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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0 12:20
[한국사] 대마도 소유권과 샌프란시스코 조약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959  

 대동여지도에는 대마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동여지전도에는 대마도가 들어가 있죠. 

 그 이유는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선생이 직접 실측해서 갔다 온 곳을 그린 지도입니다. 

 그러나 대동여지전도의 대마도는 그가 직접 갔다 오지 않고 그린 지도죠. 그 이유로 하여 대마도의 실제 모

 습과 많이 다르고, 축척도 엉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유권은 외교권을 상실한 을사조약이 정확한 상실일이라고 하더군요! (국제법적으로는) 

 그리고 맥아더 정부 훈령에 대마도는 일본영토로 규정되어,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년을 한국이 제외한 상황 

 에서 태평양 전쟁과 관련이 있는 국가들이 서명하면서, 현재 일본 영토가 되어 버렸습니다

 조선시대에 대마도는 조선인이 갈 수 없는 땅이었죠. 조선정부가 출입을 엄격히 막았기 때문입니다. 

 즉, 대마도에 대한 영토 인식은 분명히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또 갈 수 없는 땅 이기도 했습니다. 


 결론) 대마도는 조선인의 인식상 우리땅 임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내지인(조선)이 대마도로방문할 수 없게
  
    만든것이 이런 대마도 상실로 이어 진 것 같습니다.....다 알고 있으시겠지만, 대마도주 종씨가문도 원래

    는 한반도에서 이주한 송씨 가문입니다.

ps 대마도주에 대하여) 대마도 옛 도주(島主)들 가문인 '종씨(宗氏)'의 조상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송씨(宋氏)'라는 문헌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1일 대마도 관련 언어 전문가인 황백현 박사에 따르면, '대마도' 가 초대 대마도주로 추앙되던 

종중상(宗重尙)에 대한 관광안내판 내용을 바꾼 점을 이상하게 여겨

문헌조사를 하던중 '동래부지'(東萊府誌, 1740년 조선 영조16년 박사창(朴師昌) 편찬)에서 

대마도주 종씨는 원래 한국의 송씨라는 기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동래부지의 대마도항목에는 

'대마주는 옛적 계림(鷄林, 신라)에 예속돼 있었으나 

어느 때 왜인이 점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도주종씨(島主宗氏)는 

그 선조가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씨로 바꾸고 대대로 도주가 됐다'고 기록돼 있다.

또  동래정씨 문중 시조 묘역이 소재한 화지산(和池山, 부산 부산진구 소재) 항목에 

'구전(舊傳)에 대마도주 종씨의 조상도 이 산에서 장사 지냈다 하나 지금은 그 곳을 알 수 없다. 

술사(術士)가 말하기를 정씨의 자손은 큰 벼슬을 맡은 자가 많고, 

종씨 역시 대대로 도주(島主, 대마도주)를 세습하니 그 귀함이 비슷하다'고 기록돼 있다.

이 같은 기록으로 미뤄 대마도주들은 '일본인 종씨'가 아니라 '한국인 송씨'이며 

초대 대마도주의 묘역도 대마도가 아닌 부산 땅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명 관광지인 이즈하라시 카마자카 전망대 안내판에는 

종중상이 초대 도주라고 오랫동안 적시돼 있었으나 

지난해 초대 도주가 종중상이 아니라는 내용이 적힌 새로운 안내판이 설치됐다는 것이다.

당초 안내판에는 

'아비류 군대를 토벌한 종중상은 대마도 초대 도주 자리를 차지했다'고 적시돼 있었으나 

새로 세워진 안내판에는 '1246년 쓰시마 통치자 아비류를 여기서 격전 끝에 무너뜨려 

종씨가 쓰시마 도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역사가 오랫동안 전해져 왔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역사 연구로 판명되었다'고 왜곡됐다는 것이다.

종중상의 무덤이 대마도에 없는 것은 객지인이 대마도 도주가 되는 등 출세했고 

당시 풍속에 따라 사망후 시신을 고향 선산인 부산 화지산에 묘를 썼기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씨 대마도주는 

초대 종중상에서부터 일본 메이지 정권에게 관인을 반납한 

마지막 태수인 34대 종의달까지 448년간 대마도를 통치했다. 

* 샌프란시스코 조약 영토 사항) 

제2항:영토 포기 또는 신탁 통치 이관[편집]

조약의 한계

이 조약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국인 한반도 및 중국 본토에 있는 정부의 참여가 배제되었다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중국 대표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모두 회의에 초청받지 못했고, 소련은 참가했지만 조약에 서명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대한민국 정부와 북한 정부는 당시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초대받지 못했다.


 (대동여지전도) 
대동여지도 - 대동여지도를 축소한 대동여지전도
 
(대동여지도)
[실화 VS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2016)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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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칸 18-02-20 13:56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는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일본은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대마도를 거점으로 1389년 창왕 1년에 박위가 대마도 1차 정벌을 했다. 2차 정벌은 1396년 조선 태조 5년, 3차 정벌은 1419년 세종 1년에 이종무에 의해 정벌한 후, 세종2년(1420년) 조선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켜 500여 년간 우리 땅으로 복속시켰다.
     
촐라롱콘 18-02-20 20:15
   
대마도가 다분히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으로 경상도에 예속된 땅이라면.....

조선중앙이라면 이조에서, 지방이라면 경상도 또는 경상감사가 대마도 또는

조선의 지방관에 불과한 대마도주를 통제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팩트는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킨 세종시기와 그 이후에도 여전히

대마도와의 문제는 이조가 아닌 외교를 담당하는 예조에서 관할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사실상 체류한 이들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대마도인들이었던

조선전기의 3포와 조선후기의 초량에 어째서 왜관이라는 명칭을 붙였을까요....???
뚜리뚜바 18-02-20 14:13
   
헐 그럼 임진왜란 당시도 대마도주는 조선인이였다는거네 ;
     
아마르칸 18-02-20 14:23
   
http://levi.tistory.com/365
이거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아마르칸 18-02-20 14:27
   
對馬島本是我國之地'(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 이는 세종대왕이 선언한 것을 실록이 기록하고있는 글귀다. 대마도(對馬島)는 명백히 우리영토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50km,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138km이다. 이 대마도에 고대부터 한국인이 건너가 살았다(魏志) 고대 馬韓(마한)과 마주보는 땅이라 하여 우리 선조는 「對馬島」로 명명하였다. 세종대왕은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對馬島)의 왜구를 토벌하고 확실하게 한국령(경상도)에 예속시켰다. 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 (백두산은 머리고, 대관령은 척추며, 영남의 대마(대마도)와 호남의 탐라(제주도)를 양발로 삼는다). 이 글귀는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 있는 글귀다.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고 우리 민족의 한쪽다리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그 對馬島를 자기들 멋대로 자기영토로 편입 시켜버렸다. 우리는 일본이 잘라간 그 한쪽발(嶺南之趾)를 되찾아야 한다. 일본은 임진왜란→스페인, 영국 등 서구근대와 세력의 해양영토 약탈시기→식민지시기 등 연이은 불행한 소용돌이를 이용해 대마도를 슬그머니 도둑질 한 후 (1871년에 일방적으로 이스하라 현으로 그 후 1876년에는 나가시키현에 편입)아예 자기들 영토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858
한번 읽어보세요.
     
아마르칸 18-02-20 14:29
   
     
아마르칸 18-02-20 14:34
   
     
아마르칸 18-02-20 14:35
   
     
아마르칸 18-02-20 14:37
   
     
아마르칸 18-02-20 14:43
   
비좀와라 18-02-20 14:48
   
대마도가 조선 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조선 땅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 조선 후기에 있었던 공도 정책의 봉금령 때문입니다. 간도나 연해주 역시 같은 시기에 봉금령이 떨어져서 조선의 영토 임에도 내국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심지어 있던 내국인 마저 소개하던 정책을 폈죠.

봉금령을 한 이유는 일본이나 청나라의 밀 무역 상인이나 불법으로 자원을 채취하는 자들을 통제 하려고 하는데 이들이 현지인과의 결탁으로 저런 행동을 하였다는 인식에서 행한 조치죠.

한 마디로 이해가 전혀 안되는 정책으로 저런 상인을 막을려면 군대나 경찰을 늘려야지 왜 움츠려드냐 말이죠.

지금 서해 상의 중국의 불법어로 행위도 같은 경우 입니다.  만일 중국의 불법어로 행위를 단속하고자 현지인들이 자경단을 만들어 단속하면 과연 정부는 누굴 단속 할 까요? 과거의 정부라면 한국인들을 단속 할 것 이지만 현재의 정부는 다를까요? 정말로?

안용복의 경우도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생각해 보면 됩니다. 과거의 조선정부나 현재의 한국정부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미데카아 18-02-20 15:06
   
독도 다케시마 주장 하듯이 대마도 밀고 나가면 안되렬나.
     
아마르칸 18-02-20 15:10
   
창원시에서 대마도의날이라고 조례했었네요.
          
햄돌 18-02-20 17:25
   
벌써  13주년이라는데
하응하치 18-02-20 17:00
   
이게 사실이면 예조참급 도도웅와는 조선 조정에 조선 땅을 조선에 편입해달라고 요청한게 되는군요ㅋㅋㅋㅋ
실록 찾아보시면 조선이나 대마도주나 대마도의 소속은 일본국으로 인식하고있습니다.
     
재가입힘듬 18-02-20 18:33
   
대마도는 고려 때 고려 말 목장으로 이용되던 섬이었고요,
원 간섭기에 들어서면서 제대로 관리를 못하게 되면서 공도정책등으로
왜구들이 들어와 정착한 겁니다.
원래 고려 땅이었는데 제대로 관리가 안된 상황에서 조선으로 바뀌고 하면서
조선에 편입해 달라고 한 것이죠.
대마도 밑에 있던 일기도(현 이키섬)주가 대마도주에게 왜구들 때문에 못살겠다
한번 엎어버리자고 한적도 있는데 대마도주가 일찍 죽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가죠.
이 말은 일기도에 들어온 조선군 장수에게 일기도주가 한 말 입니다.
현재는 대마도만 말하지만 기록에 보면
당시에 일기도(현 이키섬) 사람들도 자신들을 조선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걸 알 수 있죠.

아마르칸님이 위에 실록 보여주셨죠.
대마도를 왜국이 아니라 조선땅으로 인식했어요.
또한 대마도는 조선에서 왜로 건너가는 마지막 항구 역할을 하던 도항증을 발부 해 주던 곳 입니다.
또한 조선 후기까지도 대마도는 조선에서 보내주는 쌀과 옷, 책으로 살아가던 곳 입니다.
          
하응하치 18-02-20 18:49
   
실록 전문을 보면 신라때 경상도에 예속되었다는 말이던데요? 그렇게 좋아하시는 실록에 일본국 대마도가 꽤나 나오죠 ㅋ
               
재가입힘듬 18-02-20 18:53
   
대마도가 원래 가야 땅이었는데 신라에 복속되죠.
그후 신라 국력이 약해지면서 왜구들이 대마도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신라 장보고 장군에 의해 한번 토벌당하고 그 뒤로는 대마도 땅에 들어오지 않아요.
고려 말에 대마도에 들어오죠.
신라 장보고 장군 이후로 대마도는 고려 때 목마지로 이용되고요,
대마도주는 고려사람이 넘어가 도주가 됩니다.
                    
하응하치 18-02-20 19:00
   
가야 땅이라는 기록은 도데체 어느기록인가요?
                         
재가입힘듬 18-02-20 19:11
   
대마도는 본래 우리 나라 땅인데,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으로부터 변경에 뛰놀기 시작하여...(중략)
-세종실록 1년 6월 9일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예속했으니, 본디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 다만 그 땅이 심히 작고, 또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는지라, 이러므로 왜인으로서 그 나라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는 자들이 다 와서, 함께 모여 살아 굴혈을 삼은 것이며, 때로는 도적질로 나서서 평민을 위협하고 노략질하여, ..(중략)
-세종실록 1년 7월 17일


내가 생각하건대, 대마도는 바로 두지도(豆只島)이다. 김중곤(金中坤)의 노비 문기(奴婢文記)에 있기를, ‘두지(豆只)에 사는 사람이라.’ 하였으니, 대마도는 곧 우리 나라 지경인데, 왜인에게 무엇이 관계되랴. 
-세종실록 23년 11월 21일

우의정 신개는 논의하기를,

“신의 뜻도 황희 등의 의논과 같사오나, 왜인이 고기잡기를 청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신이 망령되게 생각하기를, 대마도는 본시 우리 나라 땅이온데 고려의 말기에 기강(紀綱)이 크게 허물어져서 도적을 금하지 못하여 드디어 왜적의 웅거하는 바가 되었사온데...(중략)
-세종실록 23년 11월 22일


 권선(勸善)이 또 아뢰기를,

“대내전 관반(館伴) 노라가도로(盧羅加都老)가 말하기를,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목마지(牧馬地)이므로, 대내전도 조선과 더불어 협공(夾攻)하여 대마도를 조선에 돌리고자 하였더니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의 대내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고 하였습니다.”
-세종실록 26년 4월 30일


대마도(對馬島) 한 섬[一島]도 옛날 문적에 우리 나라의 말 기르는[牧馬] 땅으로 실려 있고, 왜인도 또 본래 우리 나라의 섬이라고 일러 왔는데, 그러나 그 섬이 종말에는 도적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제 고초도(孤草島)도 아주 허가하고 돌아보지 아니한다면 뒷날에 대마도와 같이 될는지 어찌 알겠는가...(중략)
-세종실록 29년 5월 26일

수정 중에 댓글을 다셨네요.
하응하치님이 말한 조선왕조실록의 일본국 대마도 기록을 알려 주시겠어요.
가야땅이라는 기록은 찾아서 알려드리죠.
                         
재가입힘듬 18-02-20 19:50
   
대마도가 가야 땅이라는 기록은 취소 할게요.
역사 관련 스크랩을 저장한 한컴 씽크프리가 폐쇄되어 찾기 어렵네요.
그동안 씽크프리에 안들어갔는데 폐쇄T.T
역사 스크랩 다 날려먹음.
                    
하응하치 18-02-20 20:23
   
전 사재 소감(司宰少監) 박인귀(朴仁貴)를 보내어 일본 대마도(對馬島)에 통서(通書)하게 하였다. 그 글에 이러하였다.

"조선국(朝鮮國) 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조준(趙浚) 등은 일본국 대마도 수호(守護) 이대경(李大卿) 족하(足下)에게 서신을 부치노라.
《태조실록》

일본국(日本國) 대마도(對馬島) 도총관(都摠管) 종정무(宗貞茂)가 사자를 보내어 방물(方物)과 말 6필을 바쳤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정종실록》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 총관(摠管) 종정무(宗貞茂)의 사승(使僧) 등이 예궐(詣闕)하여 배사(拜辭)하니, 각각 흑마포(黑麻布) 3필, 백저포(白苧布) 3필, 호피(虎皮) 1영(領)을 하사하였다.
일본 대마도의 종정성(宗貞盛)이 사람을 보내어 방물(方物)을 바쳤다. 《정종실록》

일본국(日本國) 권 대마도태수(權對馬島太守) 종정무(宗貞茂)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말 6필을 바치고, 대마 주수(對馬州守) 사미 영감(沙彌靈鑑)이 사자를 보내어 말 4필을 바치고, 박다(博多)의 자운 주지(慈雲住持) 천진(天眞)이 석고(石膏) 5근과 백반(白礬) 30근을 바쳤다.《태종실록》

일본(日本) 대마도 수호(對馬島守護) 종정무(宗貞茂)가 사람을 보내와서 예물(禮物)을 바쳤다.《태종실록》

임온은 본래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 사람인데, 일찍이 도둑의 괴수로 항복하여, 임금이 무육(撫育)하여 준 사람이다. 이때에 이르러 늙고 병들어 돌아가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위로하여 보낸 것이다 《태종실록》

일본 대마도 종정무가 사람을 시켜 토산물을 바치다國) 대마도(對馬島) 종정무(宗貞茂)가 사람을 시켜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태종실록》

일본 대마도 종정무의 사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대마도(對馬島) 종정무(宗貞茂)의 사인(使人)이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태종실록》

일본 대마도 종정무가 사람을 시켜 토산물을 바치다 대마도(對馬島) 종정무(宗貞茂)가 사람을 시켜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태종실록》

 일본 대마도의 종정무가 보낸 객인이 토물을 바치다) 대마도의 종정무(宗貞茂)가 보낸 객인(客人)이 와서 토물(土物)을 바치었다. 《태종실록》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의 종정무(宗貞茂)가 글을 바쳤는데, 그 글은 이러하였다. "왜선(倭船) 80여 척이 조선(朝鮮) 안부도(安釜島) 등처에 머물면서 사냥하고, 중국(中國)으로 향하였습니다.《태종실록》

일본 대마도 종정무의 사인이 토산물을 바치다 대마도(對馬島) 종정무(宗貞茂)의 사인(使人)이 와서 토물(土物)을 바치었다.《태종실록》

일본 대마도(對馬島) 종정무(宗貞茂)의 아들 종우(宗祐)의 사인(使人)이 와서 토물(土物)과 옥대(玉帶)를 바치었다. 《태종실록》

일본 대마도(對馬島) 종정무(宗貞茂)가 사람을 시켜 토물(土物)을 바쳤다. 《태종실록》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 화전포 천호(花田浦千戶) 표온시라(表溫時羅)가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태종실록》

일본 대마도 좌위문대랑이 귤을 바치다) 대마도(對馬島) 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이 황감(黃柑)을 바쳤다. 황감(黃柑) 누른 감귤(柑橘). 대랑(大郞)이 평도전(平道全)에 인하여 감자(柑子) 3백 20개를 바쳤다. 감자(柑子) 감귤. 《태종실록》


일본 대마도 만호가 토산물을 바치다국 대마도 만호(對馬島萬戶) 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쳤다. 《세종실록》

구리안이 말하기를,
"본도가 경상도에 소속되었다 함은 자기로서도 알 수 없는데, 계도가 어찌 저 혼자서 이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망녕된 말입니다. 가령 본도가 비록 경상도에 소속되었다 할지라도, 만일 보호하고 위무하지 않으면 통치권 밖으로 나갈 것이요, 본디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만일 은혜로 보호하여 주신다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대마도는 일본의 변경이므로, 대마도를 공격하는 것은 곧 본국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이전(小二殿)에서 귀국과 교통할까 말까를 어소(御所)에 아뢰었더니, ‘마음대로 하라. ’고 대답하였으므로, 도주가 나를 보내어 와서 조공한 것입니다." 《세종실록》

일본국(日本國) 대마주(對馬州) 객상으로 온 배 1척(隻)에 편승시켜 지름길로 보내어 변변치 못한 물품을 받들어 국왕 전하께 올려 작은 정성이나마 표하려 하오니, 다행히 꾸짖으시고 받아주시기 바라옵니다. 《세종실록》

일본국 대마주(對馬州)의 좌위문대랑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쳤다. 예조 좌랑(禮曹佐郞)이 서신(書信)에 답하기를,(중략) 《세종실록》

찬성 허조(許稠)가 일찍이 말하기를, ‘대마도(對馬島)는 토지가 척박하여, 의식(衣食)을 순전히 우리 나라만을 쳐다보고 있으니,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어도 좋으나, 일본 본국(本國)은 토지가 비옥하여, 우리가 그들의 요구를 후하게 들어줄지라도, 그들의 욕구에 만족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요, 또한 번번이 청구하게 되면 한없는 욕심에 응할 수 없고, 더구나, 우리 나라와는 거리가 멀어서,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별로 해를 끼치는 일이 없을 것이라.’ 했는데, 그 말이 그럴 듯하다. 그러나 그들이 보낸 서장(書狀)에, ‘별례(別例)’라 하였은즉, 쌀 1백 석과 표피(豹皮)를 허락함이 어떠한가. 다시 의논하라. 《세종실록》

일본국(日本國) 대마주(對馬州) 객상으로 온 배 1척(隻)에 편승시켜 지름길로 보내어 변변치 못한 물품을 받들어 국왕 전하께 올려 작은 정성이나마 표하려 하오니, 다행히 꾸짖으시고 받아주시기 바라옵니다. 《세종실록》
                         
재가입힘듬 18-02-21 00:10
   
올려준 글 잘 봤어요.
조선왕조실록에 실제로 대마도를 일본으로 보기도 한 기록이 있군요.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대마도를 어느 한쪽의 땅으로 본게 아니라
조선 땅으로 보는 견해와 일본 땅으로 본 견해가 혼재했다고 보는게 맞겠네요.
Korisent 18-02-20 17:36
   
일정시대때 벌서 자료될만한 것들은 일뽕들이 없어갰죠. 대마섬이 고려.조선중반까지 한민족땅었죠. 일본이 직접적으로 대마섬 주도권을 갖고있을때 는 19세기부터죠. 역사적으로 한국땅임. 지금 남만주땅도 한민족이 2천년동안 차지했던 땅입니다. 지금 중국.일본은 한국땅을 불법적으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6시내고환 18-03-08 23:55
   
실효지배를 200년 넘게 일본이 하고있느니 찾기는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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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 [기타] [K-POP] MZ돌 뉴진스 <한복> 2023 추석특집 방송 아비바스 03-04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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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9 [한국사] 《고려도경으로 알수있는 정확한 "고려 서경" 위치》 (2) 에피소드 03-03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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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7 [중국] 자강두천 가슴이 옹졸해지는 <삼국지> 시리즈 ㅋ… (1) 아비바스 03-03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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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8 [한국사] [ FACT ]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 후 영토를 현재까지 … (1) 아비바스 03-03 520
19907 [한국사] [ FACT ] 역사학자 <임용한>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 (1) 아비바스 03-03 1039
19906 [한국사]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아비바스 03-03 347
19905 [한국사] 《 양규.김숙흥 장군님의 전투경로와 전사하신 곳 》 에피소드 03-02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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