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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3 13:21
[한국사] 8) 환단고기에서 밝혀주는 역사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810  





환단고기는 신라 화랑도의 뿌리와 맥을 보여준다.

 


"화랑은 선도(仙道)이다. 우리나라에 신궁을 받들고 하늘에 대제를 지냈다. 처음에 여자로 원화를 삼다 폐지하고 화랑을 설치했다." 필사본은 화랑의 기원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화랑이 신궁을 받드는 제사 집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화랑세기)필사본에 의하면 신궁이 제사 집단에서 화랑이 기원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또 화랑이 처음엔 여자였는데 남자로 바뀐다는 것은 화랑의 성격, 조직의 커다란 변화를 암시해주는 것이다. <Kbs 역사스페셜 ‘화랑세기 필사본의 진실‘>





13세 흘달단군에 이르러 戊戌二十年(무술이십년)이라 多設蘇塗(다설소도)하사 植天指花(식천지화)하시고 使未婚子弟(사미혼자제)로 讀書習射(독서습사)하사 號爲國子郞(호위국자랑)하시니라.

國子郞(국자랑)이 出行(출행) 頭揷天指花(두삽천지화)하니 故(고)로 時人(시인)이 爲天指花郞(위천지화랑)이라.
 
재위 20년 무술(단기 571, BCE 1763)년에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으셨다.

미혼 소년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부르셨다. 국자랑이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 <환단고기『단군세기』>
 




源花(원화)는 稱女郞(칭여랑)이오 男(남)은 曰花郞(왈화랑)이니 又云天王郞(우운천왕랑)이라. 自上(자상)으로 命賜烏羽冠(명사오우관)하야 加冠(가관)에 有儀注(유의주)라.
 
원화源花는 여랑女郞을 말하고, 남자는 화랑花郞이라 하는데 천왕랑天王郞이라고도 하였다. 임금으로부터 오우관烏羽冠을 하사 받아 썼는데 관을 쓸 때 예식을 거행하였다. (환단고기『태백일사』 「신시본기」)
 



蘇塗之立(소도지립)에 皆有戒(개유계)하니 忠孝信勇仁五常之道也(충효신용인오상지도야)라. 蘇塗之側(소도지측)에 立扃堂(입경당)하야 使未婚子弟(사미혼자제)로 講習事物(강습사물)하니 蓋讀書習射馳馬禮節歌樂拳搏(개독서습사치마예절가악권박)(並劒術)(병검술))六藝之類也(육예지류야)라.
 
소도가 건립된 곳에는 모두 계율을 두었는데,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이라는 오상의 도[五常之道]가 그것이다. 소도 곁에는 반드시 경당扃堂을 세워 미혼 자제로 하여금 사물事物을 익히게 하였는데, 대개 독서·활쏘기·말달리기·예절·가악·권박(검술을 겸함)으로 육예六藝의 종류였다. (환단고기『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13세 흘달단군에 이르러 단군이 고조선 전역에 소도를 많이 설치하여 신교를 진작시키면서 출범시킨 ‘국자랑’이 고조선의 정식 낭가이다.  미혼의 자제들중에서 선발된 이들은 소도 바로 옆에 지은 경당에서 글공부를 하며 활쏘기,발달리기,검술 등으로 단련하고 예절,가악을 배우고 익혔다.



삼한의 경당에서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나라의 동량으로 배출된 것이다. 국자랑은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고 다녔으므로 ‘천지화랑’이라고 불렀다.


환단고기는 환국에서 비롯하여 배달국의 제세핵랑 →단군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백제의 무절,신라의 화랑→ 고려의 재가화상 또는 선랑 , 국선으로 계승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석으로 전하는 매금(寐錦)이란 신라왕 호칭은 사서로는 환단고기에만 전한다.

 

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 1988년 발견


국보 제242호 울진봉평리 신라비는 1988년 4월 15일 매일신문에 특종으로 보도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비는 원래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118번지의 논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이 비석은 유백색의 편마상 우백질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높이 204cm 로 전체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까운 부정형이다. 비문은 자연석에 앞면만 다듬어 글자를 새겼는데 모두 399자로 마멸되어 판독이 어려우나 524년 (신라 법흥왕 1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의 내용은 이 비가 세워지기 얼마전에 울진지방에서 불을 지르고 성을 에워싸는 등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여 신라 중앙정부에서 대군을 동원하여 이 사태를 진압한 뒤 그에 대한 사후 처리로 모즉지매금왕(법흥왕)과 신료 13인이 육부회의를 열어 칡소(얼룩소)를 잡는  등 일정한 의식을 행한뒤 현지 관련자들에게 장60대와 100대등의 형을 부과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방민에게 주지 시킨다는 것으로 율령비의 성격을 띤다.





 

울진 봉평비 신라비가 담고 있는 신라사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그 비밀을 풀기위한 첫 번째 열쇠는, 바로 이 비석의 주인공을 찾는 것인데, 비문을 보면 "갑진년 정월 15일... 탁부 모즉지 매금왕...牟卽智 寐錦王 모즉지 매금왕 牟卽智 寐錦王이라...매금왕은 대체 누구일까?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된 신라 매금寐錦


비문의 첫 문단은, 이 비석이 세워진 때가 갑진년이며, 비석을 세운 사람은 모즉지 매금왕(寐錦王)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모즉지 매금왕은 누구인가?



광개토태왕비에도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광개토대왕 대에, 신라의 매금寐錦이 고구려에 직접 와서 조공했다는 내용이다. 학계에서는 이 "매금"이, 신라의 왕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제3면 2행)

遂分爲郡安羅人戌兵昔新羅寐錦未有身來000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00新羅寐錦00僕勾  <계연수 [비문징실1895]로 복구한 내용>





중원 고구려비(1979년 발견 1981년 국보지정)에 실린 매금寐錦



중원 고구려비에 새겨진 광개토대왕비보다 조금 후대에 세워진 중원고구려비에는 "매금寐錦"이라는 명칭이, 무려 여섯 번이나 등장한다.


중원 고구려비에 등장하는 신라매금,동이매금,매금 명칭 6번 나온다


이와 같이 광개토대왕비,중원(충주) 고구려비, 울진봉평신라비 등 발견된 세 비석에는 신라왕을 뜻하는 매금寐錦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그러나 신라를 다룬 기존 사서에는 매금寐錦이라는 용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사서로써 유일하게 매금寐錦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기록에도 나온다. (장수홍제호태열제 재위시 413~491) 신라의 매금寐錦과 백제의 어하라와 함께 남평양에서 만나서 공물 바치는 일과 국경에 주둔시킬 병사의 숫자에 대하여 약정하였다. 又與 新羅 寐錦 百濟 於瑕羅 會于 南平壤 約定 納貢 戌兵之數. 1103p



백제왕을 어하라라고 부른 것은 고주몽이 소서노를 책립하여 부른 것이 최초 기록이다. 또한 중국의 [북사][주서 백제전] 등에서도 백제는 자기들의 왕을 어라하於羅瑕라고 부른다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백제 어라하와 상대되는 신라 매금은 신라왕의 호칭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환단고기를 통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환단고기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출생비밀을 밝혀준다.

 

신라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5대손 파소의 아들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가 부여 황실의 딸이라는 환단고기의 기록은 ‘신라가 부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주는 획기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종래에서는 사대주의 사관의 왜곡, 날조에 의해 중국 진나라 사람들이 한반도로 들어와 신라를 세운 것으로 잘못 인식돼왔다. 삼국유사 감통에는 “선도산 신모는 본래 중국 황실(한라라 8세 소제나 9세 선제의 딸이었는데 이름은 사소娑蘇였다”라고 하였고 또 사소가 처음 중국에서 진한에 와서 박혁거세를 낳았다고 기록하여 파소와 박혁거세의 혈통을 중국 한족 혈통으로 왜곡시켜놓았다.


그러나 정작 중국 사서에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신라(新羅)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어머니는 파소(婆蘇)다. 파소는 고두막한(高豆莫汗)의 딸로서 남편이 없이 임신한 여인이다. 그런 파소는 몰래 진한辰韓 나을촌那乙村으로 도망을 가서 박혁거세를 낳았다. 



규원사화(揆園史話)와 단군기(檀君記) 제47세 고열가(古列加)조의 기록을 보면 “ 단군 고열가임금이 아사달에 살게되자 오히려 백성들은 그를 추앙하여 존경했으며 제후 또한 감히 괴롭히는 자가 없었다.



혹 말하기를 박(朴)씨, 백(白)씨가 모두 그의 먼 후손이며 혁거세(赫居世) 역시 단군의 먼 후손이라 한다. 지금 문헌으로는 밝힐 수가 없어 그것이 확실한지는 알지 못하겠다.(檀君旣徒居阿斯達而 國人猶推尊之 諸侯亦無敢逼者 或曰 朴氏白氏 皆其後裔 而赫居世亦出於檀君之後云 今文獻無徵 未知其確矣)” 고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제6편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의 기록을 보면 “사로의 처음 임금은 선도산 성모의 아들이다. 옛날 부여 제실(帝室)의 딸 파소(婆蘇)가 있었는데 남편 없이 아들을 배어 사람들의 의심을 받게 되자 눈수(嫩水)로부터 도망쳐 동옥저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奈乙村)에 이르렀다. 이 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집에 데려다 거두어 길렀다. 나이 13세가 되자 뛰어나게 영리하고 숙성한데다가 성덕이 있었다. 이렇게 되어 진한 6부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거세간(居世干)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에 세우고 나라이름을 진한(辰韓)이라 하고 또한 사로(斯盧)라고도 하였다.”

 


(斯盧始王仙桃山聖母之子也 昔有夫餘帝室之女婆蘇 不夫而孕 爲人所疑 自嫩水逃至東沃沮 又泛舟而南下抵辰韓奈乙村 時有蘇伐都利者 聞之 往收養於家而 及十三岐祥然夙成 有聖德 於是 辰韓六部共尊爲居世干 立都徐羅伐 稱國辰韓亦曰斯盧)









신라 석탈해(昔脫解)왕은 협보가 세운 다파라국 출신임을 밝힌 환단고기



1. [삼국사기] : 탈해(脫解)는 본시 다파라국의 출생으로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 천리 쯤 되는 곳에 있다.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탈해를] 또는 토해(吐解)라고도 하였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때 나이는 62세였다. 성은 석(昔)씨이고 왕비는 아효부인(阿孝夫人)이었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쪽 1천 리 되는 곳에 있다.



(서기 57년)에 탈해(脫解)가 진한(辰韓) 계림국(鷄林國)의 왕위에 오른다. 신라(新羅) 상대(上代)인 (서기 184년)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이 정권을 잡고 즉위한 뒤부터 내물이사금(奈勿尼師今)이 즉위해 정권이 바뀔 때까지 173년 동안 신라(新羅)를 다스린 석(昔)씨족의 시조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은, 그 동안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2. [삼국유사] : 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사람이요. (정명국(正明國) 또는 완하국(琓夏국)이라고도 한다. 완하는 또 화하국(花廈國)이라고도 하니 용성(龍城)은 왜국 동북 천 리 떨어진 곳에 있다).



3.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 .....이보다 앞서 협보(陜父)가  남한으로 달아나서 마한산(지금의 평양)속에 은거하고 있을 때 따라와서 사는 자가 수백여 가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해 흉년이 들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길에 가득하였다.



이때 협보가 장차 변란이 있을 줄 알고 무리를 꾀어 양식을싸서 배를 타고 패수를 따라 내려왔다. 해포를 거쳐 몰래 항해하여 곧장 구야한국에 이르니 곧 가라해의 북쪽 해안이었다. 몇 달 지내다가 아소산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파라국의 시조이다.



정리 :  신라 제4대 탈해왕(서기 57년-서기 80년)은 다파라국 출신이며, 다파라국의 시조는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의 신하 협보이고, 다파라국은 일본 땅 아소산 부근에 있었고 원래는 구마모또(웅본성, 웅습성)를 차지한 나라이다. 








고구려 개국공신 협보가 건국 이야기는 삼국사기를 보충한다.


 

협보(陜父)는 누구인가?

 

주몽(朱蒙)의 친구이며 고구려 건국의 주역(개국공신,창업공신) 삼국사기三國史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등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있다.


원래 부여왕의 신하였으나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북부여에서 남쪽으로 옮겨올 때 오이(烏伊)‧마리(摩離)와 함께 이주해 와서 주몽 초기의 세력 기반의 하나를 이루었다. 3년(유리왕 22) 대보(大輔)의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사를 소홀히 하는 유리왕을 간하다가 노여움을 사 좌천, 관원(官園)의 일을 맡게 되었다. 이에 분개하여 남쪽 한(韓) 으로 이주해 갔다. (한은 대동강 지역)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는 남쪽으로 이주해간 이후 협보가 왜국으로 건너가 다파라국의 시조가 되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이보다 먼저 협보가 남한으로 달아나서 마한산(지금의 평양)속에 은거하고 있을 때 따라와서 사는 자가 수백여 가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해 흉년이 들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길에 가득하였다. 이때 협보가 장차 변란이 있을 줄 알고 무리를 꾀어 양식을싸서 배를 타고 패수를 따라 내려왔다.


해포를 거쳐 몰래 항해하여 곧장 구야한국에 이르니 곧 가라해의 북쪽 해안이었다. 몇 달 지내다가 아소산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파라국의 시조이다.





옥저는 동서남북 4옥저가 있었다.

 

고대에는 네 곳의 옥저가 있다. 동옥저는 지금의 함경도 지방에 , 남옥저는 요동반도에 있었다. 북옥저는 서간도 지역 즉 장춘 주위에 있었고 서옥저는 만리장성 부근(요령성 백록산에서 연산 부근까지)으로 바로 방명 부여가 자리잡았던 곳이다. 환단고기완역본(상생출판)

 

의려왕은 선비족에게 패하자 도망하여 바다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자제들이 북옥저로 달아나 몸을 보전하다가 이듬해에 아들 의라가 즉위하였다. - 환단고기 대진국본기-

 

12세 단군 아한 재위 29년 을묘(단기 528,BCE 1806)년에 조칙을 내려 청아 욕살 비신과 서옥저 욕살 고사침과 맥성 욕살 돌개를 열한으로 봉하셨다. - 환단고기 단군세기

 

 


 


기존 학계의 잘못 : 종래 학계에서는 한중 고대 사서에 나오는 수많은 옥저의 위치를 모두 함경도로 비정했으나 아주 잘못된 것이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는 평락 11년 (BCE 27)에 북옥저를 멸하고 다음해에 졸본에서 눌견으로 천도를 했다고 했다. 눌견은 지금의 장춘 북쪽에 있으니 북옥저는 장춘 주위의 땅이 분명하다. 환단고기 완역본(상생출판) 1139p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있다.

 

東沃沮(동옥저)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에 있다. [개마는 현의 이름으로 현도군에 손한다. 그 성은 '평양'성 서쪽에 있다. '평양'은 즉 '왕검성'이다.] 동쪽으로 바다에 임한다. 북쪽으로 '읍루', '부여'에 있고 남으로 '예맥'이 접하고 그땅은 동서가 좁고 남북은 길다.

 

北沃沮(북옥저)

또한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이다. '남옥저'에서 팔백여리를 간다. 그 풍습이 모두 남옥저와 같다. 경계는 남으로 '읍루'이고, '읍루' 사람이 배타는 것과 노략질을 즐기니, '북옥저'가 이를 두려워하여 매양 여름에는 바위구멍에 숨어있다가 겨울에 이르러 뱃길이 통하지 않으면 이네 아래 읍락에 거하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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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3-13 13:39
 
진나라 사람이 신라인이 되는게 아니라 진시황의 역(부역 노역 군역)을 두려워한 진나라 사람이 아닌 연.제.조 나라 사람들이 피난 온거죠.  통일을 했으니 진나라 사람에게는 관대하게 역을 부여하고... 정복된 국가의 백성에게 노역을 강화할거라는 두려움
     
스리랑 18-03-13 14:17
 
네, 저도 그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는데 말씀 감사합니다.
6시내고환 18-03-15 20:43
 
옥저에 대해서 더 알고싶은데 사료가 너무 없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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