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제
근구수왕이 기원후 375 년에 즉위하여 재위 10 년 동안에 고구려에 대하여는 겨우 한 번 평양 침입이 있었으나 바다를 건너 지나 대륙을 경략 하여 선비 ( 鮮卑 ) 모용씨 ( 慕容氏 ) 의 연 ( 燕 ) 과 부씨 ( 符氏 ) 의 진( 秦 )을 정벌하여 , 지금의 요서 ( 遼西 ) · 산동 ( 山東 ) · 강소 ( 江蘇 ) · 절강 ( 浙江 ) 등지를 경략하여 넓은 땅을 장만하였다.
이런 기록이 비록 백제 본기에는 오르지 않았으나 양서 ( 梁書 ) 와 송서 ( 宋書 ) 에 "백제가 요서와 진평군 ( 晋平郡 ) 을 공략하여 차지하였다 ( 百濟 略有遼西晋平郡 )· ”고 했고, 자치통감 ( 資治通鑑 ) 에는 “부여 ( 扶餘 ) 가 처음에 녹산 ( 塵山 ) 에 웅거하였다가 백제에게 격파당해 서쪽 연 ( 燕 ) 가까이로 옮겼다."(扶餘 初據鹿山 爲百濟所殘破 西徒近燕 ) ”고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조선상고사
일단 신채호 선생은 대륙백제를 조선상고사에 서술하셨습니다. 저도 대륙백제설을 신뢰하긴 하는데,
과연 백제가 저 정도나 되는 땅을 장만했을 지 의문이군요.
대륙백제에 관련된 기록이 또 있습니다.
왕(동성왕)은 어린 소년으로 이같이 어려운 판국을 당했지마는 천성이 숙성하고 백발백중의 활쏘는 재주가 있어 고구려와 위 ( 魏 ) 를 물리쳐 국난을 평정하였을 뿐 아니라 바다를 건너 지나의 지금의 산동 ( 山東 ) · 절강 ( 漸江 ) 등지를 점령하고 일본을 쳐서 속국을 만들었으며 그 밖에도 전공이 허다했는데, 삼국사기에는 다만 당시 천재 ( 天災 ) 인 한두 번의 홍수와 가뭄과 왕의 사냥한 일을 기록하였을 뿐이요, 그 나머지는 모두 뺐으니 이는 신라 말기의 문사들이 삭제한 것일 것이다.
2. 고구려
고구려 태자 담덕 ( 談德 ) 이 고국양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 나려가 자주 변경을 침노하므로 즉위 5 년, 기원후 395 년에 원정군을 일으켜 파부산 ( 파富山 ) 과 부산 ( 負山 ) 을 지나 염수 ( 鹽水 ) 에 이르러 그 부락 6, 7 백을 파괴하고 소 · 말 · 양을 노획하여 돌아오니, 파부산은 수문비사 ( 修文備史 ) 에 지금 음산산맥 ( 陰山山脈 ) 의 와룡 ( 臥龍 ) 이라 하였고, 부산은 지금 감숙성 ( 甘蕭省 ) 서북쪽의 아랍선산 ( 阿拉善山 ) 이라 하였으며, 염수는 몽고지지 ( 蒙古地誌 ) 에 의하면 소금기[鹽分]가 있는 호수나 강이 허다한데 아랍선산 아래에 길란태 ( 吉蘭泰 ) 란 염수가 있어 물가에 늘 2자 이상 6자 이하의 소금더미가 응결된다고 하였으니 이로 미루어보면 대개 광개토왕의 발자취가 지금의 감숙성 서북에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으니 이는 고구려 역사상의 유일한 원정이 될 것이다.-조선상고사
고구려가 감숙성 서북부를 점령하였다고 서술하셨네요.........
판단은 자신의 몫이며, 제 생각이 아닌 조선상고사 번역문을 올렸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륙백제를 신뢰하긴 하다만, 저렇게 큰 땅을 점령했을지는 의문이네요.
고구려가 감숙성 서북부까지 갔는지도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