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에는 대마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동여지전도에는 대마도가 들어가 있죠.
그 이유는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선생이 직접 실측해서 갔다 온 곳을 그린 지도입니다.
그러나 대동여지전도의 대마도는 그가 직접 갔다 오지 않고 그린 지도죠. 그 이유로 하여 대마도의 실제 모
습과 많이 다르고, 축척도 엉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유권은 외교권을 상실한 을사조약이 정확한 상실일이라고 하더군요! (국제법적으로는)
그리고 맥아더 정부 훈령에 대마도는 일본영토로 규정되어,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년을 한국이 제외한 상황 에서 태평양 전쟁과 관련이 있는 국가들이 서명하면서, 현재 일본 영토가 되어 버렸습니다 조선시대에 대마도는 조선인이 갈 수 없는 땅이었죠. 조선정부가 출입을 엄격히 막았기 때문입니다. 즉, 대마도에 대한 영토 인식은 분명히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또 갈 수 없는 땅 이기도 했습니다.
결론) 대마도는 조선인의 인식상 우리땅 임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내지인(조선)이 대마도로방문할 수 없게
만든것이 이런 대마도 상실로 이어 진 것 같습니다.....다 알고 있으시겠지만, 대마도주 종씨가문도 원래
는 한반도에서 이주한 송씨 가문입니다.
ps 대마도주에 대하여) 대마도 옛 도주(島主)들 가문인 '종씨(宗氏)'의 조상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송씨(宋氏)'라는 문헌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1일 대마도 관련 언어 전문가인 황백현 박사에 따르면, '대마도' 가 초대 대마도주로 추앙되던
종중상(宗重尙)에 대한 관광안내판 내용을 바꾼 점을 이상하게 여겨
문헌조사를 하던중 '동래부지'(東萊府誌, 1740년 조선 영조16년 박사창(朴師昌) 편찬)에서
대마도주 종씨는 원래 한국의 송씨라는 기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동래부지의 대마도항목에는
'대마주는 옛적 계림(鷄林, 신라)에 예속돼 있었으나
어느 때 왜인이 점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도주종씨(島主宗氏)는
그 선조가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씨로 바꾸고 대대로 도주가 됐다'고 기록돼 있다.
또 동래정씨 문중 시조 묘역이 소재한 화지산(和池山, 부산 부산진구 소재) 항목에
'구전(舊傳)에 대마도주 종씨의 조상도 이 산에서 장사 지냈다 하나 지금은 그 곳을 알 수 없다.
술사(術士)가 말하기를 정씨의 자손은 큰 벼슬을 맡은 자가 많고,
종씨 역시 대대로 도주(島主, 대마도주)를 세습하니 그 귀함이 비슷하다'고 기록돼 있다.
이 같은 기록으로 미뤄 대마도주들은 '일본인 종씨'가 아니라 '한국인 송씨'이며
초대 대마도주의 묘역도 대마도가 아닌 부산 땅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명 관광지인 이즈하라시 카마자카 전망대 안내판에는
종중상이 초대 도주라고 오랫동안 적시돼 있었으나
지난해 초대 도주가 종중상이 아니라는 내용이 적힌 새로운 안내판이 설치됐다는 것이다.
당초 안내판에는
'아비류 군대를 토벌한 종중상은 대마도 초대 도주 자리를 차지했다'고 적시돼 있었으나
새로 세워진 안내판에는 '1246년 쓰시마 통치자 아비류를 여기서 격전 끝에 무너뜨려
종씨가 쓰시마 도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역사가 오랫동안 전해져 왔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역사 연구로 판명되었다'고 왜곡됐다는 것이다.
종중상의 무덤이 대마도에 없는 것은 객지인이 대마도 도주가 되는 등 출세했고
당시 풍속에 따라 사망후 시신을 고향 선산인 부산 화지산에 묘를 썼기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씨 대마도주는
초대 종중상에서부터 일본 메이지 정권에게 관인을 반납한
마지막 태수인 34대 종의달까지 448년간 대마도를 통치했다.
* 샌프란시스코 조약 영토 사항)
제2항:영토 포기 또는 신탁 통치 이관[편집]
조약의 한계
이 조약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국인 한반도 및 중국 본토에 있는 정부의 참여가 배제되었다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중국 대표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모두 회의에 초청받지 못했고, 소련은 참가했지만 조약에 서명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대한민국 정부와 북한 정부는 당시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초대받지 못했다.
(대동여지전도)
(대동여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