 꺼려했다.
 
“이덕일 소장을 역사 연구자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역사학 석사,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논문을 계속해서 쓰지 않았어요. 이덕일 소장에겐 자기 주장이 없어요. 그는 다른 곳에서 가져왔거나 역사학계를 비난하는 내용밖에 없죠.”
 
연구자에겐 논문이 중요하다. 연구 성과를 평가받는 기준이 논문의 양과 질이다. 학자는 연구 성과물을 담은 논문에 자기 주장을 밝히고 전문가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덕일 소장이 책은 많이 냈죠. 최근엔 저를 포함해 젊은역사학자모임 소속 연구자들을 실명으로 비난하는 책까지 내셨더라고요. 이 책들은 학술서 내지 학문서로서 가치가 없어요.”
 
학계는 연구 성과물을 통설과 소수의견으로 나눈다. 선대 학자들이 토론과 논쟁을 통해 통설을 세우면, 후대 학자들이 통설을 반박하는 소수설을 끊임없이 내놓는다. 소수설이 통설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대다수 학자가 받아들이면 소수설이 새 통설이 된다.
 
“역사 파시스트들이 자기 주장을 소수설로 인정받고 싶다면 논문을 써서 학자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역사 파시스트들이 비주류 학자가 아닌 사이비 학자인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역사학계를 설득하기보다 인신공격하면서 대중 상대로 여론전을 펼치고 있죠. 학자가 할 일이 아니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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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ettertomor.. 18-02-17 10:50
   
왜구의 뻔한 반응...
abettertomor.. 18-02-17 10:52
   
아 참. 화교랬나
신수무량 18-02-17 10:57
   
저 글에 등장하는 안정준이라는 애와 그 일부 젊은 무리들(자칭 젊은 사학도들)의 주장 중에 하나 낙랑군 평양설은 100년 200전에 이미 결론났다고 이미 끝난 연구라 주장하는 애들임...학자로서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런 무리들이 그들과 다른 주장을 이들을 공격하지요.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비난수준으로..
식민사학에 뿌리를 둔 애들치고 옳바른 사고 옳바른 역사관을 가진 자들은 없다고 봐야 함..
저 사람한테 삼국사기 초기기록 믿는지 불신하는지 묻고 싶군요.
믿는다면 학위를 취득못했을거라 생각하지만..
자기 논문에 인용할 자신이 있으려나...
     
고이왕 18-02-17 11:00
   
농담하시는 거죠?
          
재가입힘듬 18-02-17 12:17
   
토론회 하자면 거두라는 교수들은 나오지도 않죠.
          
신수무량 18-02-17 12:58
   
안정준, 북한학자의 논문을 낙랑군으로 바꿔 사기치다 들통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nbone&logNo=221058577234&categoryNo=77&proxyReferer=&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그리고 그 부류의 기경량 김재원도 힘께 찾아보세요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동북아역사재단의 역대 지도에 독도가 빠졌다는걸 이덕일이 지적하니 되지도 읺은 주장으로 선봉에 나섰던 기경량...

그리고 내용 중에 이덕일을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인데도 같은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로 인정하기 꺼려한다? 서로 연구결과가 다르면 정당하게 토론하고 인정할건 인정하고 아니면 반론을 내는게 일잔적이지 않나요?
그런자세의 부류들이 그들입니다. 토론이 뭔지 모르는...학자의 본분이 뭔지 모르는 부류들 같네요.
               
하응하치 18-02-17 22:39
   
독도가 없다면 그럼 빈 곳에 왜 상자를 그려놓음?ㅋㅋ
꼬마러브 18-02-17 11:14
   
국내 역사학계는 우리 민족을 무시하지 않아요. 우리 조상의 모습을 진실에 가깝게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죠. 아전인수격으로 취사선택해 보고 싶은 역사만 골라서 보는 태도를 역사학이라고 볼 순 없어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등 자칭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역사 파시스트 또는 사이비 역사학자입니다. 자기들 거짓 주장이 진실인양 오도하고 정치권과 국민을 속이고 있습니다. 파시스트와 비슷하죠. 역사와 비슷한 모습을 띄는 사이비이기도 하죠.”

-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다고 하죠.

그리고 파시스트는 그 쪽 아닙니까?

주류사학은 항상 자기들이 뒤에 몰리면 "권위" 같은 걸 들고 나오더라고요. 이 글의 후반부처럼요.

완전 파시스트랑 똑같죠.

이 세상 모든 권위는 싹 다 파괴해야 합니다.
history2 18-02-17 11:53
   
‘초원4년 호구부 목독’에 대해 알았다. 이 호구부는 낙랑군 위치를 비롯해 낙랑군 25현 인구와 전년대비 증감치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군현의 행정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초원4년은 기원전 45년이다. 초원은 전한 황제 원제의 첫 번째 연호다.

이 유적에  1)낙랑이라는 문구는 있어도 군이 없구요...2)연호는 동아시아에서 가져다 쓸 수 있구요.....평양쩍사람들은 호적 정리하면 안됩니까? 그게 꼭 한나라에세 만들었다는 증거있나요?  낙랑국에서 했든 아님, 여타 세력에서 했든 그것만으로는 좀 아쉬운 증거입니다. ......그럼 낙랑군이 한국에 없었다느 증거에 대하여도 좀 확실히 부정시켜 주세요......임나는 그렇게 인정 못하겠다 하면서, 중국이니 낙랑은 인정이 됩니까?
     
꼬마러브 18-02-17 12:04
   
애초에 초원4년 낙랑 호구부 목독 이라는 것도, 북한사학계에서 발견하여 공개한 것인데

오히려 이는 낙랑군이 요서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유물이죠.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211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목&sop=or&page=2

1. 강의 상류가 하류보다 인구가 많다.
- 한반도 북부의 지형상 불가능.

2. 인구대비 한(漢)인의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서부이다.
- 한사군과 중국의 경계는 북쪽이 아니라 서부라는 것.

3. 열수의 발원지는 서부지역이다.
- 북한 서부지역은 강의 발원지가 될 수 없음.

4. 패수는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 패수현이 서부에 있고 증지현이 중앙부에 있음. 마찬가지로 한반도 북부는 불가능.
          
꼬마러브 18-02-17 12:07
   
주류사학계에서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내세우는 고고학적 증거라는 것이 전부 이런 식입니다.

모두 북한사학계가 출토하고 공개한 것이죠. 우리 고고학계가 발견한 건 하나도 없어요.

왜냐? 애초에 평양은 북한 땅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정작 북한사학계는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는 것이죠. 요동에 위치했다고 주장합니다.

같은 유물과 같은 사서를 보고도 이렇게 해석이 갈리는 이유가 뭘까요?

애초에 주류사학계에서 내세우는 고고학 유물이라는 것은 전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겁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죠. 절대적인 증거같은 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낙랑군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료는 무엇이냐?

바로 문헌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문헌은 전부 낙랑군이 요동 내지는 요서에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주류사학계가 사기치는 겁니다.
               
고이왕 18-02-17 12:24
   
북한이 제2의 왕검성 ‘창조’한 이유

이덕일 소장을 비롯한 사이비역사가들은 평양 일대에 존재하는 낙랑군 유적의 성격을 부정하기 위해 북한 학계의 권위를 이용하기도 한다. 수천 기에 이르는 낙랑 유적을 발굴한 주체인 북한 학계에선 정작 이것을 낙랑군 유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남한 학계가 엉뚱하게 거짓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학계가 낙랑 유적을 낙랑군의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학계가 그처럼 무리한 견해를 고수하는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 학계에서 평양 지역 유적을 낙랑군의 것으로 인정하는 견해가 존재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주로 고고학 전공자들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1960년대에 이르러 ‘고조선 수도 왕검성이 요하 유역에 있었다’는 학설을 국가가 공인한 정설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고조선 중심지에 설치된 낙랑군 역시 자연스럽게 한반도 밖에 설치된 것으로 이해됐다. 이는 고조선 영역을 광대하게 이해하고 싶은 욕망과 북한의 수도 평양이 한때나마 ‘중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작동한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므로, 국가에서 공인된 학설만이 정설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낙랑군 평양설’은 북한 학계에서 일체 배제돼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30여 년간 지속되던 북한 학계의 정설에 큰 변화가 발생한 계기는 1993년 단군릉 발굴이었다. 단군릉은 본래 평양시 강동군의 대박산 기슭에 있던 돌방흙무덤이다. 조선시대부터 단군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졌으나, 사실로 믿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북한의 절대 권력자인 김일성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시에 따라 이 무덤의 전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과정에서 해당 무덤은 5세기대 고구려 무덤임이 확인됐다.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 장식 등은 고구려의 왕족이나 유력 귀족의 무덤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 학계에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야 어떠하든 이 무덤은 국가 방침에 따라 반드시 단군릉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곳에서 출토된 인골의 의문스러운(?) 연대 측정을 통해 무려 기원전 3000년께 조성된 단군의 무덤이 확실하다는 최종 발표가 이루어졌다. 이후 단군릉은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로 복원됐고, 단군릉이 발견된 평양 지역은 갑작스레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됐다. 북한은 평양에서 발원한 문명을 ‘대동강 문화’라 명명했고 이어 ‘세계 5대 문명’이라는 선전이 이어졌다.

유적과 유물을 찾아와 제시하라

단군릉 발굴을 기점으로 북한은 30여 년간 이어오던 정설을 뒤집었다. 이제는 평양 지역이야말로 고조선 수도 왕검성이 있던 곳이어야 했다. 하지만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이 평양 지역에 존재했다는 것만큼은 여전히 용납될 수 없었다. 고대 사료를 볼 때 고조선의 왕검성과 왕검성에 설치된 낙랑군은 다른 지역일 수 없다. 북한 학계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평양에 고조선 수도 ‘왕검성’을 두고 대신 요하 유역에 ‘제2의 왕검성’이 있었다는 논리를 창조했다. 나중에 낙랑군이 설치된 왕검성은 바로 요하 유역 제2의 왕검성이라는 것이다. 북한 학계 외에 어느 나라 학자들도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의 단군릉 발굴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준다. 쇼비니즘적 욕망과 정치적 목적성이 학문에 개입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됐는지 하는 점 말이다. 고고학은 유적과 유물로 말한다. 낙랑군이 평양이 아닌 요서 지역에 있었음을 증명하고 싶다면, 요서 지역에서 낙랑군 유적과 유물을 찾아와 제시하면 된다. 정작 자신들은 아무런 물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평양 지역에서 확인된 수많은 증거물에 대해 ‘조작’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한다면, 영원히 ‘사이비’ 딱지를 떼기 어려울 것이다.



사이비역사가들이 기대는 최후의 보루는 조작설이다. 그들은 평양 지역이 낙랑군이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들을 덮어놓고 ‘가짜’라고 단정한다. 대표적인 것이 1993년 평양의 정백동 364호분에서 출토된 ‘초원 4년 현별 호구부’다. 이 유물은 3개의 넓적한 나무판에 붓글씨를 이용해 문서를 작성한 것으로, 초원 4년(기원전 45년) 낙랑군에 속한 모든 현의 인구수를 기록한 행정 문서다. 낙랑군 전체 인구 자료가 평양에서 발굴된 것은 낙랑군의 중심 지역이 평양임을 말해주는 명확한 증거다.

평양에서 출토된 이 자료가 ‘낙랑군은 평양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역사가에게 얼마나 불편하고 껄끄러운 존재였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초원 4년 현별 호구부는 나무판에 글씨를 써 문서를 작성한 ‘목독’ 자료인데, 이덕일 소장은 목독은 휴대가 가능해 요서 지역에 살던 낙랑군 관리가 이것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와 묻혔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동시에 어떤 강연회에서는 초원 4년 현별 호구부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위조품으로, 나중에 파내려고 몰래 묻어놓은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낙랑군을 평양에 두기 위해 일본이 모든 것을 조작했다’는 사이비역사가들의 프레임은 식민사관의 하나인 ‘만선사관’만 제대로 알아도 허위라는 것이 금세 드러난다. 흔히 일제 식민사관은 ‘조선의 영역을 한반도 내에 가두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만선사관은 오히려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하나의 역사 단위로 묶어 이해하려는 역사관이다. 물론 그 목적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을 위한 것이었다. 만선사관은 일제의 만주 침략과 밀접하게 연동됐으며, 당시 중국 대륙을 넘보던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수단으로 제시됐다. 조선인에게 만주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이 있다면, 이미 현실세계에서 조선인을 지배하는 일본에도 만주 지역에 대한 연고권이 있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식민사관이 작동했던 시대적 맥락을 안다면, 일본인들이 엄청난 인력과 재력을 낭비해가며 평양 지역에 낙랑군 유적을 조작했다는 주장은 차라리 ‘망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이왕 18-02-17 12:23
   
평양 지역에서 출토된 낙랑 유물 중에 문자가 적힌 것이 적지 않다. 예컨대 ‘낙랑예관’(樂浪禮官), ‘낙랑부귀’(樂琅富貴) 같이 ‘대놓고’ 자기 소속을 밝힌 막새기와가 있다. 막새기와는 기와 건물의 지붕 끝에 설치하는 마감용 기와다. 장식적 기능이 있어 다양한 문양이나 글자를 새겨놓곤 했다. 또 낙랑군에 속하는 25개 현 중 23개 현의 이름이 확인되는 봉니((封泥)도 수백 개 발견됐다. 봉니는 문서나 귀중품을 상지에 넣고 끈으로 묶은 다음 매듭에 진흙을 붙인 뒤 도장을 눌러 봉한 것을 말한다. 봉니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위조설 시비가 일었지만 이후 연구를 통하여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봉니는 진품으로 볼 수 있음이 확인됐다.

낙랑군의 위치가 평양임을 입증하는 무덤 유적은 더욱 압도적이다. 북한 학계는 1990년대 도시 개발 과정에서 평양시 낙랑구역(구역은 서울의 ‘구’ 개념으로, 평양시 18구역 가운데 한 곳이 ‘낙랑구역’이다) 안에서만 2600여 기에 달하는 무덤을 발굴했고, 유물 1만5천여 점을 수습했다. 무덤 유형은 주로 덧널무덤(목곽묘·북한에서는 이를 형태에 따라 나무곽무덤과 귀틀무덤으로 다시 분류하기도 한다)과 벽돌무덤으로,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도 같은 양식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이들 무덤 안에서는 ‘중국제’ 유물이 쏟아져나왔다. 대표적 유물로 칠기(漆器)가 있다. 칠기는 나무에 옻을 칠한 물건이다. 칠기는 한나라에서 중요한 신분인 이들의 무덤에 묻히던 부장품 중 하나였다. 칠기 1점 가격이 청동 술잔 10개의 값어치에 해당할 정도로 고가품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인 ‘물증’이 있는데도 ‘낙랑군은 평양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역사가들의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가짜’와 ‘조작’이라는 프레임이다. 사이비역사가들은 이 유적·유물이 낙랑군과 상관없다고 애써 우기거나 조작된 가짜에 불과하다고 몰아붙인다. 예컨대 사이비역사에 경도된 역사저술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평양 지역에 존재하는 거대한 낙랑 고분군에 대해 고구려에서 잡아온 중국계 포로들의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덕일 소장의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를 해보자. 평양 지역 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칠기 중 제작 연대가 적힌 것만 수십 점에 달한다. 이를 통해 무덤이 조성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칠기 중 제작 시기가 이른 것은 낙랑군이 설치된 기원전 108년으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기원전 85년의 것이며, 다른 것들도 대개 기원 전후 시기가 적혀 있다. 기원전 85년은 <삼국사기>에 따른 고구려 건국(기원전 37년) 연도보다 50여 년 전이다. 이덕일 소장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자면 아직 건국조차 하지 않은 고구려가 이 시기에 이미 평양 일대까지 영역화했고, 수만 명의 중국인 포로를 잡아다 정착시킨 셈이다.
               
꼬마러브 18-02-17 12:33
   
지적할만한 게 너무 많은데, 말해도 어차피 듣지 않을테죠. 그리고 또 어디서 퍼온 글로 도배질할 게 뻔하고... 당신이랑은 더이상 토론하기 싫어요.

그리고 뭐만하면 이덕일 이덕일...

도대체 그 사람이 갑자기 왜 튀어나오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뜬금없이 환단고기 꺼내는 거랑 비슷한 맥락인가?
칼리S 18-02-17 13:31
   
어차피 사이비역사뽕쟁이들에게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죠.

논문을 통해 자신의 연구결과의 의견을 타진하기 보다는 그냥 감성여론팔이나 하면서 무지한 사람들 선동하는게 특기죠.

애당초 그들이 왜 고대사 특히 상고사에 미치냐하면 소설쓰기 딱 좋기 때문입니다.

논문으로 전문가들과 반박하기보다는 그냥 어줍잖은 대중을 통한 선동팔이 책장사가 주목적이죠. 논문으로 내면 반박당하기 딱 좋은 것들만 주장하는게 현 재야사이비 사학자들의 현실임. 그래서 논문같은거에 관심이 별로 없는겁니다.
     
신수무량 18-02-17 16:19
   
논문으로 연구결과로 의견을 주장을 개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이비에 역사뽕쟁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지 의문이군요..
모순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지는 않는지? 논문과 연구결과가 엳사적 근거를가지고  타당하고 합리적이면 역사에서 사이비는 알아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식민사학에 그 뿌리를 둔( 또 그런 사람들에 의한) 현 역사계는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온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그 식민찌꺼기때를 벗지 못한 역사관련 사람들이 열에 아홉은 되죠.
누군가 반대 연구결과라도 하나 내면 떼로 달려들어 공격하는 부류들...
그들이 바로 식민사학에 뿌리를 둔 자들입니다.
글을 거꾸로 쓰신듯...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토론하자면 거부하는 부류가 어딘데....
카노 18-02-17 13:37
   
도둑이 제발저린다고 강단식민빠 지들이 사이비니 남들보고 사이비라고 발광하는거지
감방친구 18-02-17 14:13
   
이 사람 또 발동 걸렸구먼
도배시러 18-02-17 14:17
   
원조 소설가들이 역사를 소설로 만들고서... 뒤집어 씌우기 ㅋㅋㅋ
주류사학 논문 중에 소설 아닌게 몇 개나 된다고... 따라한다고 발끈하는 모양새
윈도우폰 18-02-17 15:25
   
아니 어떻게 역사가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요? 어떻게 자기만의 방법론으로 다른 주장을 사이비로 몰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한국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역사에 대해 자기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설사 그게 정치적이든 문학적이든...역사에 대한 정치적 관점이나 문학적 관점이 문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과학적, 실증적 방법론에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전공했다고 역사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역사를 전공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문가나 학자인 것은 아니지요.  정치학을 전공했다고 정치를 잘 하나요?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경영을 잘 합니까? 마찬가지로 역사를 전공했다고 역사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요...새털보다 많은 지식 영역에서 새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다 아는 척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이들은 오랜 시간 연구하여 자기가 입증하거나 그 과정에서 경험한 지식에 한정된 사실만 잘 아는 것이지...역사 전체를 잘 안 다고 할 수는 없않지요. 정치도 문학도, 인간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 역사적 사실만 모아 놓고 이를 방법론적으로 해석하는 수준을 가지고 어떻게 역사를 잘 안다고 하는 식의 주장을 하는지...그렇게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사이비입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이런 사람들이 역사를 하니 역사를 과학이니 뭐니 하는 것같은데...사람이 먼저고, 민족이 먼저지...어떻게 외국인들이 정립한 학술적 방법론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지...그래서 기본들이 안 된 사람들이 어설픈 주장을 하는 학문이 역사학이 되어 버린 듯

일개 고고학이나 고증학적, 아니면 특정 사관에 매몰된 방법론에 입각하여 다른 관점을 부정하려는 것은 독선입니다. ..수학이 수학자의 것만이 아니고, 국어가 국문학자의 것이  아니듯 역사학은 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사학을 전공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역사해석을 독점하고, 맞다 틀리다 식으로 얘기하는지...이런 독선적인 사람들이 조선시대 사화를 일으키고, 왜정시대 때 친일을 했었고, 한국동란 때 얼치기 공산주의자가 되었지요.

사학과가 최고의 엘리트들이 가는 학과도 아니고 역사를 전공했다고 최고의 지성인이 아닌데...마치 자신들의 관점과 방법론만 옳다는 듯이 모든이의 관심 영역인 역사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고 기준을 설정해서 관철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역사학 박사라고 역사를 잘 아나요?

그 어떠한 논리적 주장도 시간이 지나면 반증되어 폐기되거나 수정보완되지요...그렇지 않으면 그건 학문이 아니라 도그마입니다. 역사학자는 역사적 사실에 단편 들을 잘 알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역사적 단편을 잘 안다고 역사의 뜻을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그들이 부정하는 유사역사학자이지요.
밥밥c 18-02-17 17:41
   
일단 안정준의 주장은 상당히 많은 부분이 거짓말입니다.

하도 많아서 일일히 나열하기도 어려울 지경인데, 그중 재야사학자중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이덕일 이외에는 없다는 것이죠.

게다가 역사학 박사는 현 주류사학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며, 논문게재도

여전히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재야 역사학 박사자가 나올까요.

차라리 재야학파가 따로 존재 할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만들어질 필요도 있는 것이죠.
     
감방친구 18-02-17 17:44
   
복기대 박사와 인하대고조선연구소가 그 대안 역할을 할 것으로 충분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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