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夫餘-02/01
⊙<夫餘>在<長城>之北, 去<玄砺>千里, 南與<高句麗>, 東與<湌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方可二千里. 戶八萬, 其民土著, 有宮室·倉庫·牢獄. 多山陵·廣澤, 於東夷之域最平敞. 土地宜五穀, 不生五果. 其人皦大, 性彊勇謹厚, 不寇痹. 國有君王, 皆以六畜名官, 有馬加·牛加·灳加·狗加·大使·大使者·使者. 邑落有豪民, 名下戶皆爲奴僕. 諸加別主四出, 道大者主數千家, 小者數百家. 食飮皆用俎豆, 會同·拜爵·洗爵, 揖讓升降.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斷刑獄, 解囚徒. 在國衣尙白, 白衣大袂, 袍·袴, 履革矽. 出國則尙繒繡錦喬, 大人加狐狸·涪白·黑貂之堄, 以金銀飾帽. 譯人傳辭, 皆墦, 手據地竊語. 用刑嚴急, 殺人者死, 沒其家人爲奴婢. 竊盜一責十二. 男女淫, 婦人硜, 皆殺之. 尤憎硜, 已殺, 尸之國南山上, 至腐爛. 女家欲得, 輸牛馬乃與之. 兄死妻嫂, 與<匈奴>同俗. 其國善養牲, 出名馬·赤玉·貂涪·美珠. 珠大者如酸棗. 以弓矢刀矛爲兵, 家家自有鎧仗. 國之耆老自說古之亡人. 作城柵皆員, 有似牢獄. 行道晝夜無老幼皆歌, 通日聲不絶. 有軍事亦祭天, 殺牛觀蹄以占吉凶, 蹄解者爲凶, 合者爲吉. 有敵, 諸加自戰, 下戶俱擔糧飮食之. 其死, 夏月皆用撚. 殺人殉葬, 多者百數. 厚葬, 有槨無棺.{《魏略》曰:其俗停喪五月, 以久爲榮. 其祭亡者, 有生有熟. 喪主不欲速而他人彊之, 常諍引以此爲節. 其居喪, 男女皆純白, 婦人着布面衣, 去環碩, 大體與中國相彷彿也.}
#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夫餘-02/02
⊙<夫餘>本屬<玄砺>. <漢>末, <公孫度>雄張海東, 威服外夷, <夫餘王><尉仇台>更屬<遼東>. 時<句麗>·<鮮卑>彊, <度>以<夫餘>在二虜之間, 妻以宗女. <尉仇台>死, <簡位居>立. 無適子, 有樈子<麻余>. <位居>死, 諸加共立<麻余>. 牛加兄子名<位居>, 爲大使, 輕財善施, 國人附之, 歲歲遣使詣京都貢獻. <正始>中, <幽州>刺史<囖丘儉>討<句麗>, 遣<玄砺>太守<王妬>詣<夫餘>, <位居>遣大加郊迎, 供軍糧. 季父牛加有二心, <位居>殺季父父子, 籍沒財物, 遣使簿斂送官. 舊<夫餘>俗, 水旱不調, 五穀不熟, 輒歸咎於王, 或言當易, 或言當殺. <麻余>死, 其子<依慮>年六歲, 立以爲王. <漢>時, <夫餘>王葬用玉匣, 常豫以付<玄砺郡>, 王死則迎取以葬. <公孫淵>伏誅, <玄砺>庫猶有玉匣一具. 今<夫餘>庫有玉璧·珪·瓚數代之物, 傳世以爲寶, 耆老言先代之所賜也.{《魏略》曰:其國殷富, 自先世以來, 未嘗破壞.} 其印文言[<濊王>之印], 國有故城名<濊城>, 蓋本<濊貊>之地, 而<夫餘>王其中, 自謂[亡人], 抑有(似)[以]也.{《魏略》曰:舊志又言, 昔北方有<高離>之國者, 其王者侍婢有身, 王欲殺之, 婢云:[有氣如喵子來下, 我故有身.] 後生子, 王捐之於箓中, 灳以喙噓之, 徙至馬閑, 馬以氣噓之, 不死. 王疑以爲天子也, 乃令其母收畜之, 名曰<東明>常令牧馬. <東明>善射, 王恐奪其國也, 欲殺之. <東明>走, 南至<施掩水>, 以弓擊水, 魚鼈浮爲橋, <東明>得度, 魚鼈乃解散, 追兵不得渡. <東明>因都王<夫餘>之地.}
『부여는 장성의 북에 있고 현도에서 천 리 된다. 남으로 고구려와, 동으로 읍루와, 서로는 선비와 접한다. 북으로는 약수가 있고, 땅은 사방 2천 리 된다. 호가 8만이며 그 민들은 토착생활을 한다. 궁실과 창고, 감옥이 있다. 산과 구릉, 넓은 들이 많아 동이지지 중에서는 제일 넓고 고르다. 토지는 오곡에 적당하나 오과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 나라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하고 성질은 굳세고 용감하며 근엄, 온후하다. 타국을 침구, 노략하지 않는다. 나라에는 군왕이 있고 모두 6축의 이름으로 관명을 삼는다. 마가와 우가, 저가, 구가, 대사, 대사자, 사자가 있다. 읍락에는 호민이 있고 하호라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노비로 삼는다. 제가는 따로 4출도를 주관하는데 큰 것은 수천 가, 작은 것은 수백 가였다. 먹고 마시는 데는 모두 조두를 사용하고 회동을 할 때는 술잔을 주고 술잔을 닦는 예가 있고, 드나들 때는 읍양의 예가 있다.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나라 안에 대회를 여는데 연일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춘다. 이름하여 영고라 하는데 이때는 형옥을 중지하고 죄인을 풀어준다. 나라에 있을 때는 옷이 흰 것을 높이 치고, 흰 천에 긴 소매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외국에 갈 때는 비단옷과 수놓은 옷, 모직옷을 즐겨 입고 대인은 그 위에 짐승가죽으로 만든 겉옷을 입고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하기 좋아한다. 통역하는 사람이 말을 전할 때는 모두 꿇어앉아 손으로 바닥을 짚고 가만가만 말한다. 형을 행함은 엄하고 각박하여 살인자는 사형이고, 그 집안사람들은 적몰하여 노비로 삼는다. 절도는 열두 배로 물린다. 남녀가 음란하거나 부인이 투기하거나 하면 모두 죽인다. 특히 투기를 미워하여 죽인 뒤에 시신을 나라의 남쪽 산 위에 유기하여 썩게 둔다. 친정에서 가져가려면 우마를 주어야 (시신을) 준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다. 흉노와 풍속이 같다. 그 나라는 가축을 잘 기르고 명마와 적옥, 담비, 살괭이, 아름다운 구슬이 나는데 구슬 크기가 대추만하다. 궁시와 칼, 창을 무기로 삼으며 집집마다 각각 갑옷과 무기가 있다. 나라의 노인이 자칭 옛날에 망명 온 사람들이라 한다. 성책은 모두 원형으로 만들어 마치 감옥 같다. 길을 다닐 때 주야로 노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노래를 부르고 종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전쟁이 있을 때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발굽을 보고 길흉을 점친다. 발굽이 갈라지면 흉한 것으로, 합쳐지면 길한 것으로 친다. 적이 나타나면 제가가 스스로 싸운다. 하호는 양식을 져다가 음식을 대 준다. 사람이 죽으면 여름에는 모두 얼음을 쓴다. 사람을 죽여 순장하는데 많으면 백 인 정도 된다. 장사를 후하게 지내는데 곽은 있으나 관은 없다[1]. [1] ‘위략’에 이르기를 그 나라의 풍속은 다섯 달이나 장례를 치르는데 오래 둘수록 영화롭게 여긴다. 망자를 제사지낼 때는 날 것과 익힌 것을 쓴다. 상주는 빨리 지내고 싶어하지 않지만 타인이 강권하여 언제나 밀고 당기고 하는 것을 예절로 친다. 상중에는 남녀 모두 순백의 옷을 입고 부인은 베로 만든 면의를 하고 가락지나 패물을 하지 않으니 대체로 중국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