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樂五年,歲在乙未,王以碑麗不息,□人躬率往討。過富山負山至鹽水,上破其丘部洛六七百當,牛馬群羊不可稱數。-광개토대왕릉비
번역-영락 5년은 을미년이다. 패려가 붙잡아간 사람들을 돌려주지 않으므로 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과 부산을 지나 염수에 이르러 세 개 부락 600~700영을 격파하고 셀수 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여 양평도를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 북풍을 거쳐 돌아왔다. 왕이 사냥을 준비시켜 경치도 구경하고 사냥도 즐기며 돌아왔다.
일단 패려의 위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몇가지 힌트는
1. 염수가 있음. 즉 내몽골~몽골 안팎 지역.
2. 소, 말 ,양떼가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즉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곳.
이렇게 2가지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패려의 위치는 대략 내몽골~몽골 동부~중부 지역으로 한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