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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2 13:59
[한국사] 고구려 말기 서쪽 경계는 현 산동성 빈주 일대 (추정)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120  

(압록강이 요하냐 혼하냐 수준의 문제가 아니네요)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登州東北海行 過 大謝島 龜歆島 淤島 烏湖島 三百里, 北渡烏湖海 至馬石山東之都里鎮 二百里.

東傍海壖. 過 青泥浦 桃花浦 杏花浦 石人汪 橐駝灣 烏骨江 八百里, 乃南傍海壖. <신당서 가탐도리기>

沙門島爲解宋寨界 單山爲黃縣界 桑島爲馬停寨界 龜島爲昌邑縣界 歆末島爲壽光界 都里鎭爲蒲臺界 靑島爲利津界 黃島爲賓州界 直沽口爲寶低縣界 塔山爲盧龍衛寨界 南半洋山爲昌黎縣界 計一千二百里,抵遼東北半. <장황의 圖書編>

桃花島

新唐書地理志登州東北海行過大謝島龜歆島烏湖島三百里至都里鎮二百里東傍海壖過青泥浦桃花浦杏花浦

金史地理志興城縣有桃花島 按桃花島即桃花浦明初海運泊船于此今在寧逺州城南 <성경통지>

>산동반도 등주에서 고구려 가는 코스 고찰<
감방친구 작성일 : 17-12-12 06:34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0832&sca=&sfl=mb_id%2C1&stx=cellmate&page=8

지난 해 12 월 최초 고찰의 목적은

1) 가탐도리기 바닷길 경로가 기존 학계 통설(심지어 복기대 팀까지) 대로 ‘산동반도 래주/등주에서 대련으로 직접 건너오는 경로’가 맞느냐를 따져 보는 것
ㅡ 학계의 주장을 따르면 그 거리가 기존 학계 통설의 오골성, 압록강 비정에 부합하므로 부정할 수 없이 수용할 수 없고
ㅡ 이 때문에 압록강을 현 압록강이 아니라 현 요하에 비정하고 있는 복기대 팀조차 이 경로 안을 따르며 현 압록강을 오골강이라 하는 어불성설의 억지스러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 개인적으로 안시성을 한서 지리지, 요사 지리지 및 그 후대 사서들을 교차하여 현 잉커우~안산시~판진시 사이의 요하 하류 삼각지대에 비사성과 함께 비정해 두고 있던 차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근거 안시성 근처로 추정 되는 오골성의 위치를 찾으면 압록강 비정이 쉽겠다 하는 것

이 두 가지 목적 하에 가탐 도리기, 도서편, 성경통지, 독사방여기요 등을 교차 분석하여

1) 가탐 도리기 바닷길 경로는 산동반도에서 요동반도로 직접 건너오는 경로가 아니라 해안선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운행하는 경로라는 것

2) 도리진은 산동 북부 께에 있으며 창려, 노룡을 지나기 전이라는 것

3) 도화포는 도화도에 있었으며 청나라 영원주 남쪽으로 현 요서 금주시 서쪽 호로도시(임둔태수 봉니가 발견된)에 위치했다는 것

을 밝혀냈으며

4) 오골강 다음 경로 가운데 한 곳인 진왕석교(秦王石橋)의 秦王이 당 태종을 높여부르는 별칭이라는 것을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 찾아내어 이를 토대로 진왕석교가 당 태종이 요택을 건너오고 건너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유적일 것이라는 것, 따라서 발착수 등 요하 하류에 수많은 하천 가운데 한 곳에 진왕석교가 있으며 오골강 역시 그 근처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하였습니다.

이를 토대하여 그 명칭이 오골강ㅡ오골성으로 오골성이 오골강에서 비롯한 명칭이 확실하다 보고 오골성 역시 요하만의 요하~태자하 사이에 비정하였던 것입니다

(# 새벽에 네이버에서 ‘오호해’를 검색하던 과정에 라디오님이라는 분이 가탐도리기 바닷길 경로를 2015 년에 저와 유사한 방식으로 고찰한 글을 발견했습니다. 저의 2017년 고찰은 이 분의 글을 보기 전으로, 사서 원문을 직접 탐문, 분석하여 얻은 제 독자적 연구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라디오님의 글

https://m.search.naver.com/search.naver?sm=mtb_hty.top&where=m_article&query=%EC%98%A4%ED%98%B8%ED%95%B4&oquery=%EC%98%A4%ED%98%B8%EB%8F%84&tqi=TqTutspySCwssvgmaF0ssssst5G-293994 )

저는 고구려 말기 압록강이 요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가탐도리기의 뭍길과 바닷길 경로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혼하를 압록강에 못 박아두고 그곳을 중심으로 위치를 추적하는 우(알면서도)를 범하였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호흡을 늦추고 새 시야를 얻고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 대의 기록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전의 고구려 압록강 및 평양 비정은 수나라와 당 태종 1차 원정까지만을 집중하였기에 그 후를 살펴보고자 하였습니다

당 태종의 2차 원정은 1차 원정의 교훈
ㅡ 육로를 통한 군량 수송의 어려움
ㅡ 대규모 원정에 따른 과도한 국고 및 인력 손실
등을 토대로

ㅡ 해로를 이용한 군량 수송
ㅡ 고구려 멸국이 아닌 압록강 북쪽 땅 취득
ㅡ 대규모 원정이 아닌 보다 소규모 병력을 사용하여 수시로 타격

으로 전략을 수정합니다

이에 따른 2차 원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차 침략
ㅡ 규모 : 육군 3천 명, 해군 1만 명
ㅡ 출병지 : 육군은 영주도독부&신성. 해군은 산동 래주.
ㅡ 특징 : 육해군 모두 수전에 능한 정예병으로 구성
ㅡ 전과 : 육군 - 요수를 건너 남소성을 비롯한 여러 성 물리치고 불 지른 후 퇴각. 해군 - 국경에 들어와 1백여 차례 전투. 석성(石城)을 공격해 빼앗고, 적리성(積利城) 아래까지 진격하며 대승(고구려군 사망자 2천 명)
ㅡ 경과 : 해군과 육군의 전투 승리로 강남 12주의 공인(工人)들을 징발하여 수백 척의 큰 배를 건조케 하여 침략군의 규모를 증원

2) 2차 침략
ㅡ 규모 : 해군 3만 명.
ㅡ 출병지 : 산동 래주
ㅡ 전과 : 오호진(烏胡鎭)의 장수 고신감(古神感)이 병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와 공격. 고구려의 보병과 기병 5천 명과 역산(易山)에서 맞부딪쳐서 승리. 그날 밤 1만여 명의 고구려 군대가 고신감의 배를 기습했으나 고신감이 복병을 출동시켜 승리. 당나라 대승.
ㅡ 경과 : 자신감을 얻은 당 태종은 압록강 이북 탈취에서 고구려 멸국으로 전략 수정. 30만 명의 대규모 원정 준비. 이전 수ㆍ당의 고구려 원정 시 육로를 이용한 군량 운반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해로를 통한 군량 운반. 1 년 분량의 군량미 준비.
“당 태종이 좌령좌우부장사(左領左右府長史) 강위(强偉)를 검남도에 파견하여 나무를 베어 선박을 만들게 하였다. 큰 배 중에는 길이가 1백 척, 넓이가 오십 척이나 되는 것도 있었다. 따로 사신을 파견하여 이 배들을 수로를 통하여 무협(巫峽)에서 강주(江州)와 양주(楊州)를 거쳐 내주로 이동하게 하였다.”

3) 3차 침략
ㅡ 규모 : 30 만 명
ㅡ 출병지 : 산동 래주
ㅡ 특징 : 고구려 외곽성을 거치지 않고 바닷길을 통하여 고구려 중심부 직접 타격 시도
ㅡ 전과 : 당 설만철. 바다를 통해 바로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 40 리 지점에 주둔하여 박작성을 공격하였으나 거듭 실패. 고구려의 오골성(烏骨城)과 안지성(安地城) 등 여러 성에서 온 병력 3만여 명이 박작성 지원하며 당나라 패배
ㅡ 경과 : 당 태종이 또한 내주자사(萊州刺史) 이도유(李道裕)에게 군량과 기계를 운반하여 오호도(烏胡島)에 비축 명령

그러나 당 태종이 죽으면서 고구려 2차 원정은 중지됩니다

저는 당 태종의 2차 원정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1) 육로가 아닌 해로를 통한 침략
2) 그 출발지가 산동반도 래주
3) 군량 비축지가 오호도
4) 2차 침략에서 오호도의 고신감이 고구려군과 고구려 경내의 역산에서 전투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오호도는 제가 지난 해 12 월에 가탐 바닷길 경로를 고찰하며 다룬 바 있고, 다른 전투지와는 달리 ‘역산’이라는 지명은 생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가탐도리기 바닷길 경로를 재고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여러 사서에서 오호도와 역산이 함께 거론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선 오호도를 재탐색하였습니다

自登州東北海行,過大謝島、龜歆島、淤島而後至烏湖島 <자치통감>

자치통감은 가탐 도리기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烏湖島府東北二百五十里海中 與大謝戍俱為伐東夷之要路

大謝島,在府東北三十里海中 <독사방여기요>

독사방여기요는 오호도와 대사도가 마치 등주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왜곡, 혹은 잘못 적고 있습니다

중국의 해안선을 따라 진과 새, 보, 섬 등을 상세하게 표시한 것으로 유명한 것이 주해도편 부록의 지도입니다

제가 고지도를 연구ㆍ고찰에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사서 사이의 비교 고찰을 통하여 오류와 왜곡을 찾아내고자 하는 욕심에 우선 있고 고지도 역시 왜곡이 심하거나 잘못 해석할 여지를 줄 정도로 단순화해 표시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해도편의 지도는 최종뿐만 아니라 과정 상에 참고, 활용하면 좋을 정도로 정세한 지도입니다

저는 이번 재고찰에서 보다 정확한 위치 확인을 위해 이 지도를 참고하였습니다

沙門島 ~ 單山(島) ~ 大謝山(島) ~ 桑島 ~ 烏湖島 ~ 龜島 ~ 歆末島 ~ 都里鎮

등주에서 가까운 섬은 사문도, 대사도이며
래주에서 가까운 섬은 오호도입니다

독사방여기요에 따르면 당 태종의 고구려 2차 원정 시 오호도와 대사도 모두에 둔영을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주해도편의 섬 위치와 순서는 도서편의 위치 및 순서와 일치합니다 반면에 가탐 도리기와는 일부 일치하지 않습니다

가탐 도리기에서는 구흠 2 도 다음에 오호도가 있는 것으로 적고 있으나
섬의 위치와 주변 지명 및 행정/둔영 등을 상세히 적고 표시한 주해도편과 도서편에서는 오호도 다음에 구흠 2도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탐 도리기의 순서가 잘못 됐다고 판단합니다 왜냐 하면 당 태종 수군은 래주를 출병지로 삼고 오호도에 군량을 비축했다고 했으니 가탐의 순서를 따르면 오호도가 구흠 2도보다 북쪽에 위치하게 되므로 군사 개념 상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서의 바닷길 경로에 중간 기착지로 등장하는 都里鎮은 산동 포대현 바로 연안에 있습니다

도리진의 위치를 주해도편 지도를 통해 처음 확인하였습니다 바로 황하 아래, 소청하 바로 위가 옛 산동 포대현 자리입니다

자, 여기에서, 이 즈음에서 아주 단순하고 상식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아니 학계 통설 대로 현 요서까지 당나라 땅이었으면 왜 이렇게 멀리, 저 남쪽인 래주를 출병지로 삼고, 그 근처 섬인 오호도에 군량을 비축하였을까?
2) 래주에서 곧장 대련으로 도해한다고? 산동과 요동, 두 반도 사이는 마치 우리의 울돌목 같이 격랑이 심한 곳이어서 바로 건너기 어려운 곳이었다. 생각해보라, 그 좁은 해협으로 황해와 발해의 물길이 드나들고 그 사이에 암초처럼 무수한 섬들이 있다. 명나라 시대에도 연안 항해로 산동과 요동을 오갔는데?

그렇다면 이제 오호도와 함께 거론되는 역산의 위치를 찾아보겠습니다. 오호도의 고신감이 고구려군과 역산에서 싸웠기에 단순하게 거론될 뿐인가? 오호도에 주둔한 병력인, 오호진의 장수 고신감(의 직책이 烏胡鎮將이다)은 어떻게 우리의 상식인 학계 통설에서의 고구려 영토까지 와서 전투를 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어린애들이 쉽게 할 수 있다. “가까우니까?”

烏胡鎮將古神感 將兵浮海擊高麗,遇高麗步騎五千,戰於易山,破之。〔「易山」,新書作「曷山」。將,即亮翻。麗,力知翻。騎,奇奇翻。〕其夜,高麗萬餘人襲神感船,神感設伏,又破之而還 <자치통감 주>

“역산은 갈산(신당서는 갈산이라 적었다)”

二十二年,詔右武衛大將軍薛萬徹為青丘道行軍大總管,右衛將軍裴行方副之,自海道入。部將古神感與虜戰曷山,虜潰;虜乘暝襲我舟,伏兵破之。<신당서>

“曷山”

신당서에서 曷山은 단 두 가지 사건과 관련돼 나온다
1) 오호진장 고신감과 고구려군의 전투
2) 양행밀, 손단 등이 당나라 말기 군벌 조황(趙鍠)을 토벌하는 과정

2)의 갈산은 산동반도 훨씬 밑 양자강 쪽 안휘성(安徽省)에 있다

다른 여타 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신당서 외에 독사방여기요에 언급돼 있는데 역시 고신감의 갈산 외에는 안휘성 갈산, 또 복건성 갈산 뿐이다

다만 다음의 기록

鎮將古神感浮海擊高麗,破之於曷山。曷山在高麗界,或作易山。<독사방여기요>

“曷山在高麗界”


北平郡 東至柳城郡七百里南至海一百里西至漁陽郡三百里北至塞百八十里東南到臨榆闗一百八十里西南到馬城縣一百八十里西北到石城縣一百四十里東北到柳城郡七百里去西京四千三百二十里去東京三千五百二十里戶三千三十一口一萬三千七百七十

盧龍 漢肥如縣有碣石山 碣然而立在海旁故名之
晉太康地志同秦築長城所起自碣石在今髙麗舊界非此碣石也

碣石山在漢樂浪郡遂城縣長城起於此山今騐長城東截遼水而入髙麗遺址猶存按尚書云夾右碣石入於河右碣石即河赴海處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則髙麗中為左碣石 <통전>

하, 이걸 어쩝니까? 제가 결코 빠지기 싫은 늪에 발을 디뎠습니다

저는 지난 해 초여름부터 낙랑군/백제/고구려 문제를 탐구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서부터 수서까지 기존 한나라 요동ㆍ낙랑ㆍ현도의 축소상을 고찰했고 이것을 도배시러님이 받아서 공조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고구려가 서쪽으로 진출함에 따라 중국계 왕조의 동쪽 영토가 줄어들었고 그 줄어듦에 따라 진나라에 이르러서는 하북성으로, 그리고 그 공간에 모용선비가 전연, 후연, 북연을 세우며 고구려와 다투었고 광개토대왕에 이르러서는 후연을 제압하고 북연을 괴뢰국으로 세웠으며 장수왕 대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난하까지 영토를 넓혔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백제 또한 고구려의 서쪽 진출, 기존 한군현의 교치에 따라 함께 움직이며 영토를 유지했고 그것이 동성왕 대의 북위와의 대규모 전쟁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리고 수나라의 요서군을 봤을 때에 결코 현 조양이 유성이 아니며 598 영양왕이 선제 타격한 곳은 현 조양이 절대 될 수 없다고 주장을 했고

이러한 주장에 역시 도배시러님이 동조하며 그 분은 계속 이쪽 문제를 탐문연구해 오셨고 저는 고려 서북계 문제로 빠졌습니다

장수왕 대부터 발해 연안을 장악한 것으로 봤을 때에 이번에 당 태종 2차 원정 관련 지명과 그 위치를 가볍게 고찰하면서 은연 중 계속하여 저 역산이 갈석산일지도 모르겠다 하는 의심을 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됐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도배시러님, 어떻게 합니까?
계속 갈까요? 아니면 제가 하던 고려 서북계를 일단 완료하고 그 사이 님이 진척을 하면 슬그머니 숟가락 얹을까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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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3-12 14:01
 
아마르칸 18-03-12 14:05
 
좋은 정보네요.
감방친구 18-03-12 14:08
 
당나라가 왜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에 공을 들였는지 이해가 가네요

저는 그저 고구려 땅이 난하까지라는 정도만 증명이 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었는데
감방친구 18-03-12 14:25
 
강소성 몽롱탑 전설이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산동성 북부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그곳에서 전쟁기억을 피란지에 투사하며 전설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도배시러 18-03-12 15:54
 
고구려 쪽을 자꾸 파시길래... 저는 삼황오제부터 다시 뒤지는 중입니다.
최근 올린 고구려 강역은 [북위 남영주] 분석완료에 따라 파생된 게시물입니다.

고대 요동을 추적중입니다.
도배시러 18-03-12 16:27
 
지도를 보니 도리진의 위치는 옛 황하의 물길이네요. 황하고도
저기가 기주협우갈석의 갈석산이 있는 곳...
도배시러 18-03-12 16:36
 
산동과 요동, 두 반도 사이는... 이미 백제의 15개 관할섬이 있던 장소입니다. - 수서 백제
도배시러 18-03-12 16:49
 
“曷山在高麗界”  갈산은 도리진 앞의 황하고도에 있는 기주협우갈석인듯 합니다. ㅎㄷㄷ
도배시러 18-03-12 17:43
 
일단 추정까지는 성공하신듯 하고요. 추카추카 ~
좀더 자료를 보완해서 추정에서 확정단계로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감방친구 18-03-12 20:46
 
현재 주말도 없이 일하는 투잡신세가 돼버려서 이것도 이거 하느라 두 시간밖에 못 잤네요
확정단계로 가려면 시일이 걸릴 듯 해요
          
도배시러 18-03-12 21:33
 
어쩐지... 뭔 사고라도 났는가하고 걱정했습니다.
감방친구 18-03-12 21:14
 
석성(石城)도 석성현을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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