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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4 12:00
[한국사] 5) 환단고기에서 밝혀주는 역사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1,403  





대한민국의 태극기, 팔괘의 창시자 태호복희(BCE3528 ~  BCE3413)씨 중국조상 만들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서가 환단고기다.



태호복희의 성은 風이며, 고대 동이족이다. <'98년판 중국상해출판사, 역대제왕록>

태호복희왕은 진국의 출신이다.(帝出於震)” [『태평어람』*卷78 「제왕세기」태호복희씨조]

태호복희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 공인되어 온 일이다.”[『夷夏東西說』, 중국학자 부사년(傅斯年)]



중국에서 삼황오제로 받들어지고 있는 태호복희씨는 신시배달의 성웅중 한분이다. 태호 복희씨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사서는 환단고기이다.

 



인류문명의 아버지, 태호 복희(BCE3528 ~  BCE3413)

 

환단고기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5,700년 전, 배달국의 5대 환웅인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로서, 성은 풍씨(風氏)요 이름은 방아(方牙)이며, 호는 태호(太昊)로서 ‘크게 밝다’는 뜻이다.  어느 날 삼신(三神)이 강령하는 꿈을 꾸고 백두산에 가서 천제를 지내고 내려오다가, 천하(天河, 송화강)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나타난 상(象)을 보고 하도와 팔괘를 처음 그려 주역(周易)의 창시자가 되었다.



복희씨 때 상象과 수數로써 상징되는 하도(河圖)와 팔괘(八卦)가 만고불변의 진리로서 세상에 드러나자, 역학의 도맥은 문왕, 주공, 공자를 거쳐 이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손룡자, 추연 등을 거쳐서 음양오행의 변화원리로 체계화되고, 노자 열자 장자에 의해 논리를 넘어 우주 신비경의 궁극을 설명하는 우화형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로써 역(易)은 동양사상의 최고봉이자 문화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생활철학이 된 것이다.

 

 




복희씨께서 태어나신 곳은 어디인가 ?

 

『환단고기』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배달 신시에서 태어나 송화강에서 팔괘를 그으시고 산동성 어대현(현재 미산현)에 묻히셨다고 한다. 이를 볼 때, 복희씨의 이동경로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중국 동쪽 해안선을 타고 내려오게 된다. 그런데 중국학자들의 입장은 그와 반대로 중국대륙 서쪽 깊숙한 곳(현재 감숙성 천수시)에서 태어나 하남성 회양현에서 도읍을 정하고 그곳에서 돌아가셨다고 본다. 하남성 회양현에서 조금만 동쪽으로 가면 산동성 미산현이 있다. 


즉 중국학자들이 말하는 복희씨의 이동경로는 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주해 왔는데, 산동성까지는 뻗어 나오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복희씨에 대한 문헌기록은「제왕세기」이다. 거기에 따르면, 복희씨는 ‘구이(九夷)에서 태어나 성기(成紀)에서 자라고 어대현에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성기(成紀)라는 지명을 중국대륙 서쪽에서 찾다보니 현재 감숙성 천수시 주변의 ‘성기’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구이(九夷)에서 태어났다는 대목은 구이족(九夷族, 동이족의 다른 말)이 아닌 구지산(仇地山)에서 태어난 것으로 끼워 맞추었다. 이는 복희씨를 동방 동이족이 아닌 서방 중국인의 조상이며, 동방으로 문물을 전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현지 답사 중 알게 된 것은 강택민 주석이 천수시에 ‘희황고리(羲皇故里)’라는 글을 써준 이후 천수시를 복희씨의 고향으로 정해 버렸던 것이다. 강택민 주석이 글을 쓴 그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묘와 사당이 새로이 복원, 보수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환단고기는 배달시대 영웅 치우천황(BCE 2706)에 대한 기록이 있다.

 

배달국의 14대 치우 환웅천황

 

 

 

‘환국(환인) - 배달(환웅) - 고조선(단군)…’으로 내려오는 한민족사의 국통을 보면, 3301년간 일곱 분의 환인천제가 다스린 환국을 이어 배달 환웅천황이 배달국을 건국한다. 그 배달국 당시, 서기전 2706년에 즉위하여 배달국을 다스린 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천황이 곧 치우천황이다. 치우(蚩尤)란 세속의 말로 ‘우뢰와 비를 크게 지어 산천을 바꾼다’는 뜻이다,



당시 염제 신농씨 나라의 8대 마지막 임금인 유망이 쇠퇴의 길을 걷자 치우천황은 웅도(雄圖)의 대망을 품고 서방으로 출정하여 모든 제후들을 정벌하고 유망의 수도를 함락시킨다. 이 때 유망의 제후로 있던 헌원(황제헌원)이 치우천황의 입성소식을 듣고, 대신 천자(天子)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이에 대항해 온다. 그리하여 동방 고대사에서 저 유명한 탁록 대전투(동방 최초의 국제전쟁)가 벌어져, 10여 년 간 무려 73회의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간다. 치우천황은 도술로 큰 안개를 지으며 최초로 제작한 금속병기를 동원하여 마침내 대승을 거두고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는다.)  



중국인들이 동방 배달민족을 동이(東夷)라고 부른 것도 치우천황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 때부터이다. 이후 치우천황은 동방 무신(武神)의 시원이 되어 수천년 동안 동방의 조선족은 물론 한나라 진나라의 백성들에게까지 위력적인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 된다.     

  






치우천왕에 대한 역사왜곡, 사마천의 『사기』

 

탁록의 대결전 중에 치우천황의 장수 치우비(蚩尤飛)가 헌원군에게 성급히 공격을 시도하다 몰살당한 사실이 있다. 이것을 두고 훗날 고조선과의 대전쟁에서 크게 패한 한무제와 그의 사관 사마천은 『사기』에서 “금살치우(擒殺蚩尤)”, 즉 ‘헌원이 치우천황을 사로잡아 살해했다’고 사실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또 당시의 상황을 “치우작란”(蚩尤作亂), 즉 치우가 헌원에게 복종하지 않고 난을 일으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후의 위치에 있었던 헌원이 천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천자인 치우천황에게 도전해온 것이니, “황제작란”(黃帝作亂)이라 함이 역사의 진실인 것이다.





역사왜곡과 날조의 현장 : 탁록의 삼조당

 

중국은 기존의 황제 정통론에서 한걸음 나아가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라는 의미에서 ‘염황지손’으로 역사를 고치더니 1995년 동방족의 조상인 치우천황까지 중국 역사와 문화의 시조로 날조하여 중화삼조로 만들고 그 성역화를 위해‘ 중화삼조당’을 세웠다.

 





뚝섬의 유래 : 치우천황에게 제를 지냈던 곳

 

서울시, 뚝섬에 ‘유래비’ 설치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시민들에게 뚝섬의 유래를 알려주기 위해 19일 뚝섬 한강공원에 뚝섬 유래비를 설치했다고 21일 밝혔다.


뚝섬은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인 살곶이벌(箭串坪) 일대로 무신(武神)을 상징하는 `치우천왕'의 모습을 본떠 큰 창에 소의 깃털을 꽂아 만든 깃발인 독 또는 둑(纛)과 관련된 지명이다. 뚝섬은 조선시대 국왕이 군대를 사열하거나 출병할 때 이곳에 둑기(纛旗)를 세우고 둑제(纛祭)를 지냈던 곳이라 뚝섬으로 불리게 됐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둑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 기록돼 있다. 뚝섬 유래비는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 2번 출구에서 내려 뚝섬 한강공원 광장으로 가면 바로 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중 3번 치우천황께 둑제를 올렸다. (난중일기)

① 癸巳(1593)年 2月 初4日 : 경칩날이라 둑제를 지냈다.

② 甲午(1594)年 9月 初8日 : 장흥부사로 獻官을 삼고, 홍양현감으로 典祀를 삼아 초아흐레 둑제를 지내기 위해 入齋시켰다.

③ 乙未(1595)年 9月 20日 : 새벽 2시에 둑제를 지냈다.


 


중국의 사학자 추군맹은 중국민족 곧 화하족은 이른 시대에 이미 東方의 蚩尤(치우)와 少昊(소호)가 지배하던 이인집단이 융합되었다고 역설하였다. 蚩尤에 대해서도 추씨(鄒氏)는 역대 학자들의 고증을 들어 구려(九黎)의 군장으로서 동이집단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蚩尤에 대하여 우리 나라 역사에서는 별로 연구된 바 없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少昊에 대해서도 中國의 五帝의 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반하여,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그 무덤까지 확인하고 분명히 東夷集團의 君長이었음을 역설하고 있음은 우리의 역사지식을 반성하게 한다.



 

묘족은 <머리채를 삼끈으로 묵은 상투쟁이로서 마치 싹이 돋은 듯하여 苗라 했다-회남자淮南子 권11 제속훈> 라는 구절과 <산해경> 권 17 대황북경에 <서북해 밖 흑수 북쪽에 날개달린 사람(鳥夷系)이 있으니 이름하여 苗民이다>란 기록에 비추면 이夷족이면서 머리에 상투를 튼 민족이다. 그리고 <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라 하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왕동령王桐齡 중국민족사>라는 구절이 있다. 즉, 묘족은 우리와 공통의 조상을 가진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오히려 묘족이 있던 영역까지 배달국의 영역이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이러한 모든 추정들이 사실임이 밝혀진다.(이재석,『인류원한의 뿌리단주』,상생출판,2008)

 






환웅천황의 배달국 ’,‘신시’,‘청구’를 기록한 문헌들


<삼국유사>일연 1206~ 1289 <권1 기이1 고조선(왕검조선)>古記云 昔有桓國(謂帝釋也) 庶子桓雄 .....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표제음주동국사략標題音註東國史略> 유희령 1480~ 1552 <권1 전조선>檀君 姓桓氏 名 王儉 ..... 有神人桓因之子 桓雄 ..... 謂之神市 在世理化

<신증동국여지승람>이행 홍언필 1530 <권54 평안도4 영변대도호부 고적 태백산)太佰山(古記 昔有天神桓因 名庶子雄 ..... 謂之神市 主人間三百六十餘事)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권문해 1534~1591 <권9 상성 지 지 신시>昔有神人桓因 名世子桓雄 ..... 謂之神市將風伯雨師雲師 .....

<기언記言>허목 1595~1682 <권32 외편동사1 단군세가>上古九夷之初 有桓因氏 桓因生神市 始敎生民之治 民歸之神市 生檀君.....

<약천집藥泉集>남구만 1629~1711 <제29잡저 동사변증 단군>...云昔有桓國帝釋庶子桓雄 受天符印三箇 .....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해동이적>홍만종 1643~1725 <하(보)단군>... 有桓因釋庶者 名庶子桓雄 ..... 民歸如市 因號神市 將風伯雨師雲師

<규원사화>북애자 1675 <태시기>神市氏旣爲君長 以神說敎 ..... 神市氏

<수산집修山集>이종휘 1731~ 1797 <권12 동사 지 신사지>... 故桓雄爲神市天皇 而雄之子號檀君云 神市之世 以神說敎

<동사강목>안정복 1778 <부권상중괴설변증> 古記云 ..... 庶子桓雄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

 

<규원사화>북애자 1675 <태시기단군기>神市氏 寔爲東方人類之祖 ..... 盖檀君以前 首出之聖人也 ..... 曰靑丘國 宅樂浪忽'

 





고대 한국의 양잠기술을 확인시켜주는 환단고기

 

지금까지 고대 한국의 양잠기술은 서기 전 12세기 말경 箕子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라는 견해가 정론처럼 통용되었다.

그 까닭은 문헌자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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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 18-02-24 12:02
   
고대 한국의 양잠기술을 확인시켜주는 환단고기

 

지금까지 고대 한국의 양잠기술은 서기 전 12세기 말경 箕子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라는 견해가 정론처럼 통용되었다.

그 까닭은 문헌자료인 漢書와 後漢書에 기재된 서로 다른 내용을 무분별하게 해석한 결과이다.




중국에서 사직물 생산은 서기전 2700년경부터였다. 고조선은 건국 초기인 서기전 2209년경부터 중국과 계속 우호적인 정치적 관계를 맺어왔다. 이 시기에 중국은 500년 이상 축적된 양잠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과 계속 교류를 하면서도 양잠기술을 수입하지 않고 있다가 서기전 12세기경에 와서야 비로서 箕子로부터 양잠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고조선은 신석기시대부터 양잠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므로 기자에 의하여 고조선에 양잠기술이 전달되었다는
     
스리랑 18-02-24 12:03
   
실제로 고조선은 신석기시대부터 양잠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므로 기자에 의하여 고조선에 양잠기술이 전달되었다는 후한서「동이열전」에 나오는 기록은 기자의 치적을 높이기 위해 윤색된 것이었다.




고대 한국은 중국에서 누에천을 생산한 시기인 서기전 2700년보다 앞서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 이미 야생누에로부터 누에천을 독자적으로 생산했을 가능성이 크다. 요령성 동구현 后洼유적에서 누에의 조소품이 출토되었는데, 발굴자들은 이 유적의 연대를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으로 밝혔다.







홍산문화에 속하는 내몽고 파림우기 나사태유적 등에서도 옥으로 만든 누에가 출토되었다. 또한 고조선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통잎뽕나무 조각무늬가 새겨진 질그릇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한민족의 거주지역에서 메누에로부터 토종 뽕누에로 순화된 시기가 신석기시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북한학자 조희승이 평양의 낙랑구역 무덤들에서 출토된 고조선시기의 누에천을 실험‧분석한 결과 고조선에서 생산했던 누에천의 독자성과 고유성이 확인되었다. - 박선희 (고대복식사 연구)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옥누에를 통해서 5500년전 배달국 시대에 이미 비단짜는 기술이 존재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에 있다. 초대 단군왕검이 하백의 딸을 황후로 맞이하여 잠업(누에치기)를 관장하게 한 [삼성기]상과 [단군세기]의 기록은 이런 발견을 더 명확하게 해준다.

 

비서갑에 사는 하백의 따님을 맞이하여 황후로 삼고 누에치기를 맡게 하시니(삼성기상,단군세기)

 

단군왕검이 하백의 딸을 왕후로 맞이하여 잠업(누에치기)를 관장하게 했는데 이것은 양잠기술이 그 이전 배달국에서부터 전해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사서들은 ‘잠신이 실을 뽑아 황제헌원에게 바쳤다’고 했는데 이는 양잠기술이 배달국에서부터 중원으로 건너 갔음을 암시한다. 후한서 동이전과 삼국지 동이전에서 “마한 사람들은 잠상을 알며 솜과 베를 만든다”라고 한 것 또만 양잠이 고대 동이족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환단고기는 중국 한족의 뿌리를 밝혀준다.





전설 속의 중국 한족의 시조, 반고는 실존인물

 

時 有盤固者 好奇術 欲分道而往 請 乃許之

遂積財寶 率十干十二支之神將 與共工.有巢.有苗.有燧

偕至三危山拉林洞窟 而立爲君  謂之諸畎 是謂盤固可汗也.





 

환웅이 동방을 개척할 당시에 기이한 술법을 좋아하던 반고(盤固)라는 인물이 있었다. 반고가 개척의 길을 따로 나누어 가기를 청하므로 환인께서 이를  허락하셨다. 마침내 반고는 재물과 보물을 싣고 10간 12지(十干十二支)의 신장(神將)을 거느리고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와 함께 삼위산(三危山)의 납림동굴(拉林洞窟)에 이르러 임금으로 즉위하니 이를 제견(諸畎)이라 하고, 반고를 반고가한(盤固可汗)이라 불렀다.

 

반고가한은 중국에서 조차 고대신화에 등장하는 우주 창조신으로 받들어왔으나 여기서는 5,900년전 환웅의 동방 개척기에 실존한 인물임을 밝혀주고 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사료가 전혀 없어 전설상의 인물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황제헌원

 

헌원의 성은 공손이고 호는 유웅이다. 중국 한족의 실질적인 시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헌원의 조상은 소전이다. 소전은 강수에서 군병감독관을 했던 인물이다. 소전의 큰 아들이 신농씨로 강씨의 첫조상이다. 소전의 둘째 아들로부터 내려간 후손중에 헌원이란 인물이 나온 것이다.

 

당시 치우천황의 스승이 자부선생이었는데 헌원, 창힐, 대요가 모두 자부선생 밑에서 신교의 문화와 철학을 전수받았다. 헌원은 삼황내문경을 전수받았고 대요는 간지의 술법을 전수받았고 칭힐은 부도지문을 전수받았다. 그 후에 헌원은 탁록에서 군사를 일으켰다가 치우의 공격을 받고 대요와 창힐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대요와 창힐은 치우를 추종하였다. 대요와 창힐은 배달의 자부선생으로부터 문물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스승의 나라를 배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10년간 73회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헌원은 치우에게 사로잡히고 무릎을 꿇게 된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런 사실을 왜곡해서 기록한다. 즉 “천하의 제후가 모두 황제헌원에게 와서 복종하였으나 치우가 가장 강포하여 천하에서 능히 그를 정벌하지 못했다”고 하여 마치 헌원이 치우를 정벌하려 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환단고기에 의해 역사의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유물과 유적은 환단고기를 뒷받침 해준다.





고대 동북아의 옥은 홍산문화보다 더 오래된 훙륭와 문화에서 발견되기 시작한다. 내 몽골 자치구의 오한기에 위치한 흥륭와촌에서 세계 최고의 옥결이 발굴되었다. 이 옥결에 사용된 옥은 요동반도의 수암에서 나온 수암옥이다. 수암은 흥륭와촌에서 동쪽으로 450km나 떨어진 곳으로 압록강에서 멀지 않다. 당시 만주의 동쪽에서 난 옥을 서쪽으로 가져가 옥제품으로 가공할 만큼 만주의 동서과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엇던 것이다.








그런데 흥륭와 문화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옥결이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선사유적지의 옥결은 그 외양이 흥륭와 문화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 이러한 유사성은 BCE 6천년 경부터 요서,요동,한반도가 하나의 문화권이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흥륭와 문화에서 시작된 옥문화가 후대의 홍산문화에서 더욱 다양하고 화려해진 점은 하나의 연속된  문명이 3,4천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였음을 보여준다.


 

문암리 밭유적 고조선 이전 시대에 밭농사를 했음을 보여준다 (5600년전) 신석기 중기 밭의 존재로 볼 때 한반도 농경의 시작은 이보다 더 빨랐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홍산문화는 동북아 신석기 문화의 최고봉으로서 중국 한족 문화와의 계통이 전혀 다른 오히려 그들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환단 시대 배달 동이족의 독자적인 문화이다. 그래서 홍산문화는 환단 시대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 환국 배달 고조선이라는 동북아 시원역사를 인정해야 홍산문화를 포함한 발해연안의 그 엄청난 유적과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스리랑 18-02-24 12:05
   
우리 한민족의 수도를 옮긴 역사, 천도(遷都)한 역사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십이지지(十二地支)에서 진술축미(辰戌丑未) 4토(土)에 맞추어져 있음을 환단고기를 통해 알 수 있다.




토(土)라는 글자의 형상은 양(+)과 음(-)이 합해져 있는 글자로, 十무극과 一태극을 상징한다. 이 대우주는 만물 조화의 바탕인 무극(無極)을 바탕으로 태극(太極)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은 물물이태극(物物而太極)으로 태극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사람, 좌뇌와 우뇌, 오장과 육부, 왼손,오른손...대우주, 천지(天地), 하늘과 땅, 태양과 달... ) 우주는 무극과 태극의 운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무극과 태극의 사이에서 황극이 운동의 본체로서 작용을 한다.











환단고기에는 수도를 옮긴 천도(遷都)한 해가 기록된 한민족 옛 제국의 천도사(遷都史)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임술(壬戌, 환국, 안파견, 천산天山)

계해(癸亥, 배달, 거발환, 신시神市)

무진(戊辰, 조선, 단군왕검, 아사달)




을미(乙未, 조선, 색불루단군, 백악산아사달)

병진(丙辰, 조선[대부여], 구물단군, 장당경)

임술(壬戌, 북부여, 해모수, 난빈)




을미(乙未, 북부여[동명국], 고두막, 홀본)

을미(乙未, 고구려, 고주몽, 눌현)

임술(壬戌, 고구려, 유리명제, 국내성)




무진(戊辰, 대진국[大震國, 발해(후고구려)], 대중상, 동모산성)

정축(丁丑, 대진, 대흠무, 상경용천부)










『환단고기』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에 태고시대의 도술에서 ‘진, 술, 축, 미’가 뜻하는 것은 土다.

 여기에서 ‘축丑은 가다加多, 진辰은 밀다密多, 미未는 순방順方, 술戌은 개복皆福’이라 하였다.










축丑은 ‘가다加多’이니 다多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을 뜻한다. 다多는 많은 것이요, 가加는 더하는 것이니, ‘가다’는 축丑이 하늘과 땅, 음과 양의 기운을 더하여 인간과 만물을 탄생시키는 것을 뜻한다.







진辰은 ‘밀다密多’이니 인간과 만물을 길러 더욱 번영시킨다는 뜻이다. 진密은 빽빽하다는 뜻이니, 인간과 만물이 이 땅에 가득 들어차도록 길러준다. 미未는 ‘순방順方’이니 순방이란 천지가 개벽하여 상하사방이 곧고 바른 것을 뜻한다. 곧 방方이란 ‘천원天圓, 지방地方, 인각人角’의 방方이니, 곧 토土가 가장 큰 땅을 뜻한다. 고로 주역에서는 곤괘(坤卦)를 일러 직방대(直方大)라 한다.







술戌은 ‘개복皆福’이니 모든 것을 행복하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개皆는 ‘다多 개’이니, 진辰의 다多를 수렴하여 통일하고, 축丑의 ‘다多’를 새롭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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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3 [한국사] 발해 멸망 이유 - 야율아보기의 쿠데타 (3) 하늘하늘섬 03-05 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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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9 [한국사] 《고려도경으로 알수있는 정확한 "고려 서경" 위치》 (2) 에피소드 03-03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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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7 [중국] 자강두천 가슴이 옹졸해지는 <삼국지> 시리즈 ㅋ… (1) 아비바스 03-03 401
19916 [한국사] [ FACT ] MZ세대가 생각하는 <고구려 제국> 밈 3 (1) 아비바스 03-03 375
19915 [한국사] [ FACT ] MZ세대가 생각하는 <고구려 제국> 밈 2 (1) 아비바스 03-03 344
19914 [한국사] [ FACT ] MZ세대가 생각하는 <고구려 제국> 밈 (1) 아비바스 03-03 374
19913 [한국사] [ FACT ] 고구려 백제 신라는 말이 통했다. (1) 아비바스 03-03 366
19912 [한국사] [ FACT ] 고구려제국 vs 백제 vs 신라 (1) 아비바스 03-03 339
19911 [한국사] [ FACT ] 고구려제국 vs 당제국 대전쟁 (1) 아비바스 03-03 311
19910 [한국사] [ FACT ] 고구려제국 vs 수제국 대전쟁 (1) 아비바스 03-03 320
19909 [한국사] [ FACT ] 역사 교사 <안정준> 전투 민족 고구려가 … (2) 아비바스 03-03 320
19908 [한국사] [ FACT ]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 후 영토를 현재까지 … (1) 아비바스 03-03 318
19907 [한국사] [ FACT ] 역사학자 <임용한>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 (1) 아비바스 03-03 952
19906 [한국사]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아비바스 03-03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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